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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감동을 받아
출 35: 20-29
1년에 한번, 11월 셋째 주일이면 온 교회는 추수감사주일로 이 날을 기념하며 지키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시듯,
이날의 유래는 1620년 102명의 청교도들이 유럽을 떠나
'신앙의 자유'를 찾아 서쪽으로 서쪽으로 '메이플라워호'라는 배에 몸을 싣고
지금의 미대륙 동부 프리마우스라는 곳에 도착하여
거기서 옥수수를 심고 1621년 늦은 가을 처음으로 열매를 거두었습니다.
사실 저들은 이 신대륙의 토양과 환경을 잘 알지 못하였고
그래서 첫해에 엄청난 식량난으로 기아의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고 합니다.
정신적 죄절감과 영양실조, 그리고 알수 없는 질병의 고통속에 살아남기 위하여
풀과 나무열매 들사슴으로 연명하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 절대절명의 위기속에 이 청교도들은 '기도의 날'을 선포하기에 이릅니다.
저들은 모두 금식기도에 돌입하고 자기들의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앞에 매달립니다.
이때 오랜 가뭄으로 메말라가던 옥수수밭에 장대비가 쏟아지고
첫 농사는 위기를 넘기게 되고 기어코 감격의 추수를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청교도들의 눈물겨운 사투를 지켜보던 원주민 인디언 추장은
저들이 농사하여 열매를 거두는 것을 목격하고 이렇게 말하였다고 합니다.
'저들의 하나님이 참 신인것을 내가 오늘 눈으로 보았다'
여러분 그저 너무 손쉽게 얻은 것에 대하여는 '감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눈물겨운 사연으로 얻은것은 그 자체가 너무나 귀하기 때문에 저절로 감사가 나오는 법입니다.
'추수감사절'은 바로 이 눈물겨운 수확물을 앞에 놓고 자기들이 얼마나 절박한 심정으로
간절히 기도하였었는가를 기억하는 신앙인들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생각하며
예배하는 날로 시작되었습니다.
즉 이날은 많이 가진 자들이 배불러서 드리는 감사의 날이 아니라
오히려 배고픔과 가난, 비참함과 절망의 위기를 맛본 이들이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를 드린 날이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추수감사절을 지낼 때 청교도들의 심정으로 하나님앞에 예배할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 지난 1년은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위기도 있었고 배고픔도 가난도 절망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온르 내가 이렇게 주님앞에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고 감사의 조건입니다.
위기때마다 주님 붙들 수 있는 믿음 주시고 기도할수 있는 신앙의 토양을 허락하신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바로 이 믿음으로 드리는 추수감사절 예배가 온전한 절기를 지키는 바른 자세라 할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감사할수 있다는 것 감사할 줄 안다는 것, 즉 감사의 마음과 감사의 표현은
양심과 언어를 가진 인간만이 할수 있는 특권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안다는 것은 축복받은 성도만이 누릴수 있는
면류관이라 할수 있는 것입니다.
특히 내가 받은 모든 은총이 다 하나님의 축복임을 알수 있어야 진정한 감사가 가능해 집니다.
이 감사는 성령이 역사하는 마음입니다.
어떤 분은 감사에 이렇게 말씀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감사야 말로 신앙의 표현이요 천국시민만이 할수 있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천국에는 감사와 찬양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가진것은 없지만 감사할줄 아는 사람은
참으로 풍요로운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 할수 있는 것입니다.
천국시민이 되었으니 뭐가 이쉴것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많은 것을 소유하였다 할지라도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지극히 가난한 사람이라고 말할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이렇게 부요한 가난뱅이와 가난한 부자들이 살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을 보면 여기서 서머나 교회는 예수님에게서 이런 칭찬을 들었습니다.
'내가 네 환란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니가 부요한 자니라'
가난하지만 넌 사실 큰 부자로다하는 소릴 예수님에게서 들은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모두가 이 칭찬을 듣게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 천국시민된 확신 가운데 거하는 사람은 주님으로 부터
'너야말로 진정한 부자다'하는 소릴 듣게 됩니다.
하지만 거기 계시록 2장에는 리오디게아 교회가 들은 책망도 있었습니다.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넌 지금 부족할 것도 부러울 것도 없다하나 네게 감사가 사라진지 오래이므로
너야말로 가난한 자로구나 너야말로 불쌍한 자로구나'하셨습니다.
가난과 부를 나누는 우리의 기준은 물질 일런지 모릅니다.
하지만 가난과 부를 나누는 신앙적 기준은 '감사의 유무'에 있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온르 추수감사주일 우리는 지금 부자로 여기에 앉아 있습니까? 아니면 가난한 사람으로 여기 있습니까?
단순히 물질만 가지고서 말할것이 아니라 진정 하나님이 나에게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는 심정을 기준으로
말해 보자는 것입니다.
