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남행(河南行) 1
황량한 요녕(遼寧)의 벌판에 차가운 바람이 분다. 막바지 여름이 끝나가는 팔월의 늦은 저녁에 그렇게 온몸을 서늘하게 식혀주는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려는 듯, 줄지어 곱게 늘어선 이삼십 여개의 군막이 보인다.
곧 해가 뜨고 또 하나의 새벽이 시작될 이른 시각에도 군막주의의 사람들은 모두 아무런 말도 없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병영의 중앙에 우뚝서있는 십여 장 높이의 깃대에는 ‘明’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쓰여진 커다란 깃발이 새벽바람에 미친 듯이 흔들리고 있었다.
“시간이 없다. 어서 준비해라! 곧 적들이 들이닥칠 것이다. 거기 뭐하나! 어서 목책을 쌓아 올려라!”
상급자의 목소리가 하급군인의 귓청을 때린다. 수세를 준비하는 듯 부산하게 움직이는 명군이었다. 완전한 군인들은 아닌 듯, 복색이 제각각이다. 여러 곳의 주민들로 보이는 사람도 같이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정벌대가 아닌 수비대인 것 같다.
그런 군중 속에서 두 사내가 보인다. 그들은 지금 자신들의 막사 밖에서 군명에 의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며 이것저것을 논의 하고 있다. 갑주를 걸친 것으로 보아 상당한 계급일 듯하다.
“양백호 전투준비는 되었나?”
“옛! 정천호님! 이미 적의 동태도 파악이 된 상태입니다. 하루아(火兒阿)족의 이천 기마병력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현재 요녕성과 달단의 경계에서 이동 중입니다.”
“음......아이향(阿爾鄕)을 노릴 줄이야........마지막 발악인가?”
정천호란 사람은 조용히 앞을 내다본다. 흡사 적이 곧 쳐들어오는 것이 보이는 듯...... 그렇게 그는 말없이 전방만을 바라보았다.
“낭인대는 아직도 막사 안에 있나?”
“그놈들이야 전투가 시작되면 나올 것입니다. 돈을 위해 싸우는 놈들이 단체행동에 대해 뭘 알겠습니까?”
정천호의 말에 양백호는 눈썹이 역팔자로 휘면서 약간 큰 소리가 나온다.
강호의 무리들로서 상당한 무공이 있지만, 그만큼 말을 듣지 않는다. 도무지 제멋대로여서 통제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 적장만 벤다는 자는 쓸 만하지 않던가?”
“아 두참인(頭斬人)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상당하지요. 허나 병들은 베지 않으니 원........... 어쩔 땐 다른 병들보다도 쓸모없습니다. 정천호님”
“.............”
정천호는 조용히 생각한다. 두참인, 삼 년 전부터 요녕성에 나타나 상당한 무위를 보이며 싸우는 자였다. 헌데 이상하게도 병들하고는 장난치듯 싸우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적장을 죽여 적들의 사기를 완전히 꺾어 놓는 묘한 행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정천호에게는 뭔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두참인이다. 분명히 그는 군의 경력이 있다. 교묘하게 아군의 약점을 채우는 것이나 적의 허점을 노리는 것을 보면 실전에 너무나 능숙한 모습으로 보여 상당한 병력을 인솔 해 보았던 사람이란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어쨌든 지금은 그자들이 꼭 필요하네. 낭인대주에게 연락해 곧 출전준비를 하라고 지시하게나.
“옛 정천호님!”
정천호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돌아가는 양백호였다.
“제에미........오늘은 좀 쉬나 했더니. 또 쌈질하게 생겼구먼.”
“우리팔자가 다 그렇지. 뭐 이렇게라도 사니 다행이지만....”
커다란 군막안에서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뒹굴고 있다. 제각기 다른 병장기를 지니고 그 무기만큼이나 다양한 복색으로 저편한대로 질펀하게 누워 있다. 이들이 낭인대였다.
“오늘우리가 만날 상대는 하루아족의 최정예 기마군단이다. 혹 있을지 모를 불상사를 대비해 모두들 조심하도록...”
중앙에 검을 든 자가 나직하게 말한다. 그러자 다들 얼굴한구석이 창백해진다. 기마군단, 다른 부족에 비해 하루아족은 활과 도를 동시에 사용한다. 그만큼 상당한 무력을 갖고 있는 부족이 하루아족이었다.
