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수행이야기]〈57〉감정 공유의 진정성이 진리요, 법문이다
감정 공감·소통이 진정성 있는 중생제도
함께 슬퍼해줘야 비무량심〈悲無量心〉
화 가라앉기 기다려줌이 진리
배고픈 고통을 경험해보았는가! 배고픈 고통에 처한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최선인가를 제시해주는 내용이 있다.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부분인지라 소납에게 베풂의 패러다임을 새롭게 구성해준다.
<약사경>의 약사여래 12원(願) 가운데 11번째 서원이다.
“내가 다음 세상에 보리를 증득할 때, 만약 모든 중생이 굶주림에 시달려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하여 악업을 짓다가도, 나의 이름을 듣고 진실한 마음으로 부르고 염(念)한다면 내가 마땅히 먼저 좋은 음식을 주어 마음껏 배부르게 한 뒤에 진리를 설해주어 안락케 해주고, 보리를 성취하도록 해준다.”
“배고픈 사람에게 먼저 배를 채워주고 그 다음 진리를 설한다”는 구절이 내 폐부 깊숙이 다가선다. 부처님도 이런 행을 보여주셨다.
부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한 재가자의 공양청을 받았다. 부처님과 제자들이 그 집에 가서 공양을 하고, 공양이 끝났는데도 부처님께서 법을 설하지 않았다. 대체로 공양 후에는 부처님께서 법을 설하는 것이 관례인데, 그날은 부처님께서 법문하지 않고 가만히 계셨다.
이때 한 농부가 법문을 듣기 위해 헐레벌떡 들어와 뒷자리에 앉았다. 실은 그 농부는 법석에 일찍 오려고 했으나 황소가 우리를 뛰쳐나가 소를 찾기 위해 들판을 쏘다니느라 회중에 늦은 것이다. 부처님께서 농부에게 먼저 밥을 먹으라고 하신 뒤 그 농부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법을 설하셨다.
사찰로 돌아가는 도중, 제자들이 부처님께 “왜 농부에게 법문 듣기 전에 밥부터 먹으라고 했느냐”고 묻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여래의 법문을 듣다가 배고픔을 느낀다면, 그는 배고픔 때문에 진리를 충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먼저 그의 배고픈 고통을 해결해준 것이다. 그가 황소를 찾느라고 헤매었으니 얼마나 배가 고팠겠느냐. 이 세상에서 배고픔만큼 견디기 어려운 고통은 없느니라.”
소설 <태백산맥>에서도 “사람의 죽는 고통 가운데, 병들어 죽는 고통과 매 맞아 죽는 고통과 굶어서 죽는 고통이 있는데, 그 중에서 제일 서럽고 큰 것은 굶어서 죽는 고통”이라는 구절이 있다. 소납도 20여년 전에 설악산에서 조난당해 굶었던 적이 있어 굶는 고통이 얼마나 처절한지를 안다.
며칠을 굶어서 배고픔에 허덕이는 사람에게 진리가 귀에 들어오겠는가? 또 한 예로 지금 어떤 사람이 자식이 죽어서 실신할 상태에 있다고 가정해보자. 과연 이 사람에게 부처님의 무상 진리가 마음에 새겨지겠는가? 또한 진심(嗔心)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에게 탐진치 3독으로 인한 과보가 얼마나 큰지를 설해준다고 그 사람의 화가 가라앉겠는가?
배고픈 중생에게는 먼저 먹을 것을 주고, 자식 죽어 고통받는 이에게는 손을 잡고 함께 울어주는 일이다. 또한 화가 나서 어쩔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하소연을 들어주고 맞장구를 쳐주며, 화가 가라앉기를 기다려주는 일이다. 바로 이렇게 감정을 공유하는 진정성이 진리요, 다르마요, 법문인 것이다. 이성적인 냉정함이 아니라 감정을 전달하는 공감과 소통이 진정성 있는 중생제도라고 본다. 바로 이것이 함께 슬퍼해준다는 비무량심(悲無量心)이다.
신라 시대 원효스님과 더불어 민중불교를 이끈 대안(大安)스님이 있다. 어느 날 원효가 대안을 만나기 위해 굴로 찾아갔다. 그런데 대안은 없고, 너구리 한 마리가 죽어있는데 새끼 너구리가 죽은 어미 곁에서 구슬프게 울고 있었다. 원효는 죽은 너구리의 왕생극락을 발원하며 <아미타경>을 염하였다. 이때 대안이 들어와 원효에게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다. 원효는 죽은 너구리에게 염불을 해주고 있다고 하자, 대안이 이렇게 말했다.
“이 새끼 너구리가 경을 알아듣겠소….”
대안은 동냥해서 얻어온 젖을 너구리에게 먹이며, 원효에게 말했다.
“이것이 너구리가 알아듣는 <아미타경>입니다.”
정운스님… 서울 성심사에서 명우스님을 은사로 출가, 운문사승가대학 졸업, 동국대 선학과서 박사학위 취득. 저서 <동아시아 선의 르네상스를 찾아서> <경전숲길> 등 10여권. 현 조계종 교수아사리ㆍ동국대 선학과 강사.
[출처 : 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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