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첼로의 선율과 가장 어울리는 계절이다. 한낮 햇볕을 쬔 목화솜의 따스함, 포도주 익어가는 듯한 향기로움, 적당히 묵직한 소리는 9월을 닮았다. 서울 일원동 <비첼>은 신라호텔 레스토랑 <콘티넨탈> 출신의 젊은 오너셰프 안중엽(33) 씨가 운영하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다. 첼로를 전공한 오너셰프는 활을 잡고 현을 고르듯 스테이크를 굽고 파스타를 삶는다. 그가 직접 선곡한 음악을 들으면서 편안하게 식사하다 보면 어느새 남부 유럽의 9월 햇볕이 홀에 가득 하다.
첼리스트 출신 셰프의 지중해 닮은 아지트
첼로가 좋아 첼로를 전공했다. 하지만 현실은 첼로 대신 주방 칼을 잡게 했다. 막상 해보니 주방 칼도 첼로만큼이나 좋았다. 뭔가 손을 움직여 손의 감각으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게 즐거웠다. 그렇게 7년 동안 안씨는 양식 주방에서 놀았다. 콘트라베이스를 전공한 아내와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고 3년 전 지금의 <비첼>을 열었다.
‘비첼’은 비올론첼로(Violoncellos)의 줄임말이다. 비올론첼로는 우리가 보통 첼로라고 부르고 있는 현악기의 본래 이름이다. 칼질을 하고 소스를 끓이면서도 안씨 마음의 손은 첼로를 연주한다. 첼로를 연주하듯 요리에 임한다.
“주방만 지키는 조리사는 되고 싶지 않아요. 미각뿐 아니라 손님에게 청각과 시각 등 오감을 충족시켜주는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싶어요. 생존을 위해 먹는 시대는 지났지 않습니까? 식사를 하면서 예술적 감동까지 향유한다면 삶이 한결 풍요롭겠지요. 옛날 귀족들은 그런 걸 누렸을 겁니다. 큰돈 들이지 않고 동네에서 우리도 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제가 한 번 시도해 보려고요.”
<비첼>에 들어서면 지중해 해안가 남유럽 어디쯤의 식당 같다. 외벽의 밝은 노랑색은 따스함을, 흰색이 주조를 이루는 실내는 아늑한 느낌을 준다. 넓지 않으면서 답답하지 않고 화려하지 않으면서 편안하다.
7일 숙성시킨 토마토소스, 라자냐는 시간의 맛
이 집의 간판 메뉴는 역시 파스타. 주인장이 3년 동안 약 2만개의 파스타를 조리했다. 그 중 비첼 라자냐(2만원)가 단골들이 주로 찾는 메뉴다. 라자냐는 반죽을 얇게 밀어 넓적한 직사각형 모양의 파스타. 이탈리아 사람들이 ‘할머니의 레시피’나 집밥처럼 가정식의 정서로 먹는 음식이다.
쉽게 만들려면 무척 쉬운 음식이지만 제대로 만들려면 한없이 어려운 게 라자냐이기도 하다. 주재료가 안심 라구(안심으로 만든 소스)라는 소스다. 먼저 토마토를 6시간 끊여 소스로 만든다. 깊은 맛이 스미도록 완성된 토마토소스를 7일간 저온에서 숙성시킨다. 잘게 썬 소고기 안심과 숙성이 끝난 토마토소스를 돌판에 지글지글 익혀 안심 라구를 만든다.
안심 라구를 오븐에 익힌 버섯과 생 모차렐라와 함께 라자냐 시트에 층층이 쌓아 완성한다. 라자냐 맛을 최상으로 유지하기 위해 금방 식지 않는 돌판을 식기로 쓴다. 겉 부분이 마르지 않도록 칼로 썬 뒤 잘 섞어서 먹어야 한다. 장식으로 얹은 파슬리도 버리지 말고 향을 내어 먹는다.
조심스럽게 잘라 입에 넣으니 잘 숙성된 소스 맛이 가장 먼저 느껴졌다. 안심 라구의 맛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현재 라자냐 면은 이탈리아 데체코 제품인데 주인장이 디벨라 제품으로 바꿀까 생각 중이다. 모든 파스타는 알덴테(al dente, 씹는 느낌을 살린 중간 익힘)로 제공한다.
샐러드나 와인을 곁들여 먹으면 라자냐의 풍미를 더 풍부하게 살릴 수 있다. 하우스 와인 한 잔은 7000원. 와인 반입 요금(Corkage Charge)은 1만5000원이다.
육즙 가둔 채끝 스테이크 발사믹 리덕션과 찰떡궁합
원래 파스타 전문점으로 문을 열었는데 스테이크를 찾는 손님들이 자꾸만 생겼다. 스테이크 판매량도 차츰 늘었다. 그러다 보니 이 집을 스테이크 전문점으로 기억하는 손님도 더러 찾아온다.
스테이크는 발사믹 리덕션과 블랙 트러플, 이 두 가지 소스를 베이스로 한다. 여기에 채끝과 안심 두 부위를 구워낸다. 따라서 취향에 따라 네 종류의 스테이크 가운데 고를 수 있는 것.
발사믹 리덕션 스테이크에는 홀 그레인 머스터드와 버섯구이가 들어간다. 역시 채끝(180g 3만9000원)과 안심(180g 4만5000원) 두 가지가 있다. 오븐에서 굽다가 잠시 빼서 육즙을 가둔 뒤 다시 굽는다. 채끝 부위는 너무 익히면 질겨지므로 미디엄 이하로 굽는 게 좋다. 통겨자 소스인 홀 그레인 머스터드가 생각보다 맵지 않다. 채끝 스테이크와 궁합이 딱 맞는다.
만일 연인이나 친구, 혹은 가족끼리의 식사라면 패밀리 세트 메뉴가 좋다. 더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기 때문. 2~3인과 3~4인 세트가 있다. 레지아노 치즈 슬라이스 마늘빵으로 시작해, 샐러드, 파스타, 스테이크, 에이드로 구성했다. 각 단계별로 취향에 맞는 메뉴로 고른다.
오후 2시 30분부터 5시 30분까지는 브레이크 타임이다. 단, 토요일에는 없다. 스테이크와 파스타 외에 샐러드, 그리고 리소토와 피자 메뉴도 여럿 구비했다. 우버이츠(UberEATS) 배달 서비스도 곧 실시할 예정이다.
이 집에 찾아오는 단골손님들과 서로 마음이 통한다는 점이 안씨를 행복하게 해준다. 식당은 그저 음식 먹는 곳이라고 대개들 인식한다. 안씨는 식당의 개념을 바꾸려고 한다. 앞으로 스크린을 설치해 공연 실황을 보여주거나 홀에서 직접 손님들에게 첼로 연주를 들려줄 예정이다. 맛과 멋이 조화를 이룬 동네 문화의 명소로 가꾸겠다는 것이 그의 꿈이다.
안씨가 아내와 함께 직접 제작했다는 메뉴판 뒷면의 글귀에 자꾸만 눈이 간다. 사람들에게 행복과 기쁨을 전달하는 것 이상으로 숭고하고 훌륭한 일은 없다 - 루드비히 반 베토벤 -
서울 강남구 양재대로 33길 25, 02-451-1194 글 이정훈(월간외식경영 외식콘텐츠마케팅연구소 실장), 사진 김재연(월간외식경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