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 영화 개요 및 제작/출연 정보
제목: 암살자(들) (The Assassin(s))
개봉일: 2026년 9월 23일
장르: 범죄, 스릴러, 시대극, 미스터리
러닝타임: 131분
제작 / 배급: 하이브미디어코프
[주요 제작진]
감독: 허진호
각본: 권기준, 이지민
촬영: 이모개 / 음악: 조영욱
[주요 출연진]
유해진: 박철구 역 (사건의 의구심을 품고 진실을 쫓는 형사)
박해일: 김재환 역 (외압에 굴하지 않고 사건의 배후를 추적하는 동성일보 기자)
이민호: 한영일 역 (재환과 함께 진실을 좇는 동성일보 사회부 기자)
심은경: 이강자 역 (재일교포 출신의 인물)
특별출연: 박정민(문태광 역), 정우성(한 회장 역), 박해준 등
줄거리
오늘 함께 이야기해 볼 작품은 2026년 9월 23일 개봉한 허진호 감독의 영화《암살자(들)》입니다.
유해진, 박해일, 이민호가 주연을 맡은 미스터리 추적극입니다.
영화는 1974년 8월 15일,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렸던 영부인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을 모티프로 합니다.
1974년 8월 15일. 국립극장 광복절 경축식장에서 갑자기 총성이 울립니다.
저는 그때 영상을 본 기억은 없지만 라디오를 통해 이 사건을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한 경축식 도중 총성이 울렸고 육영수 여사가 피격돼 결국 세상을 떠났습니다.
현장에서 체포된 사람은 재일교포 문세광. 이후 수사가 진행됐고 문세광은 범인으로 지목되어 재판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역사책과 기록을 통해 알고 있는 사건의 큰 줄기입니다.
그런데 영화 《암살자(들)》은 바로 여기에서 질문을 던집니다. 정말 우리가 알고 있는 사건의 전말이 전부였을까?
당시 현장에서 들렸던 총성과 남겨진 탄환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이야기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제목을 보면
더 이상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암살자들》이 아닙니다.《암살자(들)》입니다. 왜 ‘들’을 괄호 안에 넣었을까요?
암살자는 정말 한 명이었을까. 아니면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 외에 또 다른 누군가가 있었던 것일까. 혹은 이 ‘들’이라는 말이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영화는 처음부터 그 질문을 던져놓고 우리에게 답을 바로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을 따라가기 위해 세 사람의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유해진이 연기한 중부서 경감 박철구. 박해일이 연기한 동성일보 사회부장 김재환. 그리고 이민호가 연기한 사회부 신입 기자
한영일입니다. 세 사람은 같은 사건을 바라보고 있지만 서 있는 자리가 다릅니다. 철구는 경찰의 자리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재환은 기자의 자리에서 진실을 기록하려 하고, 영일은 젊은 기자의 시선으로 사건의 바깥까지 파고듭니다.
그런데 영화의 시작부터 아주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1974년 8월 15일.
국립극장 광복절 경축식장. 행사장 주변에는 경찰과 경호 인력이 배치되어 있고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출입 비표가 필요합니다.
이곳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이 유해진이 연기한 박철구입니다. 철구는 자신의 임무에 충실한 형사입니다. 그런데 한 남자가 행사장 안으로 들어오려고 합니다. 문태광입니다. 철구가 보니 문태광의 가슴에 출입 비표가 없습니다. 철구는 당연히 그를 막아섭니다. “비표가 없는데
어디로 들어가느냐.” 철구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행동입니다.
철구는 당연히 문태광을 막아섭니다. 비표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경호계장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문태광을 들여보내라고
합니다. 철구가 의아해하자 외국인 손님들이 많이 오가는 자리이고, 당시 외교적인 분위기도 있는데 괜히 문제를 만들 필요가 없다는
식의 설명이 나옵니다. 쉽게 말하면 비표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외국인을 행사장 앞에서 돌려보내는 모습을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철구에게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상부의 지시를 거역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문태광은 행사장 안으로 들어갑니다. 철구로서는 지시를 거역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총성이 울립니다. 한 발. 그리고 또 한 발. 순식간에 경축식장은 아수라장이 됩니다. 철구는 그 현장을 직접
목격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 조금 전 장면이 머릿속에 다시 떠오릅니다. 비표가 없었던 남자. 자신이 막았던 남자. 그런데 상부의 지시로
행사장 안으로 들어간 남자. 바로 그 남자가 총격 사건의 중심에 있습니다. 이 장면은 철구에게 계속해서 남아 있게 됩니다.
왜 하필 그 남자를 들여보내라는 지시가 내려왔을까. 그리고 사건이 끝난 뒤 더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경호 실패의 책임이 현장에 있던
경찰들에게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해임 됩니다. 철구는 억울합니다. 자기는 처음부터 문태광을 막았습니다.
