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멋쟁이 권영애선생님이
최근에 여성시대와 라디오에 두 번이나 당선되었습니다.
우리 권선생님은
재미난 글, 살아있는 글을 쓰는 재주가 뛰어나죠.
라디오 방송에서 우리 권선생님 이름이 나오고 작품 소개가 된 걸 들어보니
기분이 정말 좋네요.
다함께 축하해주셔요.
그 남자/권영애
어떻게 생겼을까. 갈수록 커지는 궁금함은 한번 만나봤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어졌다. 그러다가 우연히 그 남자를 보았다.
언제였을까. 친정에 갔다가 엄마랑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에 갔다. 점심시간이 지났기에 식당 안은 조용했다. 음식을 주문해놓고 그동안 못한 이야기를 내려놓는데 엄마의 시선이 내가 아닌 다른 곳에 가 있다. 엄마의 시선을 따라 등을 돌렸다. 건너편 자리에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밥을 먹고 있다. 엄마에게 아는 사람이냐고 물었다.
“세상에나 저 사람을 여서 다 보네. 야야 저쪽에 있는 저 사람이 너들 아버지가 사위 삼을 라고 했던 그 남자야.”
엄마의 대답에 쏜 화살 같이 내 얼굴이 돌아갔다. 넋을 잃고 보고 있는데 엄마가 내 손등을 툭 치더니 자리를 바꿔 앉자고 한다. 자연스럽게 일어나 엄마와 자리를 바꿔 앉으니 그 남자가 한 눈에 들어왔다.
나란히 앉은 여인이 아내인가보다. 연신 음식을 가져다가 아내의 접시위에 올려준다. 남자의 손놀림은 전혀 서툴지 않고 익숙해보였다. 챙겨주는 모습이 어찌나 자상하게 느껴지는지 여인이 부럽기까지 했다. 남자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인물이 좋았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연하로 보였다.
주문한 음식이 나왔기에 애써 시선을 거두었다. 밥을 먹으며 그 남자의 아내도 힐끔힐끔 훔쳐보았다. 단발에 유행하는 웨이브 머리가 발랄해 보인다. 마주보고 앉아 있는 두 아이는 그 남자의 자녀이겠지.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나와 달리 허기를 달래기 위해 말없이 밥을 먹던 엄마가 지난 이야기를 꺼낸다.
“네 아버지가 저 남자를 네 짝으로 점지 해두고 꽤나 잘해줬는데...니가 23살에 다른 남자하고 시집간다고 하는 바람에 너들 아버지가 충격을 받아가 10 년 넘게 끊었던 담배까지 피우고 광산도 며칠 안 나가고 그랬었는데. 부부인연이 부모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닌데 너들 아버지가 참 유별났어.”
“지난 얘기 그만하고 밥 다 먹었으면 나가자 엄마.”
서둘러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황급히 카운터 쪽으로 향하는데 등 뒤에서 그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빨리 밥값을 계산하고 식당에서 나가고 싶은데 카운터에 아무도 없다. 눈치 없이 사장님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벙어리도 아니건만 입이 떨어지지 않아 사장님 하고 부르지도 못했다. 그 남자 목소리에 내 가슴은 방망이질을 해대고 있다. 밥값 계산을 포기하고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어르신하며 반갑게 엄마를 부르는 그 남자 목소리는 태풍처럼 나를 밖으로 밀어냈다. 지금쯤 엄마는 마치 그 남자를 보지 못한 척 연기를 하며 세상에 이게 누구냐고 너스레를 떨고 있을 것이다. 한걸음에 달려가 차 안에 몸을 실었다. 죄를 지은 것도 없는데 쫒기 듯 차안으로 숨어들었다.
아무리 우연이라고 하지만 하필이면 고무바지에 화장기가 하나도 없는 얼굴을 하고 있을 때 그 남자를 보게 된단 말인가. 벚꽃이 나를 두고 심술이라도 부리는 것일까. 어차피 들어줄 소원이라면 내가 창피하지 않을 정도로 옷도 갖춰 입고 예쁘게 화장도 했을 때 만나게 해주면 얼마나 좋았을까. 벚꽃 잎에게 소원을 빌 때와 다르게 한참을 원망했다. 조수석 문이 열리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
차안에 오른 엄마얼굴이 웃음을 참고 있다. 내 행동이 우스운 모양이다. 내가 생각해도 웃기긴 했다. 엄마는 그 남자와 나눈 이야기를 들려준다. 흥분된 엄마목소리가 낮 설고 약이 올라 시선한번 주지 않았다. 관심어린 눈으로 남자를 몰래 훔쳐 볼 때와 다르게 차가운 내 반응에 엄마는 입을 다물어 버린다.
