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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일
방주를 지으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창 6:13, 14)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방주의 정확한 치수와 방주의 건조에 관한 세부 사항을 분명하게 지시하셨다. 인간의 지혜로는 그처럼 튼튼하고 견고한 구조물을 설계할 수 없었다. 하나님은 설계자이고 노아는 도편수였다. 물에 뜰 수 있는 배처럼 만들었지만 어떤 면에서 방주는 건물에 더 가까운 모습이었다. …방주에 사용된 재료는 수백 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 사이프러스 즉 고페르 나무였다. 이 거대한 구조물의 건조는 느리고 힘겨운 과정이었다(부조, 92-95).
그 당시 살았던 인류는 키가 크고 놀라운 힘을 지녔다. 나무들도 엄청나게 컸을 뿐 아니라 오늘날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훨씬 멋지고 균형도 잘 잡혀 있었다. 목재는 결이 매끄럽고 돌처럼 단단했다. 그 당시 인류는 힘이 셌지만 건축에 쓸 목재를 준비하려면 오늘날 퇴화하여 약해진 세대가 현재 자라고 있는 나무로 건축을 준비할 때보다 훨씬 많은 시간과 수고가 필요했다(영적선물 3권, 61).
목재 하나하나는 정확히 들어맞았고 이음매마다 역청을 발랐다. 완벽한 작업을 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전부 쏟아부었지만 그럼에도 거칠고 성난 파도에서 이 건조물을 기적적인 능력으로 보호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뿐이었다(살아, 64).
므두셀라와 그의 자여손들은 방주를 지을 당시까지 생존했다. 그들은 몇몇 다른 이들과 함께 노아에게 지시를 받았고 방주를 짓는 데 힘을 보탰다(영적선물 3권, 59, 60).
노아가 세상에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면서 진행한 작업은 그의 진실성을 입증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그의 믿음은 온전하고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믿는 모본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 주었다. 그는 가진 것 모두를 방주에 쏟아부었다. …방주를 짓는 망치 소리가 사람들에게 증언처럼 울려 퍼졌다(부조, 95).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한국연합회 세계선교본부(Adventist Mission)
세계 선교를 위해 봉사하는 26개국 100여 선교사 가정과 개인을 위해
2월 2일
안전한 내부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창 7:1)
노아는 하나님께 받은 지시를 성실하게 따랐다. 방주의 각 부분을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마무리했고 인간과 짐승에게 필요한 식량을 실었다. 하나님의 종은 이제 마지막으로 사람들에게 엄숙하게 호소했다. 말할 수 없이 애타는 심정으로 그는 아직 기회가 있을 때 피난처를 찾으라고 애원했다. 또다시 그들은 노아의 말을 거절했고 농담과 비웃음의 목소리를 높였다. 무리의 조롱 소리가 갑자기 멎었다. 가장 사나운 맹수부터 가장 온순한 동물까지 온갖 종류의 짐승이 산과 숲에서 나와 조용히 방주로 향하는 모습이 보였다. 휘몰아치는 바람 소리가 들리더니 새들이 사방에서 방주로 날아들어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으며 질서 정연하게 방주 안으로 들어갔다. 짐승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지만 사람들은 불순종했다(부조, 97, 98).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기별을 너무나 오랫동안 거절하고 부인해 왔기에 짐승들이 숲속에서 나와 방주의 문으로 향하고 노아가 짐승들을 안으로 들이는 모습을 보면서도 무덤덤했다(편지 108, 1896.).
악한 인류를 향한 자비의 호소가 그쳤다. 들판의 짐승과 창공의 새들은 피난처로 들어갔다. 노아와 가족들은 방주 안에 있었다.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시니라.” …내부에서 닫을 수 없는 육중한 문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서서히 원래의 자리로 움직였다. 노아는 문안에, 하나님의 자비를 거절한 이들은 문밖에 있었다. 하늘의 인장이 문에 찍힌 것이다. 하나님께서 문을 닫으셨고 하나님만이 문을 열 수 있으셨다. 그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하늘 구름 가운데 오시기 전 죄인을 위한 자신의 중보를 끝내실 때도 자비의 문이 닫힐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더 이상 악인들을 제지하지 않으며 사탄은 자비를 거절한 이들을 완전히 장악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죽이려고 하지만 노아가 방주 안에 있었듯 의인들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받을 것이다(부조, 98).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태영/전주은 선교사 부부(서인도네시아)
더 많은 인도네시아 청년이 1000명선교사 운동에 지원할 수 있도록
2월 3일
7일 뒤
“칠 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이니”(창 7:10)
노아와 가족들이 방주에 들어간 뒤 7일이 지났지만 폭풍의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 기간에 그들의 믿음은 시험받았다. 밖에 있는 이들에게는 이 기간이 환호의 시간이었다. 지연이 확실해지자 그들은 노아의 메시지가 사기이며 홍수는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더욱 굳게 믿었다. 엄숙한 광경을 목격하고서도…그들은 계속해서 농담을 지껄이며 흥청거렸고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징조들을 비웃기까지 했다. 그들은 방주 둘레로 모였고 안에 있는 이들을 조롱하며 전에 없이 대담한 폭력을 감행했다(부조, 98, 99).
7일이 지나자 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것은 새로운 광경이었다. 사람들은 구름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곧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사람들은 이것을 전혀 놀랍지 않은 일로 치부하려고 했다. …얼마 동안은 땅이 비를 흡수했지만 곧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날이 갈수록 수위는 점점 높아졌다. 매일 아침 사람들은 계속 쏟아지는 비에 절망적으로 서로를 쳐다보았고, 매일 밤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어.”라는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영문 시조, 1901. 4. 10.).
사람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지은 것이 무너지는 모습을 처음으로 목격했다. 웅장한 건물, 화려한 정원, 우상을 세워 놓은 수풀이 벼락을 맞아 파괴됐고 그 잔해가 넓게 흩어졌다. …사람과 짐승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공포를 느꼈다. 으르렁거리는 광풍 위로 하나님의 권위를 멸시했던 이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그 끔찍한 시간에 이르러서야 그들은 자신들의 멸망이 하나님의 율법을 범했기 때문임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들은 두려운 형벌 속에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면서도 참된 회심, 악에 대한 역겨움을 느끼지는 않았다. 심판을 거두면 그들은 다시 하나님을 거역하는 삶으로 되돌아갔을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불의 홍수에 앞서 하나님의 심판이 땅에 임할 때도 회개하지 않은 이들은 자신의 죄가 다름 아닌 그분의 거룩한 율법을 멸시한 것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옛 세상의 죄인들과 똑같이 참다운 회개를 하지 않을 것이다(부조, 99, 100).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해성/백관희 선교사 부부(네팔)
새롭게 시작하는 네팔대회에 하나님의 뜻 가운데 튼튼한 기초가 놓이길
2월 4일
노아의 때와 같이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눅 17:26, 27)
하나님은 먹고 마시는 것 자체로 홍수 이전 사람들을 정죄하시지는 않았다. 그분은 땅의 열매를 풍성히 주셔서 신체에 필요한 것을 채우게 하셨다. 이 선물을 받으면서도 주신 분에게 감사하지 않고 부절제하게 식욕에 탐닉해 자신을 더럽힌 것이 그들의 죄였다. 결혼은 합당한 것이며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이다. 결혼은 그분이 제정하신 최초의 제도 중 하나다. 그분은 특별한 지시를 내려 이 예식을 성스럽고 아름답게 하셨다. 그러나 이 지시 사항들은 잊어졌고 결혼은 욕망을 채우는 수단으로 일그러져 버렸다.
오늘날의 상황도 비슷하다. 그 자체로는 합당한 것들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욕구를 절제하지 않고 방종에 빠진다. …대다수는 관능적인 욕망을 억제해야 한다는 도덕적 책임감이 전혀 없이 성욕의 노예로 지낸다. 사람들은 감각적 쾌락을 위해, 이 세상과 이생만을 위해 살고 있다. …성경에 묘사된 홍수 이전 세상의 모습은 오늘날 사회가 빠르게 치닫고 있는 상황과 너무나 정확하게 일치한다.
