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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11일 주현절 후 두 번째
성경 ; 삼상3:1-10,11-20, 고전6:12-20, 요1:43-51
제목 ; 우리 몸은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의 집
1.인간의 소외된 상황과 필요성 (인간의 문제점) - 우리 몸을 잘못
사용하고 있습니다.
①(원인)우리 몸의 주인이 하나님이신 걸 잘 깨닫지 못하고 있습
니다.
ㄱ.먹는 일과 즐기는 일을 아주 중요한 것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ㄴ.잘못된 생각(고정관념과 편견 등)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②(과정)자기 몸을 잘못 사용하고 있습니다.
ㄱ.하나님께 영광 돌리는데 사용치 않고 자기만을 위해서 사용
하고 있습니다.
ㄴ.주께서 금하신 것까지 행함으로써 하나님께 범죄하고 있습니
다.
ㄷ.자식이 죄를 지어 멸망의 길로 가는 것을 방치하고 있습니다.
③(결과)멸망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ㄱ.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아서 더 무서운 죄를 짓고 있습니다.
ㄴ.자신은 물론이요 가족까지도 망하게 할 것입니다.
2.하나님의 본성과 활동 (하나님의 치료) - 우리 몸의 주인은 하나
님이십니다.
①(본질)우리 몸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ㄱ.하나님은 우리로 인하여 영광 받기를 원하십니다.
ㄴ.우리 몸을 그리스도의 한 지체로 삼으셔서 거룩하게 사용하
기를 원하십니다.
②(활동)우리 몸을 주님의 뜻대로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ㄱ하나님은 자기직무에 정성 다하는 사람을 세워 사용하십니다.
ㄴ.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게 하시고, 또한 말씀으로 가르쳐서 주
님의 뜻을 이루게 하십니다.
③(결과)모든 사람들로부터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받게 하십니
다.
ㄱ.사람들로부터 칭찬과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ㄴ.사람들에게 관용과 사랑을 베푸는 넉넉한 사람이 됩니다.
3.인간의 응답 (건강한 삶) -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 몸을
사용해야 합니다.
①(준비)잘못된 생각(고정관념과 편견 등)을 버리고 악령의 지배
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ㄱ.우리 몸은 먹거나 즐기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ㄴ.우리 몸은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입니다.
②(실천)우리 몸을 하나님께 바쳐서 거룩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ㄱ.우리 몸과 마음에 항상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ㄴ.우리 몸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에 거룩하게 사용해야 합
니다.
ㄷ.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은 기적이 아니라
관용과 사랑입니다.
③(결과)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거룩하게 쓰임 받는 존재가 될
것입니다.
ㄱ.사람들로부터 인정과 칭찬을 받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ㄴ.사람들에게 관용과 사랑을 베풀면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4.파견사
목사 :우리 몸과 마음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
리 몸은 무엇을 먹거나 즐기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
광을 위하여 거룩하게 쓰임 받아야 할 귀중한 존재입니다. 지금
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우리 몸에 대한 고정관념과 잘못된 생각
을 버리고,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와 온전히 하나가 됨으로써 주
님의 뜻대로 귀하게 쓰임을 받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사십시오.
회중 : 아멘. 하나님께서 비싼 대가를 치르시고 우리 몸을 사셨다는
말씀에, 다시금 깊은 감동과 감화를 받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몸
을 우리 자신의 쾌락과 즐거움만을 위하여 사용했던 지난날의 잘
못된 생활을 심히 부끄럽게 여깁니다. 이제부터는, 우리 몸과 마
음을 주님께 온전히 바치고, 하나님의 뜻과 영광만을 위하여 거
룩하게 사용함으로써 세상 사람들에게 빛이 되는 삶을 살아가겠
습니다.
5.예배에의 부름(시139편)
우리가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는 우리가 신기하고 놀랍게 만들
어졌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하신 일들은 참 놀랍습니다. 우리는 그것
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오, 하나님! 주님의 생각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지요? 그것들이 얼마나 크고 많은지요? 만일 우리가
그것들을 셀 수 있다면, 아마 모래알의 숫자보다 더 많을 것입니다.
