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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월북한 아버지 이야기 ‘영웅시대’, 내가 가진 유일한 초판본”
이영관 기자
2023년 6월 7일 경기도 이천시 부악문원에서 소설가 이문열의 보물에 대해 본지와 진행한 인터뷰./오종찬 기자
입력 2023.06.20. 03:00
업데이트 2023.06.20. 07:34
소설가 이문열은 “문학을 하겠다고 결심해 본 적은 없고, 하다 보니 직업이 됐다. 운이 좋아 글만 쓰고 살 수 있었다”며 “책을 읽은 100명이 모두 좋아하는 작가는 없다고 생각하며 쓴다”고 말했다./오종찬 기자
소설가 이문열은 “문학을 하겠다고 결심해 본 적은 없고, 하다 보니 직업이 됐다. 운이 좋아 글만 쓰고 살 수 있었다”며 “책을 읽은 100명이 모두 좋아하는 작가는 없다고 생각하며 쓴다”고 말했다./오종찬 기자
문단을 대표하는 소설가 이문열(75)의 이름은 한국 전쟁이란 비극에서 탄생했다. 본명은 ‘열(烈)’. 6·25 전쟁 때 홀로 월북한 아버지가 ‘열렬한 사회주의 투사가 돼라’며 지은 이름이다. 어머니와 5남매는 ‘빨갱이 가족’이라는 딱지를 오랫동안 뗄 수 없었다. 1979년 등단하며 이름 앞에 ‘문(文)’자를 추가한 필명을 쓴 이유다. 게다가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 운동과 관련해 ‘홍위병을 돌아보며’란 칼럼을 썼다는 이유로 2001년 자신의 책이 불타는 ‘장례식’을 지켜봐야 했다. 그의 출생과 작품적 성공, 고난으로 이어지는 삶은 한국 현대사의 질곡을 그린 초상과 같다.
“가장 절실했던 아버지의 월북 이야기”
이달 초 작업실 겸 주거 공간인 경기도 이천시 부악문원에서 이문열을 만났다. 귀향을 꿈꾸며 경북 영양군에 지은 집이 작년 불탄 뒤로 이곳에서 줄곧 지내고 있다. 그는 “물건을 잘 보존하지 못하는 편이지만, ‘영웅시대’ 초판은 있다”며 책을 책장에서 꺼내 보였다. 유일하게 보관하고 있는 자신의 책 초판본이다. 작년 불탄 고향집에 일부 책과 물건을 옮겨둔 탓에, 남아 있는 수가 더욱 줄었다.
지난 7일 경기도 이천시 부악문원에서 만난 소설가 이문열./ 오종찬 기자
지난 7일 경기도 이천시 부악문원에서 만난 소설가 이문열./ 오종찬 기자
1984년 출간된 ‘영웅시대’는 이문열이 자신의 가족사를 본격적으로 다룬 첫 소설이다. 6·25 전쟁 시기 월북해 이념적 갈등을 겪는 주인공 ‘이동영’, 그리고 남측에서 ‘빨갱이’란 딱지로 인해 고초를 겪는 그의 가족 이야기를 교차해 보여 준다. 이문열은 “아버지는 항상 제게 피해나 억압을 준 기억으로 남아 있다”며 “제 삶을 완전히 비틀어 놓은 아버지의 월북이 그때의 제게 절실했기 때문에 쓴 것”이라고 했다. 그는 서울에서 태어났으나 아버지 월북 이후 영양, 안동, 밀양을 비롯해 유년 시절 전국을 떠돌았다. 주거지를 옮기거나, 북의 아버지 소식이 끊길 때 등 수시로 정부의 감시를 받아야 했다. 국민학교 시절 3~4개월 동안 고아원에 머무르기도 했다. “추위도 견디기 힘들어, 거의 수용소 같은 곳이었다. 고아원엔 저처럼 월북자의 아이도 많았고, 부모가 있어도 신세 지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 당시엔 흔한 일이었다.”
