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한국의 승가가 지향해야할 승가상의 표본은 마땅히 한암 스님이어야 한다.”
한암스님을 스승 경허스님과 비교해 재조명함으로써 바람직한 승가상, 이상적인 승가상, 추구해야할 승가상을 찾는 세미나가 열렸다.
오대산 월정사(주지 정념스님)와 한암문도회가 6월 15일 오후 1시부터 국제회의장에서 주최한 제4회 한암사상연구원 학술회의 ‘경허선사와 한암선사’ 세미나는 시종 뜨거운 열기 속에서 진행됐다.
경허와 한암에 대한 비교 연구를 통해 오늘의 승가가 표상으로 삼아야할 스님상을 도출해보고자 한 이번 세미나에서는 크게 한암이 경허의 법을 이은 인가자임을 드러내고자 한 논문, 한암의 선에 대해 학술적 규명을 시도한 논문, 경허의 두 제자인 한암과 만공을 비교한 논문, 경허집 편찬과 간행에 얽힌 다양한 변모양상을 살핀 논문이 각각 발표되었다.
경허와 한암 비교 세미나에서 열띤 토론을 벌인 발제자와 토론자들.
그러나 전체 세미나를 관통하는 한 가지 흐름은 경허의 무애자재행이 남긴 한국불교 승가내의 막행막식 관행과 이를 엄격히 금하기보다는 선사들의 활활자재한 무애행으로 감싸려는 풍토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였다. 세미나의 내용이 주제와 관계없이 경허의 높은 법력은 충분히 인정되고 평가되어야 하지만, 그가 보여준 이른바 무애행은 비판받아야 하며, 적어도 이상적인 승가상과는 거리가 먼 것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주장이 분출됐다. 이와 함께 경허의 높은 경지를 이은 지음자로서의 한암, 그러면서도 교학과 계율에 철저했던 한암이야말로 오늘의 한국승가가 본받아야 할 이상적인 스님상이라는 결론을 도출해낸 세미나였다.
이 세미나는 보기에 따라서는 덕숭산을 중심으로 위세를 떨치고 있는 만공법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수도 있는 주제라는 점에서도 많은 관심을 끌었다. 듣기에 따라서는 다소 민감할 수도 있는 내용들이 불가피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발제자와 토론자들이 이같은 분위기를 의식할 경우 기대에 미치지 못한 김빠진 세미나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이 열리자, 세미나 분위기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발제자도 토론자도 거침없이 토론을 했다. 민감한 부분도 애써 피해가지 않았다. 모처럼의 생산적인, 그리고 흥미로운 세미나였다.
이런 용기 있는 모습들은 아마도 오늘날 승가의 모습이 경허를 흉내 내는 경향이 짙으며, 이를 바로잡지 않고서는 불교중흥은 어렵다는 공감대가 한국불교계에 폭넓게 형성되어 있다는 점에도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경허와 한암선사 세미나 전경. 250여명의 사부대중이 참석, 큰 관심을 보였다.
‘경허의 지음자 한암’을 발표한 윤창화 민족사 대표는 “경허에 행위에 대한 한암의 관점은, 경허화상이 구현했던 ‘선의 세계’, ‘법의 세계’를 중요시할 일이지, 표면에 나타난 언행을 문제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며 “다만 한암은 바른 법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 즉 맹안의 상태에서 그저 경허화상의 행위만 답습할 때 그것이 문제라는 것이었다”고 소개했다. 윤창화 대표는 그러면서도 “그러나 후대의 학인들이 (경허)화상의 법화를 배우는 것은 옳지만 화상의 행리를 배우는 것은 옳지 못하다”며 완곡하게 주의를 주고 있음을 강조했다. 윤 대표는 이어 “경허화상이 한암을 지음자로 생각했던 것은 그의 선지와 수행자다운 모습이 남달랐고, 또 그의 학문과 인격이 고매하고 뛰어났기 때문이었다”며 “한암은 선승이었지만 경학에 밝고 계율을 지키는 납자였다는 점이 당시 조선의 선계에서는 찾아보기 드문 승가상의 표상이었으므로 경허화상이 더욱 돈독하게 많은 대화와 시문을 통한 사자간의 법담을 나눈 것”이라고 주장, 오늘의 승가가 모델로 삼아야 할 바람직한 승가상의 표상은 한암에서 찾아져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변희욱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연구원은 ‘한암의 격외관문과 간화:경허와 한암의 조사선 전승’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한암은 간화를 권면했고, 깨달음 이후의 수행을 요구했다. 또 한암은 경전공부를 권면했다”며 한암을 ‘선교일치’로 정리하면서도 “그러나 분명 한암에게는 철저한 교외별전 조사선의 정신, 그리고 은산철벽 간화선의 기상이 농후하다”고 강조했다. 선과 교를 두루 아우르되 조사선의 정신과 간화선의 기상을 갖추고 있는 종합주의적 태도의 견지자였다는 것이다. 변 박사의 이같은 분석은 간화선 수행을 한다며 교학을 경시하거나 아예 배척하는 작금의 한국선불교 풍토를 한암의 예를 들어 에둘러 비판한 것이다.
