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 4,32-40; 마태 16,24-28
오늘은 성녀 글라라 기념일입니다. 글라라 성녀는 1194년 이탈리아 아시시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아시시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고향이시기도 한데요, 이탈리아 성지 순례를 가시다가 아시시를 방문하시면, ‘아, 여기 예수님의 정신을 이어받은 누군가가 사셨구나’하고 느끼실 수 있습니다.
제가 보좌신부일 때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갔다가 로마에 들러서, 뭔가 이질적인 느낌을 많이 받았었는데요, 그러다 아시시에 가서 다시 이스라엘에서 느꼈던 것을 회복했습니다. 나중에 로마에서 공부할 때 성삼일에 아시시에 가서 개인 피정을 하기도 하고, 저를 방문한 가족들과 함께 아시시에서 사흘을 보내기도 했는데, 동네 분위기 자체가 무척 신앙적이어서 너무나 좋았습니다. 아시시를 그렇게 만든 것은 바로 프란치스코 성인과 글라라 성녀입니다.
글라라 성녀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과 가르침에 감동하여 열다섯 살에 결혼을 단념하고 하느님만을 위해 살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열여덟 살이던 해 밤에 집을 도망쳐 나와 자그마한 경당에서 거친 수도복을 받아 입었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글라라 성녀의 머리를 잘라준 후 베네딕토 수녀원으로 보냈습니다.
얼마 후 화가 난 아버지와 삼촌들이 들이닥쳤는데, 글라라 성녀는 잘라버린 머리카락을 보이려고 머릿수건을 벗어 던진 채 성당의 제대에 매달려 완강하게 버텼습니다. 그로부터 16일 뒤에는 글라라의 동생 아녜스가 다른 이들과 함께 왔습니다. 그들은 프란치스코 성인이 준 규칙을 따라 살아가는 글라라 수녀회 회원이 되었습니다.
글라라 성녀는 스물한 살 때 프란치스코 성인으로부터 수도원장으로 임명받았고, 59세의 일기로 선종하실 때까지 순명으로 그 직책을 성실히 수행하였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과 마찬가지로 글라라 성녀 역시 복음적 가난을 이상으로 생각했습니다. 지나치게 가난한 생활방식에 대해 염려한 그레고리오 9세 교황께서는 “당신이 서원한바 때문에 그렇다면, 그 의무를 면제해 주겠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글라라 성녀는 이렇게 대답하셨는데요, “교황님,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데서 아무것도 면제받고 싶지 않습니다.”
글라라 성녀는 식탁 옆에서까지 환자들을 돌보았고, 동료 수녀님들의 발을 씻겼으며 생의 마지막 27년 동안은 중병으로 고생하셨습니다. 교황, 추기경, 주교들도 자문을 구하러 가끔 성녀를 방문하셨는데요, 성녀는 수녀원을 한 번도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성녀께서는 돌아가시기 전에 이런 말씀을 남기셨다고 전해집니다. “오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저를 창조해 주셨으니.”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여기에서 ‘자신을 버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제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한참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글라라 성녀의 말씀은 매우 명확하고 단순합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데서 아무것도 면제받고 싶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분과 직책에 따라 예수님을 따르는 방식은 각기 다양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을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자기 자신입니다. 자신을 버리는데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클라라 성녀는 예수님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이 말씀은 초대였고 그 말씀을 따르는 것이 기쁨이었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초대와 기쁨으로 받아들이는가, 의무로 받아들이는가가 큰 차이입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