1998년 이문열이 받은 부친의 편지.
1998년 이문열이 받은 부친의 편지.
이문열은 끝내 아버지와 만나지 못했다. 아버지로부터 1987년과 1998년 두 차례에 걸쳐 편지를 받았다. 편지에서 그의 아버지는 “사회주의는 나의 실존이다” “네가 미국에 대해서 아무런 반감이 없는 것에 대해서 걱정한다”처럼 신념에 대해 말하는 한편, “(네 누나) 허리가 성치 못한 걸 보고 왔는데 괜찮냐”와 같은 가족에 대한 걱정을 담았다. 작가는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 앞으로 “아버지를 만나볼 수 있도록 방북을 허용해 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1999년 아버지를 중국 연길에서 만나려고 시도했으나, 아버지가 그해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 “편지는 안기부에서 가져갔다. (1998년은) 아버지가 팔순이 넘었을 땐데, 편지에 문장이 아주 짱짱하더라. 누나 건강만 물어서 어머니가 굉장히 화를 내긴 했다. 내가 곧 그 나이를 앞두고 있다. 아버지를 이해 못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책상엔 ‘영웅시대’가 종이에 출력된 채로 놓여 있었다. 개정판 출간을 위해 작업 중이다. “내가 전해 듣거나 기록으로 본 것들을 바탕으로 썼는데, 북한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을 때라 틀린 게 많다. 부끄러워 고치려고 한다.”
소설 ‘오디세이아 서울’의 주인공 만년필
지난 7일 경기도 이천시 부악문원에서 만난 소설가 이문열./ 오종찬 기자
지난 7일 경기도 이천시 부악문원에서 만난 소설가 이문열./ 오종찬 기자
이문열은 30년 가까이 ‘금장 몽블랑 만년필’을 보관하고 있다. “악필이어서 컴퓨터로 작업한다”는 작가가 이 만년필을 버리지 않는 이유는, 자신의 소설 ‘오디세이아 서울’의 주인공이기 때문. 조선일보에 1992년 연재됐고, 이듬해 책으로 출간됐다. 여러 사람에게 전해지는 만년필의 눈을 통해 1990년대 초 서울의 몰락하는 중산층, 그리고 하층민들의 삶을 풍자적으로 그려냈다. “당시 공항에서 400달러짜리 금장 몽블랑 만년필을 보곤 과도기적 성격의 시대를 그려내려고 했다. 당시는 정치적 민주화는 이뤄져 급한 혼란에서 빠져 나왔지만, 기형적이었다. 마치 ‘오디세이아’에 나오는 바다처럼 거칠었다.” 책을 낸 다음 몽블랑 본사에서 만년필을 선물했다고 한다.
‘영웅시대’ 초판본과 금장 몽블랑 만년필. /오종찬 기자
‘영웅시대’ 초판본과 금장 몽블랑 만년필. /오종찬 기자
‘만년필이 지금 시대를 보면 뭐라고 할 것 같냐’는 질문에 작가는 “세상 많이 변했다고 말할 거다”라고 했다. “지금은 그때로부터 거의 한 세대가 지났다. 물론 과도기는 넘어섰으나, 여전히 하나의 문화적 형태를 갖추진 못했다. 대만 불씨도 남았고 남북한 문제도 여전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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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물 순 있어도 살지는 말라”
작가는 1985년 이곳에 집을 지어 살기 시작했고, 1998년부턴 부악문원을 열어 문인들이 쉬고 배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 왔다. 작가는 “여긴 40년 가까이 살았지만 고향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고향은 다른 사람과 연관을 짓는 곳이다. 제자들도 다른 데에서 왔고…그러나 이젠 이곳에서 종생을 할까 생각 중이다”라고 했다.
