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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이슈 下] '숨어 지내는 性 피해자', 사회 인식 개선·제도 안착 시급 |
정부가 4대악에 성범죄를 포함시켜 근절을 약속했으나 여전히 성폭력을 포함한 성범죄는 끊이질 않고 발생하고 있으며 성범죄 피해자들은 여전히 2차 피해를 겪으며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영화 '도가니', '한공주', 온라인커뮤니티 |
[더팩트 | 김아름 기자] '저는 잘못한 게 없는데요. 사과를 받는데 왜 제가 도망가야 하죠?' 한 여고생의 조용한 목소리로 읊조린다. 영화 '한공주'의 대사다.
이 짧은 대사 한 줄에 내포된 의미에 사람들은 분노했다. 더욱이 이 영화가 경남 밀양에서 발생한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알려지며 가해자에 대해 엄한 처벌을 요구하는 청원운동도 전개됐다. 더욱이 당시 이 여중생을 비하한 한 여학생이 현직 경찰로 활동하고 있는 사실에 비난이 빗발쳤다.
잘못한 것이 없는 일방적인 피해자임에도 숨어 지내야 하는 성범죄 피해자, 그들은 제도적 지원을 받으며 스스로 극복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나 이들을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에 다시 한 번 무너지고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26일 <더팩트>와 통화에서 성범죄 피해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색안경을 끼지 않고 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인식 전환"이라고 말했다. 이어 "제도적인 정비가 잘 돼 있는 만큼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일선 담당관들이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더팩트DB, 한국성폭력상담소 |
◆ 피해자가 숨어 사는 세상? 더 큰 변화가 필요하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피해자가 꽃뱀 아니야?', "뭔가 빌미를 제공했겠지…' 혹시 성범죄와 관련된 기사를 읽거나 듣게 될 때 이런 댓글을 본다거나 생각을 해본 경험이 있는지. 성범죄 피해자에 대해 그릇된 통념 가운데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반응이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은 이 생각이 성범죄에 대해 잘못된 생각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양지에서 떳떳한 생활을 해야 할 피해자들은 계속 음지에서 숨어 지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사실 성범죄 피해 후유증은 대외적으로 알려진 내용보다 생각 이상으로 매우 심각하다. 신체적으론 상해나 임신, 질손상, 성병, 수면장애 등을 겪게 된다. 이와 더불어 우울과 불안, 분노, 죄의식과 수치심 등 정신적인 고통도 함께 받으면서 이후 대인기피와 공황발작, 자살기도, 직장생활 부적응 등 사회적인 2차 문제로 이어진다.
한국성폭력상담소 관계자는 26일 <더팩트>와 통화에서 "성범죄 피해자가 세상에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도 선입견을 갖고 이들을 대하는 사회의 그릇된 인식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아동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과거보다 많이 변화됐으나 성인 여성의 성범죄 피해와 친족 간 성범죄에 관련해서는 아직도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경우가 많다"며 "성인 여성은 성범죄에 대한 판단과 대처 능력이 충분하다는 전제 하에 성범죄가 발생해도 서로간의 모종의 합의가 있었을 것이라는 의심부터 한다. 또 남녀문제라고 여기는 경우가 보통으로 강간이 화간으로 변하기도 한다"고 설명하며 인식 자체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러나 한편에선 성범죄 피해를 극복한 경우도 간혹 있다며 청사진을 제시했다.
상담소 관계자는 "대체로 성범죄 피해자는 무기력과 외상 후 스트레스를 겪는 경우가 많지만, 이것 역시 개인마다 차이가 있다. 특히 성범죄 자체에 대해 '그냥 나쁜 일 당한 거지 뭐'라고 생각하는 피해자들은 스스로 극복하려는 노력도 크고 긍정적인 자세로 일상으로 돌아가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경우도 많다"고 사례를 전하며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끝으로 "성범죄 피해자들을 이상한 시각으로 볼 것이 아니라 그들 역시 강도나 폭행 등 일반 범죄를 당한 피해자로 여겨 보듬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당부했다.
정부가 2013년부터 4대악 근절에 성범죄를 포함시키며 다양한 제도적 지원과 형량 강화를 시행했다. 그러나 정작 일선에선 체계적이고 전문화된 인력 구축이 되지 않아 제도의 실효성은 미비하다는 지적이다./YTN, 뉴스Y, TV조선 캡처 |
◆ '성범죄 피해' 제도는 완벽하나…전문성과 실효성은 '글쎄'
2013년 법무부, 여성가족부 등 11개 정부 부처에선 '성폭력 방지 종합대책'을 발표해 성범죄에 대한 법이 강화시켰다. 그에 따라 16세 미만 아동과 청소년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에 대해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없게 됐으며 기준 형량 역시 무거워져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기존 법정형량'은 '무기 또는 7년 이상'으로 상향됐다. 또 공무원이 성범죄를 저지를 경우에는 파면 조치 된다.
최근 증가하는 직장 내 성범죄를 방지하기 위한 방안도 마련됐다. 특히 공공기관에서 발생하는 성범죄에 대해선 공무원이 성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파면이 가능하도록 징계기준을 높였으며 승진에 대한 제한 기준도 강화했다. 민간에선 성희롱 발생 가능성이 높은 사업장을 대상으로 집중 점검을 하고 있으며 취업 규칙과 인사 규정에 성희롱 예방 관련 사항을 반영하도록 했다.
그러나 정부의 이러한 제도에도 불구하고 상담소 관계자는 '아직 실효성은 떨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형량의 강화와 실질 제도 운영에 대해 "성범죄 피해자를 위한 제도는 잘 돼 있다. 그러나 제도만 있을 뿐 전문성과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이 현재 실정이다"면서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세태의 문제를 꼬집었다.
이어 "현재까지 정부에서 발표한 성범죄 피해자를 위한 제도엔 의료 및 시설, 상담 등 지원제도가 확실하다. 하지만 관련 부처에서부터 홍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보니 제도가 있다는 사실 조차 알지 못하는 피해자가 대다수인 것이 현실이다. 한 예로 피해자에 대한 의료 지원의 경우 여성가족부에선 '전액지원'을 하겠다고 했으나 실질적으로 지원이 어렵다보니 잘 이뤄지지 않아 피해자의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법령 변화가 잦고 일선에서의 담당자도 매번 바뀌다 보니 성범죄에 대한 노하우가 축적되기 너무 어렵다. 그렇다보니 자연스레 전문화된 인력이 없어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지적하며 "형량이 상향 조정된 것은 잘 된 일이나 그만큼 실형 선고에 어려움이 생긴 것도 무시할 수 없다. 형량을 강화하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법령에 맞는 제대로된 처벌이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