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까족과 꼴리야족의 물싸움. (46)
깨달음을 이루신 후 5년, 숫도다나왕의 병환이 심상치 않다는 전갈을 받고 웨살리의 꾸따가라살라에서 까삘라왓투 교외의 큰 숲으로 거처를 옮기셨을 때였다. 그해 여름 , 로히니(Rohini)강을 사이에 둔 사꺄족과 꼴리아족 땅에 극심한 가뭄이 계속되었다.
농부들은 한 바가지 물이라도 더 대기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물을 날랐지만 바닥이 드러난 강물은 턱없이 부족햇다.
논바닥은 갈라지고 태양의 열기를 견디지 못해 모가 누렇게 탔다. 불만은 꼴리야족 쪽에서 먼저 터져 나왔다.
“친구들, 얼마 되지도 않는 강물을 양쪽에서 사용하면 그쪽이나 이쪽이나 한 해 농사를 망치고 말 것이요.
그쪽이야 어차피 한 뼘 남짓한 모지만 일찌감치 파종한 우린 한 번만 물을 흠뻑대면 제대로 수확할 수 있소, 우리가 먼저 물을 댑시다.”
“거 무슨 섭섭한 말씀이신가. 그럼 당신들 곳간이 그득해질 때 우린 금은보화를 싸들고 당신들에게 양식이나 구걸하러 다니란 말이요. 늦게 파종했다고 물을 쓰지 말라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이러다 둘 다 죽게 되었으니 하는 말 아니오. 당신들이야 어차피 망친 농사, 우리에게 양보하라는 게 뭐 그리 잘못되었소.”
“어차피 망친 농사라고? 그럼 우리가 강물을 모두 써도 농사를 망칠 것 같은가? 양보를 하려면 너희가 해라.”
삿대질하며 언성을 높이던 농부들은 결국 분노를 참지 못해 주먹질이 오가고 말았다.
타들어가는 가슴에 분풀이할 곳을 찾던 주변의 농부들이 싸움에 뛰어 들었다.
소란의 원인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싸움은 전점 격렬해졌다. 피투성이가 되고서야 농부들은 양쪽 언덕으로 갈라서 길길이 날뛰며 소리쳤다.
“개나 돼지처럼 제 누이와 사는 놈들, 너희들하곤 싸우기도 싫다. 이 더러운 놈들아, 썩 꺼져버려라.”
“어이 문둥이들, 당장 니 자식들까지 데리고 멀리 꺼져버려라, 살 곳이 없어 짐승처럼 대추나무 위에서 사는 놈들아.”
오랜 결속과 우의가 타들어가는 논바닥 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사꺄족과 꼴리야족은 같은 옥까까왕의 후손으로서 친족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자부심 강한 두 종족은 내심 서로를 문둥이와 개돼지라 부르며 깔보고 있었다. 거기에는 전설이 있다.
<중략>
불화의 씨앗은 일파만파로 번졌다.
“짐승처럼 대추나무에 둥지를 튼 놈들아. 네놈들이 코끼리를 몰고 쳐들어온다 해도 우린 눈도 깜짝 않는다, 이놈들아.”
“그럼 우리라고 눈 하나 깜짝할 줄 아느냐, 개돼지들처럼 자기네 누이와 동침하는 놈들이 칼과 창을 들 줄이나 아는지 모르겠다.”
강을 사이에 두고 분노와 조롱이 뒤섞인 험악한 말들로 서로를 할퀴던 두 종족은 함성을 지르며 뒤돌아섰다.
꼴리아족이 내뱉은 말은 곧 사꺄족 땅에 퍼지고, 사꺄족이 내 뱉은 말들은 곧 꼴리아족 땅에 퍼졌다.
사꺄와 꼴리야의 왕족과 젊은이들은 분노하였다.
“여러분, 누이와 동침하는 사나이의 주먹맛을 보여줍시다.”
코끼리부대와 기마부대, 칼과 창으로 무장한 용감한 병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까삘라왓투의 성문을 나섰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부처님이 혼자 조용히 숲을 빠져나가셨다.
작은 강을 사이에 두고 양쪽 언덕에서는 술에 취한 코끼리들이 줄지어 늘어서고, 재갈을 물린 말들이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듯 앞발을 쳐들었다.
그때였다.
팽팽히 시위를 당겼던 양쪽의 궁수들이 활을 내려놓고 길 위에 엎드리기 시작했다. 대지에 휘몰아치던 함성과 먼지가 한순간 가라앉았다. 강둑을 거슬러 전장으로 한 비구가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부처님이셨다. 그분 주위에는 강물보다 짙은 푸른빛이 감싸고 있었다. 사꺄와 꼴리야의 왕족들 역시 칼과 창을 내려놓았다.
진영의 한가운데 자리한 부처님은 발아래 예배하는 양쪽의 왕족들에게 조용히 물으셨다.
“왕이여, 친족간에 왜 싸우는 것입니까?”
“저들이 우리를 개돼지라 모욕했습니다.”
“대추나무에 둥지를 튼 문둥이라고 한 건 당신들이요.”
높아지는 언성을 가로막으며 부처님께서 물으셨다.
“왜 그런 말을 하게 된 겁니까?”
한 사람씩 돌아가며 왕족들에게 물었으나 누구도 그 이유는 알지 못했다. 부처님은 장군들을 불러 그 연유를 물었으나 그들도 모르고 있었다. 그렇게 물어물어 가던 부처님은 싸움의 발단이 논에서 물을 대던 농부들에게서 시작되었음을 알았다.
부처님은 위엄이 가득한 목소리로 왕족들에게 물으셨다.
