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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한 방울에도 9억 중생이
물 한 방울에도 9억 중생이 있으며
아무리 작은 미물일지라도 그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는
부처님의 사상을 믿는 불자라면 생명을 존중하고 자연을 아끼며,
또한 부모님에게도 정성을 다합니다.
살아 계신 부모님과 돌아가신 선망부모에게 똑 같이 공양하는
공경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불자의 도리입니다.
다른 종교를 갖고 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등산을 다니면서 절을 자주 찾게 되었는데
불교를 아는 것도 아니었건만 자꾸 절을 다니다 보니
가족들 모르게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무심코
지장전에서 천도재를 올리는 가족을 보게 되었는데
이웃에 사는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그날 밤에 희한한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어떤 노인이 나타나더니
그 집안에서 호랑이 할아버지로 통하던 사람이라고 하며
객사客死를 했는데 아직 구천에서 헤매고 있으니
불교를 믿지 않더라도 이를 풀어달라고 애원하더랍니다.
꿈에 나타났던 노인은 가까운 친척이었으나
서로 왕래를 자주하지 않았던 사이라고 합니다.
그 노인이 그에게 나타난 것은
그의 직계가족들이 모두 기독교를 믿는 광신교들이어서
호소를 해도 들어줄 사람들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다가 가족들은 노인은 혼백이지만
화가 나 며느리를 병들도록 하고
아들의 사업이 잘 되지 않게 방해를 했다고 합니다.
생시인지 꿈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꿈을 생생하게 꾼 뒤라 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했습니다.
가족들 중에는 그의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마땅히 없었습니다.
그는 마침 전날 천도재를 올렸던
이웃사람이 생각나서 그들을 찾아가 꿈 얘기를 하며 논의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웃사람은 불심이 깊고
불교공부를 했던 사람이라 천도재를 올리는 이유와
어떻게 천도를 하면 되는지 알려 주면서 절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마침내 이웃과 스님의 도움으로 가족들 모르게
천도식을 마치게 되었는데 다음날 꿈에 다시 나타나서는
덕을 입고 좋은 데로 가게 되었다며 인사를 하더랍니다.
물론 그 사람은 그 일이 있은 후
절에 열심히 다니고 불교 공부를 하는 불자가 되었습니다.
효孝라고 하는 것은
살아 계신 분이나 돌아가신 분을 함께
공경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며,
이웃의 어른도 어느 생生에서 나와 인연이 있는지 모르니
내 어른처럼 공경하는 것입니다.
인연법을 잘 아는 불자를 부모에게 효도하고
조상을 섬기는 공덕에 대해 잘 이해하리라 믿습니다.
승僧이 군대 가기도 전前에 일이었을 겁니다.
아마 내 기억으로는 구마산역舊馬山驛 맞은편 상남동에 살 때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그 사촌형님은 아버님의 양계장에서 병아리를 떼어서
마산 가까운 외곽으로 짊어지고 다니면서 행상을 했었습니다.
몇 개월을 그렇게 병아리를 짊어지고 다니면서
행상을 하다가 병아리를 팔았는지 어쨌는지는 몰라도
갑자기 서울로 올라가면서 소식도 없이 떠났습니다.
아버님께서 며칠을 기다려도 소식이 없다 보니
‘그놈이 갔나보네.’ 하고 ‘망할 놈 갈려면 말이라도 가지.’하고
서운해 하시면서 그 형의 동생을 마산으로 보내 주었습니다.
그리고 서울로 간 형님은
갑자기 돈을 긁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언제인가 아버님을 만나서 얘기를 했는데
기억도 없는 돌아가신 할머님의 꿈을 꾸게 되었는데
재齋 한번 지내 달라고 하더랍니다.
그 할머님은 젊은 나이로
병마와 세상을 하직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재만 지내주면 너는 살려 주겠다고 하더랍니다.
당시에는 이런 저런 잡다한 일 하던 처지이고
아버님 곁에서 행상하다 상경해서 돈도 없고 그럴 때 인데
그래서 당시에 형수님은 신혼을 꾸리고 계실 때라
생계가 안 좋은 생활이었는데도 간단하지만 조촐하게 상 차려 드렸답니다.
그러면서 다음에 돈 잘면 잘 차려 드린다고 했답니다.