그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더라면 내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또 그 남자의 인생은 어땠을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쓸데없는 물음표라 생각하니 서러움이 밀려온다. 차문을 활짝 열어 젖혔다. 바람을 잔뜩 불어 넣은 풍선처럼 바람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자가용이 휘청 거린다. 다시 차문을 올리고 라디오를 켰다. 신나는 음악이 찬 기운이 맴도는 자가용을 데워준다. 기분을 바꿀 요량으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엄마는 이 때다 싶었는지 입안에 가두어둔 말을 하염없이 토해낸다.
그 남자도 사는 동안 내가 궁금했을까. 한번쯤 나를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까. 만나야 할 사람은 반드시 만난다는 말이 있다. 그 남자와 나는 꼭 만나야 할 사람은 아닌 것 같다. 그냥 옷 깃 스치듯 지나갈 인연인데 양가 부모들이 사돈을 맺는 바람에 그 남자는 존재의 이유가 되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그 남자에 대한 숙제 같은 궁금함이 사라지고 나니 속이 후련하다.
신문/권영애
택배가 왔다. 라면상자 안에서 신문에 돌돌 말린 소주병을 제일 먼저 꺼냈다. 행여나 병이 깨지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다. 병에서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났다. 엄마가 딸인 나에게 참기름을 줄 리가 없다. 내 후각이 감각을 잃었나보다. 몇 겹으로 쌓인 신문을 벗겨 내며 습관처럼 중얼 중얼 거렸다.
“참기름이면 어떻고 들기름이면 어때? 이젠 그따위 신경 쓰지 말고 좀 편해지자.”
들기름이 든 병을 싱크대 안으로 옮기고 비닐봉지에 담긴 양념도 모두 통으로 옮겨 담았다. 텅 빈 라면상자에 기름이 묻은 신문지를 담고 그 위에 그동안 모아둔 폐지를 올렸다. 라면상자를 들고 재활용을 모아 두는 곳이 있는 주차장으로 갔다. 언제 왔는지 할아버지가 와 계신다. 할아버지는 폐지를 정리하여 손수레에 차곡차곡 쌓고 있다.
“모자 할아버지 오늘도 열심이네요?”
할아버지는 항상 모자를 쓰고 다닌다. 동네사람들은 할아버지를 약간 모지란다고 했다. 할아버지 말투는 약간 어둔 했으며, 한 겨울에 밀짚모자를 쓰기도 하고, 꽃이 달린 여자 모자를 쓰기도 했다. 또 어떤 날에는 아이들이 즐겨 쓰는 분홍색 털모자를 쓰고 다니기도 했다.
“아지매 신문에서 참기름 냄새가 나네 기름 짯어?”
“아이라요 친정엄마가 농사지어서 준 거예요.”
“아지매는 좋겠다. 참기름 주는 엄마도 있고. 우리엄마는 하늘나라에 가고 없는데...”
“할아버지 근데요 우리엄마는 아들만 좋아해요. 그래가 참기름은 전부 남동생 주고 내는 들기름만 준다니까요”
“이건 참기름 냄샌디. 내 코가 보통 코가 아니자너”
신문을 코로 가져가 연신 킁킁 거리는 할아버지 모습에서 연민이 느껴졌다. 하늘나라에 있다는 엄마가 보고 싶은 것일까? 백발의 할아버지에게도 엄마는 늘 그리운 존재인걸까? 엄마 생각에 여자 모자를 즐겨 쓰는 것일까. 고구마 줄기처럼 이어지는 궁금함에 가슴한쪽이 저려와 서둘러 발길을 돌렸다.
집안에 들어서자 고소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할아버지 말대로 참기름 인가. 싱크대 문을 열어 젖혔다. 가지런히 놓인 3개의 소주병을 식탁위로 옮겼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두개는 짙은 갈색이고 나머지 하나는 약간 연하다. 냄새를 맡아 보았다. 분명히 참기름 냄새다. 엄마에게 전화를 해 볼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참기름이 시력에 좋다는 말이 떠올라 모른 척 하기로 했다.
소주병을 다시 싱크대로 옮겨 놓는데 웃음이 실실 나온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만큼이나 엄마의 실수가 고소하기 짝이 없다. 문득 참기름이 먹고 싶어진다. 냉면 그릇을 꺼내어 밥을 소복하게 퍼 담았다. 밥 위에 간장을 조금 뿌리고, 몇 방울 이면 충분한 참기름을 거의 쏟다시피 따랐다. 비빔밥 인지 참기름에 밥을 말아 놓은 건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다.