우리가 잠에서 깰 때에도, 우리는 여전히 주님과 함께 있습니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 감사와 찬양을 돌립니다. 우리에게 오늘도
복된 날을 허락해주셔서 주님을 찬양하며 예배할 수 있는 귀한 특권
을 주셨으니,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주님의 백성으로 인정을 받은 오
늘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께 예배하고자 하오
니, 우리의 예배를 기쁘게 받아주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통하
여 힘과 용기와 소망을 얻을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십시오.
우리를 구원하여 참생명을 주시려고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
도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6.공동의 기도
주여, 우리를 부르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시고, 날
마다 새로운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주시니 감사합니다. 더군다나, 예
수를 믿는 우리에게 거룩한 주일을 주셔서 하늘의 풍성한 복을 주시
고 진리의 말씀을 듣게 해주시니, 더욱 감사합니다. 바라옵건대, 오
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통하여 많은 은혜를 받게 하시고, 하나
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 사랑의 깊이와 높이, 넓이도
깨닫게 해주십시오. 그래서 주님의 뜻에 따라 올바르게 살아감으로
써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에 보답할 수 있게 하소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7.성시교독
목사 : 여호와여, 주께서 지금까지 우리를 살피셨으니, 주는 우리를
알고 계십니다.
회중 : 주는 우리가 언제 앉고 언제 일어서는지 알고 계십니다. 주
는 멀리서도 우리의 생각들을 아십니다.
목사 : 주는 우리가 나가고 눕는 것을 아십니다. 주는 우리의 모든
길에 대하여 잘 알고 계십니다.
회중 : 주께서 우리의 가장 깊은 곳을 지으셨으며, 우리 어머니의
뱃속에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목사 : 우리가 주를 찬양합니다. 이는 우리가 신기하고 놀랍게 만들
어졌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하신 일들은 놀랍습니다. 우리는 그것
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회중 : 우리 몸은 주께로부터 피하여 숨을 수 없습니다. 이는 우리
가 은밀한 곳에서 만들어질 때에 그러했습니다.
목사 : 오, 하나님! 주의 생각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지요. 그
것들이 얼마나 크고 많은지요.
회중 : 만일 우리가 그것들을 셀 수 있다면, 아마 모래알의 숫자보
다 더 많을 것입니다. 우리가 잠에서 깰 때도, 우리는 여전히 주
와 함께 있습니다.
8.예화
1)솔개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몸부림
솔개는 태어난 지 약 40년이 되면 고통스런 수행을 시작한다고
합니다. 40년이 되면, 깃털이 무거워져 하늘 높이 날아오르기가 힘
들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부리와 발톱은 굽고 무디어져서 사냥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이 지경이 되면, 솔개는 높은 산으로 날아가 둥지를 틀고 반년에
걸친 자기와의 싸움을 시작합니다. 먼저, 자기 부리를 돌이나 나무에
부딪쳐 빠지게 합니다. 그리고 다시 새 부리가 나기를 기다립니다.
그런 후에, 자기 부리로 자기 발톱을 쪼아 발톱을 하나씩 뽑아냅니
다. 그리고 발톱이 돋아나면, 날개의 깃털을 뽑아 새 깃털로 바꿉니
다. 이 과정을 통한 솔개만이 다시 30년의 새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2)내가 사랑해야 할 내 몸
자신의 몸이 못생겼다고 생각하면서 움츠린 사람이 있다면, 자신
이 지금 속고 있음을 알아차려라. 지금까지 자신의 눈이 아니라, 어
떤 근거인지도 모르는 기준으로, 양해도 없이 일방적으로 정해진 남
들의 조건으로 자신을 보았기 때문에, 사랑해야 할 몸을 구박했음을
인정해라. 세상의 그 어떤 존재도 다른 존재의 모델이 될 수 없고
우위에 있을 수 없다.