그의 서재에서는 2001년 ‘책 장례식’이 열린 마당이 한눈에 들어온다. 시민단체를 정권의 ‘홍위병’에 비유한 칼럼에서 작가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 수십 명이 그의 책 수백 권을 관의 형태로 묶었고, 이곳에 가져와 불태웠다. 작가는 그 장소를 기억한다. 부악문원을 둘러보던 중, 불에 탄 재가 남아 있었다던 장소에 다다라 말했다. “그때 일은 여전히 충격적이다. 그날엔 차마 보지 못했지만, 그 장소를 여전히 기억한다.”
서재를 떠나려던 때, 입구에 걸린 ‘가류헌’(可㽞軒)이란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지인으로부터 수십년 전 선물받은 것. 그는 “서재를 보면 알겠지만, 사람 살 만한 공간은 아니다. ‘머물 순 있어도 살지는 말라’는 뜻인데, 고향집이 불탔으니 앞으로도 이곳을 떠나지 못하게 됐다”며 웃었다. 책 화형식, 불에 탄 고향집에 대해 말하면서도 작가의 표정은 밝았다. “한동안 건강이 안 좋았는데, 이제야 좀 괜찮아졌다. 여기 심은 소나무는 1997년 심은 건데 벌써 이렇게 컸다.” 고개를 들어도 꼭대기가 보이지 않는 소나무 두 그루가 그곳에 있었다.
애모별
2023.06.20 06:32:27
부악문원의 서적 방화 사건은...시민단체를 빙자한 종북좌파 홍위병들의 방화테러였으며...이 자들의 악랄하고 광기어린 악행은...허위날조 선동/불법 시위 난동 등현재에도 계속되고 있지. 이문열 작가의 작품은...항상...객관적이면서도 따뜻한 휴머니즘이 깔려 있는...감동과 여운을 남겨주곤 했다. 종북좌파들은...황석영/조정래 등을 앞세워...이문열에 대항하려 했으나...마치...독수리와 생쥐를 비교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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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노을
2023.06.20 08:38:23
지금도 홍위병들이 들끓고 있지요.
tiger kang
2023.06.20 06:08:22
해방이후 최고의 작가!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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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신사
2023.06.20 06:21:52
동시대를 살아온 사람으로서 공산주의자가 안 된 것이 참으로 신기하고 귀감이다. 이문열의 책은 읽은적은 없지만 "뮤지컬 연출가 박칼린의 성장과정을 쓴 글( 추정컨데) 을 오래전에 읽은적이 있었다. 글쎄! 적(?) 을 증오하지 않는 마음을 들어내지 않는 성숙한 한 인간성을 보면서 세상엔 참 많은 유형의 인간이 혼재해서 살안다는 걸 새삼 느낀다. 이시대 혼돈하고 있는 젊은이들을 위하여 좋은 글 써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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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주자
2023.06.20 06:48:25
