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혁명(人間革命)’
타인을 위해 공헌하는 인생으로 전환
올 해 들어서 시카고대학교에 있는 ‘세계 종말 시계’가 5년 만에 2분 앞당겨 졌다. 현재는 23시 55분. 인류 멸망을 상징하는 ‘한밤중’까지 5분밖에 남지 않았다.
이는 북한의 핵 실험이나 이란의 핵 개발 문제와 함께 환경 파괴와 지구온난화 진행이 심각하게 받아들여진 결과다.
이 종말 시계가 설정된 1947년 당시, 인류의 존망을 위태롭게 하는 최대 위협은 핵무기였다.
60년이 지난 지금, 핵무기와 함께 지구환경 문제가 미래에 큰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이다.
지금으로부터 35년 전, 인류의 미래에 경종을 울린 로마클럽 제1차 보고서 ‘성장의 한계’가 발표되었다.
그 3년 후, 나는 창립자 아우렐리오 페체이 박사와 만났다.
이대로라면 21세기는 자연도 인간도 파괴되어 ‘불모의 지구’가 되고 만다. 그러나 세간의 지도자들은 미래보다는 눈앞의 이익을 지키는 일에만 급급하다.
페체이 박사는 참으로 심각하게 우려했다. 이 사태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은가?
박사와 내 의견은 일치했다. “인간 자신의 혁명이 우선 무엇보다 필요하다.”라고.
인류는 지금까지 몇 번이나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농업혁명, 과학혁명, 산업혁명, 그리고 정치혁명. 단 이들 혁명은 인간과 사회의 외형적인 변화였다.
인류는 ‘외면의 세계’를 조작하는 기술과 힘에서는 비약적인 발달을 이루었지만 그러한 힘에 걸맞은 정신적인 도약을 아직도 해내지 못했다. 그래서 그 거대한 힘에 계속 휘둘렸다. 물론, 오랜 세월 동안 인류는 살아남기 위해 물질적인 필요를 충족시키려고 애써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대지는 모든 사람들의 필요를 만족시키나 모든 사람들의 탐욕을 만족시키지는 못한다.”(마하트마 간디)
끝없는 인간의 ‘탐욕’을 원동력으로 한다면 인간은 물질주의 문명을 제어할 수 없게 되어, 인류가 의지해 서야 할 기반인 지구마저 낭비해 파괴하고 말 것이다.
단적으로 말하면 인간의 모든 행위는 ‘행복’을 실현하기 위해서다. 그 ‘행복’을 추구하면서 오히려 ‘불행’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은 왜인가?
그것은 진정한 행복이 아닌 것을 행복으로 잘못보고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욕망의 추구’와 ‘행복’은 다르다. 만일 같다고 생각한다면 소크라테스가 비유한 ‘가려운 곳을 긁으며 사는 일생’이 행복한 인생이 되고 말 것이다.
그렇기에 쾌락만을 추구하는 삶에서 더 고차원의 목표로 상승하지 않는 한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없다. 그것은 더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보다 내 마음의 세계를 더 풍요롭고 더 크게 하는 길이다.
‘행복’은 ‘충실’이다. 인간은 자신의 행복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행복을 추구할 때 더 깊은 충실을 얻을 수 있다.
이 ‘자타 함께 행복’을 지향하는 삶이 바로 ‘인간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공생을 실현하는 길이 아닐까.
대승불교에는 그러한 인간상을 추구해 ‘보살’이 등장한다.
보살은 자신의 구원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구제는 제쳐놓더라도 고뇌하는 사람을 구제하려고 용감하게 행동하는 사람이다. 보살에게 타인을 위해 공헌하는 일은 그대로 자기 성장이 되고 기쁨이 된다.
‘자리(自利)’와 ‘이타(利他)’는 하나다. 아니 이타 없이 진정한 자리도 없다.
보살은 지옥의 괴로움을 맛보는 것 보다 ‘이타의 마음’을 잃어버리는 것을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자기가 존재하는 의의를 잃어버리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보살이라 해도 특별한 인간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인간이라도 본래 존귀한 ‘보살의 마음’을 갖추고 있다. 그렇게 보는 것이 불법(佛法)의 지견(知見)이며 생명관이다.
따라서 어떠한 종교나 문화를 배경으로 하는 사람이라도 타인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은 모두 ‘보살’이다.
타인을 위해 공헌하는 일은 누구라도 할 수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할 수 있다. 특별한 직함이나 지위도 필요 없다.
보살도(菩薩道)는 알기 쉽게 말하면 ‘사람을 격려하는 삶’이다.
그것도 자신은 상처받지 않는 높은 곳에서 사람들을 격려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도 고뇌 속에 뛰어들어, 탁한 사회에서 생명의 빛을 발하며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인생이다.
거기에서 인간은 이 세상에 생을 받고 태어난 의미를 찾고 끝없는 행복과 환희로 충족된다.
자기중심의 삶에서 타인에게 공헌하는 삶으로 전환. 이것이 ‘인간혁명’이다.
인류가 직면한 위기의 심각성을 직시하면서도 나는 ‘종말 사상’에는 찬동하지 않는다. 공포에 쫓기는 것이 아니라 희망으로 인도 되어야 인간은 바르게 전진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인간혁명’이 바로 희망의 키워드다. 그것은 만인에게 열린 주체적인 혁명이다. 희생자를 한 사람도 내지 않는 혁명이라 해도 좋다.
그 변화의 파도는 한사람에서 한사람으로 전해지고 확대되어 어느 한 점에 도달했을 때 극적으로 지구사회를 변혁할 것이다.
그것은 ‘지금 이곳에서’ 즉, 우리 한 사람 한사람의 마음속에서 시작되는 혁명이다.
▶마이더스 명사칼럼(2007.11)
인간혁명(2007.11).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