지난 이년간 그렇게 이곳에서 싸워온 그들이다. 죽는 사람도 많았고 항상 새로운 사람이 채워진다. 그렇게 전장에서의 세월을 흘러가는 것이다.
죽음은 누구나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 앞에서는 아무도 큰소리칠 수 없다.
저잣거리의 조그만 가계의 주인이나, 저 땅을 일구는 농부들이나, 황제에게도 두려움은 마찬가지였다. 그 앞에서는 누구나 초라해진다.
“제길, 그냥 저 두참인이 적장의 목만 베면 되잖아 뭘 그리 어렵게 사는지.....”
“놔둬라 나둬! 무공 좀 한다고 뻐기는 족속들이 뭐 우리말 듣겠냐?그저 우린 감사한 마음으로 졸졸 뒤만 쫒아 가면 돼”
한쪽구석에서 이죽거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러자 낭인대 전부의 눈이 저기 다른 구석 한참 어두운 곳에 향한다. 거기에 어떤 시커먼 물체가 있다. 온몸을 파풍의로 이불처럼 둘러싼 채 그렇게 어둠속에서 조용히 웅크리고 있었다.
“어차피 전장에 왔으면 살인은 필수 아냐? 뭐 지가 부처님이라도 된줄 아나? 제미럴, 소림의 백보신수 명각 스님도 요즘 미쳐서 날뛰는 판에 저게 무슨 지랄이야!”
거칠게 말하며 동의를 구하는 그자였다. 며칠 전에 새로 들어온 낭인이다.
근 두 번 정도의 작은 전투를 치루어냈던 그는 요즘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는데 의연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
저 막사구석의 어둠속에서 아무 말 없이 두개의 불빛이 빛난다. 그자가 일어선다. 파풍의를 걷어내며 일어서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
한마디 했던 자는 조용히 침을 삼킨다. 언제 봐도 엄청난 몸이다. 온몸의 근육은 터질 듯이 부풀러 올라있고 그 근육만큼이나 대단한 상처들이 곳곳에 보이고 있다. 등 뒤에는 남들이 두 손으로 들어도 힘든 참마도를 반동강내어 도처럼 사용하는 자........ 그리고 저 얼굴한쪽의 긴 검상, 무정이었다.
무정이 지금 요녕성에 와 있었다.
“다시 말해 봐라........”
“ ! ............”
“명각 스님이 뭐 어떻게 되었다고?”
“.................”
뭐라고 했다고 자신에게 시비를 걸줄 알았던 그자는 조용히 숨을 쉰다.
그 중압감이 만만치 않은 자였다. 확실히 뭔가 있기는 있는 자였다. 헌데 명각 스님이라고 한다. 아마 예전에 좀 관계가 있었던 모양이라고 생각하는 신참이었다.
무정은 그의 앞에 조용히 앉았다. 그리고는 그자를 똑바로 본다. 그러자 떠듬거리며 그제서야 입을 여는 그였다.
“하..하남의 소림사에서 누군가 무학스님을 암습했는데, 무위가 보통이 아니라고 하더이다. 헌데 그를 잡는 과정에서 소림의 피해가 대단하다고 했는데 그래서 면벽으로 벌을 받고 일 년 간 조사동에 있었던 명각스님과 청천혜불 덕경스님 밑에서 무공을 수련하던 명경도 다시 강호로 나왔다고 하더이다.”
“뭐! 소림사에서 그런 일이 있었어! 와 그놈 간 큰 놈이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나? 혹 떼거지로 덤빈 것 아니야?”
이야기가 흥미 있었는지 여기저기서 눈을 빛낸다. 자고로 불구경하고 싸움경이 가장 재미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러자 그자는 더욱 신이 나서 말하기 시작했다.
“흠! 그게 단 한명이었다네 한 팔과 한눈이 없는 작은 노인이라는데 무공이 대단해서 얼마 전 명각스님이 강호에 나와 결국 그자를 찾아서 싸웠는데 되려 명각 스님이 다쳤다고 하던데?”
“...............”