- 홍신자의《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중에서 -
3)황의성 씨의 변화된 인생
황의성 씨가 쓴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내게 계시네」라는
책의 제목은 찬송가 427장 후렴 가사를 옮겨 놓은 것이다. 그는, 지
난 2001년 3월에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427장의 찬송을 하
루에 세 번 내지 다섯 번씩 불렀다고 한다.
황의성 씨는 소년 시절부터 절도와 폭력, 강도, 강간 등 닥치는
대로 죄를 저질렀던 사람이다. 그래서 교도소도 여러 번 다녀왔다.
그런데, 1970년 12월, 7개월의 복역 잔류 기간을 앞두고 안양 교도
소로 이송되는 상황이 생겼다. 새롭게 지정된 감방에 들어가니, 선임
들이 고통을 주기 시작했다. 화가 난 황의성 씨도 육탄전으로 맞섰
지만, 그때마다 눅실하게 맞고는 분을 삭일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감방 안에 변기통 옆에서 한 죄수가 그들
의 싸움을 보며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기
도를 마친 그 사람은 눈물도 닦지 않은 채 황의성 씨의 피를 닦으면
서 간호를 해주었다고 한다. 그때, 황의성 씨의 가슴은 마치 불덩이
가 날아와서 불을 붙이는 것처럼 뜨거워졌다고 한다.
그로부터 황의성 씨는 착실한 신자 죄수와 친하게 지내면서 그리
스도를 영접했고, 성경을 읽으면서 뜨거운 성령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다. 황의성 씨가 변화되는 모습을 본 교도소 측에서는 3개월을
앞당겨서 출소시켜 주었다. 이후, 그는 날마다 이 찬송을 불렀다.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내게 계시네.”
이렇게 성령은, 불씨 중에서 가장 위력 있는 불씨라서, 한 죄수의
마음을 태우고, 그로 하여금 영혼 구원 역사에 동참케 했던 것이다.
4)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성품
일전에, 우리 동네에 한 가족이 심각한 호흡기 질환을 앓았다. 역
학 조사 결과, 집안에 퍼진 ‘검은 곰팡이’가 원인이라는 사실이 밝혀
졌다. 그때부터, 길고 힘든 유독성 검은 곰팡이 제거 작업을 시작했
다. 그러나 검은 곰팡이가 너무 많이 퍼져 있어서, 대청소나 대대적
인 보수 공사로 해결될 상황이 아니었다. 오염 상태를 해결할 방법
은 집 전체를 허무는 수밖에 없었다.
그 가족은, 약간의 곰팡이에 대해서도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
았기 때문에, 집을 완전히 허물고 새로 지었다.
죄는 인간의 영혼을 속속들이 오염시키는 독소다. 하나님이 우리
를 구원하셨을 때, 우리 안에 있는 죄의 흔적까지 말끔히 씻기고자
하셨다. 하나님은 성화(聖化)라는 평생의 과정을 통해 그 일을 하신
다. 곰팡이로 오염된 집처럼, 거룩함을 추구하는 과정에서도 개혁이
나 혁신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옛집’ 곧 육체의
부패한 행위와 욕망을 죽여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최고의 설계가이자 건축가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새롭고 거룩한 삶을 다시 설계하셨다. 우리가
할 일은 예수님과 그분의 의를 ‘덧입는’ 것이다. 거룩해지기 위해 오
염된 집을 허무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고 의를 입어야 한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성품, 거룩함」
5)노숙인이 열 달에 1000만원 모은 비결은?
가락시장서 환경미화 작업으로 일당 5만원을 받아, 무료급식으로
세 끼 해결, 술 담배 안하고 자전거 출퇴근.
시장(市場) 환경미화 일을 하며 한 푼도 쓰지 않고 열 달 동안
1000만원을 저축한 심모(65)씨가, 서울시가 노숙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저축 왕 선발대회’에서 1위를 차지했다.
