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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치는 자와 좋은 것을 함께 하라 / 갈 6:6-10
오늘 45년간의 목회를 마무리하고 원로목사로 추대받는 최갑성 목사님,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샬롬교회를 이어 받아 목회를 하게 된 한양호 목사님의 담임목사 취임을 축하한다. 한양호 목사님이 설교 부탁을 해서 허락을 하긴 했는데, 저는 솔직히 말해서 설교를 못하거든요. 갈보리교회에서 33년을 시무했는데, 제가 한 설교에 은혜받았다는 교인이 한분도 없었다. 설교할 때 아멘하는 분도 없었다. 엎드려 절받기 식으로 제가 먼저 아멘? 해야 그때서야 마지못해서 아멘! 그런다. 그러니 설교를 못한다고 할 수 밖에요.
최갑성 목사님은 대학생 때 전주성광교회에서 만난 이후로 지금까지, 선후배로 좋은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최목사님은 임상교회 시무할 때, 재판국도 없이 면직 당해서, 10년간 목사 아닌 목사로 전주상업정보고등학교 앞 지하에서 교회개척. 그런데 왜 기장 간판 달았느냐고 간판으로 딴지를 거는 목사가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제가 그러면 합동, 순복음? 아니면 목사 면직 당해서 목사 아니니까 통일교? 어느 간판을 걸어야 하나? 그래도 기장 간판 걸어야 하지 않겠나? 기장 간판 걸은 것이 가장 잘한 일이라고 본다. 꿋꿋이 버티고 이겨내어 이렇게 반듯한 기장 교회 하나가 세워졌다. 최 목사님은 교회와 복지관, 사택을 지을 때, 건축을 위해 총회 연금을 해약하여 헌금으로 드리가까지 하였다. 이제 후임 목회자를 모시게 되어 은퇴식과 취임식을 갖게 되었다.한양호 목사를 제가 섬기던 갈보리교회에서 부목사 한 2년 한 후 후임으로 세우고, 65세에 자원은퇴하려 했는데 거절해서 3년을 목회를 더 했다. 최 목사님이 한양호 목사가 어떤가를 물어보길래 부목사 2년 후 담임목사 청빙하려고 했다 하니, 그 정도면 샬롬교회 후임으로 해야겠다 함,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갈보리가 아니라 샬롬으로 청빙받은 줄로 안다.
본문 6절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에 권유하는 말씀이다.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성도와 목사의 관계를 말하고 있다. 저는 그동안 갈보리교회를 목회하면서 성도들에게 목사에게 이렇게, 이렇게 잘하라 하고 말한 적이 없다. 사실 이건 어느 교회 목사님이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떻게 자기 입으로 만망해서 이런 말을 하겠나? 하지만 오늘 말씀에 의지해서 여러분께 권한다. 목회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바란다. 특히 본문에서는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는 이 말은 그들과 자신의 좋은 물질적인 것을 나누라는 뜻이다. 따라서 원래 성서가 가르치고 있는 것은 ‘교환’이다. 곧 말씀을 가르치는 자는 신령한 것을 가지고 있고, 말씀을 배우는 자는 육의 것을 가지고 있기에, 말씀을 가르치는 자가 신령한 말씀으로 공급하면, 말씀을 듣는 자는 육의 것으로 채워주라는 것이다. 또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는 이 말은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말씀을 듣는 자 사이에 ‘바른 관계를 이루라’는 것이다. 여기서 헬라어 ‘아가도이스’는 좋은 것으로 물질만이 아닌 정신적인 것도 포함한다. 그러기에 ‘함께 하라’는 헬라어 ‘코이노네오’는 코이노니아에서 파생된 말로 ‘교제, 친교하라’는 뜻이다. 내가 만나는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처럼 목회자와 좋은 친교를 나누라는 것이다. 이런 좋은 말씀을 삶의 목표로 두기를 바란다. 어떤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교인은 두종류가 있는데, 목사를 위해 기도하는 교인과, 목사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는 교인이란다. 여러분 모두가 목사를 위해 기도하는 성도가 되기 바란다.
갈보리교회가 진안에 있을 때 한 청년, 군복무 마치고 공무원 시험 합격하여 경기도로 갔다. 거기서 열심히 신앙생활하다보니 장로가 되었다. 오늘 같이 목사 은퇴하고 담임목사가 취임하였다. 당회에서 상의를 한 후 교회에서 후원하여 분기별로 년 4회 원로목사와 담임목사 부부간 1일 또는 2일을 영화관람, 맛집, 볼링, 등산, 여행 등을, 꼭 그렇게 하라는 것 아님. 좋아보여서 오늘 소개한다.