그리고 바로 며칠 뒤에 옥수동에 큰 화재가 났는데
그 형님 댁 주변에 모두 화재를 당했지만
신기하게도 형님 댁만 빼고 다 탔다고 하여서
그 후로 프레스 공장을 만들고 국내 처음으로 의류 공장에
주머니 접어주는 프레스 기계를 특허를 내어 몇 년 사이에
옥수동에서 거부巨富 대접을 받고 살고 있습니다.
지금은 십여 년 전부터
건강이 안 좋은 노년으로 그렇게 살고 계십니다.
앞의 얘기나 뒤의 이야기를 보면
잘 모르는 관계로 재齋를 부탁하였고 재齋를 지내준 인연입니다.
앞에서 부처님의 말씀따라
나의 이웃 어른도 어느 생生에서 나와 인연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잊으면 안 되는 것이며,
우리는 우리의 조상님들을 항상 잘 모셔 드리는 것이
후손들이 할 일입니다.
승僧은 토굴에서 수행하는 토굴승이지만
어느 대찰大刹 스님들보다도 나날이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
합동 천도재를 항상 잘 모시려고 합니다.
승이 접수 받는 영가위패는
늘 선착순 60위位로 재한하고 있지만
항상 적은 비용으로 접수를 받으면서도
재齋 다운 재齋를 모시기에
늘 국절 1장에 꽉 차게 모시고 있습니다.
올해도 예외가 아닙니다.
국절 전지에 연꽃 닢을 만들어 붙이고
하나하나 정성을 담습니다.
많은 영가를 모시고 영가 위패 장사하는 것이 아니라
딱 60위만 제한을 하면서 그 영가님들께는 최선을 하며 올립니다.
계산해 보시렵니까?
작년까지는 1위에 5천원으로 하였지만
올 해부터는 2만원으로 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원래 60위를 제한하였는데,
지금까지 들어 온 영가 위패는
115위 접수 되었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계산해 보시렵니까?
1위패 2만원 X 115위 = 2,300,000원입니다.
입재와 막재에 들어가는 비용은 40만원과 30만원 정도 들어갑니다.
그러면 2,300,000원 - 70만원 = 1,600,000원 남습니다.
그리고 재비齋費, 시장비를 매주 18만원을 900,000원 남습니다.
그리고 매주 꽃을
대구 꽃시장에서 구입하여 110,000원 X 7회 = 770,000원
그러면 얼마가 남겠습니까? 130,000원이 남을 겁니다.
그런데 중요한 비용이 있습니다.
그리고 재齋에 필요한 용품비가 약 1,500,000원 들어갑니다.
(반야용선, 번, 수건, 치약셋트, 영가 옷 등등)
그러면 얼마 남겠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마이너스지요?
그것도 -1,300,000원 으로 나올 겁니다..
왜 손해 보내고요?
그렇게 어떻게 사냐고요?
그래도 그 승의 마음 알아주시는 분들이 계시고
그 분들께서 늘 꽃값이라도 하라고,
또는 과일 올려드리라고
그렇게 마음을 남아 주시는 분들 덕에 잘 살고 있는 것입니다.
승은 늘 그렇게 49일 동안 지극정성 들입니다.
남아있는 시간 동안이라도
지난 세월 참회하며 돈 버는 것 보다 복福지을 연습하면서
살다 가는 게 바른 승려라는 것을 깨닫게 되어 그렇습니다.
모든 것은 늘 승은 적은 비용을 산출하여
접수를 받는 것이 지금은 더 행복하기에 그렇습니다.
다른 사찰에서는 시주돈 들어오니 그것으로 살림 살겠지만
승이 있는 토굴에는 불전함에 돈 들어오는 것이
고작 한 달이면 1 ~ 2만원 정도입니다.
그래도 이렇게 잘 살고 있습니다.
매일매일이 환희심 가득 잘 살고 있거든요.
매양 적자로 살면서도
이렇게 재미있고 행복한 것이 바로 토굴승의 하루 생활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이것이 오늘 드리는 따끈따끈한 글입니다.
행복한 시간들로 가득 차시기 바랍니다.
2023년 07월 29일 오전06:40분에
남지읍 무상사 토굴에서 雲月野人 진각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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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워낙 다른 절에서 너무 휘둘리다 보니
부득이 최하 금액으로 올리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