무정의 눈이 좁아진다. 명각의 무공수위는 상당하다. 게다가 그는 게으름과는 거리가 멀다. 보지 않았던 근 삼년간 그렇게 놀고 있을 턱이 없는 명각이다. 그런 명각을 부상시킨다?
보통실력은 넘는 것이다. 무정의 입이 열린다.
“그자의 이름이 뭐라 하던가?”
“글쎄 그것이 잘 생각이 .............. 다....다 뭐라고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다래가!”
“아 맞다. 다래가 어 당신이 어떻게 아나?”
무정의 눈이 치떠진다. 다래가가 나타났다. 그것도 소림에 나타나 행패를 부리고 자신의 존재를 각인 시키면서, 뭔가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 있게 나타난 것이다. 삼 년 전 동무진을 통해 아직 다래가가 살아있다는 것을 안 무정이다. 그 이후로 한시도 마음한구석이 편하지 않았던 무정이었다.
결국 현실로 다가왔다. 다래가......... 그가 나타났다. 그렇다면 무정도 더 이상 이곳에 조용히 있을 필요가 없다. 가장 우려한 것, 자신의 동료들을 향해 검날을 들이대는 것을 불안해했던 무정이었다.
“................”
무정이 일어선다. 그리고는 뒤로 돌았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뭔가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철컥.....파캉!”
쇳소리가 들린다. 그의 모습에 다들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무정을 쳐다본다. 여기저기 손을 대는 것 같더니 발에도 손을 댄다. 그때였다.
“적의 기마대가 온다! 모두 방어준비!”
“ ! ”
분분히 일어서는 낭인대였다. 그들이 막사의 출입문을 찢듯이 튀어 나간다. 결국 무정이 서서히 일어나 뒤로 돈다. 그가 맨 마지막이었다. 헌데 그가 마지막이 아니었다. 낭인대주, 그가 남아서 무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왼 어깨의 갑주, 사척이 넘는 참마도, 양팔의 묵빛 수투에 철각반이라..........그대가 귀무혈도 무정이시오?”
“...............”
무정은 그를 향해 조용히 머리를 끄떡인다. 그러자 대주도 같이 끄떡인다.
“역시, 그렇군, 이렇게 정체를 완전히 드러낸 것을 보니 이제 떠날 생각이신가 보구료”
“...............”
무정은 아무 말 없이 막사의 문을 향해 간다. 그런 그의 뒤에서 낭인대주는 그의 널따란 뒷등을 바라고만 있었다. 이윽고 무정이 문을 나서자 그의 입이 열렸다.
“과연 귀무혈도는 동료를 위해서라면 악귀가 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하더니........그 말이 사실이었군....함께했던 소림의 명각이 다쳤다는 소문을 듣자마자 떠난다라.........”
조용히 뇌까리며 문으로 향하는 그였다.
“두두두두두두”
우렁찬 말발굽소리가 뇌리에서 울린다. 저 멀리 근 오십 여장 앞까지 단숨에 쳐 올라오는 하루아족의 기마병들이다. 작은 궁에 커다란 만도를 하나씩 차고 초원의 늑대인양, 그들의 가죽으로 온몸을 두른 그 모습은 흉폭하다 못해 두려움이라는 낮선 단어를 끄집어내게 만들었다.
“제길........진짜 힘들겠군.”
낭인대의 누군가가 말한다. 모두들 뒤에서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 아군과 저쪽이 서로 활을 날린 후, 그들은 전면전을 하게 될 것이다. 고작 오백여 남짓한 아군의 군세다. 이대로 가다간 전멸하게 될 것이다.
“다들 나가지 말고 그대로 있도록,......”
“ ! ”
조용하지만 낮고도 힘찬 음성이 들린다. 낭인대의 눈길이 뒤로 돈다. 그리고는 한껏 커진다.
육척이 넘는 키에 엄청난 근육, 그리고 왼팔의 갑주, 양쪽의 수투. 등 뒤의 참마도 무정이었다. 그동안 무정은 갑주조차 변변히 챙기지 않았다. 헌데 오늘은 완전무장을 하고 나온 것이다. 무정에게서 자연스러운 기세가 흘러 나왔다. 하늘에 맹세코 듣도 보도 못한 엄청난 기세였다.
“그의 말대로 한다. 다들 가만히 뒤에 있어라.”