나는 양푼이 그릇을 꺼내어 밥통에 있는 밥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퍼 담았다. 참기름에 말아 놓은 밥도 양푼이로 옮겼다. 잘게 썰어 놓은 김치를 넣고 구운 김도 가루를 내어 살살 뿌리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밥을 비비기 시작했다. 잘 비벼진 밥을 보니 고개를 저절로 끄덕여 졌다. 달력을 쭉 찢어 그릇을 덮고 수저 두개를 챙겨 주차장으로 향했다. 할아버지가 차곡차곡 쌓은 폐지를 끈으로 묶고 있다.
“할아버지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르는 양푼이 비빔밥 먹어 봤어요?”
나는 할아버지에 너스레를 떨었다. 할아버지는 일손을 멈추고 나와 양푼이를 번갈아가며 본다.
“할아버지 엉덩이 붙이고 좀 쉬라고 제가 밥 비벼 왔어요.”
할아버지가 내 말에 손 사례를 치는가 싶더니 이내 묶었던 끈을 풀고는 신문지를 꺼낸다. 겹겹이 포개어 자리를 만든 할아버지가 손바닥으로 신문지를 탁탁 치자 어느새 평평하게 되었다.
할아버지와 마주보고 앉았다. 동네를 오가며 할아버지와 마주치면 곧잘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밥을 먹는 건 처음이다. 양 볼이 터지도록 밥을 입안으로 밀어 넣고 정신없이 먹고 있는 찰라 할아버지의 말 한마디에 내 얼굴이 뜨거워졌다.
“아지매 오늘 참기름 실컷 묵고 엄마에게 가졌던 야속한 마음일랑 저 손수레에 하나도 남김없이 다 올려나. 내가 고물상에 가서 폐지도 팔고 아지매 묶은 감정까지 다 팔고 올테니.”
할아버지가 투명인간 인가? 부끄러운 속내를 들키고 말았다. 나는 애써 웃었다. 그런 내가 안쓰러웠는지 할아버지는 신문지 한 장을 내밀며 읽어 보라고 한다. 언젠가 인터넷을 통해 본 기사다. 부부는 직업이 없었고, 다섯 자녀를 두었는데 다자녀 혜택으로 겨우 생활을 해오다가 만원 때문에 생긴 오해로 부부 싸움을 하다가 화를 참지 못한 아버지가 엄마 품에 안겨 젖을 먹던 아기를 베개에 던진 다는 것이 그만 벽에 부딪히게 해서 죽게 했다는 것이다.
밥을 먹다 말고 할아버지가 느닷없이 신문을 읽어보라고 한 연유가 무엇일까. 똑 같은 자식인데도 딸 보다 아들을 더 좋아하는 엄마가 서운하더라도 이제까지 비극적인 일 겪지 않고 이 만큼 잘 키워 주었으니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던 것일까. 보고 나면 폐지가 되어버리는 신문처럼 서운한 감정은 쌓아놓지 말고 빨리 팔아버리는 것이 최선이라는 할아버지 조언이 내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세상의 부모 마음은 다 똑 같으니까.
첫댓글 그남자 ㅋㅋ 연애편지 훔쳐보듯 조마조마 했어요ㅋㅋ 마주앉은 그 여인은 부인 맞는가?궁금해요 ~잼나게 읽었어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잼나게 읽었다니 감사합니다 ^**^
대빵 많이 축하드려요~~
영애샘을 닮은 따스한 글이네요.
앞으로도 쭉 좋은 소식 전해 주셔요~~~
대빵 감사합니다*~~* ㅎㅎㅎㅎ
권샘~축하합니다.
문디~
바쁘신데 글 올려주셔서 송구스럽네요
늘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 입니다*~~*
마음이 따뜻한 영애언니
에피소드가 가득한게 그 따뜻함에서 나오는것은 아닐까 합니다
추카해요 언니^^
경아샘 칭찬받으니 기분이 너무 좋아요*~~*
영애샘...
축하합니다.
살아있는 글
재미난 에피소드 가득한 영애샘..
늘 환한 미소가
평소의 재미난 에피소드 때문이네요..
축하합니다.
나이와함께 아름다워지는 부회장님 감사합니다*~~*
영애샘 추카추카
요즘 공주 본다고 이제 봤어
나도 고소한 참기름 비빔밥 먹고시포 ㅎ
늦었지만 다시 한번 진심으로 추카해요^^
손녀돌봐주느라 고생이 많지요??
언니 건강도 잘챙기세요
감사합니다
당당한 권선생 님 보기 좋습니다.
오늘도 좋은 날 즐겨 사세요..........권선생님.
오랜만에 들려 좋은 소식 많이 듣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