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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강의 및 감상평
김영남
☞ 시를 쉽게 쓰는 요령은 상상하는 방법을 익히는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초보자들이 시를 쓸 때 제일먼저 봉착하는 것이 어떻게 시를 써야하며, 또한 어떻게 쓰는 게 시적 표현이 되는 것일까 하는 점입니다. 필자도 초보자 시절 이러한 문제에 부딪혀 이를 극복하는 데에 거의 10년이 걸렸습니다. 그 동안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듭했던 거죠.
필자가 이와 같이 시행착오를 거듭했던 이유는 시란 ' 자기가 경험했고, 보고 느낀 것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게 시다' 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좋은 시를 힘들이지 않고, 개성적으로, 재미있게 쓰는 데에는 이게 바로 함정이라는 걸 나중에야 깨닫게 된 거죠. 경험과 느낌은 모든 사람들 대부분이 비슷합니다. 그러나 상상은 천차만별이죠.
하여, 시를 힘들이지 않고, 개성적으로 잘 쓰려면 상상으로 써야 합니다. 상상으로 써야 발전이 빠르고 좋은 시를 계속 양산할 수 있습니다. 즉 시란 자기가 쓰고자 하는 소재를 두 눈 딱 감고 상상해서 쓰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단순하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초보자 시절에는. 보고, 느낀 걸 쓰는 게 시다라는 고정관념에 빠지니깐 시를 한 줄도 제대로 전개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게 되는 겁니다. 즉 보고 느낀 것이 다 떨어지면 그때부터 허둥대기 시작하는 거죠. 기껏 돌파구를 마련한다는 게 자기 주변 친구, 부모, 어린 시절 이야기 등을 둘러대는 정도. 그리곤 스스로 훌륭한 시를 썼다고 자기도취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이 시가 되면 얼마나 다행이겠습니까. 만 99%가 그렇고 그런 이야기, 누구나 다 보고 느끼는 형편없는 넋두리, 서사, 풍경 나열이 되기가 일쑤죠.
지금까지 이런 방식으로 시를 써왔다면 이 순간부터 기존 쓰는 방식을 잠시 접어두고 필자가 안내한 대로 석 달만 같이 공부해 보도록 합시다. 글이 달라지는 걸 본인 스스로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우선 상상하는 것부터 배우도록 합시다. 그러면 어떻게 상상할 것인가?
우선 상상할 소재, 즉 상상할 대상을 구체적인 것 하나를 고르세요. 자신이 있는 곳이 지금 사무실이라고 하면 주변에 있는 꽃병, 벽, 창, 하늘, 노을 등이 있을 겁니다. 이중 어느 하나를 골라 봅시다.
필자가 먼저 어떻게 상상하는지 그 방법의 예를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노을>로 한번 해볼까요?
기존 방식대로 <노을>이란 소재로 시를 한번 시를 써 보라고 하면 대다수가 노을을 쳐다보며 < 피 빛 노을이 아름답구나/ 나는 저 노을 아래로 걸어간다/ 친구와 함께...> 대다수가 아마 이런 식으로 글을 시작하지 않았겠나 여깁니다. 그러나 이건 느낌을 적은 것이고 상상한 게 아닙니다.
상상을 이렇게 해보는 겁니다. 만약 자신이 현재 에로틱한 감정상태에 있다면 <노을>을 바라보며, 또는 <노을>을 머리 속에 담고서 이렇게 눈부신 상상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한 여자가 옷을 벗고 있다/ 그녀가 옷을 벗으니까 눈부셔 눈물이 날 지경이다/ 나도 저렇게 발가벗고 그 곁으로 가고 싶다/ 아니다, 그녀를 데리고 여관으로 가고 싶다/ 가서 같이 포도주 한 잔을 건넨 다음 껴안고 뒹굴고 싶다........> 이렇게 노을을 발가벗고 있어서 눈부신 여자로 여기고 계속 상상해 가는 겁니다. 이땐 순서를 생각하지 말고 앞 상상의 핵심어를 가지고 다음 상상을 유치하든 품위 있든 따지지 말고 계속 해보는 겁니다. 그리고 이걸 나중에 논리적으로 순서를 다시 잡아 정리, 수정해 가면서 다듬는 겁니다. 그리고 나서 제목을 <북한산 노을>로 붙여본다고 생각해 보세요. 정말 근사한 한 편의 시가 탄생할 것 같잖아요?