서울시가 지난해 2월부터 10개월 동안 노숙인을 대상으로 한 ‘저
축 왕 선발대회’에는 노숙인 95명이 도전했다. 여기서 심 씨는 대회
기간 동안, 월급을 단 한 푼도 쓰지 않고, 이자까지 꼬박꼬박 모아
저축률 100%로 1위가 됐다.
심 씨는 1944년생이다. 한국전쟁을 겪었고, 월남전에 참전해서
부사관으로 제대했다. 중동 건설 붐을 타고 ‘열사(熱砂)의 나라’에서
기능공으로 일하다 귀국했지만, 아내는 다른 남자와 살림을 차려 이
혼하고 말았다. 그 뒤 20여년은, 건설 잡부, 농사일로 하루 벌이에
급급했던 삶이었다. 고엽제 후유증으로 보훈병원에 입원한 심 씨가
의지할 사람은 없었다.
노숙자 생활이 시작된 것은, 퇴원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거
리를 떠돌던 심 씨가 현재 생활하는 곳은 서울시가 운영하는 자활
형 쉼터다. 일 하면서 버는 돈의 30%에서 절반 정도를 저축하지 않
으면 퇴소해야 한다. 2006년 말부터 노숙인 일자리 갖기 사업에 참
여한 심 씨는 지금 서울 가락시장에서 쓰레기 청소와 재활용품 분리
수거를 한다.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하루 8시간 일하고 일당 5만원
을 받는다.
심 씨가 저축 왕이 된 것은, ‘적은 돈이라도 허투루 쓰지 않는 짠
돌이’ 생활 습관 때문에 가능했다. 그는 오전 6시15분에 일어나, 쉼
터에서 제공하는 아침식사를 먹고, 8시30분이면 가락시장에 도착했
다. 점심은 현장의 무료 배식으로 해결했다. 오후 작업을 마치고 쉼
터로 돌아오면 오후 5시. 저녁 식사 후에는 TV 시청이나 장기·바둑
으로 소일한 뒤, 10시면 잠자리에 들었다. 쓸데없는 돈이 새 나갈
틈이 없었다.
급여 통장에 딸려 나온 체크카드는 사회복지사에게 맡겼고, 신용
불량자는 아니었지만, 신용카드는 아예 만들지 않았다. 주민등록증은
쉼터에 두고 다녔다. 당연히 지갑은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었다. 휴
대전화도 없고, 출퇴근은 중고 자전거로 했다. 술도 마시지 않고, 담
배도 피우지 않으며, 한 푼 두 푼 차곡차곡 모았다.
작년 2월, 65만원이 통장에 찍힌 것을 시작으로, 3월에 90만원,
이후 매달 100만원이 조금 넘는 월급이 들어왔다. 1000원 안팎이었
지만, 석 달에 한 번 이자도 붙었다. 4월부터 매달 2만원씩 내기 시
작한 주택청약저축액은 16만원으로 늘었다. 꼭 돈이 필요할 때는 사
회복지사와 면담을 통해서 필요한 만큼 찾아 쓸 수 있었지만, 그는
10개월 동안 단 한 번도 그런 부탁을 하지 않았다. 대회가 끝난 11
월 말, 그의 저축액은 1005만원에 달했다.
용돈이 필요했을 때는 어떻게 했을까? 주변에서는 “심 씨가 짬을
내서, 버려진 종이 박스와 빈 병을 수집해서 용돈벌이를 했다”고 말
했다. 월급만큼은 절대 건드리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적잖
은 노숙인이,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금액’보다 많은 돈을 가지고
있을 때에 나타나는 ‘저축 불안증’ 때문에, 애써 모은 돈을 음주·경
마·성인오락으로 탕진하는 현실 속에서, 심 씨의 고집은 더욱 돋보
였다.
월급이 나오는 매달 말일, 김준우(33) 사회복지사는 쉼터 사람들
에게 통장 입금 내역을 일일이 알려준다. “통장을 잠깐 좀 주시면….”