…유예의 기간이 끝나 가는데도 홍수 이전 사람들은 자극적인 즐거움과 유흥에만 정신을 쏟았다. 영향력과 권력을 지닌 자들은 아무도 엄숙한 최후의 경고에 귀 기울이지 못하도록 사람들을 쾌락에 빠져 흥청거리게 하는 데 전념했다(부조, 103).
홍수 전에 하나님은 노아를 보내어 세상에 경고하며 사람들이 회개하여 임박한 멸망을 피하게 하셨다. 그리스도의 재림이 다가올 때도 주님은 세상 사람들이 위대한 사건에 준비되도록 자신의 종들을 보내어 경고하신다. 수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법을 거슬러 살고 있으며 지금도 그분은 거룩한 규범을 따르라고 자비롭게 부르신다. 하나님께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으며 자기 죄를 버리는 사람은 누구나 용서받을 수 있다(부조, 102).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권순범/강지희 선교사 부부(대만)
대만 대학생 선교센터 건축을 위해
2월 5일
하나님이 내려와 보셨다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창 11:4)
한동안 노아의 후손들은 방주가 머문 산속에서 살았다. 수가 늘면서 배반과 분열이 이어졌다. 창조주를 잊어버리고 율법의 제재에서 벗어나고 싶은 이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동료들의 가르침에 계속 짜증을 느꼈고 잠시 뒤에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이들과 떨어져 지내기로 결정했다. 그에 따라 그들은 유프라테스 강기슭에 있는 시날 평지로 이동했다. …그들은 거기에 도시를 건설하고 세계의 불가사의로 여겨질 만큼 까마득히 높은 탑을 짓기로 했다.
…시날 평지의 거주자들은 다시는 땅에 홍수를 일으키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을 불신했다. 그중에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며 홍수가 자연적인 현상으로 발생했다고 여기는 이가 많았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이 홍수 이전 사람들을 멸망시켰다고 믿으며 가인처럼 그분께 반기를 들고 일어서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또 다른 홍수에 대비해 안전을 확보하겠다는 한 가지 목적으로 탑을 세우고자 했다. 그들은 홍수로 차오르는 물보다 더 높이 탑을 쌓으면 모든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또 구름 높이까지 올라가면 홍수의 원인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 시대에도 탑을 쌓는 이들이 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들은 과학적 추론으로 자신의 이론을 수립하며 하나님이 계시한 말씀을 거절한다. …그리스도인임을 자처하는 이들 중에서도 명백한 성경의 가르침을 외면하고 인간의 추정과 듣기 좋은 우화로 교리를 만들며 자신이 쌓은 탑을 하늘에 이르는 길로 내세우는 이들이 있다.
…하나님께서 심사하실 때가 코앞에 이르렀다.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내려와 인간의 후손들이 무엇을 지어 놓았는지 보실 것이다. 그분의 통치 권세가 드러나고 인간이 자랑스럽게 이룬 업적들이 무너질 것이다.
『부조와 선지자』, 118-124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최운성/조선희 선교사 부부(대만)
핑전판왕 교회 부흥을 위해
2월 6일
혼란과 분열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창 11:8)
시날 평지의 거주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자기 예찬을 위해 왕국을 건설했다. 만약 그들이 성공했다면 막강한 권력으로 통치가 이루어지고 의는 자취를 감추며 새로운 종교가 시작됐을 것이다. 그리고 세상은 도덕적으로 타락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의 증인 없이 세상을 내버려두시지 않는다. 그 당시에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며 “하나님이시여, 주의 일과 인간의 계획과 방법 사이에 개입해 주소서.”라고 그분께 부르짖는 이들이 있었다(8증언, 213, 214).
탑의 일부가 완성됐을 때 한 구역은 건축자들의 거처로 할당됐고 화려하게 꾸미고 장식된 방들은 우상들에게 바쳐졌다.
…매우 순조롭게 진행되던 작업이 갑자기 저지당했다. 건축자들의 목적을 좌절시키도록 천사들이 보내진 것이다. 꼭대기에 있는 작업자가 지상에 있는 이들과 직접 소통하기 힘들 정도로 탑이 높이 올라갔기 때문에 곳곳에 사람들이 배치되어 작업에 필요한 자재나 기타 지시 사항을 아래쪽에 있는 사람에게 전달했다. 이런 식으로 내용을 전달하는 와중에 서로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지는 일이 벌어졌다. 불필요한 자재가 요청되거나 지시 사항이 종종 정반대로 전달되기도 하면서 사람들은 혼란에 빠져 경악을 금치 못했다. 모든 일이 중단됐다.
…이전까지는 모든 사람이 같은 언어를 사용했는데 이제는 서로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들끼리 한데 모였다. 이리로 가는 이도 있었고 저리로 가는 이도 있었다. “여호와께서는 인간들을 땅 위 곳곳으로 흩어지게 하셨다.” 이러한 분산은 땅을 사람으로 채우게 하는 수단이 되었다. 이렇듯 주님의 목적은 인간이 그 실현을 막으려고 사용했던 수단을 통해서 성취되었다(부조, 119, 120).
주님은 오늘날도 사람들이 땅에 널리 퍼지기를 바라신다. 그들은 집단으로 몰려 있으면 안 된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 8증언, 215).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박O성/김O숙 선교사 부부(북아프리카)
북아프리카 지역(모로코·알제리·튀니지·리비아)에서 동역할 선교사 모집을 위해
2월 7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히 11:8)
아브라함은 이교의 우상 숭배 속에서 자랐다.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보존한 그의 아버지의 가족조차 주변의 유혹적인 영향력에 굴복해 여호와 외에 “다른 신들을” 섬기고 있었다.
하나님의 기별이 아브라함에게 전달됐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거룩한 신탁의 수호자라는 위대한 과업을 감당해 내기 위해 아브라함은 젊은 시절의 환경과 단절되어야만 했다. …아브라함의 절대적인 복종은 성경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뛰어난 믿음의 증거이다.
아브라함에게 임한 시험은 결코 가볍지 않았고 그에게 요구된 희생은 결코 적지 않았다. 그는 고향, 친족, 가족과 끈끈하게 결속되어 있었지만 부르심에 순종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약속의 땅에 대해서 그 토양이 비옥한지, 기후가 좋은지, 그 땅의 환경이 쾌적하고 큰 재산을 모을 기회가 있는지를 그는 전혀 묻지 않았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면 그분의 종은 순종해야 한다. 이 땅에서 하나님이 있으라고 명하신 곳이 그에게는 가장 행복한 곳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지금도 아브라함처럼 시험을 받는다. …부와 명예가 보장된 직업을 버리거나 맘에 들고 유익한 동료들을 떠나거나 일가친척과 헤어지거나 자기 부정과 역경과 희생만 기다리는 듯한 길로 들어서야 할지도 모른다. 하나님께는 그들에게 맡길 일이 있으시다.
…애지중지하던 계획과 친한 동료들을 뒤로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할 준비가 된 사람은 누구인가? 새로운 임무를 받아들이고 미증유의 땅으로 들어설 자는 누구인가? …이런 일을 기꺼이 감당하려는 자야말로 아브라함의 믿음을 지닌 사람이자 “한량없이 크고 영원한 영광” 즉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게 할 영광을 아브라함과 함께 누릴 사람이다(고후 4:17; 롬 8:18, 공동).