7-8절입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심는 대로 거둔다. 이것은 일반적인 원리이다. 좋은 동기로 시작한 일은 좋은 결과를 맺는다. 그러나 이 말씀이 강조하는 것은 결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동기에 있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된다. 어떤 일이 왜 육신적인 결과를 낳는가? 그 이유는 육신적인 동기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어떤 일에 있어서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 가치 없는 결과를 낳는 원인이 무엇인가? 성서는 그것이 육신적인 잘못된 동기로, 깨끗하지 못한 동기로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종종 어떤 일을 선한 동기로 시작해도, 영적인 동기로 시작해도, 내가 기대했던 결과가 얻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그때 우리는 당황한다. 여기에 우리의 보다 심각한 의미에서의 낙심이 있다. 좋은 동기로 시작했는데, 실컷 사람들에게 욕만 얻어먹고 비판의 대상이 될 때, “내가 이 일을 왜 시작했던가?”라고 후회를 해 본다. 우리의 삶의 현장에 이런 일이 얼마나 자주 찾아오는가?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러한 경우에도 우리가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은 동기가 더욱 소중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동의 결과보다 우리의 동기를 추적하신다. 그렇다면 오늘 여러분의 동기는 무엇인가? 그 일을 왜 시작했나? 어떤 이유로 그 일을 시작했나? 우리의 동기가 순결하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동기를 보시고, 벌써 우리의 동기에 대해 점수를 주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오늘 여러분의 동기는 무엇인가? 여러분은 어떤 동기로 그 일을 하나? 여기에 기독교 윤리의 바탕이 있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이런 유명한 말을 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모든 것을 네 마음대로 하라.” 아주 의미 있는 말이다. 내가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은 결코 잘못될 수가 없다. 만일 내 동기가 선하고 순결하다면, 그 일에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낙심하지 마라.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동기를 보고 계시기 때문이다.
9절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사도 바울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마음의 낙심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수확의 법칙을 인정해야 한다. 씨를 뿌리면 반드시 거둔다. 그러나 열매를 거두기까지는 시간이 요청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낙심은 기다림의 시간을 인내하지 못하기 때문에 시작된다. 우리는 인스턴트 시대에 살고 있다. 거기에 더해서 초고속 인터넷 시대에 살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삶을 기다리지 못하도록 한다. 그래서 기다리지 못하는 데서 오는 당혹감, 이것이 우리의 삶의 현장 속에 더 커다란 낙심을 넣어주고 있는 것이다.
어떤 분이 자신에게 아무래도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기도를 했다. “오, 하나님! 저에게 인내를 주십시오. 지금 당장 인내를 주옵소서.” 인내를 달라고 기도하면서도 인내하지 못하는 것, 여기에 우리들의 비극과 약점이 있다. 물론 어떤 일은 당장에 해치우는 것이 유리할 수가 있다. 그러나 생명의 영역과 인격의 영역에 있어서는, 기다림이 없이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결과를 얻을 수가 없다. 여기에 수확의 법칙이 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어떤 것은 기다려야만 탐스러운 결과가 얻어지는 것이 있다. 그것이 생명의 법칙이고, 인격의 법칙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라는 싯귀가 있다. 그렇다. 국화도 아름다운 한 송이의 꽃을 피우기 위해서 기다림의 세월이 필요하다면, 우리들에게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들은 당장에 결과를 얻으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래서 내 인생의 싸움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하면서 긴 인내의 삶을 추구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억하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결과만 얻으려고 하면 안된다. 그것이 오늘 우리 시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믿으면서도 사기 치고, 예수를 믿으면서도 마음대로 비윤리적인 삶을 사는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그렇다면 묻겠다. 여러분의 동기는 무엇인가? 여러분의 삶의 방법은 무엇인가? 여러분은 수확의 원칙과 원리를 기억하나? 그래서 기다릴 줄을 아나? 다시 한 번 기다릴 줄을 모르고 조급해 하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 보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목사가 목회하다 보면, 목회에서 결코 놓치지 않아야 하는, 미래의 교회를 위하여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4가지 나침판이 있다.
첫째, 극단을 경계하여야 교회와 신앙이 살아난다. 건강한 기독교 이미지가 많은데 전광훈, 손현보, 심하보식 기독교 이미지가 한국교회를 대표할 수 없다. 기독교는 법 위에 군림하지 않는다. 상식을 무시하지 않는다. 혐오와 배제를 조장하지 않는다. 폭력이나 선동의 방식을 경계한다. 극우든 극좌든 극단적인 경향이 강화되어가는 것은 위험 신호이다. 극우든 극좌든 성서의 진리에 따라서 경계선을 두어야 한다. 신앙 위에 이념이 있으면 안된다. 제사장, 선지자적 관점을 견지하면서 성서라는 나침판을 따라갈 때이다.
