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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적 에세이 - < 자살로 생을 마감한 말(馬) 1> -- 최상규 - - 1975년초 추운 겨울, 가톨릭 의과대학 미생물학교실 조교 시절이었다. 출근하자마자 가장 먼저 세포배양 무균실 청소를 하는 일은 나의 중요한 일과였다. 싷험실 청소는 학교에서는 물론 어느 연구기관의 연구실에서도 실험 전 단계의 가장 신성한 실험과정 인 것이다. 청소를 아예 하지 않거나 성의없는 청소로 대충 넘긴다면 어느 틈사이에서건 세균이 자라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의 실험분야는 세포를 배양하는 특수한 무균실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세포배양 과정중에 세포가 오염되어 다 죽어버리는 오류를 막기 위해서다. 자신의 실험실은 자신 스스로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며 그 만큼 중요한 실험의 첫 과정인 것이다. 내가 방문했던 미국,독일,일본 등 모든 연구기관의 실험실 청소 및 뒤처리는 실험자 본인이 하는 것이 당연한 일로 되어 있었다. 원로 교수도 자신의 싷험실이나 실험기구도 스스로 세척하고 멸균도 하며 청소를 하는 것이 상식화 되어 있었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비서를 두거나 실험 보조원이 없는 선진국 연구문화가 무척 부러웠다. 커피도 연구자 본인 스스로 타 마신다. 보기도 좋았지만 나에게는 낯설게만 느껴졌다. 나의 실험실 청소는 크레졸을 물에 희석한 소독수를 이용해 걸래를 빨아가며 바닥은 물론 실험대와 실험실 벽면 어느 한곳도 빠짐없이 닦아야 하는 하나의 전문기술이며 실험과정의 중요한 첫 단게이다. 무균실험실 천정에 빽빽이 달려 있는 자외선 형광등도 다 켜놓는다. 실험실 내부는 온통 형광색으로 마치 무대 조명 같은 착각을 하기도 한다. 청소를 끝낸 무균실험실은 그 어떤 작은 세균이나 곰팡이가 살아남지 못하는 무균상태로 쾌적하게 유지 된다. 청소를 하는 나까지도 무균인간을 만들어 놓았고 마음까지 청소가 되었는지 가장 순수하고 맑은 영혼으로 돌아간 듯 명료해진다. 비록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혔지만 마음은 평온해져 실험정신이 한층 고양된 가장 소중한 시간이다. 이런 환경에서 배양되는 백혈구 세포들은 오염되지 않고 건강하게 잘 자라 준다. 더구나 무균실은 3개의 문을 통과해야만 출입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어 누구든 쉽게 드나들지 못하게 한 나만의 실험공간이다. 이처럼 실험실 청소로 하루의 일과는 시작되지만 이어지는 조찬 세미나에 참석한다. 주임교수, 조교수, 동료조교, 그리고 나는 세미나 탁자에 둘러앉아 커피를 마시며 원서를 읽어가면 해석하고 토론을 한다. 세미나가 끝나면 하루의 일과를 주임교수께서 각각의 고유 업무를 지시한다. 오늘은 또 어떤 임무들이 주어질 것인지 모두 긴장감으로 하루의 일과는 시작된다. 그날도 주임교수는 나에게 업무를 지시하신다. “최선생! 실험실 청소는 깨끗이 했겠죠! 소독수는 아낄 필요가 없어요!” 실험실 내에 세균이 떠다니면 우리의 연구는 모두 끝장이오.” 드디어 그날도 주임교수는 나에게 특수한 임무를 지시하셨다. “최선생! 오늘부터의 실험은 말(馬)에 주사하는 일이오! 앞으로 2주간 계속 주사를 한 다음 1주간 중단했다가 최종 말에서 혈액을 모두 채혈해야 합니다. 그 말이 얼마나 비싼지 아세요? 금덩어리 같이 비싼 말인데 조심스럽게 면역주사를 해 강력한 항체물질를 얻는 것이 목표요! ” “예, 잘 알겠습니다.”