그런데 왜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일까요? 그렇게 철구는 사건 자체뿐만 아니라 사건이 처리되는 과정까지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수사 결과는 빠르게 발표됩니다. 문태광의 단독 범행으로 사건을 정리하려는 것입니다. 하지만 철구는
자신이 현장에서 직접 본 것과 공식적으로 발표되는 내용 사이에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 과정에서 철구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단순한 수사의 어려움만이 아닙니다. 사건 당일 경호 업무를 맡았던 후배 형사가 남산 대공분실로 끌려가고, 고문을 당한 뒤 돌아옵니다. 결국 그는 이곳에 더 있을 수 없다며 고향으로 내려갑니다.
철구는 그 모습을 보면서 생각합니다. 왜 사건에 대해 질문하는 사람들을 막으려고 하는 것일까. 왜 진실을 확인하려는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압박을 가하는 것일까. 그리고 결국 자신이 직접 사건을 다시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감식계장 현도와 함께
현장의 흔적을 다시 살펴봅니다. 여기서 영화의 아주 중요한 단서가 나옵니다. 총성과 탄환의 숫자가 맞지 않습니다.
영화 속에서 사건 당시 들린 총성은 여섯 발. 그런데 수거된 탄환은 네 개입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두 발은 어디로 간 것일까요?
철구와 현도는 탄환이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어디에 남았는지, 현장의 구조는 어땠는지, 하나씩 다시 맞춰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단순한 한 명의 저격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가능성이 떠오릅니다. 또 다른 저격수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철구와 현도가 암실에서 탄환의 행방을 되짚는 장면은 영화에서 중요한 장면입니다. 여기서 관객도 처음으로 ‘암살자(들)’이라는 제목을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됩니다. 그런데 사건을 의심하는 사람이 철구 한 사람뿐인 것은 아닙니다. 신문사에도 이 사건을 그냥 넘기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박해일이 연기한 동성일보 사회부장 김재환입니다. 재환은 베테랑 기자입니다. 그는 취재를 하면서 정부가 발표하는
내용과 현장에서 전해지는 이야기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하지만 1974년의 언론 환경은 지금과 전혀 달랐습니다. 신문사 안에는 기관원이 들어와 있고 기사 하나, 단어 하나까지
검열과 통제가 이루어집니다. 기자가 취재했다고 해서 그 내용을 마음대로 신문에 실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닙니다.
그런 재환에게는 한 명의 젊은 기자가 있습니다. 이민호가 연기한 사회부 신입 기자 한영일입니다. 영일은 사건 당일 광복절 경축식 현장에 나가 저격 사건을 직접 목격한 기자입니다. 그러니까 영일에게 이 사건은 신문에서 읽은 사건이 아닙니다.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진
사건입니다.
재환은 영일에게 취재를 맡기고 영일은 점점 사건 깊숙이 들어갑니다. 그리고 중요한 변화가 생깁니다. 영일의 취재가 국내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본까지 갑니다. 왜일까요? 바로 이 지점에서 영화의 시야가 한 사건에서 한 시대 전체로 넓어집니다.
1974년의 한국은 일본과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복잡하게 얽혀 있었습니다. 1965년 한일협정 이후
일본과의 관계는 경제개발과 자금 조달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었고,청구권 자금과 차관 등 일본과 관련된 자금은 한국의 산업과
사회간접자본에도 사용됐습니다.
당시 청구권 자금은 농림·수산뿐 아니라 광공업과 사회간접자본 등에 투입됐다는 정부 자료도 남아 있습니다.
서울 지하철 1호선도 그 시대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1974년 8월 15일, 바로 그날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됐고
일본 OECF 차관이 건설에 활용됐습니다. 일본에서 전동차가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참 묘합니다.
한쪽에서는 광복절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날 일본의 자금과 기술이 들어간 지하철이 개통됩니다. 과거에는 식민지 지배라는 역사가 있었고, 현재에는 경제개발을 위해
일본과 협력해야 하는 현실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복잡한 관계가
1974년이라는 시대 안에 함께 존재했던 겁니다.
그래서 영일이 일본으로 가는 것은 그냥 범인의 행적을 따라가기 위해 국경 하나를 넘는 것이 아닙니다.