둘째, 청년과 다음 세대 살리기의 마지막 신호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 기회의 파도는 계속 오지 않는다. 지금은 지원, 자원, 후원에 집중할 때이다. 이 시기를 놓치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청년과 다음 세대의 신앙을 자립, 자치, 자생으로 세워 보라. 어떤 경우에도 청년과 다음 세대 복음화는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되는 최우선 순위라고 본다. 이걸 놓치면 교회는 사라지게 된다.
셋째, 불신자의 눈으로, 상식의 관점으로 교회를 객관적으로 보라. 예전에는 교회가 사회를 염려하고 걱정했는데 지금은 정반대가 되어 사회가 오히려 교회를 염려하고 걱정하고 있다. 상식과 불신자의 눈으로 보아야 제대로 보인다. 불신자의 기독교 호감도 9%, 비호감도 91%의 시대를 마감하려면, 시대의 눈으로 해석하는 통찰력과, 세대의 눈으로 보는 성찰을 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 시대와 세대를 아우르는 영적 감각과 선견자적 안목이 필요하다. 교회가 시대를 해석해 내는 능력이 있는가? 세대를 맞춤식으로 접근하는 성육신적 사고가 가능한가? 상식의 눈으로, 또한 불신자의 눈으로 냉정하고 냉철하게 내부를 볼 수 있어야 가능해진다.
넷째, 목회적 관점에 선교적 관점을 더하여야 미래를 열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아시아 최초 다인종, 다문화 국가로 271만명,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5.2%가 이주민이다.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 국내에서도 인종과 민족을 넘어서는 타문화권 선교가 필요하다. 이제 한국적 상황에서 이주민 복음화는 세계 열방에서 우리에게 선교를 국내에서도 하라고 우리 곁에 모아 주셨다. 타문화권 선교는 소명이고 사명에 반응하는 일이다. 다음세대 복음화로 믿음, 최고의 유산을 자녀세대에 물려 주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이같은 4가지가 너무 중요하다. 청년과 다음세대 복음화에 교회가 집중력을 모아야 한다. 이를 놓치면 한국교회 미래는 암울하다. 4가지에 초점을 맞추고 미래를 열어 갔으면 좋겠다. 안타깝게도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시대와 세대를 향한 문해력이 떨어져 있다. 유튜브의 포로가 되었고, 성서를 읽고 삶에서 실천하는 영성이 약화되었고, 독서를 통해 시대를 성창하며 통찰력을 키우는 힘이 부족하다. 신천지와 이단과 사이비가 난동을 부려도 침묵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전광훈식 막가파 같은 기독교가 교회를 대표하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도 침묵하는 것은 옳지 않다. 진리와 진실에 대해서는 행동하는 믿음이 필요하다. 한국 교회가 살려면 다시 건강한 성서적 기독교로 돌아가야 한다. 힘들어도 다시 상식과 불신자의 눈으로 교회를 바라보고, 개혁과 갱신의 건강한 행보를 이어 갈 때 희망이 보일 것이다.
이 시간 다시 한번 집고 넘어가야 할 말씀은 6절 말씀이다. 우리 다같이 읽어보자.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이 시간 제가 말씀에 의지해서 여러분께 권한다. 목회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바란다.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기 바란다. 왜냐하면 첫째는 하나님의 명령이고, 둘째는 그렇게 하면 여러분께 복이 되기 때문이다. 확실히 한국교회 성도님들은 목사님들께 지나치게 잘하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목사님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지금의 한국교회를 어렵게 했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더라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바란다. 좋은 것 있으면 같이 나누기 바란다. 그리고 아울러 여러분의 마음도 좀 나눠주기 바란다. 우리의 영혼이 잘 되고, 우리 평생의 모든 일이 형통하고 강건하기 위해,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열심히 심고 거두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 기 도 >
하나님 아버지, 오늘 샬롬교회 행사를 주관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처럼 모든 좋은 것을 가르치는 자와 함께 하는 복된 교회 되게 하옵소서. 그리스도인의 자부심, 그리스도인의 긍지를 가지고 오늘도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때가 이르면 거둔다는 말씀을 믿고 열심을 다해 기회 있는 대로 선을 행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6, 2. 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