나는 당시 명동 성모병원으로부터 지병으로 사망한 환자에서 떼어낸 비장조직을 재료로 혈구세포를 분리했다. 그 다음 그 혈구세포를 50cc 주사기를 이용해 현관을 빠져나가 임시로 만든 말 사육실로 향한다. 블록으로 담을 쌓아 만든 간이용 말 사육실에 접근하여 문을 열고 들어간다. 말은 곁눈질로 나를 빠끔히 쳐다본다. 새하얀 가운을 걸치고 큰 주사기를 손에 든 것을 알아채고는 말은 눈에서 빛을 발하며 나를 원망스럽게 쳐다본다. 말은 순간 꼬리를 흔들어 대며 딋발로는 헛발질을 해댄다. 나는 말의 뒷발을 피해가며 말의 배에 몸을 밀착시켜 말의 두터운 엉덩이 피하에 큰 주사기로 힘껏 찔러 서서히 힘을 가하며 주사액을 주입시킨다. 말은 고통스러운지 앞발 뒷발을 마구 차대며 몸부림을 친다. 저항의 강도가 높아져 말의 피부들이 울퉁불퉁 자동으로 움직이는 현상을 볼 수 있었다. 마치 용수철이 튀어 나오듯 내 옆구리를 연실 쳐 댄다. 마침내는 굵은 주사 바늘이 뚝 부러져 주사액이 밑으로 주르륵 흘러내린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실험자의 끈질긴 의지다. 말 주사를 반듯이 성공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실험계획이 수립되어 있었다. 말을 실험동물로 이용해 사람 혈구세포에 대한 항체를 얻기 위한 중요한 면역학 실험이다. 그렇게 해야 그 다음 실험 계획에 차질이 생기지 않는다. 다시 실험실로 올라가 다른 주사기에 또 비장에서 분리한 혈구세포를 채워 다시 말 사육실로 접근,말 주사는 또 시작된다. 그러나 말은 점점 더 흥분이 가속화되어 필사적으로 몸통전체로 강렬한 방어를 한다. 이 실험대상의 말은 얌전치 않은 이유가 있다. 어느 지방 소도시에서 운영하는 종축장에서 야생으로 놓아 키우던 말을 연구실로 이동시킨 것이다. 한마디로 버릇없고, 거칠고, 전혀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였다. 이번엔 주임교수가 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주사를 시도한다. 엉덩이도 살살 긁어 주며 말을 달랬다. 말은 잠시 얌전히 가만히 있었다. 그 순간을 포착하여 주임교수는 주사기로 말 엉덩이에 주사 바늘을 잔인하게 퍽 찌른다. 말은 고통스러운지 더욱 격렬하게 전신을 흔들어댄다. 주임교수 손에 든 주사바늘은 뚝 부러지고 말았다. 추운 겨울인데도 이마에 땀방울이 흐른다. 주임교수는 몇 번 더 시도해 보았지만 결국 실패로 끝났다. 주임교수도 두 손 번쩍 들고 실험실로 돌아가셨다. 나에게 주사도 놓을지 모른다는 핀잔은 면하게 되었다. 어떤 다른 묘책을 강구치 않고는 말에 주사가 불가능했다. 실험팀은 말사육실 내부를 개조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사육실 내부에 앞과 뒤쪽에 4개의 나무기둥을 바닥에 튼튼히 박아 우뚝 우뚝 세웠다. 이 4개의 기둥에 가로와 세로로 각목을 또 이중으로 설치하여 말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설계했다, 거기에다 밧줄을 이용해 말에 몸통을 꽉꽉 묶고 4개의 기둥에 밧줄로 고정을 시켜 말을 꼼짝을 못하게 했다. 더구나 말의 몸통은 물론 네발이 모두 공중에 떠 있도록 해 놓았다. 말의 네발이 공중에 떠 있으니 버둥거려 보아도 말 엉덩이에 피하주사는 쉬워졌다. 몹시 고통스러워하는 말은 전신을 부르르 떨며 괴성을 지르며 난리를 친다. 이제는 각목까지 삐거덕거리며 다시 헐거워졌다. 동물 생명의 존엄성을 모르는바 아니나 실험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연 과학자들의 잔인한 인간의 속성이다. 나 역시 언제부터인가. 동물을 학대하는 몰인정한 인성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에 스스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 때문에 인간내면 깊은 심성까지 악마가 되어가면서까지 이 같은 행위를 연구랍시고 동물학대를 일삼는 것인가! 나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나는 그런 행위를 계속해왔다. 성인 손가락 크기의 흰쥐(mouse), 성인 손바닥 크기의 쥐(rat)는 물론 수많은 토끼를 실험동물로 희생시켰다. 이런 행위들은 모두 인간의 부와 행복을 위해서 이루어진다는 상상을 해본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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