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31
미래세대 공적연금 ‘파탄’ 임박…尹, 정치적 부담 각오하고 선제 개혁해야
인구고령화·출산율 저하로 재정불안… 미래세대 ‘비용 부담 → 연금 파기 → 사회적 연대 붕괴’ 현실화 가능성
尹정부, 국민연금 보험료 대폭 높이고 연금개시 연령 늦춰야… 국민·특수직역 연금제도 통합 과제도
현대 복지국가의 제도적 기본 틀의 중심인 공적연금 체계가 흔들린 지 오래다. 공적연금의 재정 지속 가능성 문제가 불거진 지 오래지만, 역대 정부에서는 정치적 부담을 이유로 연금개혁 문제를 외면해왔다. 비용을 모두 미래 세대에 전가했다.
공적연금 개혁은 더 지체할 수 없는 과제다. 차기 정부는 국민의 궁극적 이익을 위해 정치적 부담을 감수함으로써 연금 파탄을 막아야 할 의무가 있다. 윤석열 당선인이 대통령에 취임하면 직접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 공적연금 정상화를 위한 선제적 개혁에 나서야 한다.
◇ ‘사회적 연대’의 원칙
현대 사회보장제도는 산업사회의 등장으로 발생한 다양한 사회적 위험, 예를 들어 실업, 산업재해, 질병 및 퇴직 등에 대해 보호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됐다. 사회적 위험으로 인한 소득 상실에 대처하기 위한 대표적인 정책 중 하나가 사회보험이다.
사회보험은 공통의 사회적 위험에 처한 구성원들이 강제적으로 기여금을 납부하고, 특정 구성원이 사회적 위험에 처할 때 급여를 제공하는 제도다. 세계 최초의 사회보험은 1880년대 비스마르크 시대에 독일이 도입했는데, 현대 복지국가에서 노령, 실업 및 노동능력의 상실로 인한 소득 상실을 완화·방지하는 소득 보장 역할을 주로 담당한다.
사회보험은 단순히 기여금을 적립하고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지급한다는 ‘공제제도’의 차원을 넘어 복지국가의 중요한 이념적 원칙에 근거한다. 사회보험의 중요한 원칙 중 하나는 ‘사회적 연대’의 원칙이다. 공동체 의식을 바탕으로 사회적 위험에 대응하는 것이다.
연대를 통해 위험 분산을 이루고, ‘소득 재분배’와 ‘세대 간 약속’을 통해 국가라는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도록 모두 기여하고 노력한다는 것이 사회보험의 중요한 가치다. 그러므로 사회보험은 대부분 강제 가입 방식이고, 관리 운영의 책임을 국가가 진다. 그만큼 사회보험에서는 정당성과 신뢰성의 확보가 중요한 과제다.
◇ 고질적인 저부담-고급여
사회보험의 주요한 축인 공적연금제도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국민연금과 공무원, 사립학교 교원과 군인을 위한 특수직역연금으로 구성돼 있다. 공적연금은 기본적으로 가입자가 내는 보험료로 급여를 제공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보험료 납부와 급여, 즉 수입과 지출의 균형이 재정 안정성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공적연금은 제도 도입 초기에 ‘저부담-고급여’ 구조로 설계돼 재정적으로 불안정 구조로 출발했다. 또한 최근의 급격한 인구 고령화에 따른 노인인구 증가와 출산율 저하로 인한 생산인구의 감소로 재정적 지속 가능성이 크게 위협받고 있다.
이런 이유로 1998년 1차 제도 개혁 과정에서 소득대체율을 70%에서 60%로 낮추고, 수급연령을 60세에서 65세로 점진적으로 높이는 조치가 취해졌다. 또 2007년 2차 개혁 과정에서 소득대체율을 다시 60%에서 40%로 낮추는 개혁을 단행했으나 여전히 국민연금의 재정 안정화에는 미흡한 실정이다.
가장 최근에는 2018년에 국민연금 보험료를 현행 소득의 9%에서 12~15%로 인상하는 연금 개혁안을 보건복지부가 마련했으나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재검토를 지시한 후 개혁안은 물거품이 됐다. 현재 국민연금은 40년 동안 월 소득의 9%를 보험료로 내면, 은퇴 후에 일할 때 소득의 40%를 연금급여로 받게 돼 있다.
