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조화로운 대립
조화는 대립의 부재가 아니라, 대립적인 것의 상호관계다.
익숙한 패턴 없이 뜻밖의 것만 있으면 '자의적'이게 된다. 반대로 뜻밖의 것만 있으면 '지루해'진다. 대립의 조화가 깨질 때, 이 두 가지 나락이 열린다(68).
악기의 음색은 친숙한 것이지만 그는 악기에서 자신의 소리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좋은 바이올린은 음악가에게 결코 복종하지 않는다. 좋은 악기는 음악가가 음을 발견하도록 요구한다.
위기 없는 삶, 공명 없는 악기, 단순한 원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바로 성장이 없다는 것이다.
살아 있는 관계에서는 서로 친숙함을 유지하면서도 간혹 서로에게 신선한 놀라움을 안겨줄 수 있는 상상력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77).
계시의 역설은 예어ㅣ적인 것과 일상적인 것의 긴장에 있다(80).
모든 위기는 우리는 삶을 -하물며 자신의 삶도-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계시도 위기와 비슷한 속성을 지니는데, 계시가 삶의 전환점이 되기 때문이다. 하느님과 자신에 대한 잘못된 생각은 도망가 버린다.
트로파이온(기원전 480년 마라톤 전쟁이 끝난 뒤 그리스인들이 세운 '군인허수아비')피 흘리는 그리스도의 모습은 우리 세계의 트로파이온이 되었다. 인간의 모습으로 상하고, 멸시당하며, 허수아비처럼 미움과 조롱거리가 된 모습으로 말이다(82). - 하지만, 여기에 엄청난 호소력이 있다. 강한 자의 성공이 아니라, 압제 당하는 자의 희망!!!
독선의 추함
초연함을 전혀 모르는 열정은 열정이 아니라 '광신'이다. 열정을 모르는 초연은 초연이 아니라 '냉담'이다.광신적인 사람은 초연을 냉담으로 해석한다. 냉담한 사람은 열정을 광신으로 본다.인색한 사람은 '너그럽게 베푸는 것;을 낭비로 본다. 낭비하는 사람은 '검약'을 인색함으로 본다.율법주의자는 '자유'를 방종으로 본다. 자의적인 사람은 성실을 율법주의로 본다.(95)
미성숙한 사람은 자신의 치우친 태도를 미화하며 독선적인 삶을 살아간다(96).'온 마음'으로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 한쪽으로 치우침을 피하고, '짝을 이루는 상반된 힘들을 존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안의 강함이 겸손해 질 때 약함이 강해진다. 겸손이 없으면 강함은 결점이 되고, 재능은 죄가 된다(100).
말의 힘
좋고 칭찬할 만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말로 표현하다 보면, 우리를 변화시키는 내면의 힘을 경험할 수 있다. 말이 삶을 조종한다.말은 정보를 전달할 뿐 아니라, 그 자체로 창조력을 지닌다.그러므로 말을 조심하라. 스스로에 대해 말할 때는 특히 그렇다!말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고,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제4장 음색 - 전락할 위험이 있는 아름다움
가르치려고 하기보다 스스로 '배우려는' 태도를 간직할 때 정말 훌륭한 교사가 될 수 있다.
은헤와 일
은혜와 일이 서로에게 봉사하지 않으면 둘 모두 나락으로 떨어진다.일은 삶의 내용이고, 은혜는 삶의 힘이다.
무력함과 권능
예수의 권능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는 무력함 없이는 있을 수 없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마음이 권능보다 선행하며 모든 행동의 바탕을 이룬다. 자신의 무력함을 아는 사람들만이 하느님의 권능(은총)을 구한다. 무력함 속에서 하느님을 붙드는 것을 배워야 한다. 무력함은 하느님께 귀를 기울이는 인간의 탄식이다. 무력함을 디딤돌로 만들라.
용인과 형상화
'그래, 이거야! 내가 원했던 것과 다르네. 하지만 좋아....'허용했고 의도했다. 정해진 모형을 무작정 따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고, 자의적으로 제멋대로 하는 것도 아니다.
하느님의 의지는 인간을 용인할 수 있고, 인간의 의지는 은혜를 용인할 수 있다. 즉 하느님은 인간을 일일이 통제하고 형상화하지 않고 내버려 둔다. 인간 역시 시시콜콜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고 은혜에 맡긴다. 하느님과 인간은 서로에 대한 믿음 안에서 한 걸음씩 양보한다.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있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걸 내려놓는다고 자신의 소명까지 내려놓는 것은 목욕물을 버리려다 아기까지 함께 버리는 형국이 될 것이다.믿음의 사람은 자신이 확신하는 바만 고집하지 않는다. 기대하지 않았던 일, 뜻밖의 일을 통해서도 좋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방해를 허락하는 것은 영적으로 깨어 기도하고 듣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들음과 행함
하나가 다른 하나를 낳는다. 들음에 대한 조화로운 대립은 행함이다.
존재와 당위
스스로 사랑받는 자임을 깨달아야 한다.그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믿음이며, 사랑받는 사람은 상대에게 자신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안식을 누리는 인간은 오직 사랑받는 인간뿐이다. 다른 모든 것은 허상이다.자신의 정체성을 알지 못하는 살함은 내적 무게를 지니지 않아 침몰해버린다.
진리와 자비
자비를 잃으면 진리도 잃고, 진리를 잃으면 자비도 잃는다.자비를 잃으면 사랑이 없고, 진리를 잃으면 임의적인 행동이 나온다.진리 없는 자비는 선하지 않고, 자비 없는 진리는 참되지 않다.
완전성과 임시성
완벽하지는 않지만 완성을 향햐 성장한다는 것을 알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