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Amsterdam)/중앙역,니콜라스교회,구교회, 문트탑
풍차와 튤립, 물의 나라로 알려진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 암스텔강이 에이셀호로 흘러들어가는 지점에 만들어진 항구도시로 북해와는 북해운하로 통하고 라인강과는 암스테르담-라인 운하로 연결된다. 네덜란드 최대의 무역항으로 13세기 어민이 암스텔강에 댐을 설치해서 정주한 것이 도시명의 기원이다. 1814년 네덜란드의 수도가 된 이래 17세기 네덜란드 황금시대를 이끌었던 세계무역의 중심지였으며, 오늘날에도 유럽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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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은 도시를 이리저리 연결하는 운하가 많은 운하의 도시다. 특히 4개의 가장 크고 역사적인 운하들인 신헬 (Singel), 헤렌흐라흐트 (Herengracht), 카이저흐라르트 (Keizersgrancht), 프리센흐라흐트 (Prinsengracht) 등을 따라 산책을 하면 17 ∼18 세기의 아름다운 주택들과 세밀한 척도로 계획된 도시 구조의 암스테르담의 면모를 볼 수 있다. 고풍스러운 교회가 하얀 목조 도개교 너머로 보이고 좁다란 돌 포장길이 사방으로 뻗어 있으며 수많은 유람선이 운하 위를 오가는 풍경 등은 한 폭의 풍경화를 연출하는 듯 하다. 이들 운하와 운하를 따라 지어진 전통적인 양식의 건물들은 지난 세기 네덜란드의 번성했던 시절을 말없이 보여준다.
현재 암스테르담은 런던, 파리, 로마 등과 함께 유럽에서 여행지로 가장 인기 있는 도시일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금융도시이다. 지리적 위치가 갖는 이점을 살리면서 암스테르담의 시민들은 뛰어난 사업적 수완을 발휘하여 이 도시를 유럽의 영향력 있는 도시의 하나로 만들어 놓았다. 그들의 사업 수완은 이데올로기와는 상관없이 현실적인 균형을 취하여 세계대전 기간 동안 끊임없는 전쟁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동맹국과 적국과의 매우 수익성 높은 무역을 하여 다른 도시들과는 달리 황금기를 다시 한번 누렸다.
또 기간에는 30Km에 이르는 제방이 완성되고 우아한 운하망이 형성되는 등 오늘날 번성의 기반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암스테르담은 동서양을 막론한 세계 각지에서 흘러들어온 다양한 문화가 뒤섞여 사람을 현혹시키는 수도이다. 모든 것이 개방되어 있고 약간은 퇴폐적으로 보이는 특유의 도시 문화는 대다수의 여행자들에게 암스테르담은 편견의 도시이다. 낮이면 물살을 헤치며 운하를 오르내리는 유람선 위로 암갈색 톤의 벽돌 건물이 늘어선 세련된 유럽의 멋을 자랑하지만, 붉은 노을과 함께 하나둘 네온 불빛이 켜질 즈음이면 요염한 홍등가의 옷으로 갈아입고 마약에 물드는 도시 암스테르담. 개인의 자유, 마약에 관대한 법, 유럽의 게이 센터라는 말은, 암스테르담이 유럽에서 가장 과격한 도시로 인식되었던 1960, 70년대 이래로 암스테르담을 떠올리면 또 다른 상징이 되었다. 80년대에는 이런 선입견이 수그러지는 듯 하더니 만성적인 주택 부족, 무주택자의 증가, 인종간의 긴장 고조 등이 오늘날 다시 이 지역의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 중앙역(Amsterdam Central Station)
페트뤼스 요세퓌스 후베르튀스 퀴이페르스(Petrus Josephus Hubertus Cuypers)가 설계했다. 1889년 10월에 개장한 이후 지금까지 네덜란드와 유럽 육상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중요한 곳이다. 아이(IJ)강(江)가에 맞대고 있는 청사에는 유람선 부두가 있고, 반대편인 구 시가지 쪽 광장에는 시내버스와 고속버스 정류장도 있어서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붐비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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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처럼 보이는 빨간 벽돌 건물을 정면에서 보면 양쪽으로 탑 두 개와 가운데 높은 지붕이 돋보인다. 오른쪽 탑에는 대형 시계가 장착되어 있고, 왼쪽 탑에 있는 눈금은 현재 날씨와 바람의 방향을 나타내어 준다. 중간의 높은 지붕은 수도인 암스테르담과 더 나아가 네덜란드의 번영과 부강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로 일본의 도쿄 중앙역사가 이 건물의 스타일을 모방하여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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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니콜라스교회(Sint Nicolaas Kerk)
오르간의 역사에서 다성음악의 중심지였던 네덜란드에서는 오르간의 발건반이 특히 발달했으며, 암스테르담 니콜라스 교회의 오르가니스트인 얀 피에테르손 스벨링크(Jan Pieterszoon Sweelinck, 1562-1621)와 그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오르간 음악이 크게 발전되었다.북독일 바로크 오르간 음악에까지 큰 영향을 미친 16세기 네덜란드의 음악가 스벨링크 (아래 오르간 사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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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물의 탑(Schreierstoren)