제 친구 중에도 육이오 때 보리밥 한그릇...남은 아내 허기진 배를 생각하여 미쳐 다 드시지 못하고 너부렁재 넘어 북으로 가신 아버지를 둔 친구가 있습니다.그리고 그의 모친은 일평생 너부렁재 고개 넘어 오시지 않을까..기다리다가 몇년전 돌아가시고 이제 친구 삼촌이 90 줄에 치매가 오셨지만..우리행님 언제오나 너부렁재 넘어오지 갈때처럼 다시오소 내죽기전에 다시오소 ...행님아 행님아..너부렁재 넘어 다시오소!,,,하시면서 삽니다. 이작가님은 그래도 보수의 깃발을 손에 놓치 아니하신점 높이 높이 존경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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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월북한 아버지 이야기 ‘영웅시대’, 내가 가진 유일한 초판본”
이영관 기자
2023년 6월 7일 경기도 이천시 부악문원에서 소설가 이문열의 보물에 대해 본지와 진행한 인터뷰./오종찬 기자
입력 2023.06.20. 03:00
업데이트 2023.06.20. 07:34
소설가 이문열은 “문학을 하겠다고 결심해 본 적은 없고, 하다 보니 직업이 됐다. 운이 좋아 글만 쓰고 살 수 있었다”며 “책을 읽은 100명이 모두 좋아하는 작가는 없다고 생각하며 쓴다”고 말했다./오종찬 기자
소설가 이문열은 “문학을 하겠다고 결심해 본 적은 없고, 하다 보니 직업이 됐다. 운이 좋아 글만 쓰고 살 수 있었다”며 “책을 읽은 100명이 모두 좋아하는 작가는 없다고 생각하며 쓴다”고 말했다./오종찬 기자
문단을 대표하는 소설가 이문열(75)의 이름은 한국 전쟁이란 비극에서 탄생했다. 본명은 ‘열(烈)’. 6·25 전쟁 때 홀로 월북한 아버지가 ‘열렬한 사회주의 투사가 돼라’며 지은 이름이다. 어머니와 5남매는 ‘빨갱이 가족’이라는 딱지를 오랫동안 뗄 수 없었다. 1979년 등단하며 이름 앞에 ‘문(文)’자를 추가한 필명을 쓴 이유다. 게다가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 운동과 관련해 ‘홍위병을 돌아보며’란 칼럼을 썼다는 이유로 2001년 자신의 책이 불타는 ‘장례식’을 지켜봐야 했다. 그의 출생과 작품적 성공, 고난으로 이어지는 삶은 한국 현대사의 질곡을 그린 초상과 같다.
“가장 절실했던 아버지의 월북 이야기”
이달 초 작업실 겸 주거 공간인 경기도 이천시 부악문원에서 이문열을 만났다. 귀향을 꿈꾸며 경북 영양군에 지은 집이 작년 불탄 뒤로 이곳에서 줄곧 지내고 있다. 그는 “물건을 잘 보존하지 못하는 편이지만, ‘영웅시대’ 초판은 있다”며 책을 책장에서 꺼내 보였다. 유일하게 보관하고 있는 자신의 책 초판본이다. 작년 불탄 고향집에 일부 책과 물건을 옮겨둔 탓에, 남아 있는 수가 더욱 줄었다.
지난 7일 경기도 이천시 부악문원에서 만난 소설가 이문열./ 오종찬 기자
지난 7일 경기도 이천시 부악문원에서 만난 소설가 이문열./ 오종찬 기자
1984년 출간된 ‘영웅시대’는 이문열이 자신의 가족사를 본격적으로 다룬 첫 소설이다. 6·25 전쟁 시기 월북해 이념적 갈등을 겪는 주인공 ‘이동영’, 그리고 남측에서 ‘빨갱이’란 딱지로 인해 고초를 겪는 그의 가족 이야기를 교차해 보여 준다. 이문열은 “아버지는 항상 제게 피해나 억압을 준 기억으로 남아 있다”며 “제 삶을 완전히 비틀어 놓은 아버지의 월북이 그때의 제게 절실했기 때문에 쓴 것”이라고 했다. 그는 서울에서 태어났으나 아버지 월북 이후 영양, 안동, 밀양을 비롯해 유년 시절 전국을 떠돌았다. 주거지를 옮기거나, 북의 아버지 소식이 끊길 때 등 수시로 정부의 감시를 받아야 했다. 국민학교 시절 3~4개월 동안 고아원에 머무르기도 했다. “추위도 견디기 힘들어, 거의 수용소 같은 곳이었다. 고아원엔 저처럼 월북자의 아이도 많았고, 부모가 있어도 신세 지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 당시엔 흔한 일이었다.”
1998년 이문열이 받은 부친의 편지.
1998년 이문열이 받은 부친의 편지.