『부조와 선지자』, 125-127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O성 선교사(중국)
선교사들이 안전하게 선교 사업을 할 수 있도록
2월 8일
이유가 있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벧전 1:7)
아브라함은 계속해서 남쪽으로 이동했고 그의 믿음은 또다시 시험받았다. 하늘이 비를 거두고 마을로 들어오는 시냇물이 마르고 들판의 풀이 시들었다. 양 떼와 소 떼에게 먹일 풀이 없고 온 진영에 기근이 닥칠 판이었다. 이때 그는 하나님의 이끄심을 의심했을까? 갈대아의 풍성한 들판을 아쉬워하며 뒤돌아보았을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이끄심을 설명할 수 없었고 자신이 기대했던 것을 실감하지 못했지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는 약속을 굳게 붙잡았다. 그는 간절히 기도하며 가족과 양 떼를 지켜 낼 방법을 궁리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 뒤흔들릴 만한 여건을 허용하지 않았다. 기근을 피하고자 그는 이집트로 내려갔다. 그는 가나안을 버리지 않았고, 극한의 상황에서도 자기가 떠나온 갈대아 땅 즉 양식 걱정이 없는 그곳으로 발길을 돌리지 않았다. 오히려 약속의 땅과 최대한 가까운 곳에서 한시적인 피난처를 찾았고 하나님이 그에게 지정하신 곳으로 속히 돌아갈 생각이었다.
하나님은 섭리 가운데 아브라함에게 이런 시련을 가져다주어 그에게 복종과 인내와 믿음의 교훈을 가르치고자 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고된 시련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변함없는 순종으로 그들 자신이 영적으로 부유해지고 그들의 모본이 다른 이들에게 힘의 원천이 되게 하기 위해서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 29:11). 우리 믿음을 혹독하게 흔들고 하나님이 우리를 버렸다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시련이야말로 우리를 그리스도께 더욱 가까이 이끌어 우리의 모든 짐을 그분 발밑에 내려놓고 그분이 주시는 평화를 경험케 하기 위한 것이다.
『부조와 선지자』, 128, 129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윤호/김보형 선교사(1000MM)
새로운 임지에서의 적응과 선교 사명의 위해
2월 9일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보호하신다
“그러나 그는 사람이 그들을 억압하는 것을 용납하지 아니하시고 그들로 말미암아 왕들을 꾸짖어 이르시기를 나의 기름 부은 자를 손대지 말며 나의 선지자들을 해하지 말라 하셨도다”(시 105:14, 15)
하나님은 시련과 같은 철저한 검증으로 자기 종들을 단련하신다. 그분은 자신의 사업에 활용할 만한 능력을 지닌 이들을 알고 계시며 그들에게 시련을 허용하신다. 그분은 섭리 가운데서 그들을 시험으로 이끌어 자신들의 품성을 살피며 그동안 몰랐던 결점과 약점을 깨닫게 하신다. 이런 결점을 고쳐서 자기를 섬기는 데 합당한 사람이 될 기회를 주신다. 그분은 그들의 약점을 드러내어 자기를 의지하도록 가르치신다. 자기만이 유일한 도움이자 보호자가 되시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그분의 목적이 달성된다. 그들은 교육받고 훈련받고 단련되어서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으로 위대한 목적을 수행할 준비를 갖춘다.
…이집트에 머무는 동안 아브라함은 인간의 약점과 불완전함에서 자유롭지 못한 자신의 현실을 드러내고 말았다. 그는 사라가 자신의 아내라는 사실을 숨김으로써 하나님의 돌보심에 대한 불신을 내비쳤고 자신의 삶에서 고귀한 모범을 보였던 높은 믿음과 용기의 부족함을 나타냈다. …그는 사라를 자신의 누이로 표현한 것은 거짓말이 아니라는 논리를 폈다. 사라는 실제로 이복누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둘 사이의 진짜 관계를 숨긴 것은 기만이었다. 엄격한 진실에서 벗어난 그 무엇도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없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부족했기에 사라는 큰 위험에 빠졌다. 사라의 미모를 알게 된 이집트의 왕은 그를 자신의 궁전으로 데려와 아내로 삼고자 했다. 하지만 자비가 크신 주께서는 왕의 집안에 심판을 내려 사라를 보호하셨다.
…파라오에게 주어진 경고는 이후 아브라함이 이방인들을 상대할 때 보호 장치로 작용했다. 아브라함이 섬기는 하나님은 자기의 종을 보호하는 분이시며 누구든 아브라함에게 해를 입히면 보응을 받는다고 이해했기 때문이다. 하늘 왕의 자녀들에게 잘못을 저지르면 위험에 빠진다.
『부조와 선지자』, 129-131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정태/김성진 선교사 부부(베트남)
호찌민지역 선교센터 건립을 위해
2월 10일
평화 유지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 하면 나는 우 하고 네가 우 하면 나는 좌 하리라”(창 13: 8, 9)
아브라함은 “가축과 은과 금이 많은 부자”가 되어 가나안으로 돌아왔다. 롯은 여전히 그와 함께 있었고 벧엘로 되돌아왔다. 그들은 예전에 쌓았던 제단 옆에 장막을 쳤다. 소유가 불어날수록 말썽도 많아진다는 사실을 그들은 곧 알게 되었다. 고난과 시련 속에서는 화목하게 함께 지냈지만 번영하면서 서로 간에 분쟁의 위험이 생겼다. 목초지는 두 사람의 양 떼와 소 떼를 먹이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서로 헤어져야 한다는 게 명백해졌다. 아브라함은 롯의 연장자였고 가족 관계, 재산, 지위로도 윗사람이었지만 평화롭게 지내기 위한 계획을 그가 먼저 제안했다. 하나님이 직접 그에게 온 땅을 주셨지만 그는 공손하게 자신의 권리를 양보했다.
…여기서 아브라함의 고상하고 사심 없는 정신을 볼 수 있다. 동일한 상황에서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개인의 권리와 우선권에 집착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다가 두 동강 난 가정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식으로 교회가 분열되어 진리의 사업이 악인들 사이에서 웃음거리와 비난거리로 전락한 적이 얼마나 많은가!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라고 아브라함은 말했다. “우리는 한 친족이라.” 이것은 혈연뿐 아니라 참하나님을 경배하는 입장에서도 그렇다. 세계 곳곳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는 모두 한 가족이며 동일한 사랑과 화해의 정신을 따라야 한다. 우리 주님께서는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롬 12:10) 하라고 가르치신다. 한결같이 공손하며 자신이 대접받고 싶은 만큼 기꺼이 남을 대접하면 인생의 고통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 자기를 확장하려는 정신은 사탄의 정신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간직한 마음에는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사랑이 자리 잡는다. 그런 사람은 “각자 자기 일만 돌보지 말고 남의 일도 돌아보라”(빌 2:4, 한글킹)는 하나님의 명령을 마음에 새길 것이다.
『부조와 선지자』, 132, 133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송해섭 선교사(네팔)
사랑원(보육원)의 원아 24명을 위해
2월 11일
소돔을 향해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창 13:12, 13)
팔레스타인을 통틀어 가장 비옥한 지역은 요단 계곡이었다. …거기에는 부유하고 아름다운 성읍들이 있었고 분주한 시장들은 이윤을 좇는 교역이 이루어지기 딱 좋은 곳이었다. 세속적인 이익이라는 환상에 빠져 롯은 거기서 접하게 될 도덕적·영적 죄악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는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소돔을 향해 장막을 쳤다.” 이기적인 선택이 초래할 끔찍한 결과에 대해 그토록 안목이 없었단 말인가!(부조, 133)
롯은 세속적인 유익을 염두에 두고 소돔을 자기 집으로 택했다. 그러나 거기 정착하여 세상의 부를 쌓은 뒤에는 자신이 지역의 도덕적 표준에 대해 심사숙고하지 않고 거처를 정했다는 잘못을 확실하게 깨달았다.
소돔 거민들은 타락했다. 날마다 추악한 대화가 그의 귀에 들렸고 그 자신이 막기에는 역부족인 폭력과 범죄로 그의 영혼은 괴로움을 겪었다. 자식들은 이 사악한 백성을 닮아 갔다. 그들과 어울리며 도덕성이 일그러졌기 때문이다. 이 모든 문제를 따져 보니 자신이 얻어 낸 세속적인 부는 그동안 치른 대가에 비하면 하찮고 가치 없어 보였다. 그의 가족 관계는 폭넓어졌고 자식들은 소돔 사람들과 결혼했다. 마침내 이 성읍의 악한 거주자들에 대해 주님의 진노에 불이 붙었고 하나님의 천사들은 소돔을 찾아가 무너지는 성읍에서 롯이 멸망하지 않도록 그를 데리고 나왔다(4증언, 110).
