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려 원
진초록 몸통에 오렌지색 부리를 지닌 새의 하루는 단조롭다. 나른한 햇살 아래 털 고르기가 한창이다. 모이를 먹기 위해 횃대 위를 쉼 없이 오르내리는 새에게 하루란 어떤 의미일까? 해가 비치는 거실, 새가 움직일 때마다 바닥에 한 편의 수묵화가 그려진다. 덧없는 날갯짓이 그린 그림이다.
새는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 본능, 날개에 각인된 본능을 안다. 날아야 한다는 것을, 어떤 상황에서도 나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가두어진 새는 새장 크기를 가늠하는 데 번번이 실패한다. 날개를 파닥거리다가 다시 접고 종종걸음치는 새는 어느 순간 규격화된 새장 안에서 규격화된 정보를 습득하게 될 것이다. 어린 새는 아무리 날개를 파닥거려도 창문 밖으로 날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벌써 받아들인 것일까.
새는 가끔 무언가를 응시하고 특이한 소리를 내기도 한다. 깍깍깍깍, 끼익끼익끼끽. 새의 노랫소리와는 어울리지 않는 소리다. 자유를 강탈당한 새가 새장 안에서의 무료함을 잊기 위해 뱉어내는 무의미한 발화인지도 모른다. 표정과 부리의 움직임, 날갯짓, 눈동자를 통해서 어렴풋이 새의 호소를 짐작할 뿐이다. 인간의 언어와 새의 언어 사이 간극을 메울 수 있는 것은 서로의 마음이다.
유년의 기억 속, 목련꽃이 피어있던 주택가 도로 한복판에 어디선가 날아와 수직으로 하강하던 것을 떠올린다. 새의 추락이었다. 작고 보드라운 가슴은 여전히 온기가 느껴졌지만, 눈은 이미 감겨있고 날개는 접혀있었다. 새 한 마리가 거쳐 온 생이 마침표로 찍힌 검고 차가운 아스팔트 위로 초봄의 여린 햇살이 무심히 내리쬐고 있었다. 새를 가슴에 품고 돌아오면서 생명이 빠져나간 육신의 집이 터무니없이 가볍다고 생각했었다.
경계 없이 하늘을 넘나드는 새들을 보고 우리는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새들에게 날개는 자유의 상징이 아니라 천형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두 다리가 그러한 것처럼, 물고기의 지느러미가 그러한 것처럼 태생적으로 부여받은 것들이 삶을 한정 짓고 저마다 그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 새들은 살기 위해서, 추락하지 않기 위해서 평생 날갯짓을 하다가 추락하는 순간 자기 안의 것들을 모두 쏟아내며 세상 어디든 자신의 무덤을 짓는다.
여전히 어둠이 걷히지 않은 시간 새 우리를 청소하고 물을 갈아주고 모이통에 먹이를 가득 채워준다. 고개를 깃털 속에 파묻고 있던 새가 고요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서로의 눈이 마주친다. 철제 우리를 사이에 두고 새의 눈동자에 비친 내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새의 눈에는 철창 밖의 내가 가두어진 것처럼 보일 것이다.
더 큰 새장에 갇힌 여자, 갇힘과 체념을 공통분모로 지닌 내가 새의 모이와 물을 챙기는 것은 새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어쩌면 스스로를 위함이다. 앵무새 모이를 주며 내 가슴 안의 새에게도 모이를 준다. 금세 지저분해지는 새장을 청소하는 일은 가슴속 더러움을 청소하는 일, 새로 떠온 물이 정화수처럼 여겨지는 것은 마음의 간절함 때문이다. 새장 안의 새가 내게 모이를 주고, 깨끗한 물을 주고 청결한 공간을 제공하며 도리어 나를 돌보는 것처럼 보인다. 새장 안에 갇힌 새는 새장 밖에 갇힌 나를 연민 어린 눈빛으로 주시한다.
세상은 넓이와 깊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새장이고 사람들은 어쩌면 사육당하는 새들인지도 모른다. 세상에 길드는 대가는 지속적으로 공급되는 모이와 물, 그리고 위험으로부터의 안전이다. 삶의 안정을 깨트리지 않기 위해 욕구를 접는 일, 스멀거리며 올라오는 자기다운 것들을 수면 아래로 내려놓는 일을 어른이 되면서부터 지금껏 너무도 자연스럽게 해오고 있다. 세상의 울타리는 새장의 철제 울타리보다 견고하고 튼튼하다. 풍부한 모이와 물에 안주해 버린 사람들은 자기 이름을 부르며 날 수 있었던 오래전 언젠가의 기억을 망각해 버렸을 것이다.
올려다본 하늘이 지나치게 파랗다는 생각이 들 때, 새들이 벌거벗은 나무 사이로 옮겨 다니며 허공을 가를 때, 날렵함이 주는 진동이 가슴을 뒤흔들고는 어디론가 순식간에 흩어져 버릴 때, 허공에 남겨진 덧없는 궤적을 쫓고 싶을 때 문득 날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겨드랑이를 더듬어 본다. 내게도 날개가 있었던가? 의무와 권리 사이에서 누군가를 위해 쓸모 있는 역할을 해오느라 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세상이라는 거대한 새장 안에서 오랜만에 자기 이름을 부르며 날개를 퍼덕이지만, 날개는 박제된 것처럼 무겁기만 하다.
나를 부르는 수많은 명칭이 뒤섞이고 어느 순간 내 안의 새는 목소리를 잃어버렸다. 허기를 느끼는 것은 가슴안의 새가 무언가에 주리기 때문이고, 아픔을 느끼는 것은 가슴안의 새가 아프기 때문이고 어딘가를 공허하게 배회하는 것은 비좁은 가슴속에서 길 잃은 새가 배회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에 길들여진 한 마리 새로 살아오면서 날고 싶다는 욕망을 접은 지 꽤 오래다.
새는 날마다 날기의 본능을 망각하지 않으려고 날갯짓을 하고 목소리를 잃지 않으려고 노래를 부르지만 내 안의 새는 아직 가슴 밖으로 뛰쳐나가지 못한다. 그래도 어느 순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뜨거워지면 빗장 같은 갈비뼈를 뚫고 힘차게 허공을 가를 것이다. 나뭇가지들이 만들어낸 하늘 조각 사이로 수많은 사람의 가슴을 뚫고 날아오른 새들이 힘차게 날고 있다. 제 이름을 부르며 우아하게 하늘을 나는 새들은 일시에 그리고 제각각 울어대며 새파란 하늘 위로 가슴안의 기억을 쏟아낼 것이다. 새장 안의 새가 털 고르기를 끝냈다. 날개를 조금씩 퍼덕인다. 새 안의 새가 비상을 꿈꾸고 있는 것이리라. 가만히 새장 문을 열어주었다. 내 가슴안의 새도 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