이문열은 끝내 아버지와 만나지 못했다. 아버지로부터 1987년과 1998년 두 차례에 걸쳐 편지를 받았다. 편지에서 그의 아버지는 “사회주의는 나의 실존이다” “네가 미국에 대해서 아무런 반감이 없는 것에 대해서 걱정한다”처럼 신념에 대해 말하는 한편, “(네 누나) 허리가 성치 못한 걸 보고 왔는데 괜찮냐”와 같은 가족에 대한 걱정을 담았다. 작가는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 앞으로 “아버지를 만나볼 수 있도록 방북을 허용해 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1999년 아버지를 중국 연길에서 만나려고 시도했으나, 아버지가 그해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 “편지는 안기부에서 가져갔다. (1998년은) 아버지가 팔순이 넘었을 땐데, 편지에 문장이 아주 짱짱하더라. 누나 건강만 물어서 어머니가 굉장히 화를 내긴 했다. 내가 곧 그 나이를 앞두고 있다. 아버지를 이해 못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책상엔 ‘영웅시대’가 종이에 출력된 채로 놓여 있었다. 개정판 출간을 위해 작업 중이다. “내가 전해 듣거나 기록으로 본 것들을 바탕으로 썼는데, 북한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을 때라 틀린 게 많다. 부끄러워 고치려고 한다.”
소설 ‘오디세이아 서울’의 주인공 만년필
지난 7일 경기도 이천시 부악문원에서 만난 소설가 이문열./ 오종찬 기자
지난 7일 경기도 이천시 부악문원에서 만난 소설가 이문열./ 오종찬 기자
이문열은 30년 가까이 ‘금장 몽블랑 만년필’을 보관하고 있다. “악필이어서 컴퓨터로 작업한다”는 작가가 이 만년필을 버리지 않는 이유는, 자신의 소설 ‘오디세이아 서울’의 주인공이기 때문. 조선일보에 1992년 연재됐고, 이듬해 책으로 출간됐다. 여러 사람에게 전해지는 만년필의 눈을 통해 1990년대 초 서울의 몰락하는 중산층, 그리고 하층민들의 삶을 풍자적으로 그려냈다. “당시 공항에서 400달러짜리 금장 몽블랑 만년필을 보곤 과도기적 성격의 시대를 그려내려고 했다. 당시는 정치적 민주화는 이뤄져 급한 혼란에서 빠져 나왔지만, 기형적이었다. 마치 ‘오디세이아’에 나오는 바다처럼 거칠었다.” 책을 낸 다음 몽블랑 본사에서 만년필을 선물했다고 한다.
‘영웅시대’ 초판본과 금장 몽블랑 만년필. /오종찬 기자
‘영웅시대’ 초판본과 금장 몽블랑 만년필. /오종찬 기자
‘만년필이 지금 시대를 보면 뭐라고 할 것 같냐’는 질문에 작가는 “세상 많이 변했다고 말할 거다”라고 했다. “지금은 그때로부터 거의 한 세대가 지났다. 물론 과도기는 넘어섰으나, 여전히 하나의 문화적 형태를 갖추진 못했다. 대만 불씨도 남았고 남북한 문제도 여전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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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1985년 이곳에 집을 지어 살기 시작했고, 1998년부턴 부악문원을 열어 문인들이 쉬고 배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 왔다. 작가는 “여긴 40년 가까이 살았지만 고향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고향은 다른 사람과 연관을 짓는 곳이다. 제자들도 다른 데에서 왔고…그러나 이젠 이곳에서 종생을 할까 생각 중이다”라고 했다.
그의 서재에서는 2001년 ‘책 장례식’이 열린 마당이 한눈에 들어온다. 시민단체를 정권의 ‘홍위병’에 비유한 칼럼에서 작가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 수십 명이 그의 책 수백 권을 관의 형태로 묶었고, 이곳에 가져와 불태웠다. 작가는 그 장소를 기억한다. 부악문원을 둘러보던 중, 불에 탄 재가 남아 있었다던 장소에 다다라 말했다. “그때 일은 여전히 충격적이다. 그날엔 차마 보지 못했지만, 그 장소를 여전히 기억한다.”
