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룻기강해(3)
성경>:룻기 1:15-22
주제>:그리스도를 향하여
제목>:하나님께 나가자
명제>:결심으로 하나님께 나온 자와 환난 가운데 하나님께 나온 자는 쉼을 얻는다.
설교목적>:하나님께 나온 자는 어떤 유익을 얻는가를 알게 하여 진취적인 신앙인이 되도록 한다.
------------------------------------------------------------------------------------
설교자 :박우영 목사(벧엘동산교회) 1994년 11월 13일 /주일낮 예배
------------------------------------------------------------------------------------
마 11:28)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나님께 나오는 자는 쉼을 얻습니다. 휴식을 얻습니다.
오늘 이 시간 여러분들에게 마음의 쉼,영혼의 안식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고향을 떠나 모압으로 이주하여 10년만에 남편과 두 아들을 잃은 시어머니 나오미는 함께 과부된 첫째 자부 룻과 함께 이스라엘 베들레헴 땅, 하나님이 계신 곳을 찾아오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하나님께 나오고 있으며, 하나님은 어떤 위로와 휴식을 주셨는가를 살펴봄으로서 여러분들의 신앙생활에 휴식의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Ⅰ.굳게 결심하므로 나오고 있습니다(15-18).
모압 여인 룻은 이방 여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올라간 사람입니다(마 1:5). 이방 여인으로서 하나님의 나라에, 그것도 그리스도의 조상의 자리에 이름이 올랐습니다. 이는 낮잠 자다가, 운 좋게 복권 당첨되듯이 얻은 영예가 아닙니다. 천국의 문은 아무렇게나 굴러가다가 들어가는 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의 문은 저절로 열리는 문이 아닙니다. 믿음을 가지고 굳세게 두드리는 자에게만 열립니다. 얻으려고 결심하여 애쓰고 땀흘리는 자에게 열리는 문입니다.
사람에게는 인격이 있습니다. 인격의 세 가지 요소는 知.情.意입니다. 알고, 느끼고, 의지를 갖는 것입니다. 의지는 마음의 결심입니다. 알고 느낀 것에 대하여 결심하므로 행동에 옮길 수 있어야 합니다. 천국을 소유하는 사람은 모두 행동하는 믿음 가들입니다.
마 7:20)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오늘 우리의 육체와 현실에 필요한 것을 더 얻어내기 위하여 땀흘려 노력하며 실천합니다. 그러나 영원한 하나님이 주시는 하늘의 축복의 문은 두드릴 줄 모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그러나 그 진리도 굳센 결심으로 실행에 옮기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진리를 듣고 고개를 끄떡이는 분은 많으나 땀흘려 그 진리에 결심하여 실천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입니다. 실천하기로 결심하는 자의 것입니다.
마 11:12)…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천국을 얻으려고 결심하고 쟁취하는 자에게 천국은 오늘도 얻어지는 것입니다.
룻은 굳게 결심하므로 천국의 평화와 안식을 얻은 지혜로운 성도입니다.
1.함께 동행하는 결심을 했습니다(16).
룻은 시어머니와 동행하려고 결심했습니다.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14).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16)
하나님을 알려면 하나님께로 나가는 사람을 잘 붙들어야 합니다. 믿음이 좋아지려면 믿음이 좋은 사람을 붙잡고 동행해야 합니다.
"당신은 어떤 이와 동행하고 있습니까?" 어떤 사람을 인생의 표본을 삼고 있습니까? 당신의 마음을 진정으로 나눌 수 있는 친구는 누구입니까? 세상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사람들입니까?
나오미는 인간적인 배려와 율법적인 두려움으로 룻을 두고 혼자 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나오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룻은 결심했습니다.
룻 1:16)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제가 목회의 길을 가려고 신학교에 입학했을 때의 일입니다. 저희 부부를 맺어 주신 목사님께서는 목회의 길을 만류했습니다. 기왕에 입학했으니 졸업하여 훌륭한 장로님이 되라는 것입니다. 목회자인 당신의 길을 따라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저희를 사랑하시는 인간적인 배려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붙좇았습니다. "목사님이 가시는 곳에 저도 가겠습니다." 그 목회자의 길을 택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아무것도 몰랐지만 결심했기에 오늘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저의 신학 동창 중에는 아직도 목회의 길에 결심하지 못하고 이리 저리 방황하는 분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교회에 나오신 분들에게 다가오는 첫 경험은 주변 사람들의 냉대와 방해입니다. 예수 믿는 길로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길로 가면 힘들고 어렵다는 것입니다. 쉽고 편안한 길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누구와 동행하겠습니까? 세상의 친구들입니까? 믿음의 친구들입니까?