영화는 그 과정을 통해 이 사건을 둘러싼 시대적 배경까지 조금씩 넓혀갑니다. 한국과 일본의 외교 관계. 경제개발을 둘러싼 자금과
이해관계. 그리고 그 시대 권력의 움직임.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영화가 이런 사실들을 가지고 “그러므로 일본이 사건의 배후였다”라고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허진호 감독도 실제 사건을 조사하면서 자료를 들여다볼수록 의문이 생겼고 진실을 하나의 결론으로 단정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영화 역시 하나의 음모론적 정답을 제시하기보다는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방식을 택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니까 영화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일본이 배후다.” 이것이 아니라, “이 사건을 한 사람의 총격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라는 더 큰 질문에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제목의 ‘(들)’도 다시 보이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암살자가 한 명인지 여러 명인지 묻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그 괄호가 조금 더 넓은 의미로
다가옵니다. 한 발의 총성이 울리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가. 누가 무엇을 알고 있었는가. 누가 어떤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었는가.
그리고 사건이 벌어진 뒤 누가 진실을 말할 수 있었고 누가 말할 수 없었는가. 이렇게 질문이 넓어지는 겁니다.
철구는 경찰의 자리에서 현장의 이상한 점을 발견합니다. 재환은 기자의 자리에서 그 의문을 기록하려 합니다.
영일은 국내에서 찾을 수 없는 답을 찾아 일본까지 갑니다. 세 사람의 길은 서로 다르지만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모입니다.
그날 국립극장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그런데 영화가 후반부로 들어가면서 처음의 질문은 또 다른 질문으로 바뀝니다. 과연 진실을 알아내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진실을 알아냈다고 해도 그것을 세상에 말할 수 없다면 어떨까. 여기에서 영화의 중심이 조금씩 사건에서 사람으로 이동합니다.
기자들은 진실을 알고 싶어 하지만 신문에는 기사를 마음대로 쓸 수 없습니다. 취재를 하면 감시를 받고, 기사를 쓰면 검열을 받고,
말을 하면 압박을 받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저는 영화를 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왜 그때와 같은 기자가 없을까?
너무 평온한 세상이라서 몸을 부딪쳐 싸울 일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우리가 사는 시대의 싸움은 그때와는 다른 모습으로 바뀐 것일까?
이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 이 영화의 힘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결국 1974년 10월 24일로 향합니다. 바로 자유언론실천선언입니다. 실제 당시 동아일보 기자들이 언론 자유를 지키기
위해 발표했던 선언입니다.
허진호 감독은 이 사건을 영화 후반부에 넣은 이유를 분명하게 설명했습니다. 처음부터 사건의 진상을 밝혀 범인을 잡는 식으로 끝나는
영화였다면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넣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대신 폭력적인 시대를 살면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진실을 밝히려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로 영화의 의미를 확장하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후반부의 자유언론실천선언 장면은 처음의 총격 사건과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처음부터 이어져 온 질문의 마지막 답변처럼 느껴집니다. 처음에는 “누가 총을 쐈는가?” 였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면 질문이 이렇게 바뀝니다. “진실을 알고도 그것을 말할 수 있었던 사람은 누구였는가?”
그리고 다시 제목을 바라보게 됩니다.
암살자(들). 이 괄호 안의 ‘들’은 실제로 암살자가 여러 명이었다는 결론을 영화가 확정해주는 표시는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의 사건을 둘러싼 여러 시선과 여러 사람, 정치와 언론, 한국과 일본 사이의 복잡한 관계, 권력과 경제적 이해관계,
그리고 기록된 역사와 그 사이에 남아 있는 빈틈까지 생각하게 만드는 괄호처럼 보입니다.
영화는 “이것이 진실이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고 우리에게 되묻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남는 것이 총성이 아니었습니다.
처음부터 문태광을 막았던 철구의 모습. 비표가 없었던 남자를 상부의 지시 때문에 들여보내야 했던 순간.
그리고 얼마 뒤 울려 퍼진 총성. 여섯 발의 총성과 네 개의 탄환. 그 사이에 남은 두 발의 빈자리. 일본까지 건너가며
사건의 주변을 파고드는 영일. 기사를 쓰고 싶어도 쓸 수 없었던 재환과 기자들. 그리고 결국 자신들이 믿는 것을 지키기 위해
신문사에서 선언문을 낭독하는 사람들. 그 모든 장면이 하나로 이어집니다.
한 사람의 총으로 시작된 사건이 한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로 점점 커지는 것입니다.
1974년 8월 15일. 국립극장에서 울린 총성은 이미 지나간 역사입니다. 하지만 그 총성을 둘러싼 질문까지
끝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과연 그날 있었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것일까. 기록되지 않은 것은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일까.
그리고 역사에 남겨진 빈칸을 우리는 어디까지 의심하고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 것일까.
《암살자(들)》은 그 답을 대신 정해주는 영화가 아닙니다. 오히려 제목의 괄호 하나를 남겨둡니다.
암살자(들). 그리고 그 괄호를 바라보며 관객 스스로 생각하게 합니다. 그날의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그 ‘들’ 속에는 과연 무엇이 들어 있는 것일까. 저는 영화를 보고 난 뒤에도 그 괄호가 쉽게 닫히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