감사드리는 자세는 결코 '감사하지 않느냐 그러니 지금 감사해라 하고 윽박지른다고 될일이 아닙니다.
저 신대륙에 첫발을 딛고 신앙의 지유를 위한 새 삶을 시작했던 청교도들이
온갖 고난과 고초끝에 첫 옥수수농사의 수확물을 놓고 진정 마음으로 부터 우러나오는
뜨거운 감사를 할수 있엇던 것 처럼 우리 역시 지나온 1년 지나온 내 인생을 돌아보면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를 올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고 홍해를 건너 광야 생활을 할 때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 성막을 어떻게 지을 것인가에 고나한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하나님께서 성막을 어떻게 지을 것인가를 내게 말씀하셨는데
여기에는 금도 필요하고 은도 필요하고 놋도 청색, 자색, 홍색실도
천과 나무와 보석과 가죽과 기름과 향품이 필요하다.
누구든지 이제부터 이 성막을 짓기 위해서 드리기 원하는 사람은 자원해서 가져오길 바란다'하였습니다.
분명 모세는 자원하여 예물드릴 사람을 찾고 있었습니다.
지그 모세는 지나간 얘굽생활의 설움과 압박을 기억하며
지금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 언약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향하여 전진하고 있는 현재의 모습에
'마음깊은 곳으로 부터의 감사함을 느끼고 있는 사람'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뭐야 이것이 무엇이 그리도 감사할 일이야'하고 입이 축 나온 사람에게
'성막에 필요한 것을 가져와라'하면 감사는 없고 남들이 다 하니 나도 흉내는 내야겠고
마지못해 인색한 마음으로 아주 조금 그것도 매우 아까운 마음으로 드릴 것입니다.
하지만 '이게 왠 은혜야,우리가 남의 나라에서 억울하고 힘든 착취당하는 세월만 보내다가
이렇게 자유를 얻고 이제 여기는 비록 광야지만 앞으로 가나안땅에 들어가게 되었으니
하나님앞에 아까울게 뭐가 있겠어'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출애굽할때
고이고이 간직하고 나온 재산을 다 내놓는데 자원하여 드릴수 있게 될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모세는 이 백성들중에서 은헤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진 신앙의 부자들을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때 이 말을 들은 백성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그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예물을 가져 여호와께 드렸다(v21)고 하였습니다.
특히 본문 v21말씀을 보면 '마음이 감동된 자'와 무릇 자원하는 자'들이 예물을 가져왔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그려야겠다'하는 마음이 자발적으로 생긴 사람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헌물한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기분좋게 남을 대접해 본일이 있습니까?
'돈이 드는건 신경쓰지 마세요. 저도 한번 이렇게 대접을 하고 싶었어요. 돈이 문젠가요"
제가 대접하고 싶어서 하는 건데요'이렇게 말씀하시면 대접 받는 사람도 얼마나 마음이 즐거운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런 분도 있습니다.
'오늘은 제가 낼께요. 저라고 늘 얻어 먹을 수 있나요" 뭐든지 드시고 싶으신대로 시키세요.
돈은 걱정하지 마시구요. 뭐가 좋을 까? 저는 자장면 주세요.
그리고 이분들은 원하시는 걸로 뭐든 다 주세요. 돈은 제가 낼거예요!'
이러면 다른 사람들이 절대 탕수육을 못 시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게 아니라 생색이 목적인 경우가 이렇게 됩니다.
내가 오늘 너무 감사해서 가만히 있을수 없습니다.
무엇이든 좀 내야겠다하는 마음이면 그저 손에 잡히는 대로 다 드려도 아깝지가 않습니다.
사실 모세는 이 백성들 속에서 일너 사람을 찾고 있었습니다.
'자!우리가 이제 하나님이 임재 하실 성막을 지어야 합니다. 여기에 필요한 건 이런 것들입니다.
그저 마음이 감동된 사람과 자원하는 사람은 내십시오'하였습니다.
읻 ㅐ백성들은 자기들이 진정 마음에 원하여서 v22
'가슴에 꽂고 있던 핀과 귀에 걸고 있던 귀걸이와 손가락의 가락지 목걸이를 드렸으며.
v23 ~있는자도 가져왔으며 v24 ~있는자는 자져왔으며
v26 마음에 감동받아 v29마음에 원하는 이스라엘 자손의 남녀마다
여호와게서 모세의 손을 빙자하여 명하신 모든 것을 만들기 위하여 물품을 가져다가
여호와게 즐거이 드림이 이러하였더라'
즐거이 드렸던 것을 볼수 있습니다.
옛날부터 부흥회때는 부흥사가 이 장면을 잘 인용하였습니다.
'자 여러분 에배당이 이게 뭡니까? 자기 집은 점점 넓어져가고 있는데
하나님의 집은 10년전이나 지금이나 이렇게 다 쓸어져 가는 건물로 남겨두어서야 되겠습니까?