결심하십시오. "주님 가신 곳에 나도 가겠습니다." "주의 종들이 가신 길, 목사님이 가시는 길로 나도 가겠습니다." "집사님이 가는 곳에 나도 가겠습니다"라고,
마 7:13)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14」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18절을 보십시오.
결심은 논쟁을 불식시킵니다. 결심은 만류를 물리칩니다. 결심은 인생을 바꿉니다.
2.함께 살고 죽는 결심을 했습니다(16-17).
사람이 죽기로 결심하면 무서울 것이 없고, 못할 것이 없습니다.(17절을 보십시오).
룻은 독한 여자입니다. 마음을 독하게 먹어야 하나님을 따를 수 있습니다. 독하게 예수 믿는 사람이 축복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전도 여행에 파송하실 때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 하라"(마 10:16)
고 하셨습니다.
비둘기와 뱀은 둘다 적에게 민감합니다. 결단력이 강합니다. 적이 나타나면 비둘기는 도망가는데 재빠르고, 뱀은 공격하는데 재빠릅니다. 우물쭈물하다가는 잡혀 먹습니다.
십자가의 길, 좁은 길, 생명의 길은 우물쭈물 가는 길이 아닙니다. 가다가 쉬는 길도 아니요, 힘들다고 뒤돌아 가는 길도 아닙니다. 독한 마음을 먹고사나 죽으나 나는 주님의 것입니다. 결심하고 실천하므로 즉 결단으로 가는 길입니다.
예수님은 대단한 결단가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결단하셨습니다. 사탄은 십자가를 지지 말도록 유혹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땀이 피가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그리고 결심했습니다.
마 26:39)…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성경에 나타나는 신앙 가들은 모두 대단한 결단 가들입니다.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빌 1:20-21)…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21」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우유부단한 사람, 맺고 끊지 못하는 사람은 천국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할 때, 주기철 목사님이 순교할 때, 그들의 결심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21」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16절에 룻의 결심을 다시 보십시오.
부정적인 것은 시어머니의 청이라도 거절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결단의 연속입니다.
「주일 성수,제사,십일조,십계명 지키기 등등」, 무엇하나 우리의 무서운 결단력이 없이는 행할 수 없는 일입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사는 사람」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람이 됩니다.
3.함께 믿고 섬기기로 결심을 했습니다(16).
성수 대교가 무너진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사람의 마음이 무너진 것입니다. 성수 대교를 만든 사람과 관리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무너지지 않았다면 그 다리는 무너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분들의 변명은 대개 "바쁘다"는 것입니다. "식구들이 반대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마음의 없다는 핑계일 뿐입니다.
신앙생활에 불충하는 분들의 변명은 구구하나 사실은 마음이 없다는 것입니다.결심은 마음을 세우는 것입니다.
룻은 마음을 세웠습니다.
룻 1:16)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참으로 위대한 결단입니다.
위대한 결단이 있는 곳에 위대한 인생이 태어납니다. 위대한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 여호수아를 보십시오. 그는 평생에 여호와 하나님을 따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자기 인생을 마감하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이와 같이 자기 결심을 말했습니다.
수 24:15)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무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삭개오를 보십시오.
그는 키가 작은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 나오는데 사람들이 많이 둘러싸여 만나기가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결심했습니다.
눅 19:3-4)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4」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어라
가나안 여인을 보십시오.
마 15:26)대답하여 가라사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27」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 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28」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이숙녀 전도사님을 보십시오.
이분은 감리교여선교회 전국대회에서 '장한 어머니상'을 수상한 분으로 한국 교회의 기둥 같은 큰 일꾼인 김선도,김홍도,김국도,김건도 네명의 목사님의 어머님이 십니다.
평안도 선천에서 출생하신 이분은 일제시대와 6.25사변이라는 민족의 고난의 틈바구니에서 가난과 남편의 박해 속에서 6남매를 눈물의 기도와 무서운 신앙의 결단으로 키워 가며 교회에서 전도사로 교사로 봉사하며 주님을 섬기신 분입니다.