이번에는 <노을>을 보고 자신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고 한다면 빨간 노을을 머리 속에 담고서 이렇게 상상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아이들이 모닥불을 피고 있다/ 그 모닥불은 연기가 없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저 불에 나는/ 고구마를 구어 먹고 싶다/ 제일 잘 익은 것을 꺼내/ 이웃 동네 창수에게 건네주고 싶다/....난 저 모닥불에 오줌을 갈겨 피식 소리가 나게 끄고 싶다....> 이렇게 <노을>을 <모닥불>로 여기고 모닥불과 관련된 온갖 경험, 추억, 익살스런 행동, 우스꽝스런 생각, 이야기들을 계속 꺼내가면서 상상을 하는 겁니다. 이때 유의할 점은 <노을>을 <모닥불>로 치환했으면 <모닥불>을 멀리 떠나서 상상을 하면 안 됩니다. 모닥불과 관련이 있는 내용으로 상상을 펼쳐야지 그렇지 않으면 시의 초점이 흐려지고, 내용이 난해해 지게 됩니다.
다른 소재들로 상상하는 것도 위와 같은 방식으로 하면 됩니다. 더 다양하고 구체적인 방법, 다듬는 법, 순서를 잡는 법, 제목을 붙이는 법…….등등은 그때그때 하나씩 계속 예를 들기로 하고 오늘은 상상하는 요령만 익혀두기로 합시다. 시를 쉽게 쓰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상상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걸 다시 한번 강조하며 게시판에 올라온 시를 한번 감상해 보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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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승일 님의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시를 먼저 감상해 봅시다.
필자가 위에서 말한 내용을 새기면서 이 시를 읽으면 방승일 님의 시가 왜 시가 될 수 없는지를 금세 알 수 있을 겁니다. 나름대로 의미 있는 말을 무수히 하였는데도 하나도 우리의 눈길을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건 상상을 하지 않고 느낌을 적었기 때문입니다. 느낌이라도 참신한 느낌을 쓰면 한두 줄 시로 성립할 수 있지만 그것마저도 찾아볼 수 없군요. 본인이 섭섭해 할까봐 구체적으로 한번 지적해 볼까요?
첫줄에 <서른 즈음엔 사람이 되고 싶다/ 지나온 나이테의 껍질을 벗고서....>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서른 즈음에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는데...이게 내용적으로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서른 나이에 아직도 사람이 되지 못하고 서른 나이에서야 사람이 되겠다는 게 남에게 얼마나 공감을 줄 수 있을까요? 그리고 사람이 되고 싶다고 선언해 놓고서 두 번째 줄에서 왜 갑자기 이야기가 나무로 변했습니까? 두 번째 줄의 내용이 성립하려면 첫줄의 표현이 <서른 즈음에 나무가 되고 싶다>라고 표현했어야 하죠. 그렇지 않습니까?
남에게 공감을 주거나 눈길을 잡으려면 의미 있는 말, 남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말을 개발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서른 즈음에 사람이 되고 싶다 '라는 말을 거꾸로 '서른 즈음에 황소가 되고 싶다' 라고 말해 보세요. 이게 독자의 눈을 훨씬 더 끌지 않을까요. 우선 독자들이 이 글을 읽고 왜 이 작자가 사람도 아닌, 황소가 되려할까 궁금해 하지 않겠어요?
하여, 방승일 님은 첫줄을 <서른 즈음에 난 나무가 되고 싶다>, 또는 <서른 즈음에 난 황소가 되고 싶다>라고 선언해 놓고 나무의 좋은 점, 이로운 점(그늘,목재,땔감,기둥... 등등)과 황소의 어진 점, 부지런한 점, 묵묵한 성격..등등을 위에서 설명한 상상의 요령에 따라 시를 다시 써 보기 바랍니다. 너무 성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처음에는 시적 표현을 한 줄 얻어도 큰 소득이다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기본기를 착실히 다져놓으면 시 쓰는 건 금방입니다. 제시한 과제로 시를 다시 써서 올리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윤주님의 <비>를 감상해 보도록 합시다. 윤주님은 방승일 님보다 더 쉽게 상상으로 빠질 수 있는 여지가 있어 뵙니다. 그러나 느낌과 생각을 중구난방 해서 내용이 가슴에 와 닿는 게 없습니다. <비>라는 소재를 어떤 것 하나로 비유해 놓고 그 하나의 속성, 내용, 사상 등을 집중해서 파고들기 바랍니다. 그래야 글에 초점이 생기고 내용이 깊이를 갖고 설득력도 있게 됩니다.
여기에서 끝내기가 아쉬우니깐 윤주님의 시 첫줄 하나만 봅시다. 첫줄에서 비가 <설탕이 뿌려지는 것처럼 보드랍게 내린다>라고 했습니다. 추측컨대 가랑비가 부드럽게 내리는 걸 표현하려고 한 것 같습니다. 근데 표현이 어설퍼요. <설탕>의 이미지는 통상 달콤한 이미지입니다. 근데 부드러움을 표현하는데 둘러댔어요. 그래서 이 비유가 어설프고 미숙한 겁니다. 부드러운 이미지를 갖고 있는 건 통상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천이 아닙니까. 더 나아가 비단 천? 그렇다면 부드럽게 내리는 비를 표현하려면 이렇게 하면 되죠. < 지금 내리는 비에는 비단 천이 들어 있다 >라고 말이죠. 그리고 나서 비단 천으로 묘사했으니깐 그 비단 천하나로 위에서 설명한 방식으로 집중해서 상상을 펼쳐보는 겁니다.