만약 젊은 시절 아브라함에게 충실히 교훈을 받지 않았다면 롯은 아내의 영향력과 악한 성읍 사람들과 맺은 관계로 하나님을 배반하는 지경에 이르렀을 것이다. 롯의 결혼과 소돔의 정착은 여러 세대에 걸쳐 세상에 이어진 죄악투성이 사건들의 첫 사슬이 되었다(부조, 174).
사람들을 도시로 끌어들이는 것이 사탄의 목적이다. 그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온갖 신기한 것과 오락, 흥분 거리를 고안해 낸다. 오늘날 이 땅의 도시들은 홍수 이전의 도시들처럼 되어 가고 있다(2기별, 355).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세담/박유진 선교사 부부(대만)
지역 사회에 루주 교회가 믿음의 등대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2월 12일
하나님께서 복 주시는 가정
“내가 그를 아나니, 그가 자기 자식들과 자기 집안 식구들에게 명하겠고 그들은 주의 도를 지켜 정의와 공의를 행하리니”(창 18:19, 한글킹)
하나님이 보시기에 인간은 가정에서 어떠하냐가 그의 본모습이다. 하나님의 친구 아브라함의 생애는 주님의 말씀을 철저하게 존중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는 가정에서 신앙을 북돋았고 집안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분위기가 배어 있었다. 아브라함은 가정의 제사장이었고 가족에 대해 신성한 책임을 부여받았다고 느꼈다. 그는 1천 명이 넘는 식솔을 거느렸고 부모든 자식이든 그들 모두를 거룩하신 왕께로 이끌었다(편지 144, 1902.).
“그가…자기 집안 식구들에게 명하겠고.” 자녀의 악한 성향 제어하기를 소홀히 하는 죄, 약하고 어리석고 방임적인 편애, 그릇된 애정으로 확실한 의무를 양보하는 일 등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 아브라함은 바른 교훈을 전할 뿐 아니라 공정하고 의로운 율법의 권위를 유지하고자 했다.
오늘날 이 모본을 따르는 사람은 정말 드물다. 맹목적이고 이기적인 감상에 빠져서 자녀들이 미숙한 판단력으로 분별없이 제 욕심을 부리게 놔두는 부모가 너무나 많다. 이것이야말로 아이들에게 저지르는 가장 잔인한 일이며 세상에 대한 큰 잘못이다. 부모의 방임으로 가정과 사회가 무질서해지며, 아이들에게는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는 대신 자신의 성향을 따르려는 욕망이 자리 잡는다(원고 22, 1904.).
부모와 자녀는 동일하게 하나님의 소유이며 그분의 다스림을 받아야 한다. 아브라함은 애정과 권위를 결집하여 자기 집안을 다스렸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지도하는 규범으로 주어졌다. 이 규범은 우리가 주님의 길을 걷고자 할 때 반드시 따라야 할 표준을 형성해 준다. 하나님의 뜻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남들은 어떻게 했는지, 친척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이 길을 택하면 그들이 뭐라고 말할지를 묻지 말고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부모든 자녀든 주님의 길이 아닌 데서는 아무도 참된 번영을 누릴 수 없다(5증언, 548).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남경원/조효정 선교사 부부(파키스탄)
25년 3월 6기 1000명선교사 모집을 위해
2월 13일
손님 접대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히 13:2)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큰 영예를 주셨다. 하늘의 천사들은 그와 함께 걸으며 친구처럼 이야기했다. 소돔에 심판이 임하려고 할 때 아브라함에게 그 사실이 숨겨지지 않았고 그는 죄인을 위해 하나님께 중재자로 나섰다. 천사와 대담을 나눈 것도 환대의 아름다운 사례이다(부조, 138).
창세기의 기록을 보면 아브라함이 뜨거운 여름 한낮에 마므레의 상수리나무 그늘 아래 천막 문에 있을 때 나그네 셋이 근처를 지나가고 있었다. 그들은 환대를 요청하거나 호의를 구하지 않았지만 아브라함은 그들이 쉬지도 않고 그냥 지나가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는 나이가 많았고 위엄과 부를 지녀 높이 존경받고 명령하는 데 익숙한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이 나그네들을 보자마자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무리의 인솔자에게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시옵고”(창 18:2, 3)라고 말했다. 아브라함은 손수 물을 떠와 여행으로 먼지투성이가 된 그들의 발을 씻을 수 있게 했다. 그는 직접 음식을 정했고 그들이 시원한 그늘 아래서 쉬고 있는 동안 그의 아내 사라가 접대를 준비했으며 아브라함은 자신에게 접대받고 있는 그들 옆에 공손하게 서 있었다. 그는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낯선 행인들에게 이런 친절을 베풀었다. 하지만 접대가 끝나자 손님들은 정체를 드러냈다. 아브라함은 하늘 천사들뿐 아니라 영광스런 지휘관이자 창조주, 구속주, 왕이신 분을 시중든 것이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계획이 공개됐고 그는 “하나님의 친구”로 불렸다.
…아브라함과 롯에게 주어진 특권은 우리에게도 주어질 수 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호의를 베풀면 우리도 그분의 천사를 집으로 맞아들일 수 있다. 오늘날도 천사들은 인간의 모습을 띠고 사람들의 집에 들어가 그들의 접대를 받는다. 하나님 얼굴의 빛 가운데 거하는 그리스도인에게는 늘 보이지 않는 천사가 함께하며 이 거룩한 존재들은 우리의 가정에 축복을 남겨 둔다(6증언, 341, 342).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오O훈/강O영 선교사 부부(기타 국가)
의료 봉사로 준비된 영혼들을 만날 수 있도록
2월 14일
초읽기에 들어간 소돔의 운명
“아브라함이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부당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창 18:23, 25)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높였고 주님은 아브라함을 높이셔서 자신에 계획에 그를 동참시키고 그에게 자신의 목적을 알려 주셨다.
…이 믿음의 사람은 소돔 거민들을 위해 간청했다. 한 번은 자신의 칼로 이들을 구했고 이제는 기도로 그들을 구원하고자 애썼다. …깊은 경외심과 겸손함으로 그는 간곡하게 요청했다. …그 자신이 죄인이면서도 그는 죄인을 위해 호소했다. 하나님을 찾아가는 사람은 누구나 이런 정신을 지녀야 한다. 아브라함은 사랑하는 아버지에게 간청하는 어린이와 같은 확신을 나타냈다. 그는 하늘의 사자이신 분께 다가갔고 열렬하게 간청했다.
롯은 비록 소돔에 머물렀어도 거민들의 죄에 동조하지 않았다. 아브라함은 인구가 많은 그 성읍에 참하나님을 경배하는 이들이 또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는 단순히 한 차례에 그치지 않고 여러 차례 구했다. 요청이 수락될 때마다 점점 대담해져서 그는 마침내 성내에서 의인 10명만 찾을 수 있어도 성읍을 보존시키겠다는 확답을 받아 냈다.
아브라함은 멸망당할 영혼에 대한 사랑 때문에 기도가 터져 나왔다. 그는 타락한 도성의 죄악은 역겹게 여겼지만 죄인들은 구원받기를 바랐다. 소돔을 향한 그의 지극한 관심과 같이 우리는 뉘우치지 않는 자들에 대해 마음 아파해야 한다. 죄를 미워하되 죄인은 불쌍히 여기고 사랑해야 한다.
우리 주변 곳곳에는 소돔처럼 속절없이 끔찍한 파멸로 치닫고 있는 영혼들이 있다. 매일 누군가에게는 유예의 기간이 끝나고 있다. 매시간 누군가는 자비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가고 있다. 이 두려운 파멸에서 벗어나도록 경고하고 간청할 목소리는 어디로 갔는가? 그를 죽음에서 끌어내기 위해 뻗어야 할 손들은 어디에 있는가? 겸손하고 끈질긴 믿음으로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간구할 사람들은 어디 있는가?
