류현 시집 {봄의 왈츠} 출간
류현Hyun-Ryu(본명 柳明鉉) 시인은 경북 칠곡에서 태어났고, 국민대학 경영학과, 경원대학(현 가천대학)전자공학과(2004년), 동국대학교 대학원(재무행정학 전공)을 졸업했으며, 2015년 {애지}로 등단했다. 류현 시인은 1971년 예비군포장(대통령), 1981년 대통령표창(대통령), 1986년 근정포장(대통령), 1997년 홍조근정훈장(대통령) 등을 받은 바가 있으며, 주요경력으로는 산업통상자원부, 88서울올림픽 조직위 구매계약과장, 통상산업자원부 산업기술국 기술과장, 특허청 국장, 특허심판원 심판장 역임을 역임했으며, 현재 유리안 국제특허법률 사무소의 대표변리사로서 활동하고 있다.
류현 시인의 {봄의 왈츠]는 첫 번째 시집이며, 시인으로서의 그의 존재의 역사와 그 득음得音의 경지가 담겨있다. 말과 함께 숨 쉬고 말과 함께 춤춘다. 요컨대 {봄의 왈츠}라는 시집 속에서 우리 인간들의 행복이 울려 퍼지고 있는 것이다.
E-mail : poethryu@naver.com
까맣게 잊고 살아 왔던
60년 전 짝사랑했던 여인이
갑자기 생각나기도 하고
10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와
고추밭 콩밭 매던 생각
이렇듯 문득 문득 떠오르는 옛 생각들
국어사전에는 “문득”을
“갑자기 떠오르는 모양”이라 풀어 놓았지만
글월문文 얻을 득得 자의 단어는 사전에서
찾을 수 없네
나는 문득文得하기를 바라면서
늦깎기 일흔 하나에
시문학에 입문했지
시문학이 일상 잡념 생각나듯
문득 문득 그렇게 쓰여서
문득文得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만
그래도 포기할 수 없어
오늘도 내일도
서당 문을 기웃거리고 있을 거야
기웃거림의 세월만 어언 사년
그래도 못 잊어 문득文得하기를 기다리며
오늘도 서당 문 앞에 내가 서 있네.
---[문득文得] 전문
이 시는 “문득”이라는 시어를 중의적으로 사용하여 시적 효과를 얻고 있다. “문득”이 이 시에서는 소리꾼들의 득음(得音)을 떠올리게 한다. 그와 비슷하게 “문득”은 ‘시의 높은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지만, 문맥의 흐름으로 보면 원래의 사전적 의미도 함께 내포하고 있다. 즉 “나”는 한 시인으로서 시를 향한 노력과 열정을 다하면서, 어느 순간에 ‘갑자기’ “문득(文得)”의 경지에 오르고 싶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문득”을 생각하니 “60년 전 짝사랑했던 여인”이나 “10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와/ 고추밭 콩밭 매던 생각”을 떠오르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현재의 시간과 현실의 생활에 얽매여 살던 “나”는 비로소 과거의 기억들을 통해 마음의 틈새를 얻었기 때문이다. 이때 과거의 일들을 떠올리는 일은 단지 노년의 여유나 회고를 위한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의 삶을 정서적으로 풍요롭게 하여 시상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가 된다. 어쩌면 “늦깍기 일흔 하나에/ 시문학에 입문했”다는 사실이 기억이나 경험의 풍부함으로 인해 “문득”을 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피카소나 괴테가 일흔 이후에도 불멸의 작품을 만드는 데 성공을 했듯이, 일흔이라는 나이는 그 생물학적 숫자가 문제가 아니라 그 열정과 절실함일 터이다.
“문득”은 반드시 문학이나 시의 높은 경지에 도달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예술적으로 높은 경지에 이르는 것을 제유하는 것으로도 읽을 수 있다. 사실 시나 그림이나 음악이나 춤이나 그 예술적 경지는 유사하다. 다만 그 표현 수단이 언어, 색채, 소리, 동작 등으로 다를 뿐이지 그 추구하는 예술적 경지는 조금도 다르지 않다. 아래의 시는 시인이 추구하는 “득음”의 경지는 과연 어떠한 세계인지를 보여주고 있다(이형권 해설에서).
하늘이 날
부르는 날, 나는
한 걸음에 달려가리.
새벽 먼동과 함께 영롱히 빛나다
사라지는 이슬과 같이
흙으로 돌아가리.
노을빛 비켜 타고
하얀 두루마기에 자홍색 도포 걸치고
온 산 마루를 붉게 물들이고
구름 가마타고 무지개다리 건너서
기쁜 마음으로 돌아가리.
이 땅에서 삶이 끝나는 날
그 삶이
어떠했느냐고 묻는다면
봄과 같이 따뜻하고
가을과 같이 은혜로웠다고
말씀드리리.
----[흙으로 돌아가리] 전문
류현 시인은 일의 예찬자이며, 이제는 최고급의 일꾼으로서 그의 일생을 마감해야 할 지점에 와 있다. 통상산업자원부와 특허청의 고위공직자로서, 유리안국제특허법률사무소의 대표변리사로서, 고희古稀에 이르러 시를 쓰기 시작한 시인으로서, 류현의 [흙으로 돌아가리]라는 시를 읽다가 보면, 어느 누구도 행복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하늘이 날/ 부르는 날, 나는/ 한 걸음에 달려가리”라는 기쁨도 있고, “새벽 먼동과 함께 영롱히 빛나다/ 사라지는 이슬과 같이/ 흙으로 돌아”간다는 기쁨도 있다. “노을빛 비켜 타고/ 하얀 두루마기에 붉은 도포 걸치고// 온 산 마루를 붉게 물들이고/ 구름 가마타고 무지개다리 건너”간다는 기쁨도 있고, “이 땅에서 삶이 끝나는 날/ 그 삶이/ 어떠했느냐고 묻는다면// 봄과 같이 따뜻하고/ 가을과 같이 은혜로웠다고/ 말씀드리리”라는 기쁨도 있다.
당신도 이처럼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흙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고, 당신도, 당신도 이처럼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흙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기쁨 중의 기쁨은 죽음이며, 죽음이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의 삶이 더없이 즐겁고 기쁜 것이다.
만루 홈런과도 같은 죽음, 더 이상 지루하고,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게, 단 한 번에 이 세상의 삶에 종지부를 찍게 해주는 행복----, 류현 시인은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연주하고 있는 낙천주의자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큰 벼루에
묵향 그윽한 먹을 간다.
먹물이 붓에 휘어 감기니
붓은 낚싯대가 되어
벼루 강에서 춤을 춘다.
먹물이 출렁이면
낚싯대는 재빨리 잉어 한 마리를
화선지 어망에 담는다.
낚싯대에서 잡아 올린 잉어는
화선지에서 팔딱팔딱
튀어 오른다.
먹물은 화선지 위의 공간에서
튀어 다니며 도도한 물결 만드니
산중의 목어도 내려와 춤을 춘다.
움직이는 붓대 따라
먹물이 튀면서
탄생한 새로운 세상이 벽에 걸린다.
진한 묵향 속에서
삶의 향기는 더욱 그윽해 진다
---[묵향을 치다] 전문
-----지혜클래식 005번 류현 시집, {봄의 왈츠}, 양장, 도서출판 지혜, 값 1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