◇ 파탄 직전의 국민연금
문제는 현행대로 국민연금제도를 유지한다면 2057년에는 연금기금이 고갈된다는 것이다. 연금기금이 고갈되는 시점에도 소득대체율 40%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시기에 일하는 미래 세대가 부담해야 하는 보험료는 월 소득의 26.8%에 달하게 된다. 미래 세대의 입장에서는 “왜 우리가 모든 비용을 떠안아야 하느냐”는 문제 제기로 ‘연금 파기’를 감행할 수도 있다. 사회연대의 세대 간 약속의 원칙이 깨지며 국민연금제도가 파탄에 이를 수도 있는 것이다.
특수직역연금도 열악한 재정 상태는 크게 다르지 않다. 공무원연금의 경우 2000년부터 수지 적자가 발생하고 있어 매년 국고 지원을 하고 있다. 급여 지급을 위해 2019년에는 무려 2조 원 이상의 정부 보전금이 투여됐다. 군인연금의 경우도 국고 보전금 지원이 1973년부터 지속해서 이뤄지고 있고, 2019년 국고 보전금 규모는 1조5740억 원에 달했다. 사학연금의 경우 아직 기금의 적자는 발생하고 있지 않지만, 가까운 미래에 수지 적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된다.
연금개혁은 여러 집단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 있어 풀기가 쉽지 않은 문제다. 하지만 공적연금의 불안정성이 미치는 부정적인 사회경제적 파급효과를 생각하면 이제 더는 문제 해결을 미룰 수 없다. 그런 이유로 유럽의 복지 선진국 대부분은 1980년대부터 사회적 합의를 통해 연금개혁을 실현했다. 하지만 정작 미래 세대 부담 가중 문제가 더 심각한 우리는 개혁을 계속 미루고 있다.
◇ 공적연금 정상화 방안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대통령 직속의 공적연금개혁위원회를 설치해 연금 개혁안을 내놓겠다고 공약했다. 공약을 차질없이 추진하기 위해서는 집권 초기에 대통령이 직접 연금개혁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끄는 역할을 자임해야 한다. 국민의 장기적 이익을 위해서는 현재의 정치적 부담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공적연금 재정을 안정시키려면 국민연금의 수지 균형을 위한 보험료 인상이 시급하다. 현행 40% 급여 수준을 유지하려면 보험료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수준인 16% 선까지 높여야 한다. 연금개시연령도 현행 65세에서 67세 수준으로 늦출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과 특수직역연금의 제도 통합도 필요하다. 현재는 공적연금의 제도 내용 및 담당 행정 부서, 전달체계 등이 모두 분절적으로 존재한다. 국민연금과 특수직역연금의 보험료 차이와 급여 수준의 차이, 국가 보전금 규모의 증대 등으로 인해 공적연금 가입자 간 비형평성에 대한 문제 제기도 심각하다.
공적연금 통합화를 위해 제도 내용, 즉 보험료와 급여 형태 및 급여 수준 등의 일원화를 진행하고 이를 담당하는 행정 부서도 일원화해야 한다. 사회보장청(가칭)의 신설을 통해 산발적으로 존재하는 사회보험 및 소득보장제도 등을 통합 운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봉주 /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전 한국사회복지학회장
문화일보
■ 세줄 요약
‘사회적 연대’의 원칙 : 사회보험은 ‘공제제도’ 차원을 넘어 ‘사회적 연대’의 원칙에 입각해 있음. ‘소득 재분배’와 ‘세대 간 약속’을 통해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것이 사회보험의 중요한 가치임.
파탄 직전의 국민연금 : 우리나라 공적연금은 급격한 고령화와 출산율 저하로 재정적 지속 가능성이 위협받고 있음. 미래 세대가 비용 부담에 따른 ‘연금 파기’를 감행하면 사회적 연대의 붕괴를 초래할 수도 있음.
공적연금 정상화 방안 : 윤석열 정부 집권 초기에 대통령이 선제적으로 연금개혁 관련 사회적 합의를 이끄는 역할을 자임해야. 국민의 장기 이익을 위해 현재의 정치적 부담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함.
■ 용어 설명
‘사회적 연대’란 모든 국민이 동등한 복지의 권리를 가진다는 원칙을 전제로 한 공적보험의 정신을 의미함. 즉, 연대는 사회적 위험에 대한 집단적인 대응이며, 전체를 위한 의무와 공동의 책임임.
‘소득대체율’은 연금액이 개인의 생애평균소득의 몇 %가 되는지 보여주는 비율. 월 연금 수령액을 연금 가입 기간의 월평균 소득으로 나눠 구함. 국민연금은 소득대체율 40%를 보장하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