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7.29~7.31 용우회 2011년 하계휴가 출발
대전 출발 중부고속도로 "오창"휴게소에서 잠시 쉬면서
휴가 출발과 함께 홀가분하고 여행에 대한 설레임과 즐거움으로 활짝 웃으면서...

중원 고구려비 안내문

국내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고구려 석비로, 장수왕이 남한강 유역의 여러 성을 공략하여 개척한 후 세운 기념비로 추정된다. 1979년 입석마을 입구에서 발견되었는데, 오랜 세월이 흐른 탓에 발경 당시 비면이 심하게 마모되어 있었다.

석비는 돌기둥 모양의 자연석을 이용하여 4면에 모두 글을 새겼는데, 그 형태가 만주에 있는 광개토대왕비와 비슷하다. 비문은 심하게 닳아 앞면과 왼쪽 측면 일부만 읽을 수 있는 상태로,
내용 중 처음에 ‘고려대왕(高麗大王)’이라는 글자가 보이는데 여기에서 고려는 고구려를 뜻한다.
‘전부대사자(前部大使者)’·‘제위(諸位)’·‘사자(使者)’ 등 고구려 관직 이름과 광개토대왕 비문에서와 같이 ‘고모루성(古牟婁城)’등의 글자가 보이고, ‘모인삼백(募人三百)’·‘신라토내(新羅土內)’ 고구려가 신라를 불렀던 말들이 쓰여 있어 고구려비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고구려 영토의 경계를 표시하는 비로, 백제의 수도인 한성을 함락하고 한반도의 중부지역까지 장악하여 그 영토가 충주지역에까지 확장되었음을 말해준다. 또한 역사적으로 고구려와 신라, 백제 3국의 관계를 밝혀준다.
원본 비석은 지금 신축 공사 건물내에 있고 보고있는 것은 복제품임

중원고구려비를 현재 신축중인 건물내에 보존하고 관리하기 위해 건물을 짓고 있었다.
20년전 쯤 방문 했을 때는 길거리에 나무 울타리 내에 둘러 싸여 있었는데..
-옛날 우리의 문화가 웬 현대식 건물에 갇히게 되는지? 보존하는 건물의 양식이 한옥풍의 기와지붕이라던지
아님 자연과 어울어지는 식의 어떤 양식의 건물이였으면 좋겠는데.. 비석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서 안탑
깝기만하다.
이 자리에서 그 옛날 고구려 관원이 신라 관원을 무릅 꿇려서 놓고 비석 건립 행사를 했을 턴데..
그런 모습을 전혀 상상치 못할 이런 현대식 유리 건물을 세우다니.... 부수고 다시라도 져야하는게 아닐까?
문화제 보호에 있어 그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조성물을 만들지 말았으면! 제발 심사숙고 했으면..-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忠州 塔坪里 七層石塔)
국보 6호

남한강의 아름다운 경관과 잘 어우러져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으로, 당시에 세워진 석탑 중 가장 규모가 크다. 통일
신라시대에 우리나라의 중앙부 세워져 중앙탑(中央塔)이라고도 부르는 이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7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탑의 높이에 비하여 너비가 좁아서 가늘게 치솟은 느낌이 강하여 웅대함이나 안정감 보다는
상승감이 두드러지는 탑이랍니다. 1917년 복원시 고서와 고려시대의 구리거울이 나왔답니다.

남한강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
중앙탑 공원(공원내 중앙탑이 있다)은 바로 옆 남한강이 도도하게 흐르고 있어 경관이 매우 아름다웠다
여기까지 보고 금강산도 식후경! - 공원 앞에 있는- 메밀 막국수 집에 들려 점심을 맛있게 먹었답니다
배가 고파서 맛도 더 있었지만 우리 모두 나누는 가벼운 대화가 더 즐거웠답니다.

