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의 교향곡 6번 '전원'은 전 세계의 교향악단들이 즐겨 연주하는 교향곡이지만 다른 교향곡과는 뚜렷한 차이점이 있다. 교향곡은 보통 4악장으로 구성되는데, '전원' 교향곡은 5악장으로 구성돼 있고 3악장부터 5악장까지 멈추지 않고 연주하는 것이 특징이다. 1악장은 '시골에 도착했을 때 깨어나는 즐거운 마음', 2악장은 '시냇가의 정경', 3악장은 '농민의 즐거운 모임', 4악장은 '천둥과 폭풍우', 5악장은 '폭풍우 뒤 부르는 감사의 노래'처럼 악장마다 베토벤이 직접 붙인 흥미로운 제목을 갖고 있는 것도 독특하다.
자연 풍경을 음악으로 표현한 작품은 베토벤 이전에도 있었다. 대표적인 곡이 비발디의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에 맞춰 네 곡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계절을 묘사한 이른바 '소네트'(유럽에서 만들어진 정형시)에 맞춰 변화무쌍한 자연의 모습을 묘사한다. 이렇게 자연을 모습을 직접 그려내듯 표현한 음악을 '묘사음악'이라고 한다.
그러나 자연을 소재로 했지만 베토벤의 '전원'과 비발디의 '사계'는 분명 다르다. '사계'가 자연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그려냈다면, '전원'은 인간이 자연을 만나 느끼는 감정과 그 변화를 음악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베토벤도 말했다. "이 곡은 자연에 대한 묘사가 아니라 감정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음악 외적인 소재를 직접 묘사하지 않고 소재에서 받은 '인상'을 표현한 음악은 베토벤 이후에 계속 만들어졌는데, 이런 흐름을 자신만의 음악 언어로 '인상주의 음악'으로 확립시킨 인물이 바로 프랑스의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다. 드뷔시는 묘사음악의 선구자였던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였던 리스트와 뛰어난 오페라 작곡가였던 바그너의 영향을 받았다. 그가 만든 인상주의 음악은 음악 외의 여러 사물이나 풍경을 인간의 감각으로 느낀 것, 거기에 덧붙여진 상상력을 활용한 음악이다.
예컨대, 묘사음악과 인상주의 음악은 이렇게 다르다. 놀이공원에 가서 여러 가지 놀이기구의 다양한 소리나 사람들의 함성 같은 것들을 직접 음악으로 흉내 내듯 작곡하면 묘사음악이고, 놀이기구를 타면서 스스로 느꼈던 설레고 흥분된 기분을 음악으로 만들면 인상주의 음악이 되는 것이다.
인상주의 음악은 조각이나 회화 같은 미술 작품이나 재미난 특징을 가진 사람을 소재로 삼기도 했지만, 드뷔시가 작품의 소재로 특히 좋아했던 것은 물과 바람, 하늘과 바다, 동물의 모습이었다. 인간보다 더 큰 존재인 자연을 만났을 때 자신의 상상력이 어떤 영감을 발휘하는지를 귀를 기울여 음악에 담아낸 것이다. 그래서 드뷔시의 작품은 '바다La Mer' '베르가마스크 모음곡-달빛Clair de Lune-Suite Bergamasque' 처럼 자연과 관련된 제목을 가진 아름다운 곡들이 많다.
드뷔시의 인상주의 음악은 후대 음악가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특히 프랑스 출신의 작곡가 모리스 라벨은 인상주의에 좀 더 고풍스럽고 화려한 느낌이 더해진 피아노곡과 관현악곡들을 만들었다. 또 이탈리아 작곡가 오토리노 레스피기는 관현악곡 '로마 3부작'을 통해 사라진 고대 로마 제국의 위대한 역사에 대해 추억하는 인상주의 음악을 만들기도 했다.
*묘사음악인 비발디의 '사계'와 인상주의 음악인 베토벤의 '전원'은 모두 그 시대를 한참 앞서나간 뛰어난 걸작이다. 두 작품 모두 작곡가의 주관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고도 할 수 있다. 2016년 11월 24일 내한공연을 가진 바 있는 프랑스 피아니스트 피에르 로랑에마르가 연주한 '새의 카달로그'가 바로 그런 곡이다. '새의 카달로그'를 작곡한 프랑스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은 드뷔시의 후배뻘로 자연을 무척 사랑한 작곡가였다. 특히 새들의 울음소리가 그 어느 음악보다도 아름다워 '신이 내려준 선물'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메시앙은 오선지를 들고 직접 숲속을 다니면서 새들의 노랫소리를 음표로 옮겼고 거기서 느껴지는 자신의 감상도 함께 담아 '새의 카달로그'라는 독특한 걸작을 탄생시킨 것이다. 묘사음악과 인상주의 음악의 위대한 만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