조용히 통장을 건네받은 심 씨가 ‘쉼터’ 문을 나서 은행의 무인(無
人)창구를 향한다. 현금지급기 모니터에 떠오른 입금액을 두 눈으로
확인하는 그 짧은 순간, 심 씨의 얼굴에 살포시 환한 미소가 퍼진다.
별 달리 가진 것이 없는 심 씨에겐, 두 개의 통장이 ‘보물 1호’다.
지난 연말, 심 씨는 쉼터 입소 2년째를 맞았다. 입소 기간을 모
두 채워, 이달 말이면 쉼터를 떠나야 했지만, ‘노숙인 저축 왕’ 수상
으로 퇴소 기한이 반 년 정도 늦춰졌다. 자활의 기반을 좀 더 탄탄
히 다지고 떠나라는 배려다.
그는 서울시 ‘희망 플러스 통장’ 후보자에도 올랐다. 가입되면,
매달 자신이 적립한 금액(5만~20만원)만큼, 서울시와 민간 후원기
관이 추가 적립해 힘을 보태게 된다. 1등 상금 50만원도 확보했다.
3월에는 서울시장의 표창장을 받는다.
9.설교예문
♣주현절 후 두 번째
성경 ; 삼상3:1-10,11-20, 고전6:12-20, 요1:43-51
제목 ; 우리 몸은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의 집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여러 학교에서 수없이 발생하고 있는 왕따
문제로, 엄청 시끄럽습니다. 교육현장은 물론이요, 일반사회에서도
‘왕따’가 아주 큰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어제께 뉴스에서
는 ‘부모가 동의하지 않아도 왕따 가해자를 강제로 전학을 시킨다.’
고 하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해학생 부모에게는 과
징금도 부과한다는 것입니다.
왕따 가해자를 강제전학 시키기로 한 것은, 가해 학생이 전학을
거부하는 바람에, 오히려 피해 학생이 다른 학교로 전학을 해야 하
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1년간 동급생들에게 온갖 폭행과 모
욕, 성추행 등, ‘왕따 폭행’을 당했던 서울 강서구의 K중학교 학생과
그 가족이, 지난 8일, 살던 집을 떠나서 남양주의 어느 교회로 피신
했다는 것입니다.
피해자 학생이 가해자로 지목했던 학생의 아버지가, 지난해 12
월, 피해자 학생 집으로 쇠파이프를 들고 와서 난동과 협박을 했다
고 합니다. 그러니까, 1년간 자식이 당한 ‘왕따와 폭행’을 당한 것도
모자라서, 가해자 가족의 협박과 난동 때문에, 피해자 임 군의 가족
모두는 그들이 살던 곳을 떠나야 할 형편이 된 것입니다.
가해자 학생의 아버지는, ‘목을 따버리겠다.’, ‘죽여 버리겠다.’고
하면서 30분 동안이나 소리를 지르면서 피해자 가족을 윽박질렀다
는 것입니다. 그래서 임 군의 가족은 그날 이후부터 계속 공포에 떨
면서 지내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사건의 발단은, 가해자 학생이 임 군에게 “시험 잘 봤냐?”고 묻
자, “응”이라고만 대답했다는 이유로 학교 인근 골목길에서 폭행을
함으로써 시작되었습니다. 가해자 학생은 “야, 너 성적이 좀 올랐다
고 유세를 떠는 거냐?”고 하면서 임 군을 주먹으로 머리를 때리고
발로 걷어찼습니다. 그리고 이 장면을 우연히 목격한, 한 여고생이
학교에 전화를 했고, 그래서 사건이 표면화될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가해자 학생과 그 부모도 나름대로 할 말이 많겠지만, 그래도 어쨌
든 피해자 학생과 그 부모에게 용서를 빌어야 할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쇠파이프를 들고 집으로 찾아가서 피해자 학생과 그
가족에게 협박을 하면서 위협을 가할 수가 있었을까요? 우리 머리로
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사무엘상 3장에는 ‘엘리’ 제사장과 그 아
들들의 이야기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미 2장에서부터, 그 아들들
의 나쁜 행실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2장 12절을 보면, ‘엘리 제사장
의 아들들은 점점 쓸모없는 자식들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제사
장이면서도 주님의 일을 위해서는 전혀 힘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성전에 찾아와서 제물을 바치는 백성들을, 자주 괴롭혔습
니다. 그들은 제사장의 몫으로 돌아오는 고기만 받지 않고 여러 가
지 행패를 부렸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희생제물을 바치기 위해서
양이나 소를 끌고 오면, 그 고기를 삶아 예물로 바치기도 전에, 시종
들을 보냈습니다. 그러면, 그 시종들은 커다란 갈고리를 들고 다니
며, 아직도 냄비나 가마솥에서 펄펄 끊고 있는 국물 속으로 갈고리
를 찔러 넣어, 거기에 찍혀 나오는 고기를 제사장 몫이라고 우기면
서, 그들의 상전에게 갖다 바쳤던 것입니다.
