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과 겨울사이
김덕임
노오란 갈색으로
멋지게 어우러진 전북은행 앞길
하루에도 몇 번씩 거닐며
낙엽이 된다
이제는 다 벗어버린 나무사이로
찬바람이 겨울을 재촉 하고
금세 가버린 십일월의 달력을 떼며
김장 걱정에 마음이 급하다
제집처럼 드나들던
고양이는 보이지 않고
붉은 산수유 옆에 서있는
가을아, 잘 가
가을담은 구절초
김덕임
옥정호 강가를 거슬러 오르면
소나무 그늘 아래
바람이 피워낸 하얀 구절초
구구절절 아홉 마디
들을 수 없어도
흔들리며 피워낸 가을 꽃
산그늘 따라 꽃길을 걸으면
어디선가 들려오는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파란 하늘 구름 한 조각
따스한 햇살 머리에 이고
나비 한 마리 꽃길을 걷는다
다행이다
김덕임
돋보기 없이 책을 읽고
보청기 없어도 들을만하고
쉬엄쉬엄 산책할 수 있어 좋다
가지고 싶은 것 가질 수 있고
눈만 뜨면 꽃이 있고
자식들 손 벌리지 않고
곁에는 늘 얼굴 긴 남자가 있어 좋다
비우고 버리고 덜어내니
좁았던 집이 넉넉해져 좋고
머리가 하얗게 되니
마음도 순 해진다
이런 저런 일로
잠이 오지 않아도
시를 쓸 수 있어 참, 다행이다
자화상
김덕임
바람이 지나간 후
더러는 쓰러졌고 더러는 뿌리를 내렸네
비 오면 비를 맞고
눈이 오면 눈 속에서 자라던 잡초
어느 날 아름다운 꽃 장미를 보고
뿌리를 깊게 뻗으면
장미가 되는 줄 알고
무던히도 애쓰던 여름을 보냈네
가을이 되어도
장미의 가시 하나 얻지 못하고
작고 보잘것없는
하얀 꽃 한 송이 피었네
소나기 지나고 한 숨 돌리던 날
지나가는 사람들이
곱다고 하고 자랑스럽다고 하네
햇살 좋은 날 모두 다 피고 지었는데
늦게사 피어올린 풀꽃 하나
너에게 오래 기억되는 꽃이고 싶다
붉은 담쟁이
김덕임
물 한 방울 없는 벽을
봄부터 기어올라 3층까지 올랐다
잘라내어도 죽지 않고 오르고 다시 오르고
찬바람 늦가을에 붉게 물든 모습으로
그녀의 창문에 매달려 있다
모두가 불가능 하다고 느낄 때
그때가 기회라고 시작한 그녀의 무모한 도전이
마침내 절망의 벽을 넘고 승리 할 때
포기하지 않는 자 에게는 좌절은 없는 거라고
담쟁이처럼 살아온 그녀가 3층에 살고 있어
불게 물든 담쟁이 그녀를 만나려 창문을 기웃기웃
카페 게시글
온글 24집
온글 24집 / 가을과 겨울 사이 외 4편/ 김덕임
금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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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25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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