『부조와 선지자』, 139, 140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한국연합회 세계선교본부
10/40 프로젝트 후원을 위한 모금을 위해
2월 15일
불안한 거리
“저녁때 두 천사가 소돔에 오니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더라. 롯이 그들을 보고 일어나 맞이하고…말하기를 ‘보소서, 내 주들이여, 간구하오니 종의 집으로 돌이켜 하룻밤을 묵고’”(창 19:1, 2, 한글킹)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소돔에 집을 짓고 살았지만 삼촌처럼 친절하고 후덕한 마음씨를 지녔다. 해가 질 무렵 성문에 있는 두 나그네를 발견한 롯은 이 사악한 도시에서 그들이 분명 위험에 빠지겠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그들을 강권하여 자기 집으로 데려갔다. 자신과 가족에게 닥칠 위험에 대해서는 생각지 않았다. 위험에 처한 사람과 집 없는 사람을 돌보는 일은 그에게 삶의 일부였고 낯선 두 행인에게 친절을 베푼 덕분에 그는 천사들을 자기 집에 맞아들이게 되었다. 자신이 보호해 주려고 했던 이들이 그를 보호해 주었다. 황혼 녘에는 롯이 천사들을 안전하게 자기 집 문으로 인도했고 새벽녘에는 천사들이 롯과 그의 가족을 멸망의 도성 문밖으로 안전하게 인도했다(6증언, 342).
롯은 그들의 진짜 정체를 몰랐지만 예의 바르고 환대하는 태도는 그에게 습관처럼 배어 있었다. 이것은 그에게 신앙의 일부였고 이런 가르침을 그는 아브라함에게서 배웠다. 이런 공손한 마음씨를 기르지 않았다면 그는 소돔의 다른 주민들과 함께 멸망했을 것이다. 낯선 이에게 문을 닫는 바람에 축복과 희망과 평화를 가져다주었을 하나님의 사자를 내쫓아 버린 가정이 참 많다.
삶의 행동 하나하나는 아무리 사소해도 선악 간에 영향을 미친다. 가장 하찮아 보이는 일을 성실히 하느냐 소홀히 하느냐로 풍성한 축복의 문 또는 끔찍한 재난의 문이 열리기도 한다. 품성은 작은 일로 검증받는다. 하나님은 일상에서 나타나는 기쁘고 쾌활하고 꾸밈없는 자기 부정의 행동에 대해 미소 지으신다. 우리는 자신이 아니라 남을 위해 살아야 한다. 자기를 잊어버리고 다정하게 도움을 베푸는 마음씨를 간직한 사람만이 삶을 복되게 할 수 있다. 조그만 배려, 작고 단순한 예의범절이 인생의 행복에 크게 이바지하는 반면 이것을 소홀히 할 때는 적지 않은 고초를 겪는다(부조, 158).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하0홍 선교사(중동 지역)
이곳에서 지내고 있는 동료 선교사들의 거주증 발급을 위해서
2월 16일
마지막 밤
“소돔과 고모라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벧후 2:6)
평원의 도시들을 집어삼킨 화염은 이 시대에까지도 경고의 불을 비추어 준다. 자비로운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위해 오래 참으시지만, 인간이 넘어서는 안 될 죄의 한도가 있다는 두렵고도 엄숙한 교훈을 여기서 배우는 것이다. 그 한도에 이르면 자비를 베푸시는 일은 중단되고 심판이 시작된다.
세상의 구주께서는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부른 것보다 더 큰 죄가 있다고 선언하신다. 회개하라고 죄인들에게 호소하는 복음의 초청을 듣고도 주의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싯딤 골짜기의 거민보다 죄가 더 크다. 그리고 하나님을 알고 그분의 계명을 지킨다고 말하지만 품성과 일상생활에서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사람은 그보다 죄가 더 크다. 구주의 경고에 비추어 볼 때 소돔의 운명은…하늘의 빛과 특권을 무시하는 모두를 향한 준엄한 책망이다(부조, 162-165).
하나님의 심판이 곧 이 땅에 부어진다.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고 하나님의 천사들은 경고한다. 반면에 “흥분하지 말라. 딱히 놀랄 이유가 없다.”라는 다른 목소리도 들린다. 시온에서 편히 거하는 자들은 “평안하다 안전하다”고 외치지만 하늘에서는 범죄자에게 멸망이 신속히 이른다고 선언한다. 젊고 경솔하고 쾌락을 좋아하는 이들은 이 경고를 부질없는 헛소리로 여기고 웃어넘기며 외면한다. 이 문제에 대해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들이 대체로 옳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으며 모두 편한 마음으로 잠이 든다. 고대의 세상이 멸망하고 소돔과 고모라가 불살라졌을 때도 그와 같았다. 평원의 도시들은 멸망 전야에 쾌락으로 떠들썩했다. 롯은 자신의 두려움과 경고 때문에 비웃음을 샀다. 그런데 다름 아닌 그를 조롱하던 자들이 화염 속에서 멸망했다. 사악하고 부주의한 소돔의 거민에게 자비의 문은 바로 그날 밤 영원히 닫혔다(5증언, 233, 234).
소돔을 떠나라고 롯에게 경고한 똑같은 음성이 우리에게도 명한다.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고후 6:17). 이 경고를 따르는 자들은 피난처를 얻는다(2기별, 354).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신영천/김혜림 선교사 부부(캄보디아)
캄보디아 신학교의 재정과 운영을 위해
2월 17일
잊지 말라
“롯의 처를 기억하라”(눅 17:32)
도망자 중 한 사람이 멸망의 도시를 향해 대담하게 고개를 돌렸고 그 여자는 하나님 심판의 본보기가 되었다. 만약 롯이 천사의 경고에 순종하여 한마디의 간청이나 항의 없이 망설이지 않고 부지런히 산으로 도망쳤다면 그의 아내는 무사히 피난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가 보인 모본의 감화력으로 그의 아내는 자신의 운명을 결정지은 죄에서 구원받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가 머뭇거리고 지체하는 바람에 그의 아내는 하나님의 경고를 가벼이 여기게 되었다. 그녀의 몸은 들판에 있었지만 그녀의 마음은 소돔에 달붙어 있었고 소돔과 함께 멸망했다. 그 여인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자신의 재물과 자식들이 사라졌기에 하나님을 거역했다. 사악한 도시에서 나오도록 부름받는 엄청난 은총을 입었음에도 롯의 아내는 수년 동안 모은 재산이 잿더미가 되었다는 이유로 자신이 가혹한 대우를 받는다고 느꼈다. 그 여자는 구원을 감사히 받아들이지는 않고 하나님의 경고를 거절한 이들의 삶을 갈망하며 주제넘게도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이 살 가치가 없음을 그는 자신의 죄로 입증했다. 목숨이 보존된다는 것에 그는 감사하는 마음이 거의 없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은혜롭게 베푸신 구원을 가볍게 취급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친구와 자녀들이 함께 구원받지 못한다면 나는 구원받지 않아도 상관없어.”라고 말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하지 못하는 하늘은 하늘이 될 수 없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감정을 소중히 여기는 이들이 과연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에 대해서는 올바른 개념을 지니고 있는가? 자신들을 향한 그분의 위대한 선하심과 자비를 알고 있는가? …자비의 초청은 모두에게 주어진다. 친구들이 구주의 애타는 사랑을 거절한다고 해서 자신도 돌아설 셈인가?
영혼의 구원은 귀하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무한한 값을 치르셨다. 이 위대한 희생의 가치와 영혼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은 남들이 그런다고 자신도 덩달아 하나님의 자비를 멸시하지는 않을 것이다.
『부조와 선지자』, 161, 162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JSW, LYM(중국 MK 지역)
심한 통제에도 성도들이 더욱 굳건히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도록
2월 18일
더 나은 본향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 11:16)
소돔으로 들어갈 때 롯은 자신을 죄악에서 지키고 가정도 그렇게 다스리기로 굳게 마음먹었다. 그러나 그는 보란 듯이 실패했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그들의 자녀는 유혹에 둘러싸여 있으며 신앙심과 올바른 품성 형성에 해로운 교제를 맺을 때가 너무 많다. 도덕적 해이, 불신앙, 종교에 무관심한 분위기는 부모의 감화력을 쉽게 약화한다. 부모와 하나님의 권위에 대항하는 사례들은 젊은이들 앞에 늘 존재한다. 회의론자 불신자들에게 애착을 느끼며 하나님의 원수와 운명을 같이하는 이가 많다.