다시 낭인대주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러자 모두들 무슨 일인가 하는 생각에 무정과 낭인대주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무정은 말에 올랐다. 초우를 조립해 칠척의 참마도로 다시 돌리며 말고삐 움켜쥐고는 그대로 적진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적들이 방심하고 있었다. 백여 명의 궁수를 제외하고는 양쪽으로 기마병이 돌고 있다. 전면이 되려 뚫려버리게 되는 것이다.
“음? 저자는 누군가?”
“어....저자는 두참인이 아닌가?”
정천호와 양백호는 한 인물이 단신으로 쳐들어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말을 타고 칠척의 참마도를 비껴든 채 그대로 적의 기마대 안으로 쳐 들어가고 있다. 양백호의 고개가 갸웃거렸다.
‘두참인이 언제부터 왼팔에 갑주를 끼고 있었지?’
그동안 무정이 완전무장을 한 적을 본적이 없는 양백호였다.
“파아아앗....”
피가 튄다. 그리고 혈무가 솟아오른다. 말에서 내리지도 않는 무정이다.
그의 두 팔이 현란하게 움직인다.
“파파파파파파.......”
혈무가 진해진다. 순식간에 다섯 명의 기마와 병사가 통째로 잘려 나갔다.
눈앞에 열 명 정도가 보인다. 이들만 죽이면 더 이상 기마는 앞에 없다. 어
느 틈에 기마의 장막을 헤치고 들어선 무정이다.
그의 왼손이 들린다. 묵기가 서서히 어리고 있었다. 장심에 묵기가 어리자 어깨 높이로 그대로 들어 올리는 무정이다.
“과아아아아”
묵기의 우산이 펼쳐진다. 흡사 그물을 펼치듯이 방사형으로 뻗어 가나는 묵기였다. 그 묵기의 앞에 놓인 기마병들의 얼굴이 하얗게 변한다. 화살이 그 묵기에 닿자 엉뚱한 방향으로 튕겨 나가기 때문이었다.
삼년간 무정은 전장에서 무공이란 것을 깊히 생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무공중 가장 필요한 것은 역시 묵기의 제어였다. 그 결과 여러형태로 묵기를 쳐 내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를 위해 다시 전장으로 나온 무정이다.
지금의 것도 그중 하나였다. 묵기의 방패, 연속적으로 묵기를 밀어내면서 자신의 반장 앞에 그런 원형의 묵기를 형성시킨다. 그러면 내력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그의 반장 앞에 약 일장여의 크기정도가 되는 공간이 방패처럼 둘러 쳐지게 되었다.
“뭣들하나! 어서 활을 쏴라 활을!”
적장인 듯한 자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댄다. 단숨에 공세에서 수세로 몰린 그들이다. 좌우로 둘러싸기 위해 퍼져 나갔던 이천의 기마병들이 되돌아올 즈음엔 그는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을 것이다. 믿을 것은 오직 눈앞에 궁수 이백여 명 외에는 없었다.
“.............”
무정의 눈이 적장을 본다. 상당한 무장을 하고 있다. 허나 그것은 그저 보이기 위한 무장이다. 실제적인 무장이라면 저렇게 은빛 장신구처럼 빛나는 갑주는 없을 것이다. 즉, 무공이 별로인 적장인 것이다. 무정의 말이 선다. 그가 앞으로 공중제비를 돌며 땅에 내린다. 속전속결이었다.
칙칙한 묵기가 공중으로 퍼져 나간다. 화살은 거의 우박처럼 쏟아지지만 무정은 요지부동이다. 단 한 개의 화살도 무정의 묵빛 막을 뚫고 들어오지는 못한다. 무정의 오른팔이 들린다. 몸과 수직으로 초우를 머리위로 들어 올린다.
“파앗....”
무정의 오른발이 땅을 박찬다. 삼십여 장의 거리를 남겨둔 적장과 무정이다. 무정의 신형이 움직이며 수많은 잔상을 남긴다. 그리고는 십여 장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혀간다.
“ ! ”
적장의 눈이 커진다. 보이지도 않았다. 수십 명으로 불어난 그자가 어느새 십오장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적장의 손이 움직인다. 고삐를 틀어쥐며 뒤로 돌려 하고 있었다.
