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승윤 목사 : 자기를 찾는 자를 만나 주시는 하나님
신, 구약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가장 뚜렷하고 분명한 메시지는 “하나님만이 구원자시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외에 다른 구원자는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지혜와 자존심은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구원자시다”라는 성경의 선언은 자신들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갖고 있는 능력과 힘과 지혜를 상대적인 것으로, 하찮은 것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하나님만이 구원자시다”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거부합니다. 독단이라고 무시합니다. 그러나 독단인지 아닌지는 세상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역사가 끝나는 그날, 하나님께서 스스로 말씀하신 이 선언이 진실인지 아닌지 명명백백하게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바로 “하나님만이 구원이시다”라는 성경의 명백한 메시지를 지금, 이곳에서 진실이라고 믿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그 때 가봐야 안다” “사실인지 아닌지 나는 모르는 일이지만 그래도 그렇게 믿고 사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고, 밑져야 본전 아니냐?”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만이 구원자시다”라는 성경의 선언을 지금, 이곳에서, 우리의 모든 삶의 현장에서, 모든 현실 가운데서 반드시 확증되고 체험할 수 있는 사실이라고 믿고 사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히브리서 11:6절)고 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반드시”라는 말에 힘을 주어서 읽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반다시)’그가 계신 것과 또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여러분, 믿음이 있노라고 말은 하고 있지만 만약 그 믿음이 없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 중심이 아니요, 자기 중심입니다. 하나님보다 나를 우선하는 것입니다. 내가 우선이 되면 하나님은 필요할 때만 부르는 도우미 정도입니다. 필요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무시해도 되는 존재입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에 대한 절박함, 하나님에 대한 갈망은 우러나올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구원이시다”이것은 단지 하나의 명제나 이론이나 근거없는 신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서 증명하고 확증하신 것입니다. 출애굽의 역사를 보십시오. 뒤에서는 애굽의 군대가 막강한 전차부대를 동원해서 이스라엘을 공격하려고 좇아오고 있습니다. 앞에는 홍해 바다가 놓여있습니다. 말 그대로 진퇴양난입니다.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향해서 원망과 불평을 쏟아냅니다. “원망과 불평”이라는 단어는 그 상황을 설명하기에는 적당하지 않습니다. 모세를 향해서 악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만큼 상황이 절망적입니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이끌고 나와서 광야에서 죽게 만드느냐?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 뭐라고 너에게 말을 했느냐? 이렇게 될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느냐? 그냥 애굽 사람 밑에서 종살이를 하도록 내버려두지 무엇 때문에 우리를 끌고 나와서 이렇게 광야에서 개죽음을 하게 만드느냐?”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을 향해서 악을 쓰는 것을 들으면서 모세는 그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두려워 말고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애굽기 14:13절-14절) 여러분, 모세의 이 말을 어떻게 듣습니까? 모세의 믿음,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나오는 모세의 담대함으로 보여지십니까? 만약 이 구절만 딱 떼어서 읽는다면 그렇게 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뒷 구절은 모세의 이 말이 모세의 믿음, 모세의 담대함을 나타내는 구절이라고 생각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어째서 살려 달라고 내게 울부짖고만 있느냐?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앞으로 진군하라고 명령을 내려라. 그리고 지팡이를 들고 네 손을 바다 위로 내뻗어라. 그러면 바다가 갈라지리라. 그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다 한 가운데를 마른 땅처럼 건너게 되리라. 내가 바로뿐만 아니라 그의 병거 부대, 기병 부대를 단숨에 쓸어 버려 내 힘이 어떠한지를 드러내 보이리라. 내가 바로와 그의 병거 부대, 기병 부대를 단숨에 쓸어 버린 뒤에야 비로서 애굽 사람들이 내가 여호와인 줄을 깨달으리라”
모세도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두려워 떨었습니다. 불안해 했습니다.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물론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고 한 말은 모세가 믿고 있는 진실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 자신도 그 절망적인 시간, 절망적인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두려워 떨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절망적인 시간에 악을 쓰면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행하신 구원, 즉 놀라운 능력으로 자신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신 하나님의 구원을 전면 부정했습니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애굽에서 끌고 나와서 광야에서 죽게 만들었느냐?”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눈으로 직접 보고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모든 사실을 부정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불안과 두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 순간이 하나님을 찾아야 할 때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께 살려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홍해 바다를 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발로 걸어서 홍해를 건너게 하셨습니다. 애굽의 주력 부대를 홍해 바다에서 몰살시켰습니다. 말씀하신 그대로 행하셨습니다. 그 놀라운 광경을 바라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엇을 알게 되었을까요?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구원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홍해 사건 이후에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구동성으로 찬양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비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출15:1절-2절)