그리고 비에도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소낙비, 우박비, 여우비, 보슬비, 봄비, 가을비 등등..
그래서 표현하고자 하는 비도 이중에서 어느 하나를 골라서 시로 쓰려고 해야지 모든 비를 아울러서 시로 표현하려고 하면 1급 시인도 쓰기 힘듭니다. 따라서 윤주님도 봄비나 보슬비 하나를 골라 위에 제시한 표현을 첫줄로 놓고 시를 다시 쓰기 바랍니다. 처음에는 두 달, 아니 반년이 걸릴 수도 있어요. 너무 성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고민해서 쓰기 바랍니다. 깊고 넓게 고민하는 자만이 크게 성공할 수 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땐 뭐든지 막막합니다. 그래서 참고가 될만한 시를 첨부하오니 <밑>, <모퉁이>, <벽>이란 낱말 하나를 가지고 어떻게 끈덕지게 물고 늘어져 상상력을 발휘하였는지를 유심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김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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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염소와 풀밭 / 신현정
신현정 시인 연보
1948년 서울 왕십리의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서 태어남.
부잣집 아이란 소리도 듣기 싫어, 사뭇 무학산이 있는 피난촌 아이들과 어울리며 쌈박질 꽤나 했음
1964년 경동중학교에서 본고교 진학에 실패하고 왕십리 및 근처 뚝 섬 유원지 등지에서 배회함.
빈번한 가출과 비행으로 어머 니와 누님들의 속을 무던히 썩여드린 시절임.
― 중학교 ‘경동’이 인연이 되어 당시 경동고 1학년이던 문학소년 윤석산과 양정고의 조정권과 만남.
첫만남은 미성년 자불가 『흑맥』을 상영중인 광무극장이었음.
모자를 바지 뒷 주머니에 꾸겨넣고 교복 상의를 뒤집어 입고 영화를 봤음.
― 이후 수시로 만나 시에 대한 사모와 열정을 불태웠음.
1966년 모 야간고등학교를 월반 진학하여 가까스로 고교 졸업장을 땄음. 남들보다 1년 먼저 고등학교를 나옴
― 서울대학교 사범대 주최 전국고교문예콩쿨대회에 시 「아 기새와 능금나무」로 최우수상을 받음
1967년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 입학.
1974년 중앙대학교(1972년 서라벌예술대학을 인수) 문예창작과에서 군 입대로 중도했던 4학년 가을학기를 마저 다님
― 이 해 봄, 군 제대와 함께 시 〈그믐밤의 수(繡)〉로 《월간문학》신인상을 받으며 등단.
1975년 중앙대학교문예창작과를 졸업 후, 서라벌고등학교 등에서 국어교사로 재직.
― 서라벌 고교 등에서 국어 선생을 함. 아무래도 선생이란 교육적 소신도 부족했거니와 요령없이 목을 혹사시키다 보니
배추장사만도 못하다는 결론을 내림. 그리고 내심은 이 틀에 박힌 학교 생활을 깨고 나가면 보다 시를 자유롭게,
또 시를 잘 쓰게 되리라는 기대감이 컸던 것이 사실임.
1977년 김동리 선생의 주례로 문예창작과 후배였던 이정휘와 결혼함(두 딸 혜율, 혜빈 얻음.)
― 이정휘가 1975년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일어서는 소리」로 당선하여 오늘껏 부부 시인이란 소리를 듣기는 들음.
1983년 첫 시집 《대립》을 출간.
1980년대 초에 교단을 떠난 뒤 약 20년간 미국의 다국적 홍보회사인 버슨마스텔라 등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함.
― 다국적 홍보 회사인 버슨마스텔라 등에 카피라이터 로 있던 20년 세월은 오히려 시를 좀 먹는 꼴이 되었음.
2003년 시집 《염소와 풀밭》을 출간하면서 다시 시작(詩作)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 이 시집에서 첫시집 이후 20년이란 세월은 박빙薄氷의 빈사嚬死, 그것이었음을 고백하였음.
― 이 시집으로 서라벌 문학상(2003년), 제4회 한국시문학상(2004년)을 받음.
2005년 시집 《자전거 도둑》을 출간.
― 이 시집으로 한국시인협회상(2006년) 수상
2008년 시집 《바보 사막》 출간.
2009년 계간《미네르바》 겨울호에서 강우식 시인과 함께 신인상 심사(최윤희 등 3명의 시인 배출)
―《현대문학》 10월호에 육필시 〈해바라기〉를 마지막으로 발표.
― 그해 10월 16일 간암으로 귀천.
― 신현정 시인 시선집《난쟁이와 저녁식사를》 출간.
2010년 신현정 1주기 때 추모집 《화창한 날》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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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자전거 도둑 / 신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