서재를 떠나려던 때, 입구에 걸린 ‘가류헌’(可㽞軒)이란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지인으로부터 수십년 전 선물받은 것. 그는 “서재를 보면 알겠지만, 사람 살 만한 공간은 아니다. ‘머물 순 있어도 살지는 말라’는 뜻인데, 고향집이 불탔으니 앞으로도 이곳을 떠나지 못하게 됐다”며 웃었다. 책 화형식, 불에 탄 고향집에 대해 말하면서도 작가의 표정은 밝았다. “한동안 건강이 안 좋았는데, 이제야 좀 괜찮아졌다. 여기 심은 소나무는 1997년 심은 건데 벌써 이렇게 컸다.” 고개를 들어도 꼭대기가 보이지 않는 소나무 두 그루가 그곳에 있었다.
이영관 기자
이영관 기자
조선일보 이영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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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모별
2023.06.20 06:32:27
부악문원의 서적 방화 사건은...시민단체를 빙자한 종북좌파 홍위병들의 방화테러였으며...이 자들의 악랄하고 광기어린 악행은...허위날조 선동/불법 시위 난동 등현재에도 계속되고 있지. 이문열 작가의 작품은...항상...객관적이면서도 따뜻한 휴머니즘이 깔려 있는...감동과 여운을 남겨주곤 했다. 종북좌파들은...황석영/조정래 등을 앞세워...이문열에 대항하려 했으나...마치...독수리와 생쥐를 비교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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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노을
2023.06.20 08:38:23
지금도 홍위병들이 들끓고 있지요.
tiger kang
2023.06.20 06:08:22
해방이후 최고의 작가!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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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신사
2023.06.20 06:21:52
동시대를 살아온 사람으로서 공산주의자가 안 된 것이 참으로 신기하고 귀감이다. 이문열의 책은 읽은적은 없지만 "뮤지컬 연출가 박칼린의 성장과정을 쓴 글( 추정컨데) 을 오래전에 읽은적이 있었다. 글쎄! 적(?) 을 증오하지 않는 마음을 들어내지 않는 성숙한 한 인간성을 보면서 세상엔 참 많은 유형의 인간이 혼재해서 살안다는 걸 새삼 느낀다. 이시대 혼돈하고 있는 젊은이들을 위하여 좋은 글 써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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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주자
2023.06.20 06:48:25
제 친구 중에도 육이오 때 보리밥 한그릇...남은 아내 허기진 배를 생각하여 미쳐 다 드시지 못하고 너부렁재 넘어 북으로 가신 아버지를 둔 친구가 있습니다.그리고 그의 모친은 일평생 너부렁재 고개 넘어 오시지 않을까..기다리다가 몇년전 돌아가시고 이제 친구 삼촌이 90 줄에 치매가 오셨지만..우리행님 언제오나 너부렁재 넘어오지 갈때처럼 다시오소 내죽기전에 다시오소 ...행님아 행님아..너부렁재 넘어 다시오소!,,,하시면서 삽니다. 이작가님은 그래도 보수의 깃발을 손에 놓치 아니하신점 높이 높이 존경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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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밭
2023.06.20 06:32:48
민족의 비극의 주인공이며 우리민족의 영원한 작가 이문열님 존경합니다.
답글작성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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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그래
2023.06.20 06:53:57
한반도는 세계 그 어느곳보다 치열한 사상의 전쟁터다. 지금도 사상전쟁으로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아이러니한 국가가 대한민국이다. 치열한 알력 가운데 탄력성있는 경제대국이 되었다. 지금은 국방,과학, 물류 등 모든면에서 초일류를 추구하고 개척하는 나라이지만 정치는 3류에도 미치지 못하는 미스테리의 나라이기도하다. 작가의 삶도 이런 국가의 운명을 개인사로써 그대로 보여준다. 사상전쟁에서 자유롭지못한 환경이지만 국가적 보배같은 작가가 되었다. 어려운 환경이 더욱 다양한 인생의 경험과 내면을 꿰?b어보는 혜안이 작용했으리라 여겨진다. 굴곡진 인생 비뚤어지지 않았고 바르게 살아온 삶이 대견합니다. 분단된 갈등 그러나 자유대한민국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이기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면서 아무튼 여러가지로 위대한 우리 사회입니다. 멋있는 예술적 인생으로 각인되기를 바랍니다.