김광식 동국대 연구교수는 ‘한암과 만공의 同異, 그 행적에 나타난 불교관’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한암은 전통주의, 대중승려를 고려한 전 승가의 수행풍토의 진작을 기하려는 현실 직시적인 성격이었다면, 만공은 참선 유일주의, 개신적인 선풍진작, 엘리트주의, 선법을 통한 불교정화를 지향한 성격을 갖고 있었다”고 정리했다. 다시 말해 한암은 전통계승적인 고풍 재현과 전 승려들의 승가상 재정립의 성격이 이미지화 하였다면, 만공은 정신혁명적인 선 유일주의로의 개혁, 선 순결주의에 의한 불교정화를 추구한 것으로 이해했다는 것이다.
한암과 만공의 차이를 ‘승가오칙’과 ‘만공의 3대조건’, 즉 ‘▷참선 ▷염불 ▷간경 ▷의식 ▷수호가람’과 ‘▷도량 ▷도사 ▷도반’이라고 정리한 김 교수는 “한암은 참선, 염불, 간경, 수호가람을 하는 것이 부처의 유촉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확신했고, 만공은 평소에 강조한 참선, 선법, 간화선(화두선) 실천에서의 관건이었다”고 주장했다.
‘<경허집> 편찬, 간행의 경위와 변모양상 개요’를 발표한 이상하 한국고전번역원(전 민추> 교수는 “경허집 중 최초로 편집된 한암필사본의 ‘선사경허화상행장’이 뒤에 간행된 선학원본에 실려 있지 않은 것은 한암이 이례적으로 경전과 옛 고승의 말을 인용하여 경허의 막행막식에 대해 길게 해명하는 한편 경허의 뒤를 잇는 후인들에게 경허의 행리를 무턱대고 따르지 말라고 강하게 경계하였기 때문일 듯하다”며 한암이 자신의 일생을 통해 추구한 바람직한 승가상이 어떤 것이었는가를 제시했다. 이 교수는 또 “1981년 간행한 <경허법어>와 명정 번역본 <경허집>의 오역이 심각하고 고증의 오류도 있으므로 다시 교감편집되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나아가 지금까지 간행 또는 영인된 <경허집>들을 모두 비교, 교감하여 연구자가 신뢰할 수 있는 <정본 경허집>을 만드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동국대 강사 자현 스님(월정사 교무국장)은 ‘경허 스님이 걷기 힘들어하는 만공 스님을 위해 우물가에서 물 긷던 아낙과 입을 맞추었다’는 일화를 소개한 뒤 “조선이라는 유교적 사회 속에서 그 아낙은 그 일로 목을 매었을 수도 있었다”며 “제자(만공)를 가르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일생이 망가져도 무방하다는 판단은 수행자를 떠나 일반인의 군상에서도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지적, 눈길을 끌었다. 자현 스님은 “이 일화를 통해서 경허가 주관주의에 깊이 함몰되어 있었음을 보게 되고, 이를 떳떳하게 기록하고 있는 경허 주변인들의 사회와 윤리적 가치관의 인식수준을 확인해 볼 수 있다”고 비판하고 “이 점이야말로 오늘날 우리에게 한암스님이 왜 재조명되어야 하는 진정한 이유가 아닌가 생각된다”는 ‘위험수위’를 넘나드는 토론을 벌여 이목을 집중시켰다.
한편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은 세미나에 앞서 인사말에서 “후학들이 막상 한암선사를 떠올릴 때 잊혀진 부분이 많다”면서 “암울했던 시대에 등불같은 역할을 한 스님의 정신을 계승하지 못한 것을 참회하고 앞으로 (그 정신을)선양해 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날 학술회의에는 월정사 회주 현해스님, 주지 정념스님을 비롯해 사부대중 250여명이 참석해 학술회의장을 가득 메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