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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序卦傳 下編(서괘전 하편).-----10
☰ ☱ ☲ ☳ ☴ ☵ ☶ ☷
◎ 節而信之 故 受之以中孚
절이신지 고 수지이중부
有其信者 必行之 故 受之以小過
유기신자 필행지 고 수지이소과
有過物者必濟 故 受之以旣濟
유과물자필제 고 수지이기제
物不可窮也 故 受之以未濟 終焉
물불가궁야 고 수지이미제 종언
[풀이]
節度(절도)가 있으면 믿음이 가는
'中孚卦(중부괘)'를 둔다.
中孚(중부)의 믿음이 있게 되면
반드시 행동으로 옮기는지라
'小過卦(소과괘)'로 받았다.
'사물'이 小過(소과)를 알고
지나치게 공송하고, 지나치게 검약하고,
지나치게 슬퍼할 줄 알면
반드시 일을 해결하여 건너가
'旣濟卦(기제괘)가 된다.
旣濟(기제)가 되면 이제 완전무결하여
궁색할 수 없으니 '未濟卦(미제괘)'로 받아
마침의 종지부를 찍는다.
未濟(미제)가 되면 旣濟(기제)로 가고
다시 旣濟(기제)는 未濟(미제)로 간다.
이것이 易(역)의 묘리이다.
[해설]
「서괘전」을 마무리하면서 믿음을 가진 자가
행동이 과감하여 獨善(독선)에 빠져
지나칠 수 있음을 경계한다.
지나친 행동이 나오는 卦(괘)는
'大過卦(대과괘)'와 '小過卦(소과괘)'이다.
아무리 자신이 생각이 옳다 하더라도
시절 인연에 맞지 못하면 과한 처사가 나오기 마련이다.
나아가 능력이 남보다 지나치면
반드시 천하를 구제하려고 일어서려고 할 것이다.
고로 크게 지나친 자가 '中孚(중부)'를 뛰어넘으면
세상을 구제를 놓치게 되고,
조금 지나치면 간혹 구제하기도 할 것이다.
여하튼 '남보다 지나친[過物,과물]' 생각이 있으니
세상을 구제하려 드는 것이 아닐까.
'節卦(절괘)' 이후 ☵(坎,감)과 ☲(離,리)를 뺀
☱(澤,택), ☴(巽,손), ☶(艮,간), ☳(震,진) 4자 끼리 서로 만나
'風澤中孚卦(풍택중부괘)'도 되고
'雷山小過卦(뇌산소과괘)'도 된다.
또 '澤山咸卦(택산함괘)'와
'雷風恒卦(뇌풍항괘)'가 한번 변하면
'山澤損卦(산택손괘)'와 '風雷益卦(풍뢰익괘)'가 되고,
두번 변하면 '風山漸卦(풍산점괘)와
'雷澤歸妹卦(뇌택귀매괘)'가 되고,
세 번 변하면 '風澤中孚卦(풍택중부괘)'와
' 雷山小過卦(뇌산소과괘)가 되니,
陰(음)과 陽(양)이 각각 그 류를 따르는 것을 볼 수 있다.
'中孚卦(중부괘)'를 전변하면
단지 작은 일만 할 수 있는 '小過卦(소과괘)'가 된다.
'中孚卦(중부괘)'와 '小過卦(소과괘)'를 보더라도,
上經(상경)의 '臨觀卦(임관괘)'가 大震(대진),
大艮(대간)으로서 '頤卦(이괘)와 '小過卦(소과괘)'가 되고,
下經(하경)의 '遯大壯卦(둔대장괘)가 大巽(대손),
大兌(대태)로서 '大過卦(대과괘)'와 '中孚卦(중부괘)'가 된다.
처음과 끝이 서로 부합하는 이치를 말한다면
☰(乾,건), ☷(坤,곤), ☵(坎,감), ☲(離,리)에
그 이치가 둘이 있을 수 없다.
즉 ☲(離,리)는 ☰(乾,건)의 자리에 있는데
그 가운데 爻(효)가 ☷(坤,곤)이고,
☵(坎,감)과 ☷(坤,곤)이 자리에 있는데
그 가운데 爻(효)가 ☰(乾,건)다.