심한 경우, 제물의 기름을 떼어서 주님의 제단에 태워 바치기도
전에, 제사장의 시종이 다가와서 제물 바치는 사람들에게 위협적인
말투로 “우리 제사장께 구워드릴 고기를 내놔요. 제사장은 삶은 고
기를 좋아하시지 않으니, 날고기로 그냥 주시오”하고 강요했습니다.
제물을 준비하던 사람이 “안 됩니다. 제물이란 먼저 주님 앞에
기름부터 태워 바치는 법이니, 기다렸다가 그 다음에나 살코기를 떼
어 가든지 하십시오.”하고 대답하면, 시종은 “지금 당장 시키는 대로
내놓지 않으면, 내가 강제로라도 고기를 떼어가겠다.”고 하면서 노골
적인 폭언까지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 엘리 제사장은 이미 자기 아들들의 악행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건만, 아들들의 악행을 막아보려고 힘쓰지 않았
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린 사무엘에게 말씀하시기를 “엘리는 자식
들이 내게 죄를 범하는 줄 잘 알면서도 막지 않았다(13)”고 했습니
다. 그래서 하나님은 “엘리 집안이 어떤 제물을 바쳐도 그 집안의
죄악이나 허물을 용서할 수 없다(14)”고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굳이 사무엘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던 것은, 엘리 제
사장이 늦게라도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자식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
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엘리 제사장은 사무엘로부터
하나님의 경고를 전해 듣고서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엘리 제사장이 하나님의 경고를 전해 듣고 그 아들들을 부
지런히 야단쳐서 옳은 길로 인도했으면, 그와 그 아들들이 나중에
겪게 되는 그런 불행을 당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무조건 순조할 따름이다.”라고
했을 뿐, 아들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그 아들들은 주를 두려워하지 않고 점점 더 무서운 죄
를 지었다’고, 사무엘상 3장 21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참으로 안
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름 아닌 제사장의 아들들이 이처
럼 무서운 죄를 지었으니, 얼마나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입니까?
