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內로' 라는 영역을 들여다 보면, 心과 외부가 결박(쌍요자나 상태) 되어있는 모습이 두겹구조 라는 점 (두겹의 의미는 만물의 본질로 유추되는 양자역학의 양자상태, 중첩 혹은 얽힘구조와 유사함).
즉 '12연기의 제법들'과 '탐진치'가 두겹으로 포개져 있다는 것. 그래서 최초의 正見을 갖추면 '팔정도'의 길을 걸어 '탐진치'를 발견하고 苦의 集을 눈치 채고서 苦가 集하는 行을 파악하여 그것을 비우는(멸하는) '행(行)에 대한 사마타(一切行의 寂止)’를 통하여 첫단계의 심해탈을 성취하게 되는 것. 즉 완전한 해탈 상태는 아니지만 이 길을 먼저 걸어야 한다는 것.
그러고 나면 비로서 '탐진치'를 기초로 건립한 '12연기의 제법들'이 펼쳐진 민낮을 발견하고, 다시 정견을 갖춘 '팔정도(아쌍가)+정지+정해탈' 이라는 '다쌍가'를 걸어 마침내 탐을 기초로한 무명을 제거하여 혜해탈 완성.
경전에 언급된 '탐진치'의 정체는,
1. 한계를 짓는 자(pamāṇakaraṇo) ---> 그래서 無量心解脫(appamāṇā cetovimutti) 필요로 함
2. 所有하는 자(kiñcano) ---> 그래서 無所有心解脫(ākiñcaññā cetovimutti) 필요로 함
3. 相을 만드는 자(nimmittakaraṇo) ---> 그래서 無相心解脫(animmittā cetovimutti)을 필요로 함
일단 心解脫(= 일시적이나마 탐진치를 비우고 버려서 없으면 그것이 ‘空心해탈')이 되고 나서, 거기에서 진행되는 것이 무명에서 이탐(離貪)하는 '위빠사나' 임.
‘무명을 緣한 행(saṅkhārā)이다’ 라고 알아내어, 즉 아빈냐(abhiññā, 增知 = 쌍카라들을 파악하는 智)를 얻어 空의 영역을 증가시키어 '위빠사나'를 갖춘 자가 되는 것
위빠사나는 사성제를 깨달아 ‘신행(身行) 등’을 끊는 것이고, 空(suñña)의 영역이 확장되는 것 임.
"그때 아난다가, 세존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空한 世間, 空한 世間이라고 말합니다. 세존이시여, 무엇 때문에 空한 世間이라고 말하는 것입니까? 아난다여, ‘나와 나의 것이 空’하므로 空한 世間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아난다여, 어떠한 것이 ‘나와 나의 것이 空’한 것인가? 아난다여, 眼(~意)은 ‘나와 나의 것이 空’한 것이다. 色(~法)은 ‘나와 나의 것이 空’한 것이다. 眼識(~意識)은 ‘나와 나의 것이 空’한 것이다. 眼觸(~意觸)은 ‘나와 나의 것이 空’한 것이다. …(생략)… 眼觸(~意觸)을 緣하여 生起하는 受인 ‘樂 ․ 苦 ․ 非苦非樂’은 ‘나와 나의 것이 空’한 것이다.:
[SN. vol.4. p.54]
'나' 라는 허상(有身見)이 비워지는 상태로 되어감이 '空의 영역이 확장' 되는 것이라고 본다. 태어날 때, 백지상태의 깨끗한 의식으로 세상에 들어 왔다가 점차로 수 많은 탐진치에 얽힌 기억과 업을 덕지덕지 心에 결박하여 허우적 거리며 살아가는 인생. 그러나 붓다는 이 모든 것을 心에서 비우는 방도를 제시하였고 이를 받아들인 아라한들은 비우고 비워 아기가 세상에 들어 올 때처럼 깨끗이 비워진 상태로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사라지는 것. 붓다는 그 가능성을 직접 보여주신 위대한 스승. 그래서 그의 이름 중에 '여래(如來)' 라는 것이 있다. 如來 = 온 것처럼, 온 상태로 인 채 가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