또 ☵(坎,감)과 ☲(離,리)가 '旣濟未濟(기제미제)'로써
상하경의 끝에 놓이니 순환하는 이치를 여기에서 볼 수 있다.
이 어찌 고인의 易(역)을 지음에 그 기교를 말로 다할 수 있겠는가.
호괘 및 後劃卦(후획괘)가 뒤따라 쫓는 逐卦(축괘) 뒤에
구연되었다는 사실을.
『주역』은 비록 '旣濟未濟卦(기제미제괘)'에서 끝이 나지만
☶(艮,간)이 있는 '中孚卦(중부괘)'와 '小過卦(소과괘)를
'旣濟未濟卦(기제미제괘)' 앞에 두었으니
☶(艮,간)이 만물을 마치고 시작하는 이치
[艮之終始萬物之理,간지종시만물지리]를 여기에서 볼 수 있다.
'中孚卦(중부괘)'를 교역하면 '大過卦(대과괘)'이다.
'大過卦(대과괘)'는 後劃卦(후획괘) 즉 大坎(대감)이 되니
'中孚卦(중부괘)'의 大离(대리)와 합하여
'旣濟未濟卦(기제미제괘)' 가 된다.
하늘과 땅이 있으면 해와 달이 있듯,
☲(離,리)와 ☵(坎,감)은 해와 달의 상이 되므로
上經(상경)을 '重數坎卦(중수감괘)'에 이어
'重火離卦(중화리괘)'로 마쳤고,
下經(하경)은 '旣濟未濟卦(기제미제괘)'로 마쳤다.
'革卦(혁괘), '鼎卦(정괘)' 다음에 "重雷震卦(중뢰진괘)',
'重山艮卦(중산간괘)'로 받았으니 ☳(震,진)과 ☶(艮,간)이
先天圖(선천도)에서 ☷(坤,곤)의 양 옆에 있고,
또 ☷(坤,곤)은 後天(후천)의 ☱(兌,태)가 되어,
그다음에 '風山漸卦(풍산점괘)',
'雷澤歸妹卦(뇌택귀매괘)'로 받았는데,
여기에는 '旣濟未濟(기제미제)' 의 호괘가 되니
'旣濟未濟(기제미제)'의 뜻이 크다.
'未濟卦(미제괘)'는 '旣濟卦(기제괘)'의 전변이면서,
그 호괘도 '旣濟卦(기제괘)'이다.
다시 '旣濟卦(기제괘)'의 호괘도 '未濟卦(미제괘)'가 되고,
'未濟卦(미제괘)'의 호괘도 '旣濟卦(기제괘)'가 된다.
이는 이미 건너왔는데도 오히려 아직 건너지 못한
근심이 있는 것이 아니겠으며,
아직 건너지 못하였지만 건널 수 있는 도리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乾坤卦(건곤괘)'가 後天(후천)의 '離坎卦(리감괘)'가 되니,
'兌比卦(태비괘)'는 곧 '旣濟未濟(기제미제)'가 된다.
☳(震,진)과 ☱(兌,태)가 先天(선천)의 ☲(離,리)와 ☵(坎,감)이 되니
'隨卦(수괘)'와 '歸妹卦(귀매괘)' 역시 '旣濟未濟卦(기제미제괘)'이다.
이 어찌 천지 사이에 개개 사물의 이치가
모두 이미 '旣濟未濟卦(기제미제괘)' 사이에 놓인 것이 아니겠는가?
☲(離,리)는 해가 되어 바로 正午(정오)에 비추고,
☵(坎,감)은 달이 되어 바로 한 밤중 子正(자정)에서 비추니
이것이 ☲(離,리)가 天九(천9) ☰(乾,건)이 되는 것이고,
☵(坎,감)이 地十(지10) ☷(坤,곤)이 되니
'乾坤卦(건곤괘)'가 上經(상경)의 첫머리가 되는 이치이기도 하다.
陰陽(음양)의 변화는 처음과 끝을 말할 수 있는 것이 없지만,
天地(천지)의 數理(수리)와 生(생)하고 剋(극)하는
이치가 여기에 겸비되어 있음도 알 수 있다.