“하나님만이 구원이시다”라는 이 믿음을 견고하게 붙잡고 있을 때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샬롬의 은총을 누렸습니다. 환난과 고통 가운데서도 그들은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위기의 순간에 그들은 하나님께 도움을 구했습니다. 그들이 절망적인 순간에도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만이 구원이시다”라는 이 사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역사 한 가운데서 스스로 증명해 보여주신 이 진실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은 고난의 한 가운데서도 이 믿음을 굳게 붙잡고 견뎠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는 그 때, 자신의 모든 아픔과 슬픔과 안타까움이 일시에 사라질 것임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라”(시편 68:19절)고 했습니다. 하루하루를 구원의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어떻게 살고 계십니까? 올 한 해 어떻게 살아오셨습니까?
힘들고 어렵게 살아온 시간들 속에서 여러분들은 어떤 자세로,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아오셨습니까?
오늘은 올 해 마지막 주일입니다.
연말이 되면 언제나 그렇듯이 살아온 시간들을 반성하고 새로운 각오와 계획을 세웁니다. 늘 상 그렇듯이 아쉬움이 많습니다. 아무리 애를 쓰고 노력하며 살았다고 하더라도 후회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인듯 싶습니다. 그러나 반성할 수 있다는 것은 또 다른 시작을 전제할 때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반성하고 회개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새로운 기회를 주실 것이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만약 또 다른 시작, 새로운 기회를 기대하지 않는다면 반성과 후회와 회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우리에게 생명이 붙어 있는 한 우리는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사느냐? 무엇을 위해서 사느냐? 이전에 생명이 붙어 있는 한 우리는 살아가는 것이요, 살아간다면 살아가는 흔적과 결과는 남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흔적과 결과는 시간이 흘러가면서 그대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록하시는 책에 낱낱이 기록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이 살아가는 삶의 모든 흔적과 결과들을 자세하게, 공정하게, 있는 그대로 기록하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 위에 사는 동안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어떤 마음과 생각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대단히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사실을 망각하고 사는 것이 바로 불신앙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해 내지 못하면 시간의 흐름은 우리들에게 더 큰 악을, 더 큰 죄를 쌓아가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후회와 반성, 회개와 돌이킴은 그래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무한한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회요 새로운 가능성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회, 하나님께서 주시는 가능성을 믿고 바라보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찾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불의한 생각들을 털어내려고 노력합니다. 가던 길을 멈추어 서서 돌아서서 의의 길, 하나님께서 제시해 주시는 올바른 길을 따라서 가려고 노력합니다.
돌이키는 자, 돌아서는 자,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기시고, 죄악을 용서해 주십니다.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 약속은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서 확증되고 또 확증된 진실입니다. 그것을 의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상황이 아무리 절망적이라고 하더라도, 희망을 가질 만한 근거가 아무 것도 없다고 하여도 역사 가운데서 당신이 하신 말씀, 당신이 하신 약속들을 신실하게 지켜오신 그 하나님께서 자신을 찾는 자, 자신에게 부르짖는 자들에게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구원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바로 그 구원의 하나님을 근거로 해서 담대하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메시지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70년 동안 바벨론의 포로 생활 가운데 모든 희망을 상실하고, 절망 가운데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 과거 출애굽의 구원도 잊어버리고, 자신들이 하나님께 지었던 모든 죄악들도 망각한채 하루하루를 아무런 소망도 없이 그냥 그대로 살아가고 있는 이스라엘을 향해서 도전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바로 지금이 그 때이다. 바로 지금이 하나님을 찾을 때이다.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너희들이 바벨론에서 70년 동안 수치와 치욕을 경험하며 살게 된 이유를 기억해라. 무엇이 너희들을 그렇게 만들었는지 되돌아보고 회개하고 악한 생각을 털어버려라. 악한 길에서 돌이켜 구원의 하나님, 자비와 용서의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너희들을 용서해 주실 것이다.”
