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의 일생을 보며] 정병경
ㅡ인내와 고행ㅡ
여름날의 정적을 깨뜨리는 매미소리는 정겹다. 오랜 침묵을 견디고 세상 밖으로 나온 한 생명의 부지런함이 경이驚異롭다. 잠시 살다 떠날 운명을 알기나 하는지 궁금하다. 세상에 나타난 가장 위대한 존재의 가치를 생각해본다. 열기와 장맛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창을 한다.
조선의 실학자 이덕무는 자신의 서재를 선귤당(蟬橘堂)이라 부른다. 매미(蟬)와 귤(橘)을 뜻하는 이름 속에는 그가 지향한 삶의 방식이 들어 있다. 귤이 군자의 높은 절개를 상징한다. 매미는 청빈함과 선비의 고귀한 정신을 대변한다. 오직 맑은 이슬만 먹고 살며 때가 되면 미련 없이 내려놓고 떠난다. 매미 모습에서 옛 선비들의 오덕(五德)을 본다. 문(文), 청(淸), 염(廉), 검(儉), 신(信)을 갖춘 매미야말로 자연이 빚어낸 진정한 군자이다.
고귀한 삶을 얻기까지 매미가 감내해야 하는 시간은 길다. 애벌레 시절 차갑고 캄캄한 땅속에서 무려 수년의 시간을 홀로 견뎌낸다. 빛과 온기도 없는 땅속에서 단 한 철의 여름을 위해 헌신한다. 하늘 향해 날개 짓 할 한 순간을 위해 묵묵히 인내한다.
단단한 껍질에서 나올 때 자신의 삶을 걸고 탈피(脫皮)한다. 지난한 과정을 거쳐 마침내 세상 밖으로 나올 때 허락된 시간은 고작 보름 남짓이다. 수년간의 기다림에 비하면 허무할 만큼 짧은 생이다.
매미의 삶을 보며 우리 인생을 관조하게 된다. 백년을 향해 달려온 삶을 어떻게 채워가고 있는가. 매미 생애가 길고 짧음은 스스로 결정짓는 것이 아님을 대변한다. 한 철의 짧은 소풍이나마 주어진 시간을 불태워 노래로 보답하고 떠난다. 잠깐의 삶은 결코 허무하지 않다.
선귤당이 남긴 작품은 후세에 까지 읽혀지고 있다. 매미 울음소리가 잦은 여름에 청빈한 선비 마음과 매미의 고결한 일생을 기리려본다.
칠 년의 시간 동안
묵묵히 홀로 견뎌
오로지 한 뜻 품고
진흙에 묻힌 인내
푸르른 하늘을 향해
부르짖는 한 시절
이슬만 마시고도
드높은 절개 지켜
한 소절 가락으로
청빈을 노래한다
선귤당 맑은 바람에
군자 자취 사라져
서둘러 허물 벗고
남은 생 보름인데
온 힘을 다한 마음
소리로 보답하네
인생의 달려온 길이
우주 세계 한 나절
첫댓글 문(文), 청(淸), 염(廉), 검(儉), 신(信)을 갖춘 매미에게서 군자의 모습을 읽고 갑니다.
지허 선생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