하나님께서는 집을 선택할 때 무엇보다 자신과 가족이 둘러싸이게 될 도덕적·종교적 영향력을 고려하라고 하신다. 원하는 환경을 확보할 수 없는 경우도 많기에 우리는 힘든 형편에 놓일지도 모른다. 물론 의무를 다하도록 부름받을 때마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신뢰하며 깨어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더럽혀지지 않도록 지켜 주실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품성을 가꾸기에 부적합한 영향력에 불필요하게 자신을 노출시켜서는 안 된다.
…자녀들을 위해 영원한 유익을 희생해 가면서 세상의 재물과 명예를 확보하는 이들은 결국 그 소득이 끔찍한 손실임을 깨달을 것이다. 롯처럼 자식은 망하고 자기 영혼만 겨우 건지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평생 쏟아부은 일이 수포로 돌아가고 그들의 삶은 비참한 실패로 끝난다. 만약 그들이 참다운 지혜를 실천했다면 자녀들은 세상에서는 별로 번영하지 못했어도 영원한 유업을 확실히 얻게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약속하신 유업은 이 세상에 속한 게 아니다.
…“더 나은 본향…곧 하늘에 있는 것”(히 11:16)을 얻으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외국인과 나그네처럼 살아야 한다.
『부조와 선지자』, 168-170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한국연합회 세계선교부
26개국 100여 선교사의 가정을 위해
2월 19일
그 무엇도 아낌없이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 이삭을 제물로 드렸으니, 그 약속들을 받은 자가 그의 독생자를 드린 것이라. …그는 하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그를 다시 살리실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음이라”(히 11:17-19, 한글킹)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신실한 자들의 아버지가 되도록 부르셨고 그의 삶은 후손들에게 믿음의 본보기로 자리 잡아야 했다. 그러나 그의 믿음은 온전하지 않았다. 그는 사라가 자신의 아내라는 사실을 숨김으로써 하나님에 대한 불신을 보였을 뿐 아니라 하갈과 결혼함으로써 또다시 그렇게 했다. 그가 가장 높은 표준에 이르도록 하나님은 그를 또 다른 시험에 놓이게 하셨다. 인간이 감당하기에 가장 모진 시험이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가서…그를 번제로 드리라.” 이 노인은 무서워서 심장이 멎는 듯했다. 이 아들을 질병으로 잃는다고 해도 사랑하는 아버지로서 가슴이 찢어지고 백발이 된 머리를 떨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는 자기 손으로 소중한 아들의 피를 흘리게 하라는 명령을 받은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고 그분의 말씀에는 순종해야만 했다. 그는 늙었지만 그렇다고 의무에서 면제되지는 않았다. 그는 믿음으로 지팡이를 붙잡았고 말 없는 고뇌 속에서 건강미 넘치는 젊은 아들의 손을 잡은 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길을 나섰다.
…아브라함은 만약 이삭이 죽으면 하나님의 약속이 어떻게 실현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으로 걸음을 중단하지도, 속상한 마음에 이유를 따지며 버티지도 않았다. 하나님의 명령을 곧이곧대로 수행했고 아들의 떨리는 살에 칼이 내려 꽂히기 직전에 이런 말이 들려왔다.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4증언, 144, 145).
하나님의 명령은 아무리 가혹하고 괴로워도 신뢰해야 하며 자녀들은 부모와 하나님께 완전히 복종해야 한다는 위대한 교훈을 여기서 얻을 수 있다. 아브라함의 순종에서 우리는 그 무엇도 하나님께 드릴 수 없을 만큼 아까운 것은 없다는 교훈을 배운다(3증언, 368).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병섭/이세주 선교사 부부(대만)
청소년들이 신앙적으로 건강히 성장하며 개인적으로는 하나님과 만날 수 있도록
2월 20일
신붓감을 찾아서
“너는 내가 거주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창 24:3, 4)
하나님을 향한 아브라함 특유의 믿음과 그분의 뜻에 대한 복종은 이삭의 품성에서도 드러났다. 그러나 이 젊은이는 정이 많은 데다가 온화하고 순종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과 결합하면 화목을 위해 원칙을 희생할 위험이 있었다. 아브라함의 생각에 아들의 신붓감 물색은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일이었다. 그는 아들이 하나님을 떠나지 않게 할 사람과 결혼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가인의 시대부터 자신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결혼했을 때의 결과를 따져 보았다. 하갈과 결혼한 자신을 비롯해 이스마엘, 롯의 결혼 관계에서 빚어진 결과가 그의 앞에 드러나 있었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믿음이 부족했기에 이스마엘이 태어났고 의인의 자손이 불경한 자들과 섞이게 되었다. 이스마엘이 이방인 아내를 맞이하는 바람에 아버지의 감화력은 어머니의 친척들인 우상 숭배자들의 영향력으로 약화됐다.
…롯의 아내는 이기적이고 신앙이 없는 여자인 데다가 그 영향력으로 남편은 아브라함과 떨어지게 되었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롯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로운 삼촌의 권면을 듣지 못하는 소돔에 머물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과 결합하면 위험이 없을 수 없다. “두 사람의 뜻이 맞지 않는데 어찌 동행하겠느냐?”(암 3:3, 바른) 쌍방이 일치해야 결혼 관계가 행복하고 순탄하다. 그러나 신자와 불신자 사이에는 취미, 성향, 목적에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그들은 서로 일치하는 부분이 하나도 없는 두 주인을 섬기고 있다. 신앙 없는 배우자는 그 원칙이 아무리 순수하고 옳다 해도 쉽게 하나님과 멀어지도록 이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고후 6:14)고 주님은 명하신다.
『부조와 선지자』, 171-175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갑숙 선교사(말라위)
올해 개교한 고등학교의 안정적 재정 운영을 위해
2월 21일
행복한 결혼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고향 땅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창 24:7)
이삭은 세상을 복되게 할 약속을 계승하는 고귀한 명예를 하나님께 받았다. 그럼에도 나이 마흔이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의 신붓감 선택하는 일을 노련하고 경건한 종에게 맡기기로 한 아버지의 결정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결과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듯 가정의 행복이라는 포근하고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이삭이 리브가를 인도하여 그의 어머니 사라의 장막으로 들이고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사랑하였으니 이삭이 그의 어머니를 장례한 후에 위로를 얻었더라.”
이삭이 추구한 길은 오늘날 젊은이들, 심지어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추구하는 길과도 현격한 대비를 이룬다. 애정의 표현은 자신이 알아서 할 일이지 하나님이나 부모도 일체 간섭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젊은이가 너무나 많다. 성인이 되기 한참 전부터 그들은 자기 스스로 선택할 역량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식으로 이생의 행복과 내생의 희망을 뭉개 버린 이가 수두룩하다.
…부모들은 자녀의 미래 행복에 대해 책임이 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이삭은 순종하는 삶을 귀히 여기도록 가르치는 훈련을 받고 자란 덕분에 아버지의 판단을 존중할 수 있었다. 아브라함은 부모의 권위를 존중하도록 자녀들을 가르친 한편 그 권위는 이기적이거나 독단적인 통제가 아니라 그들의 번영과 행복을 내다보는 사랑에 기초한 것임을 실생활에서 매일 보여 주었다(부조, 175, 176).