아시다시피, 엘리 제사장과 그 집안은 그리 얼마 가지 않아서 엄
청난 불행을 겪게 됩니다.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은 법궤를 모시고
전쟁에 나갔다가 전사했고, 엘리 제사장은 법궤를 빼앗겼다는 소식
을 듣고 놀란 나머지 그만 앉았던 의자와 함께 뒤로 넘어지는 바람
에 목뼈가 부러져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며느리 하나는,
남편과 시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나 놀라서 갑자기 진
통을 하게 되었고, 결국은 아기를 낳다가 죽었습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
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시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입니
다. 우리가 불행이나 재난을 겪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
셔서가 아니라, 우리가 불행의 길로 갔기 때문에 겪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어떤 길이 생명의 길
이고 죽음의 길인지 알려주셨습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생명의 길을
가면 살게 되는 것이고, 우리 스스로가 죽음의 길을 선택해서 갈 경
우에는 멸망의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요컨대,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형
상을 닮은 인간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특별히 우리 인간에게만 ‘스스
로 선택해서 살 수 있는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누구에
의해서 억지로 끌려가는 노예가 아니라, 스스로 판단해서 살 수 있
는 길을 선택하고 가는 ‘자유자’의 길을 가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제 돌이 갓 지난 ‘루디아’를 보면 그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
다. 어른 주먹만 한 것이 그 나름대로의 주장이 있고 고집이 있습니
다. 한 번 고집을 부리면, 아무리 달래도 소용이 없습니다. 끝내 자
기 고집대로 해야 합니다. 하지만, 자기 엄마한테는 그 고집이 통하
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고집을 부리다가도 자기 엄마가 들
어주지 않을 것 같으면, 그 고집을 꺾고 마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 지은 죄를
털어놓고 용서를 구하면, 무슨 죄든지 다 용서해주십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정해놓은 그 원리원칙은 바꾸지 않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생명의 길’과 ‘죽음의 길’을 바꾸는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끝까지 죽음의 길을 선택해서 갈 경우, 하나님
도 어찌할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죽음의 길을 가다가 그
길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생명의 길로 고쳐서 갈 경우, 하나
님은 우리가 지난날에 지은 모든 죄를 다 용서해주십니다. 하지만,
우리 자신이 스스로 죽음의 길을 선택하여 간 결과로써 고난과 불행
을 겪게 되었다면, 그것은 우리 스스로가 자초한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어떻게 살아야 복이 되
고, 어떻게 살면 불행을 겪게 되는 것인지, 그 사실을 분명히 바로
알고서, 아무쪼록 복이 되는 길로 가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 외에, 자신이 원하
는 것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전6:12)’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은 행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
리에게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것만을 택해서 행해야 합니다. 요
컨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금하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복
이 되지 않기 때문에 ‘하지 말라’고 금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런 금지사항을 두신 것에 대해서 아주 심
히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치 ‘하나님이 우리의 자유를
억압하고 우리의 권한을 침해하셨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
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금하신 것을, 사람들
이 부득불 행할 경우, 하나님도 결코 막을 도리가 없습니다. 그런고
로, 고집을 부려서 당한 결과는 그 사람 자신이 책임져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조금씩은 청개구리 성질이 있습
니다. ‘하지 말라’고 한 것은 오히려 더 하고 싶어 하는 가하면, ‘하
라’고 한 것은 그 반대로 ‘하기 싫어하는’ 아주 못된 성질이 있습니
다. 이것은, 태초 아담과 하와 때부터, 우리 인류의 몸속에 흐르고
있는 유전적인 성질입니다. 그러기에,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어라’고 명령했더라면, 어쩌면 오히려 그들
이 그 열매를 따먹지 않았으리라는 생각도 해보는 것입니다.
우리 ‘유니게’를 보면, 그 고약한 성질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
다. 누가 무슨 일을 시키면 그 반대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는, ‘예쁘다’고 해도 오히려 짜증을 내며 싫어합니다. 그래서 저는,
일부러 유니게를 못 본 척하면서 루디아하고만 놀았습니다. 그랬더
니, 저에게 다가와 집적대면서 함께 놀아주기를 청하는 것이었습니
다. 어쨌든, 우리 인간에게는 이런 청개구리 심리가 있다는 것을 부
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못된 성질을 빨리 극복하지 못하면 원
치 않는 불행을 가져올 가능성이 많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
의 말씀과 반대로 행하면서, 어찌 무사하기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하건만, 어떤 이들은 오래 전에 40-50대 어른이 되었건만, 아직
도 어린아이처럼 청개구리 성질을 버리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있으
니, 참으로 딱한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낸 첫 번째 편지에서, ‘사람들이 말
하기를 “내게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하지만, 모
든 것이 다 유익한 것은 아니다.’라고 하면서, ‘먹는 문제’를 예로 들
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음식을 먹도록 식욕을 주시
고, 그것을 소화시키도록 위장을 주셨다. 그렇다고 해서, 필요 이상
으로 먹어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요컨대, 먹는 것을 중요한 일인 것
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고전6:13)’
그러니까, 사도 바울의 말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진정으로 사랑
하셔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정해놓으셨다는 것입니
다. 그런고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일러주시는 대로 따르는 것이 복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건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참뜻을 제
대로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과는 정반대로 살아가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삶을 살아감으로써 이미 여러 차례 레드카드를 받
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기 욕심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 제사장이 자기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기를 참
고 기다리셨습니다. 하지만, 그는 끝끝내 그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
다. 그래서 결국은, 자신이 스스로 파놓은 그 불행의 함정에 빠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런고로, 엘리 제사장은 그 누구를 원망할 수가
없었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얼마든지 그 죄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데도, 안타깝게도 그는 그 기회를 외면하고 말았습니다.