항구에 위치하고 있는 눈물의 탑은 반원형의 요새로 1490년경 세워졌다. 원래는 홍수와 침입군을 막기 위한 방어벽의 일부였다. 그러나 당시 해상무역을 위해 떠나는 남편을 아내가 눈물을 흘리며 보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눈물의 탑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1609년에 헨리 허드슨이 신 세계를 향해 돛을 올렸던 곳으로 이곳에 그 항해를 기념하기 위한 동상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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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스텔담 구 교회 (Oude Kerk)
구교회는 암스테르담의 교회 중 가장 오래된 교회로 건축가 Adrianus Bleijs(1842-1912)가 네오바르크와 네오르네상스 양식을 조합하여 설계했다. 1366년 성 니콜라스를 모시기 위해서 건축을 시작하였으며 1566년 아름다운 첨탑이 있는 종각을 설치하여 완성하였다. 처음에는 카톨릭 교회였으나 후에 개신교 교회가 된 곳으로 유명한 화가 렘브란트의 아내인 사스키아(Saskia)의 묘가 이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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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msterdam Orgel Oude Ke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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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스텔담 담광장(Dam)의 왕궁(Koninklijk Pale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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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마르크트(Nieuw Markt)광장
중앙역 남쪽에 있는 뉴마르크트(Nieuw Markt)광장은 1614년에 조성된 광장으로 신시장 광장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토요일은 음식료품 시장이, 일요일에는 고서적과 골동품등이 여름시즌에만 매매된다. 우뚝 서있는 De Waag 성문은 암스테르담 성벽의 일부로 중세에 건립된 것이다. 17세기에 파괴되고 남은 성문을 계량소로 사용하고 있다. 2차대전 기간에는 나치에 의해 집단 수용소로 이주시키기 위해 유대인들의 집합소로 이용되기도 했던 광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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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트 탑 (Munttoren)
1490년 세워진 첨탑으로 상단에는 28개의 종이 있어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12시30분부터 30분간 종이 울린다. '문트'는 주조라는 뜻으로 1672년 전쟁중이던 네덜란드에서 자신들의 화폐를 만들던 주조공장에서 유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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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스테르담 남교회(Zuider Kerk)
신 시장거리(Nieuwmarkt)에 위치하며 암스테르담 시에서 최초로 프로테스탄트 신교 예배만을 위해 건축된 교회이다. 렘브란트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쳤고, 모네(Claude Monet)의 작품에도 등장하는 교회이다. 1603년에서 1611년까지 신트 안토니스브리 거리(Sint Anthoniesbreestraat)와 인접한 남묘지 광장(Zuiderkerkhof) 위에 건축되었다. 특이하게 생긴 종탑에는 헤모니 형제가 제작한 교회종이 1656년에 설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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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의 설계는 헨드릭 데 케이저르(Hendrick de Keyser)가 담당하였고, 그 자신도 1621년에 사망한 뒤 이 교회 뜰에 묻혔다. 그의 무덤 위에는 1900년도에 세운 기념비가 있다. 전에 렘브란트가 살던 집과도 가까이 있기 때문에 이 교회에 렘브란트의 세 자녀가 장사되었고, 렘브란트의 대표작인 《야경(Night Watch)》은 너무 커서 집에서 작업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 교회에서 그려졌다는 설도 있다. 렘브란트의 수제자인 페르디난트 볼(Ferdinand Bol)도 1680년 이곳에 묻혔다. 1976년부터 1979년까지 리모델링된 교회 건물은 현재 예배당이 아닌 문화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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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파우광장(Spui square)의 Spui Het Lieverdje 상(Little darling)
Sweetie라고 불리우는 이 소년 동상이 스파우 광장 책방의거리 랜드마크다. 암스테르담의 예술적인 움직임이 컸던 1960년대에 만들어진 것이라 암스테르담에서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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