주의 깊이 고민하며 연장자와 경험 많은 이들에게 조언을 구해야 할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결혼 문제이다. 성경의 조언이 필요하고 기도로 하나님의 지도를 구해야 할 때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두 사람을 일평생 하나로 묶는 발걸음을 시작하려고 할 때이다(부조, 175).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북한선교부
북한이탈주민의 안정적인 정착과 신앙을 위해
2월 22일
신앙을 입증하라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빌 2:15)
아브라함은 주위의 민족들에게 위대한 지도자, 현명하고 유능한 족장으로 존경받았다. 그는 이웃들을 외면하며 영향력을 차단하지 않았다. 그의 생활과 품성은 우상 숭배자들과 현저하게 달랐고 참된 신앙의 편에서 인상 깊은 감화를 끼쳤다. 하나님을 향한 그의 충성심은 한결같았다. 그러면서도 그의 공손함과 자비심은 사람들의 신뢰와 우정을, 그의 꾸밈없는 위대함은 존경과 명예를 이끌어 냈다.
그의 종교는 철통같은 보안 속에서 소유자만 향유하는 값비싼 보물과 같지 않았다. 참된 종교는 그렇게 존속할 수 없다. 그런 정신은 복음의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마음에 거하신다면 그분의 임재에서 발산되는 빛은 감출 수 없으며 희미해질 수도 없다. 오히려 빛이 점점 강렬해져서 영혼을 뒤덮은 이기심과 죄의 안개는 의의 태양이신 분의 밝은 광선 아래서 갈수록 옅어진다.
하나님의 백성은 이 땅에서 그분의 대표자들이다. 하나님은 그들이 세상에 도덕적 빛이 되기를 바라신다. 그들은 각 나라, 도시, 성읍, 마을에 흩어져 있는 통로이다. 믿지 않는 세상에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자기의 뜻과 놀라운 은혜를 전하신다. 하나님은 위대한 구원에 참여한 모두가 그분의 선교사가 되도록 계획하신다.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의 경건으로 복음을 판단한다. 끈기 있게 견뎌 낸 시련, 감사로 얻은 축복, 몸에 밴 온유, 친절, 자비, 사랑은 세상을 밝히는 품성의 빛이며 본성적인 마음의 이기심에서 비롯하는 어둠과 정반대의 모습을 드러낸다.
『부조와 선지자』, 133-134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전경수/길명자 선교사 부부(아프리카)
아프리카 지역의 복음화를 위해
2월 23일
서로 다른 쌍둥이
“그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었으므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었으므로 장막에 거주하니”(창 25:27)
이삭의 쌍둥이 아들인 야곱과 에서는 성품으로 보나 삶으로 보나 현저하게 달랐다. …에서는 충동을 좇는 사람으로 자랐고 현실에 몰두했다. 규제를 싫어한 그는 거칠게 쫓아다니는 자유를 좋아하여 일찍부터 사냥꾼의 길을 택했다. 그는 아버지의 총애를 받았다. 조용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목자였던 이삭은 큰아들의 대담성과 활력이 마음에 들었다. 에서는 겁 없이 산과 황야를 누비다가 아버지에게 드릴 사냥물과 함께 흥미진진한 모험 이야기를 안고 돌아왔다.
사려 깊고 부지런하고 세심하며 현재보다 미래를 더 생각하는 야곱은 집에만 있어도 불만이 없었고 양 떼와 밭을 열심히 돌봤다. 어머니는 그의 끈기, 검약, 통찰력을 귀하게 여겼다. 다정하면서 강인하고 상냥하고도 꾸준히 관심을 기울이는 그의 모습은 시끌벅적하고 어쩌다가 친절한 에서보다 훨씬 더 그녀를 흐뭇하게 했다.
야곱은 자기에게 장자권이 주어진다는 하나님의 암시를 어머니에게 들었고 거기서 부여받을 특권에 대한 말할 수 없는 간절함이 차올랐다. 그는 아버지의 재산을 갈망한 게 아니라 영적인 장자권을 동경했다. 의로운 아브라함처럼 하나님과 교류하고, 가족을 위해 속죄의 희생물을 드리고, 선택받은 백성과 약속된 메시아의 조상이 되고, 언약의 축복에 포함된 영원한 자산을 이어받는 것이야말로 그가 간절히 바라는 특권과 영예였던 것이다.
…이렇듯 야곱은 세속적인 것보다 영적인 축복을 더 중히 여기기는 했으나 자신이 경외하는 하나님을 체험적으로 알지는 못했다. 그의 마음은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나지 못했다. 야곱은 맏아들의 권리를 에서가 유지하고 있는 한 자신에 관한 약속은 이루어질 수 없으리라 여겼고, 형은 너무 하찮게 여기지만 자신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그 복을 획득할 방도를 마련하고자 끊임없이 궁리했다.
『부조와 선지자』, 177-179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윤O결 선교사 (기타 국가)
Eski 교회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한마음 한뜻이 되어 재림을 준비하도록
2월 24일
뒤틀린 가치관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창 25:34)
에서는 헌신을 좋아하지 않고 신앙생활에 관심이 없었다. 그는 영적인 장자권에 따르는 요구 사항이 달갑지 않았고 심지어 짜증스러운 제재로 보였다. 아브라함과 맺은 신성한 언약의 요구 조건인 하나님의 율법을 에서는 속박의 굴레로 여겼다. 방종으로 기울어진 그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만 찾았다. 그에게는 권력, 재물, 잔치와 환락이 곧 행복이었다. 그는 제약 없이 황야를 떠돌아다니는 자유를 자랑스러워했다(부조, 178).
에서와 같은 사람이 많다. 에서는 불멸의 유업, 우주를 지은 하나님과 같은 영원한 삶, 셀 수 없는 행복, 한없는 영광이라는 특별하고 값진 복을 누릴 수 있었음에도 너무 오랫동안 자신의 식탐, 정욕, 기질을 따른 나머지 영원한 것을 헤아리고 인식할 능력이 약해진 이들을 대표한다.
에서는 특정 음식에 강하게 입맛이 당겼고 너무 오랫동안 자기 욕구를 채워 왔으므로 매력적이고 탐나는 음식을 끊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는 식욕을 억제할 특별한 노력은 기울이지 않고 그 음식에만 마음이 쏠려 결국 탐식이…그를 지배하기에 이르렀고, 그 특정 요리를 먹지 못하면 괴로움이 너무 커서 심지어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음식을 생각할수록 욕구가 강렬해졌고 마침내 자신의 신성한 장자권은 그 가치와 신성성을 잃어버렸다(2증언, 38).
에서는 삶의 위기를 겪으면서도 그 사실을 몰랐다. 자신이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행동에서 품성의 두드러진 특성이 나타났다. 여기서 그의 기호가 드러났고, 거룩한 것과 신성하게 간직해야 할 것을 그가 어떻게 평가하는지도 드러났다. 그는 눈앞의 아쉬움을 채우려는 사소한 부절제로 장자권을 팔아넘겼고 이것으로 그의 이후 인생행로가 결정됐다.
…에서는 자신의 특권을 누리지 못한 사람들을 대표한다. 그 특권은 무한한 값을 치러 가며 그들을 위해 사들인 것이지만 그들은 식탐과 이득을 좇다가 장자권을 팔아넘겼다(화잇주석, 창 25:29-34).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영식/조효정 선교사 부부(몽골)
몽골 ASI를 통한 몽골 재림교회 사업가들의 연합과 선교에 대한 헌신을 위해
2월 25일
바꿔 버린 장자권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시 37:5)
이삭은 에서를 야곱보다 더 사랑했다. 자신의 죽음이 가까웠다는 느낌이 들자 그는 죽기 전에 에서를 축복하려고 그에게 자기를 위한 별미를 준비해 오라고 청했다. …리브가는 이삭의 말을 듣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고 하신 여호와의 말씀이 기억났고 에서가 자신의 장자권을 경시해 야곱에게 팔아 버린 일도 알고 있었다.
…리브가는 에서에 대한 이삭의 편애를 알았고 이성적인 방식으로는 그의 생각을 바꿀 수 없다고 확신했다. 리브가는 문제의 해결사이신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야곱에게 아버지를 속이자고 부추김으로써 믿음의 부족을 드러냈다.