요한복음 1장 43절 이하에는, 나다나엘이 예수님을 만나 뵙게 되
는 장면이 나오고 있습니다.
나다나엘은 친구인 빌립을 통하여 예수님에 대해서 소개받았습니
다. 하지만, 나다나엘은 빌립의 말을 쉽게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습
니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메시야가 예루살렘에서 태어나신다.’고 되
어 있는데, 예수는 나사렛 출신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나사렛에서 성장하셨을 뿐이지, 사실 출생지는
예루살렘 근처인 베들레헴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다나엘
은 예수님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려고 하지 않고, “나사렛에서
무슨 훌륭한 인물이 나올 수 있겠느냐?”고 하면서, 빌립의 말을 무
시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빌립은 ‘말로써는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직접 한 번 만나보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예수님을 찾아갔습니다. 주님은, 두 사람이 자
신에게로 가까이 오고 있는 것을 보시고, “저 사람이야말로 진정 이
스라엘 사람이다. 그에게는 거짓이 없다.”고 하시면서 나다나엘을 칭
찬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쉽게 무시했으나, 예
수님은 오히려 나다나엘을 긍정적으로 보면서 칭찬하셨던 것입니다.
나다나엘은 심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자신은 예수님을
자세히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했는데, 예수님은 자신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듯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예수님은 그에게 극도의
칭찬까지 아끼지 않았습니다.
나다나엘은 주께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하고 물어봤습니다. 그
러자, 예수님은 더욱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빌립이 당신을 찾
아가기 전에, 이미 나는 당신이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봤다.”
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다나엘은 그 즉시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
들이시며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라고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아무튼, 나다나엘은 주님을 직접 만나 뵘으로써 자신의 잘못된
생각을 고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아직도 잘못
된 생각을 갖고 있다면, 그 잘못된 것을 고쳐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만, 자신에게 닥칠 수 있는 불행한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습니
다.
우리가 잘못된 생각이나 편견을 버리지 않을 경우, 악령의 지배
를 받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악령은 우리의 잘못된 생각
이 무엇인지 아주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악령은, 우리의 잘못
된 생각과 편견을 이용해서, 우리를 죄악의 길로 빠뜨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 선생은 말하기를 ‘우리 몸은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의
집’이라고 하면서 ‘우리 몸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고전6:19)’라고 했
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비싼 댓가를 치르시고 우리를 사셨다’는 것입
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몸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사용해
야 합니다. 내 몸을 내 맘대로 사용해서는 결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몸을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 일에 사용하고자 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몸을 안전하게 지켜 보호하여 주실 것입니다.
우리 몸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에 사용하기 위해서는, 하
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것과,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을, 잘 구별해서
지켜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자녀들과 그 후손들까지도 우리
의 삶을 본받아서 거룩하고 복된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잘못된 생각과 그릇된 성품을 버리고, 주님께서 주신
말씀에 따라 겸손히 순종함으로써, 참으로 축복된 인생이 다 되시기
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