답글작성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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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사
2023.06.20 07:12:42
사이비가 판치는 혼돈의 시대에 진정한 양심이자 선구자 입니다.
답글작성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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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바른소리
2023.06.20 07:30:26
그 때의 홍위병 지적은 30년이 지나서야 진실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 나라 좌익의 전성기인 문재인 정권을 지나 보고서야…! 시간을 앞서 가는 혜안을 존경합니다.
답글작성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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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링
2023.06.20 07:18:28
이문열 선생님! 존경합니다.
답글작성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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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남
2023.06.20 06:50:34
나는 살아 있을 때는 황석영이 더 많이 읽히고 있지만 세월이 지나면 이문열을 읽는 사람이 더 많아질거라고 생각한다.
답글작성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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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yking
2023.06.20 07:32:38
1940년대, 1950년대 많은 지식인들은 사회주의, 공산주의 꿈꿨다. 그리고 지금도 선전과 선동에 의하여 집권한 다음에 영구집권을 노리는 이상한 집단의 사람들이 살아있고, 상당수 지각없는 떨거지들이 이들을 추종하는 데, 그 근본원인에는 우리에게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DNA가 없다는 사실이다. 미군정과 이승만이 없었다면 진작에 중국처럼, 베트남처럼 공산화되었을 것이다. 과거과거제도가 실시된 중국, 베트남, 조선 중에서 조선의 반토막에만 자유민주주의가 심어져 있다는 사실을 지식인들은 모두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지식인들이 침묵해도 그냥 자유민주주의가 그냥 살아있으리라고 가볍게 생각해서는 아니된다. 무지몽매한 자들이야 공산주의가 되든, 사회주의가 되든 무슨 상관이냐마는 자유롭게 생각하던 사람들은 그 이념에 적응하는데 많은 고통이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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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이어
2023.06.20 07:47:44
저도 젊었던 날에 이문열작가님의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존경합니다. 만수무강하시어 좋은 글을 더 많이 생산하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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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이어
2023.06.20 07:50:00
저도 6.25 전쟁때, 백부. 산촌이 전사하시고 홀로 살아 나오신 선친의 화랑무공훈장을 가지고 소꿉장난했던 시절을 글로 남기고 싶었으나, 마음속에 잠재우기로 했습니다.
MayFerry
2023.06.20 07:59:29
사진으로 미루어 본래의 안색을 거의 회복한 것같아 안심이 됩니다. 일도 좋지만 부디 건강에도 유념하여 오래 살아야 합니다. 이 나라는 아직 당신의 글이 더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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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w4147
2023.06.20 08:02:42
진정한 작가는 이문열씨 존경합니다 더구나 우리나라같은 풍토에서는 정말 필요한 분입니다 비교될수없는 분이시죠 오래사시어 공산주의자들을 꾸짖어 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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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코드
2023.06.20 08:23:45
글은 글쓴이의 자식이라 할 수 있는데 그 책을 대낮에 불태우다니...참으로 몰지각하고 야만적인 인격 살인적인 행위였다. 그 때 나는 정말 슬펐다. 속히 치유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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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인자중 금조미명
2023.06.20 08:06:20
자전적 소설 '변경'을 통해서 작가의 삶을 읽었습니다. 황석영과 대비되는 문학작품을 통해서도 작가의 정신세계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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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갓맨
2023.06.20 08:05:29
아버지가 공산주의자인 사람중에 자식이 주사파가되지 않은 사람은 손 꼽을 정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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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ny
2023.06.20 07:46:16