눈물의 기도와 연단의 세월 20년만에 그렇게 핍박하던 남편이 목회자로 돌아섰고, 40년만에 4명의 아들이 모두 하나님의 종이 되었던 것입니다. 차돌같이 단단한 그분의 신앙을 자식들이 물려받아 차돌 같은 목회자가 되었고, 차돌 같은 목회자를 통하여 차돌 같은 성도들이 배출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분의 전기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를 읽으면서 받은 느낌은 한마디로 차돌같이 독하게 믿는 사람, 굳센 결심으로 하나님께 매달리는 사람은 반드시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후손들이 큰 축복을 받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대충,적당히, 얼렁뚱땅으로 예수 믿으면 자신도 피곤하고, 예수님도 피곤하고, 교회도 피곤해집니다. 물렁물렁한 쇠로 무엇을 만들 수 있단 말입니까?
이를 악물고 독한 결심으로 나옵시다.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라」 룻은 결심으로 하나님께 나오므로 그리스도의 족보에 올라간 축복된 성도였습니다.
하나님의 품에서 안식의 복을 얻었습니다.
Ⅱ.환난 가운데서 나오고 있습니다.
이제 나오미는 이방 며느리 룻과 함께 초라한 모습으로 10년만에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느새 온 성읍에 엘리멜렉의 아내 나오미가 돌아왔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그녀가 10년 전 베들레헴을 떠날 때 만해도 그 이름만큼이나 기쁨과 행복으로 모든 사람에게 자랑스러웠던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떠난지 10년만에 다시 나타난 나오미는 예전의 아름답고 도도한 자태는 찾아볼 수 없고 늙고 남루한 모습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놀랐습니다. "아니 당신이 10년 전에 우리를 떠났던 엘리멜렉의 아내 나오미가 아니요?"
(룻 1:19)… 온 성읍이 그들을 인하여 떠들며 이르기를 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
나오미는 얼마나 부끄러웠겠습니까?
나오미는 베들레헴 고향 사람들의 환영하는 것에 자신이 추하고 부끄러워졌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왔지만 부끄러운 것뿐이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부끄러움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룻 1:20)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1)나오미라 칭하지 말고 (2)마라라 칭하라 이는 전능 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그러나 다행히 나오미는 그 모진 환난 가운데서 부끄럽지만 하나님께 나왔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고난과 풍파로 늘 괴로움을 당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왜 하나님은 나를 이토록 치실까? 나오미처럼 「하나님에 대한 공포 의식」에 싸인 분이 게십니까?
끝이 없는 고통과 아픔의 세월 속에 하나님의 존재조차 의심할 정도로 신앙에 어려움을 겪는 분이 계십니까?
남들은 모두 평탄한 길을 가는데 나는 왜, 이토록 어려운 시련을 주시는가 이해할 수 없어 의심에 빠진 분이 계십니까?
두려움과 의심을 떨쳐 버리고 하나님께 나갑시다. 나오미처럼 끝까지 환난 중에도 선을 베푸시는 하나님께 나옵시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1.환난 가운데 소망을 주시는 분입니다(20).
1.쓴 환난은 인생의 약입니다.
나오미는 베들레헴 사람들에게 자기를 「나오미」라고 부르지 말고 「마라」라고 불러 달라고 했습니다. 이유는 전능 자가 자기를 심히 괴롭게 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녀는 모압 생활 10년만에 남편을 잃고 두 아들을 잃고 가산을 다 잃었습니다. 정말로 감당할 수 없는 괴로움입니다. 「마라」→(괴로움,쓰다) 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출애굽기 15장으로 돌아가 「마라」의 샘을 생각해 봅시다.
출 15:23)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1)마라라 하였더라「24」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모세의 인도 하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진입하였습니다. 수르광야에서 3일 길을 걸었지만 마실 물이 없어서 고통 중에 반갑게 만난 샘의 물을 마셨더니 너무 써서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샘물을 「마라」라고 칭하며 모세를 원망하였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은 한 나무 가지를 물 속에 넣게 하였고 그 나무를 넣자 물이 달아져서 모든 백성들이 갈증을 해결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쓴 물로 인도하시고 나무가지고 물을 달게 한 사건을 통하여 중요한 메시지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하셨습니다.