또 더구나 '未濟卦(미제괘)'의 안에는
☵(坎,감)으로 역시 上經(상경) '屯卦(준괘)'의 外卦(외괘)이고,
'小過卦(소과괘)'의 外卦(외괘) ☳(震,진)도
'屯卦(준괘)'의 內卦(내괘)가 된다.
'小過卦(소과괘)'의 內卦(내괘) 되는 ☶(艮,간)과
'未濟卦(미제괘)의 內卦(내괘) 되는 ☵(坎,감)이
합하여 온전한 '蒙卦(몽괘)가 된다.
또 이미 ☵(坎,감), ☳(震,진), ☶(艮,간)이 있으면
자연히 陰陽(음양)이 바뀌는 이치가 있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므로 '旣濟未濟卦(기제미제)'의 ☲(離,리)가
'中孚卦(중부괘)'의 ☴(巽,손)과 ☱(兌,태)가 더불어
또 下經(하경)의 '革卦(혁괘)'와 '鼎卦(정괘)'가 되는 것이다.
天地(천지)의 이치는 經緯(경위)가 얽히고 끝났다가 다시 시작하니,
河圖(하도)에서 생성하는 순서와 하나하나 꼭 들어맞는다.
☵(坎,감)과 ☲(離,리)가 사귀는 것을 '旣濟卦(기제괘)'라고 하니,
이것을 낳고 낳은 '生生(생생)'의 끝없는 이치가 나오는 바인데
[生生不窮之所從出,생생불궁지소종출],
聖人(성인)은 오히려 다함이 있다고 여겼다
[聖人猶以爲有窮,성인유이위유궁],
또 ☵(坎,감)과 ☲(離,리)가 밀어내어 '旣濟卦(기제괘)'가 되니,
이것은 '咸卦(함괘)'의 感應(감응)이후에
'恒卦(항괘)'의 恒久(항구)함으로 이어졌다.
인정은 오래 사귀면 폐단이 없을 수 없기에
반드시 사귀고 헤어짐에 바르게 마쳐야 한다.
사람의 심장과 신장도 그 기운이 일찍이 사귀지 않음이 없지만,
심장은 반드시 위에 있고 신장은 반드시 아래에 있어 바꿀 수 없다.
이것을 보면 '旣濟卦(기제괘)'와 '未濟卦(미제괘)'의 상을 살필 수 있다.
이렇듯 '中孚卦(중부괘)'와 '小過卦(소과괘)' 이후에 ☲(離,리)와
☵(坎,감)이 거듭하여 '旣濟卦(기제괘)'와 '未濟卦(미제괘)'가 되니,
下經(하경)으로 매듭하는 것이다.
'中孚卦(중부괘)'와 '小過卦(소과괘)'도 ☲(離,리)와 ☵(坎,감)에서 온 것이다.
易(역)이 未濟(미제)에서 '사물은 궁할 수 없다[物不可窮,물불가궁]'한 것은
'未濟卦(미제괘)'가 끝이 나면 다시 '旣濟卦(기제괘)'로 가기 때문이다.
易(역)을 一生一死(일생일사)로 종지부를 찍는 것이 아니고
끊임없이 生生不窮(생생불궁) 生生不息(생생불식)함을 알 수 있다.
이에 서유신은 '旣濟(기제)는 未濟(미제)가 아니고
未濟(미제) 역시 旣濟(기제)가 아니다'라고 한다.
"이러한 이치는 作易者(작역자)가 의도적으로 안배한 것이 아니다.
旣濟(기제)는 처음부터 旣濟(기제)가 아니기에
반드시 未濟(미제)가 잉태되어 있었다.
천하에 어찌 완전히 흠 없는 물건이 있겠는가
[天下豈有十分無欠之物乎,천하기유십분무흠지물호]?
이는 조화롭고 자연스러운 이치이니
만물이 다할 수 있는 날이 없다[物無可窮之日,물무가궁지일].
소리와 색, 재산과 부귀, 권세와 이익, 사치와 열락을
끝가지 다하려는 자[欲其窮極者,욕기궁극자]는 이러한 이치를 모른다."