“우우우우우”
무정의 오른손이 아래에서 위로 쳐 들려진다. 초우가 등 뒤를 지나 앞으로 치달으며 다시 하늘로 들리려 한다. 도신에 엄청난 묵기가 생성되고 있었다. 왼발로 땅을 찍어 신형을 고정하며 그대로 벼락같이 쳐 올리는 무정이다.
“쩌어어어어어엉!”
땅이 갈라진다. 거리는 칠장여, 무정의 검은 묵기가 반월모양으로 지면과 수직으로 세워져 땅을 가르며 날아간다. 과거 국주경처럼 무정도 제대로 된 도기를 날릴 수 있게 된 것이다.
“파아아아아아.......”
적장의 말이 좌우로 갈라진다. 그의 몸도 좌우로 갈라진다. 정확히 두 쪽을 낸 무정의 묵기는 그로부터 삼장 여를 더 가서 소멸했다.
“좌아아아아......”
시체가 나뒹군다. 흥건한 핏물이 메마른 요녕성의 이름 모를 대지를 적신다. 아군도 적군도 그 형상을 보고 그렇게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무정의 전신에서 살기가 폭출한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는 적들이었다.
분분히 뒤로 물러서며 한군데로 모이고 있었다. 비록 적장이 죽었지만 아직 그들은 건재하다. 헌데 함부로 쳐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들의 뇌리에 오이랏트, 우량하족의 이야기가 갑자기 생각났다.
혈귀.........우량하는 혈귀에 의해 거의 멸족했고 오이랏트는 씻을 수 없는 패배를 지닌 채 그렇게 꼬리를 말았다. 단 한사람에게. 감숙의 혈귀 무정에게.........
“혈.....혈귀다. 혈귀다!”
누군가의 입에서 소리가 나왔다. 그러자 분분히 사람들이 말을 돌린다. 상대할 수 없었다. 가장 강성한 오이랏트조차도 그에게는 한수 접는다. 그런 그가 지금 눈앞에 있었다. 전설의 악마가 현신한 것이다.
무정은 말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말고삐를 돌렸다. 비록 죽인 자는 몇 명 되지 않지만 그 결과는 만족한다. 그동안은 묵기의 수련을 위해 일부러 죽이지 않고 적장만 죽여 왔다. 허나 이젠 그럴 필요가 없었다. 떠나야 했기에.........그것도 시급히,
무정은 발의 배를 박찼다. 긴 울음소리와 함께 말이 앞으로 나갔다. 아군에게 향하는 것이 아니었다. 중원, 중원을 향해 다시 달려가는 무정이다.
“..................”
양백호의 얼빠진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낭인대주가 앞으로 그의 앞으로 나서고 있다.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이상한 표정 할 것 없소, 그는 무정이요, 귀무혈도 무정이오. 저 정도의 무위는 당연한 것이오.”
“! 귀무혈도 !”
여기저기서 탄성이 나온다. 당연한 말이다. 당금천하에서 귀무혈도 무정을 모른다면 말이 되지 않는다. 엄청난 무위로 사천, 해남, 광서, 광동, 귀주를 휩쓴 자. 묘하게 그가 지난 곳에는 혈향이 난무하지만 그 혈향의 뒤에서 희망이 남는다. 그는 그런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랬군, 감숙의 혈신이 이곳에 있었군, 허허허 나도 사람 보는 눈이 한참 없구만....”
정천호의 조용한 울림이 터져 나온다. 이제는 회군해야 했다. 그는 떠났다. 더 이상의 전투는 없을 것이다. 하루아족의 이천기마병.......그들의 주력이자 최고의 전투부대이다. 그런 부대의 부대장이 죽었다. 쉽게 도발해 올 수는 없을 것이다. 이제 심양으로 그들은 가야한다. 무정은 중원으로 떠나겠지만........또 하나의 희망이 생겨난 것이다. 요녕의 삭막한 대지위에서,
“철수 준비를 하도록, 모두 떠난다.”
“예,옛 정천호님”
아직도 정신이 나가있는 양백호는 대답하고서도 움직이지 않는다. 진짜 전투가 뭔지 오늘 확실하게 본 양백호였다. 그리고 한사람의 무공이 얼마나 대단한 무위를 떨치게 되는 지 알게 된 양백호였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