공산주의자 얘기로 반공사성을 강화한 내용으로 업데이트바랍니다. 아직도 사회주의 공산주의가 좋다면서 얼빠진 소리를 하는 인간들을 깨우치는 ?R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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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onagae
2023.06.20 08:58:24
공산주의란, 대책없이 자기보다 잘사는 사람을 미워하고 증오하는 인간본성의 한갈래를 확장하는 인격미완성의 집합체이다. 자기보다 우월한 삶을 사는이들을 증오하기보다, 자신의 능력을확장 시켜, 이를 극복하는 과정이 인생의 여정에서 필요한데, 공산주의는 그러지말고, 꼴리는대로 잘사는 이들을 증오해야한다고, 이세상의 불평등은 부자의 존재로 인해 왜곡되었다고 믿으려한다. 그러면 근면,협동, 성실,기도 등 인간의 선에대한의지는 무슨 필요가 있단 말인가? 공산주의의 본질은 증오, 인간존재의 불평등에 대한 거부 를 증폭하는 치기어린 심리학이다. 이문열 작가의 글을 두루 읽었을 때, 공산주의에 대한 인간의 기대와 실망,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인간의 희망을 보았다. 인간이 공산주의라는 저급한 3류심리학에 선동되는 것은 인류의 미래 에 대한 포기, 인간의 자유의지 부재에 동조하는 것이다. 인류의 미래에 희망과 기대를 저버리지 않음이 문학의 존재 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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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2
2023.06.20 08:41:08
내가 가장 좋아하는 현대작가, 79년 12월에 첫 휴가를 나와서 읽었던 '사람의 아들'의 기억이 아직도 선합니다. 이후 좌파 같지도 않은 엉터리 좌파들이 이작가를 매도하던 어둠의 기억도... 이작가의 마지막 대작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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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rking
2023.06.20 09:01:07
'영웅시대' 개정판 출간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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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2023.06.20 08:45:59
옛날 30대 초반 시절의 그를 어떤 문학강연회에서 본 적이 있다. 사람의 아들로 한창 줏가를 올리던 시절이었음에도 아직 쓰는 시간보다 읽는 시간이 훨씬 많다는 말이 아직 기억에 남는다. 타고난 필력에 엄청난 독서력... 최인훈과 함께 해방 이후 최고의 작가라고 감히 단언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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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로
2023.06.20 08:40:00
우리시대 지식인들이 체험한 해방 이후의 삶에 대해 자주 전해 주시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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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달이
2023.06.20 08:58:04
이문열 작가 항상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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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잎사랑
2023.06.20 08:51:48
이상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을 아직 껏 보지 못했기 때문에 작가님의 아버지의 이상향은 끝내 물거품이었나 봅니다. . . 어이없는 책 화형식을 신문에서 봤을 때 작가님의 양심을 변심으로 본 홍위병들의 황당한 굿으로만 보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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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돔
2023.06.20 08:32:49
이문열 소설 몇권만 읽었는데 나의 유년기 글쓰기 실력은 놀랍게 업그레이드 된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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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
2023.06.20 09:09:18
방화사건은 전혀 맘에 두지 마시길 그건 종북 간첩들이 북의 지시로 한 테러입니다. 북괴에 분노는 할지언정 마음에 상처는 받지 마시길 바람니다 .이작가님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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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1
2023.06.20 08:15:51
데미안을 읽는 줄 알았어. ㅋㅋㅋ 표절시비는 니들끼리 하고. 독자로서는 특별한 말재간둥이라고 인정해 줄만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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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렙
2023.06.20 09:06:05
어째 생각이 머리가 이 정도 밖에 안 될까. 참 딱하다.
어린어부
2023.06.20 09:15:43
인민들의 천국 지상낙원이라는 감언이설에 속아서 월북하고 아직도 대한민국에서 북한 사회주의를 찬양하는 어리석은 인민들...지금 북한은 철저한 사회통제 속에 자유를 잃고 굶어 죽는 아사자가 차고 넘친다.. 종북주의자 들은 하루 빨리 북으로 가서 민주화 운동하여 굶어 죽는 북한 인민을 살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