…만약 에서가 맏아들에게 주어지는 축복을 아버지에게 받았다 해도 그의 번영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이를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행위에 따라 그에게 번영의 복을 주시거나 역경을 가져다주셨을 것이다. 그가 아벨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한다면 하나님께 인정받고 복을 받을 것이나 악한 가인처럼 하나님과 그분의 계명을 존중하지 않고 자신의 부도덕한 행동 방식을 고집한다면 하나님께 복을 받지 못하고 가인처럼 버림받을 것이다. 또 만약 야곱이 맏아들에게 통상적으로 주어지는 축복과 특권을 획득하지 못했다 해도 의로운 길을 걸으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한다면 그는 하나님께 복을 받고 번영케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그와 함께할 것이다(살아, 88, 89).
야곱과 리브가는 목적을 이루었지만 속임수로 얻은 것은 괴로움과 슬픔뿐이었다. 하나님께서 야곱이 장자권을 받겠다고 선언하셨으므로 그들이 만약 그분께서 자신들을 위해 움직이실 때까지 믿음으로 기다렸다면 그분의 말씀은 그분의 시간에 맞추어 성취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하는 수많은 사람이 그러하듯 그들은 이 문제를 하나님의 손에 맡기려 하지 않았다. 리브가는 아들에게 제안했던 자신의 그릇된 계획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이 일로 그는 아들과 헤어져야 했고 다시는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부조, 180).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원상/김수경 선교사 부부(방글라데시)
‘큰 외침 2025’ 동시다발 전도회로 4,000명의 영혼 구원이 이뤄지도록
2월 26일
쓰라린 대가
“그가…눈물을 흘리며 구하되…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히 12:17)
야곱이 아버지의 장막을 나오자마자 에서가 들어왔다. 그는 자신의 장자권을 팔아넘겼고 정식으로 양도를 선언했음에도 그 복을 동생의 주장에 관계없이 자기가 차지하려고 마음먹었다. 영적인 측면과 더불어 장자의 명분에는 가족의 머리가 되고 아버지의 재산을 두 배로 얻는 현세적인 부분이 결합되어 있었다. 그가 중요시했던 부분은 바로 이것이다.
…에서는 그 복이 자기 수중에 있을 때는 경시했지만 자기에게서 영원히 떠나간 뒤에는 그것을 갈망했다. 그의 온갖 충동적이고 격정적인 본성이 강하게 깨어났고 그의 슬픔과 분노는 극에 달했다. 그는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라며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그가 부주의하게 팔아 버린 장자의 명분은 되찾을 수 없었다.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즉 한 번도 억제해 본 적 없는 식욕의 순간적인 만족을 위하여 그는 자신의 유업을 팔았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았을 때는 복을 되찾기에 너무 늦었다.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는 특권이 에서에게 차단된 것은 아니지만 그가 장자권을 회복할 길은 없었다. 그의 슬픔은 죄에 대한 깨달음에서 온 것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과 화합하고자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죄 자체가 아니라 그 죄로 인해 닥친 결과에 대해서만 마음 아파했다(부조, 180, 181).
회개란 죄에 대해 괴로워하고 거기서 돌아서는 것이다. 죄의 흉악함을 느끼지 못하면 죄를 버리지 못한다. 죄에 대해 마음이 돌아서야 삶에 진정한 변화가 일어난다.
회개의 본질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수많은 사람이 자신의 악행을 한탄하고 심지어 외관상 개선을 시도하는 이유는 자신의 잘못으로 겪게 될 고통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적인 의미의 회개가 아니다. 그들은 죄가 아니라 고통에 대해 한탄한다. 이것이 바로 에서가 장자권을 영원히 잃어버렸다고 깨달은 뒤 느낀 슬픔이다(정로, 23).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양의식/배지현 선교사 부부(몽골)
몽골 게이트웨이 국제 학교의 2025년 완공을 위해 건축 허가가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2월 27일
도망자를 위한 희망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창 28:12)
에서에게 죽음의 위협을 느낀 야곱은 도망자가 되어 아버지의 집을 나섰지만 그는 아버지의 축복을 지니고 있었다. 이삭은 그에게 언약의 약속을 재차 강조했고 약속의 후계자인 아들에게 메소포타미아에 있는 외가에서 아내를 얻으라고 명했다. 야곱은 깊은 괴로움을 안고 외로운 여행길을 시작했다. 지팡이 하나만을 손에 쥐고 그는 거친 유랑민들이 사는 곳을 지나 수백 리 길을 가야 했다. 회한과 두려움 속에서 그는 분노한 형에게 쫓기지 않으려고 사람들을 피해 다녔다. 하나님께서 주려고 하신 복을 영원히 잃어버리지나 않을까 겁이 났고 사탄은 그를 유혹하려고 가까이 다가왔다.
…절망의 어둠이 그의 영혼을 짓눌렀고 그는 기도할 용기조차 나지 않았다. 그러나 철저한 외로움 속에서 그는 하나님의 보호가 필요하다는 전에 없던 느낌이 들었다. 그는 흐느끼면서 극도로 겸손하게 자기 죄를 고백했고 자신이 완전히 버림받지 않았다는 증거를 얻게 해 달라고 탄원했다. …하나님은 그를 버리시지 않았다. 실수 많고 믿음이 부족한 종에게 그분의 자비는 여전히 함께했다. 주님께서는 애틋한 마음으로 야곱에게 필요한 것 즉 구주를 보여 주셨다.
…여행에 지친 이 방랑자는 돌을 베개 삼아 땅바닥에 누웠다. 잠들었을 때 그는 눈부시게 빛나는 사다리를 보았다. 아래쪽은 땅을 의지하고 위쪽은 하늘에 닿아 있었다. 천사들이 사다리를 오르내렸고 그 위에는 영광의 주님께서 계셨다.
야곱은 밤의 깊은 고요 속에 잠에서 깼다. 시야에 가득했던 눈부신 형체들은 사라졌다. 황량한 언덕의 희미한 윤곽과 그 위로 빛나는 별들만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하신다는 엄숙한 느낌이 들었다. 쓸쓸한 그곳이 보이지 않는 존재로 가득 찼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부조와 선지자』, 183-187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이정원/이슬기 선교사 부부(네팔)
네팔대회의 발전을 위해
2월 28일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창 28:22)
야곱은 중요한 사건을 기념하는 관습에 따라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기념비를 세워 그 길을 지날 때마다 그 거룩한 지점에 머물러 주님께 경배하기로 했다. …그는 깊은 감사로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하시리라는 약속을 되풀이했고 다음과 같이 엄숙하게 서약했다.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 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여기서 야곱은 하나님과 협상하려는 게 아니었다. 주님은 이미 그에게 번영을 약속하셨다. 이 서약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확신하는 감사의 마음이 흘러넘친 것이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보증하셨으므로 이것에 감사해야만 하며 자신이 하나님의 은총을 받았다는 특별한 증표에 대해 자신도 돌려 드릴 것이 있어야 한다고 느꼈다. 이처럼 우리에게 임한 모든 복에 대해 우리는 자비의 근원이신 주님께 보답해야 한다는 마음이 생긴다. 그리스도인은 종종 지난날의 삶을 되돌아보며 하나님께서 시련 중에 떠받쳐 주시고 모든 것이 어둡고 험난할 때 길을 내주시고 쓰러지려 할 때 힘을 주시면서 이룩하신 소중한 구원을 떠올리며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이 모든 것을 하늘의 천사들이 보살피는 증거로 인식해야 한다. 이처럼 셀 수 없는 복을 생각하면서 차분히 감사하는 마음으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시 116:12)라고 자주 물어보아야 한다.
우리의 시간, 재능, 재산은 이 복을 맡기신 분께 신성하게 바쳐야 한다. 우리를 위해 특별한 구원이 이루어질 때마다, 예기치 못한 새로운 은총을 얻을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인정하되 말로써만이 아니라 야곱처럼 예물과 헌물을 그분의 사업에 드리면서 감사를 표현해야 한다. 하나님의 복을 끊임없이 받고 있는 만큼 우리도 끊임없이 드려야 한다.
『부조와 선지자』, 187, 188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동혁/김아림 선교사 부부(캄보디아)
학교 내 교사들의 신앙 부흥을 위한 제자 훈련이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루어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