다음은 「서괘전」을 마무리 하며 "乾卦(건괘)'로부터 '未濟卦(미제괘)'에
이르기까지 천지의 큰 조화와 성인의 큰 사업을 볼 수 있었다"는
薌隱(향은) 이장찬의 설명을 들어보자.
"이렇듯 後天(후천)의 이치가 先天(선천)으로 다시 돌아가는 사실을 안다면,
그 넓고 두터우며, 높고 밝으며, 길고 끝이 없는 이치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아, '乾卦(건괘)'로 부터 '未濟卦(미제괘)'에 이르기까지 전말이 매우 길고
변화가 무쌍하니 천지의 큰 조화와 성인의 큰 사업이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구나.
만약 '復卦(복괘)'에서 '乾卦(건괘)'에 이르고 '姤卦(구괘)'에서 '坤卦(곤괘)'에
이르는 번역이 분명하여 쉽게 추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聖人(성인)의 큰 안목과 큰 역량이 있지 않다면
누가 그 단서를 엿볼 수 있겠는가?
이것이 이른바 '사물은 궁할 수 없다[物不可窮,물불가궁]'는 것인데
이전의 학자들이 이에 대해 분석해서 설명하지 않는다.
이른바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은 신중하여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미 내가 망령되게 해석을 더한 뒤에,
陳希夷(진희이)가 卦圖(괘도)를 변석한 것이 우리나라에 들어왔는데
대체로 卦(괘)의 순서를 위주로 했다고 들었다.
내가 해설한 것과 서로 부합하는지 모르겠다.
이런 이치는 나 李章贊(이장찬)이 밝힌 것으로 卦(괘)마다 미루어 보니
암암리에 부합하지 않음이 없으나 다만 증명하지를 못하였는데
術家(술가)의 말을 들으면 과연 그렇다고 하니,
비로소 역술가의 말도 없앨 수 없는 것이 있음을 알겠다.
근래 듣자하니 명나라 來知德(래지덕)이 『來主周易,래주주역』을 지었고,
李光地(이광지)가 『周易折中,주역절중』 을 지었으며,
阮堂(완당) 金正喜(김정희)에게 印章(인장)을 건네준
청나라 사람 翁方綱(옹방강, 1733~1818)이 『翁氏易,옹씨역』을 지었고,
우리나라 旅軒(여헌) 張顯光(장현광)이 『易學圖說,역학도설』을 지어
지금 세상에 돌아다니고 있다고 하는데,
이 책들이 모두 배열을 위주로 하였는지 모르겠다.
내가 궁벽한 시골에 사는 탓으로 보고 질정하지 못했으니 한탄스럽다.
끝으로 한 세상을 살아가는 나그네는 친한 사람이 적은데
공손하지 않으면 용납될 곳이 있겠는가?
진정으로 공송할 수 있다면 가는 곳마다 들어가지 못할 곳이 있겠는가.
들어가서 거절당하지 않으면 반드시 기쁜 바가 있으며,
기뻐하되 기운이 함께하지 않는다면 다시 흩어지게 될 것이다.
세상 인연이 끝내 흩어질 수만은 없기 때문에
반드시 막아 세우는 절제가 있어야 한다.
절제가 나의 행동 밖까지 조절할 수 있으면
반드시 마음속도 믿음이 있으니 남들이 믿고 따를 것이다.
이렇게 남들이 믿고 따른 다는 것을 믿고 다시 살피고 나간다면
반드시 세상을 구제할 수 있다.
사물은 다하는 이치가 없기 때문에[物无窮之理,물무궁지리]
易(역)의 마지막을 '未濟(미제)'로 마쳤다."
한국과 중국을 막론하고 「서괘전」의 卦(괘)배열 순서에 대해
李章贊(이장찬)만큼 '象數學(상수학)'적으로 일관되게
원리적 설명을 제시한 경우는 찾기 어렵다.
그러한 점에서 李章贊(이장찬)의 「서괘전」 상,하편
卦(괘) 배열 원리에 대한 연구는 우리 易史(역사)에
적지 않은 의의를 충분히 지닌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