모세때는 백성들이 귀걸이 목걸이 반지 다 빼서 바쳤다는데 우리도 오늘 밤 하나님께 드립시다.
지그 다 빼세요'
하면 성도들은 '아이쿠 오늘밤은 정말 잘못왔구나, 반지라도 얼른 호주머니에 넣어 두어야지'
감사는 몰아부쳐서 되어지는 것도 짜내서 되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본문을 쭉 읽어 내려가면서 우리가 느낄수 있는것은
강요한 사람도 없고 마지못해 드린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분명 이때 성령에 감동되어 있었습니다.
자원하는 감사는 성령에 감동되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이렇게 지원하여 드려지는 예물은 성령의 감동이 지속되는한 주체할수 없을 만큼 계속되었습니다.
출 36:3보면 백성이 아침마다 자원하는 예물을 연하여 가져오는 고로
36:5보면 백성이 너무 많이 가져오므로 여호와의 명하신 일에 쓰기에 남음이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 본 일이 있습니까?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는 그 아이 입으로 먹을 것 들어가는 것만 봐도
마른논에 물들어가는것 같은 뿌듯함을 느낍니다.
부모를 사랑하는 자녀는 무리를 해서라도 부모님을 기쁘시게 하고 싶고
그것을 부담으로 느끼기 보다는 그렇게 공경할수 있는 부모님이 곁에 살아계셔주신 것이
고맙기만 할 것입니다.
남녀간에 사랑에 빠지면 표가나게 되어있습니다.
감출수 없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주고 싶은 마음을 감출수가 없습니다.
시간도 주고 마음도 주고 돈도 아깝게 여기질 않고 쓸수 있습니다.
곁에서 친구가 아깝지 않냐하여도 그말이 귀에 들리지 않습니다.
뭐든 더 줄게 없겠습니까?
찾아보는 마음이 사랑의 마음입니다.
이것이 교육으로 되겠습니까?
강요로 되겠습니까?
훈련으로 되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성막짓는데 필요한 재료들에 관한 말을 듣는 순간,
'내가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야말로 이 출애굽의 은총을 가장 크게 받은 사람이야'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성막을 짓는데 소용되는 것이 무엇이다'하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주저함이 없이 드렸습니다.
다 내어드리고도 무얼 더 드릴것이 없을까를 밤새 생각하다가 '아참! 이것도 드려야겠다'하고
자꾸만 드린 것입니다.
이젠 성막을 하나 짓기에 필요한 분량이 넘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급기야 모세는 36:6'그만 가져오라'고 명령을 내릴 정도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이 백성의 마음을 풍성하도록 감동시키신 성령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믿음의 부요함을 누리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하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가진 것 없어도 부요한 살마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감동하시어
'주의 크신 은혜'가 헤아려지고 그 감격을 주체할 길 없어 하나님앞에 그리고 또 드리는 일이
전혀 아깝게 여거지지 않을 성숙함에 이르길 바랍니다.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처럼 금가락지 귀걸이 목걸이를 드릴 건 없어도
우린 내 시간과 재능과 주님을 향한 열심을 드릴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감사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감사의 마음이 충만할때 우리 마음에서 타산적 개념이 사라집니다.
감사하고자 하는 마음에 비하면 자기가 드리는 물질은 시간은 재능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겨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즐거이 드리는 감사입니다.
유월절 엿새전에 베리니의 마리아가 예수님을 위해 옥합을 깨뜨렸습니다.
이것이 즐거이 드린 감사였습니다.
주님의 은혜에 감사, 감격한 마음이 있었기에 마리아는 무엇이든 정말 소중하고 귀한 것을 드림으로
자신의 감사의 심정을 다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소중한 향유가 담긴 옥합을 주저없이 깨뜨리게 하였을까?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 은혜를 아는 사람은 주저함이 없습니다.
추수감사의 시작도 이렇게 출발하였습니다.
우여곡적 끝에 첫농사를 짓고 참으로 어렵게 첫수확을 하게 되었는데
열매를 거두면서 저들은 울었고 그리고 이 열매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지 않을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첫 열매!
'하나님!우리가 지금 눈으로 불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시편가사의 고백처럼
여호와게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것이며 요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깨어 있는 것도 다 허사'라는 사실을 압니다.
하나님! 우리는 우리 가정을 우리 교회를 우리 아이들을 우리 직장을 지켜주고 계시는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정 감사할줄 아는 심령으로 이 추수 감사의 절기를 지키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되려면 눈이 열려야 합니다.
눈이 열려 보이려면 영적 안목, 영적 감사가 충만해야 합니다.
영적 안목이 열리려면 성령충만해야합니다.
오늘 모세의 장막에 필요한 것들에 관한 말을 듣고 마음을 다해 가져온 사람들은
성령에 이끌림을 맏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감사의 날! 더욱 성령충만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