출 15:25-26)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 쌔「26」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쓴 물을 단물로 치료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고 의를 행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쓴 고난이 닥칠 때 해결 방법은 하나님과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자기 마음대로 살아도 꿀 송이 먹는 것 같이 살게 되면 하나님을 영영히 잊게 됩니다. 인생의 고초가 심할 때야말로 하나님의 부르시는 손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말씀으로 돌아가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을 가까이하십시오. 쓴 물이 달아질 것입니다. 아이가 병이 들면 엄마는 약을 싫어해도 강제로 먹이 우는 것은 병을 물리치고 건강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나오미의 모압생활이 쓰디 쓴 괴로움의 고초가 있었기에 전능자 하나님을 찾아 나오게 된 것입니다.
사 55:6-7)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7」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 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2.치신 것은 다시 싸매 주시기 위함입니다.
나오미는 전능 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이 지경이 되도록 치셨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성도들을 정말 치실 까요?
그러면 물어 봅시다. 여러분은 자녀를 매로 쳐본 일이 있습니까? 왜 칩니까? 죽으라고 미워서 칩니까? 잘되라고 치는 것이지요.
잠 13:24)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히브리서 12:5-6절을 보시면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 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6」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하나남의 징계에 대한 잘못 된 두 가지 태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매를 우습게 여기는 태도입니다.
*하나님의 매를 노엽게 여기는 태도입니다.
하나님의 매가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참 아들이라는 증거입니다.
히 12:8)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 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돌아온 나오미는 이제 하나님의 다시 싸매 주심으로 위로를 받게 됩니다.
저의 종아리를 치고 제가 잘 때에 종아리에 약을 발라 주며 우셨던 할머니의 추억이 새롭습니다. 그 종아리의 회초리가 없었던들 오늘의 제가 있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돌아오십시오. 몸만 오지 마시고 마음으로 돌아오십시오. 하나님은 다시 싸매 주십니다.
2.비웠으나 채워 주십니다(21).
1.비어 돌아오게 하셨으나 풍성히 채워 주실 준비를 하셨습니다.
그들이 빈털터리로 베들레헴에 이르렀을 때는 보리 추수가 시작할 때, 풍성한 수확의 때였습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은 그들의 빈 그릇을 다시 채워 주시기로 작정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풍성함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빈 그릇 되는 것이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에게 풍성히 채워 주시기 원하십니다.
창 27:28)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풍성히 채움을 받으려면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다. 깨끗한 그릇이 되어야 하겠고 바로 놓은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오미의 마음의 그릇이 깨끗하고 바로 놓이기까지 비게 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주머니가 비어 갑니까? 가계부에 적자가 납니까?
마음의 그릇을 준비합시다. 깨끗하게 바르게 준비할 때에 비로소 채워 주십니다.
2.하늘의 축복을 채워 주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무엇보다 나오미와 룻에게는 먹는 육신의 양식보다 더 고귀하고 기쁜 것이 있습니다.
환난 가운데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는 기쁨을 채워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죄를 용서받는 기쁨을 채워 주셨습니다.
죽었던 엘리멜렉의 가문을 다시 일으키시는 기쁨을 채워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이방 여인 룻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인 복음의 구원자이신 구주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품에 모시게 되었습니다.
룻 4:17)그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주되 나오미가 아들을 낳았다 하여 그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비인 이새의 아비였더라
마 1:1)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2」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3」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4」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5」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결언:
당신 이스라엘의 시대 풍조는 「사람들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전쟁과 기근으로 인한 환난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났던 나오미의 가정이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을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방 여인 룻을 통하여 펼쳐지는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나오미의 가정은 그리스도의 평강을 찾게 됩니다.
지금 우리는 강력한 문민정부 시대를 자랑하고 있지만 극도로 혼탁하고 불안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곳곳에 대형 사건이요, 흉악범죄 사건이요, 어지러운 일들 투성입니다. 이것이 김영삼 대통령 한 사람의 책임입니까?
우리 그리스도 인의 책임입니다. 어쩌면 우리 교회가 이스라엘의 사사 시대와 같이 성도들의 삶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기에 발생된 결과가 아닙니까? 영적인 무정부 시대를 청산합시다. 그래야 갖가지 환난을 잠재우고 평강을 누리게 됩니다.
룻처럼 새로운 결심으로 하나님께 나오며
나오미처럼 환난 가운데서도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께 나옵시다.
겸손하고 진정한 태도로 몸과 마음과 영혼으로 하나님께 달려나옵시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와 교회와 이 사회에 하나님의 평강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쉼과 휴식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