“이 강물과 사람 중에 어느 쪽이 더 소중합니까?”
“물보다 사람이 훨씬 소중합니다.”
“그런데도 물을 위해 소중한 사람의 목숨을 버리겠단 말입니까?
말라버린 로히니 강바닥을 피로 채우겠단 말입니까?“
사꺄와 꼴리야 왕족들이 머리를 숙였다. 부처님은 목소리를 누그러뜨리고 사람들을 가까이 불러 모으셨다.
칼과 창을 던지고 몰려든 군사들에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여러분에게 재미난 이야기를 하나 들려 드리지요.
어느 종려나무 숲에 한 그루 도토리나무가 있었습니다. 그 나무 아래 살던 토끼 하마리가 문든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답니다.
‘저 하늘이 무너지면 어쩌지.’
바로 그때, 도토리 하나가 종려나무 잎사귀에 털썩 소리를 내며 떨어졌답니다. 겁 많은 토끼는 깜짝 놀라 이렇게 외치며 달렸답니다.
‘큰일 났다. 하늘이 무너진다.’
옆에 있던 토끼가 이 말을 듣고 함께 뛰기 시작했습니다. 두 마리가 세 마리 네 마리로 점점 늘어나더니, 마침내 수천 마리 토끼가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토끼들의 소란에 온 숲은 벌집을 건드린 듯 들썩거렸습니다.
‘다들 왜 저러지? 무슨 일인가?’
‘큰일 났어, 하늘이 무너졌대.’
노루도 멧돼지도 물소도 코끼리도 모두 두려움에 떨며 덩달아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높은 언적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사자는 생각했습니다.
‘하늘이 무너졌다고? 그럴 리가 없지.’
그들이 달리는 길목 끝에는 벼랑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대로 내버려두면 다들 죽을 게 뻔했습니다. 숲의 동물들을 가엾게 여긴 사자는 행렬 앞으로 달려가 큰소리로 포효하였습니다.
사자의 기세에 놀라 동물들이 멈춰서자 사자가 물었습니다.‘
‘왜 도망 가는가?’
‘큰일 났습니다. 하늘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누가 그것을 보았는가?’
코기리, 물소, 멧돼지, 노루 누구도 하늘이 무너지는 걸 본 적이 없었습니다. 까닭을 추궁하던 사자는 그 말이 겁쟁이 토끼에게서 나온 것임을 알았습니다.
‘네가 하늘이 무너지는 걸 직접 보았느냐?’
‘네, 제가 직접 보았습니다.’
사자는 숲 속 동물들과 함께 두려움에 떠는 토끼를 앞세워 하늘이 무너지는 걸 봤다는 곳으로 찾아갔습니다. 그 자리에는 굵은 도토리 한 알만 뒹굴 뿐 무너진 하늘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사자는 도토리를 주워 토끼에게 보였답니다.
‘이것이 네가 보았다는 하늘인가?’“
사꺄족과 꼴리야족 군사들이 깔깔대며 웃었다. 부처님은 미소를 보이며 말씀하셧다.
“친족들은 서로 화목해야 합니다. 친족이 화목하면 어떤 적들의 침략도 막아낼 수 있습니다. 저 히말라야의 숲을 보십시오. 거센 태풍이 불어도 저 숲은 온전합니다. 수많은 나무와 잡초, 덤불과 바위가 서로 뒤엉켜 의지한 저 숲은 무엇 하나 다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넓은 들판에 홀로 선 나무를 보십시오. 굵은 가지오, 무성한 잎을 자랑하지만 태풍이 휩쓸고 가면 뿌리째 뽑힙니다. 감정이 없는 풀과 나무도 함께 어울려야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걸 아는데 하물려 사람이겠습니까?
두 보족의 여러분에게 말하겠습니다. 부디 싸우지 말고 한마음이 되십시오.
하나가 되어 화목할 때 여러분은 행복할 수 있습니다. 서로 미워하면 결국 파괴와 상처만 남습니다. 이제 다 같이 평화를 배워야 합니다. 평화는 모든 성자들이 찬탄하는 것입니다. 평화와 정의를 사랑하는 보족만이 번영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합장하고 귀 기울이는 군중에게 부처님께서 게송을 설하셨다.
원한을 품은 사람들 속에서
원한을 버리고 즐겁게 삽시다.
원한을 품은 사람들 속에서
우리는 원한에서 벗어납시다.
고뇌하는 사람들 속에서
고뇌에서 벗어나 즐겁게 삽시다.
고뇌하는 사람들 속에서
우리는 고뇌에서 벗어납시다.
탐욕이 가득한 사람들 속에서
탐욕에서 벗어나 즐겁게 삽시다.
탐욕이 가득한 사람들 속에서
우리는 탐욕에서 벗어납시다.
사꺄족과 꼴리야족 사람들은 칼과 창을 던지고 게송을 소리 높여 따라 불렀다.
바닥난 로히니강에 다시 깊고 푸른 신뢰와 관용의 강이 흐리기 시작했다.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으로 치달았던 사꺄족과 꼴리야족의 분쟁은 모두에게 부끄러운 과거로 기억되었다.
원한과 증오를 털어버린 두 종족은 출가하지 않았으며 분명 전륜성왕이 되셨을 부처님의 덕을 찬찬하며 각각 이백오십명의 귀공자를 선발해 부처님을 시중들도록 하였다.
오백 명을 신하가 아닌 제자로 받아들인 부처님은 세간의 왕이 아닌 진리의 왕으로써 법을 굴리며 사꺄족과 꼴리야족 거리를 누비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