1400여년 신라 진흥왕때(551) 가야국의 우륵이라는 악사가 그 나라가 망할것을 알고 신라에 귀화 하였다
그는 이곳을 삶터로 하여 풍경을 감상하며 산위의 바위에 앉아 가야금을 타니, 그 미묘한 소리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부락을 이루었다고한다. 이를 연유하여 이곳을 탄금대라 부르게 되었단다.

주차장에서 탄금대로 가는 길

또한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도순변사 신립(申砬)이 적은 병력으로 출전하여 이곳에 배수진을 치고 왜군과 대결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패전하고, 부장(副將) 김여물(金如?)과 함께 전사한 전적지이기도 하다.

탄금대
남한강가 언덕에 위치한 탄금대는 남한강과 달천이 만나는 곳으로 땅이 비옥하고 교통의 요지로
삼국시대부터 이곳을 차지하기 위하여 패권을 다투웠다고..


우륵은 그를 보호하던 계고(階古)에게는 가야금을, 법지(法知)에게는 노래를, 만덕(萬德)에게는 춤을 가르치며 여가있을 때 바위에 앉아 가야금을 타며 살았다. 탄금대라는 명칭도 우륵이 가야금을 타던 곳이라는 데에서 유래한다고..

탄금대 높은곳에 있는 정자로 마침 그곳에 있을 때 비가 내려서 오도가지도 못하고 50여분간
정자안에서 비를 피하며 이야기 꽃을 피웠습니다. 대추님이 비를 뚫고 주차장 까지 달려가
우산과 차를 가까이 까지 가져온 덕분에 우리는 다음 여정으로 출발 합니다.

남한강과 어우러진 탄금대 내 바위터


고구려비-중앙탑-탄금대를 거쳐
충청북도 수안보면 미륵리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에 도착

일제강점기인 1935년 5월 24일에 오층석탑과 석불입상이 각각 국보 제166호와 제167호로 지정되었고
1963년 1월 21일에 각각 보물 제95호와 제96호로 지정됨
당시 석실 사원이 위치하였던 상모면(현 수안보면)은 행정 구역상 괴산군에 속하여 문화재 지정 명칭은
‘괴산 미륵리 오층석탑’과 ‘괴산 미륵리 석불입상’이다.

미륵은 중생을 구원 할 부처님을 말한다고..

돌거북


선조들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이 보이는 듯한
어께 부분에 작은 거북 2마리.
기어 올라가는 것(사진에 동그랗게 보이는 것)이 보인다.

고지대에 위치한 미륵리사지는 석불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석굴사원터이다
미륵불상은 원래 사진에 보이는 돌담 위에 건물을 지어 건물 실내에 있었다고..
지금은 건물은 없어지고 보이는 것 처럼 밖에 노출되어있다.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미륵불의 몸체에는 이끼가 끼어있는데- 미륵불의 얼굴은 이끼 하나 없이 깨끗하게
하얀돌로 남아 있어 신비함을 더 해준다.

석등
‘미륵당초’라고 새겨진 기와가 나와 연대를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 전기로 추정한다.

석불입상(보물 제96호)·5층석탑(보물 제95호)·석등·당간지주 등 중요한 문화재들이 남아있다.

중생을 구원 할 미륵불과 함께 우리 용우회원의 우정이 더욱 돋보이는 장소에서 찰칵!

드디어 SM5 8793 - 11년 지기 애마가 - 나를 수안보 호텔 숙소로
데려왔네요.
지하에 대중탕은 무료로 수질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다고 하는데.. 내 경험으로도
강원도 척산온천에 비교 할 만하고 백암온천 등의 온천수 처럼 깔끔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나는 좋은 수질이였답니다. 온천이 좋아서 휴식하기에 더 좋았습니다.
첫댓글 서박사애마 덕분에 민대사도 온천물에 몸을 담그고 탄금대구경 다시하고.. 고구려원비 복원에 서박사의견에 동감...
정말 문화제 관리한다는 사람들은 꼭 전문 의원이라든가 등등에 자문 좀 해 보고 일했으면 좋겠다니까 글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