반성과 회개는 새로운 시작입니다.
새로운 기회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시는 새로운 구원의 가능성으로의 출발입니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 과거를 반복하는 형벌에 처해진다”라고 미국의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라는 사람은 말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자신의 허물과 잘못을 돌아보고 반성하지 않는 사람, 과거의 잘못을 무시하고 합리화시키는 사람은 옳은 길로 돌아갈 가능성조차 상실하게 됩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세상의 역사를 보면 그와 같은 형벌과도 같은 죄악을 끊임 없이 반복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구원의 은총과 감격을 누리며 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차원이 다릅니다. 하나님의 길은 우리의 길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상상력을 뛰어 넘는 것입니다.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벨론에서의 귀환. 그것은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어느 누구도 기대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 다니엘은 하나님의 구원을 기대하고 소망했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던 중 한 말씀에 눈이 꽂혔습니다.
바로 예레미야 선지자가 기록한 말씀입니다.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입던 원년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년수를 깨달았나니”(다니엘 9:1절-2절)
다니엘은 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때가 가까이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그 약속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자신을 포함한 이스라엘의 죄악을 회개하며, 무너진 하나님의 도성인 예루살렘의 황폐함을 긍휼히 보시고 구원해 달라고 간구를 드렸습니다. 다니엘은 현재의 절망적인 상태를 보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뛰어 넘어서 미래에 일어날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구원의 때가 가까이 이른 줄을 알고 하나님을 찾고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약속하신 그 구원을 놀라운 방식으로 이루어주셨습니다. 다니엘이 절망 가운데서 회개하고 간구했던 그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그것을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는 꿈꾸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구원은 그들에게 어쩌면 그냥 주어진 것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을 사모하고 기대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시간은 끊임 없는 믿음의 싸움을 하고 있는 고통의 시간입니다. 그러나 그 고통의 시간은 단지 고통의 시간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구원의 은총을 바라며 기다리는 소망의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그냥 받은 사람들과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열망을 갖고 고통과 소망의 극단을 오르내리면서 씨름을 한 사람들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바벨론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사람들 대부분은 종교적인 허영과 형식만을 몸에 익힌 채 멸망의 역사를 다시 만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 과거를 반복하는 형벌에 처해진다”는 조지 산타야나의 말 그대로 그들은 다시 로마에 속국이 되었고, 그들의 손에 구세주 예수가 죽었습니다. A. D 70년에 로마 장군 티투스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멸망을 했습니다. 그러나 비록 소수지만 경건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구세주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예수께서 오셨을 때 그들은 예수를 믿고 따랐습니다.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말씀을 들었습니다. 무지하고 보잘것없는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새롭게 시작되는 하나님의 교회, 신약 교회의 새로운 역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복음의 역사가 그들을 통해서 세상으로 퍼져나가도록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시점, 반성과 회개할 것이 있다면 반성하고 돌이켜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로 나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때, 하나님의 구원이 절실하게 요청되는 이 때, 바로 지금,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찾고 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서 새롭게 출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길만이 우리가 살 길이라고 믿고 나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들려주신 놀라운 약속의 말씀이 우리 안에 그대로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6:2절).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 나는도다.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요동치 아니하로다”(시편 62:5절-6절) 이 믿음으로 한 해를 결산하고 새로운 한 해를 계획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
가까이 계실 때에 여호와를 부르라.
오늘은 기도의 중요성에 대해 알아보자.
1. 영적 교제의 통로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사 55:6).
2. 은혜의 통로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마 18:19).
3. 주의 뜻을 알 기회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 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2-3).
4. 소원 간구의 시간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
5. 자아 발견의 시간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 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슥 12:10).
6. 회개의 기회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 1:9).
7. 생활 정리의 기회
“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 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딤전 2:1-2).
8. 재확신의 기회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엡 3:12).
9. 평안의 회복
“양들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모든 선한 일 에 너희를 온전하게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가운데서 이루시 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히 13:20-21).
출처: 행복한 예수님의 사람들 글쓴이: 문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