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의 『목민심서』
1.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는 지방의 수령들이 반드시 가져야 할 철학과 태도 그리고 실용적인 지식을 전달한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군주의 덕목과 행동의 실제적인 근거를 제시하였다면, 그에 못지않게 <목민심서>는 수령들의 중요성과 그들이 반드시 실현해야 하는 정치적, 행정적 업무가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군주가 중요한 것만큼, 수령 또한 그 지역 사람들에게는 절대적인 존재이기에 수령이 누구인가에 따라 고을 사람들의 운명은 결정되는 것이다.
2. 수령의 부임부터 퇴임까지의 단계를 12편으로 나눠 각각에 6개의 조항을 통해 목민의 지침을 정리한 <목민심서>는 조선시대 관리들뿐 아니라 현대의 공무원들에게도 중요한 실천적 강령이라고 할 수 있다. ‘목민’은 현대적 관점에서는 위계적 언어이지만, 당시에는 백성에 대한 극진한 사랑을 표현하는 말이었다. ‘목민’은 행정의 중심을 오로지 ‘백성’에게만 두어야 한다는 중요한 원칙을 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무게감 때문에 다산은 ‘목민관은 구하는 벼슬’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3. 목민관이 될 사람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일까? 다산은 무엇보다도 청렴과 성실이라 보았다. 목민관이 여색을 멀리하고 물자를 절약하며 예를 지키고 학문을 부흥하며 집안을 잘 단속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랫사람들에게 위엄과 권위를 갖기 위해서는 자신의 흠결이 없어야 하는데, 그것은 부정에 연루되지 않고 깨끗한 마음으로 운영하는 청렴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청렴’만이 지방아전들에게 위엄을 줄 수 있고 그들을 통제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이 된다. 부정한 자의 언행은 언제나 비웃음을 사고 결국 제대로 된 관리에 실패하게 되는 것이다. ‘청렴’을 실천하고 ‘성실’하게 활동하다면 세부적인 행정적 요소는 자연스럽게 달성할 수 있게 된다. “부하들을 통솔하는 방법은 위엄과 믿음 뿐이다. 위엄은 청렴에서 생겨나고 믿음은 성실에서 나온다.”
4. <목민심서>는 목민관이 지녀야 할 근본적인 태도에서 출발하여 육전(이, 호, 예, 형, 병, 공)에 관한 세부적인 사항에 대하여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수령이 반드시 행해야 하는 업무를 규정한 ‘수령 7사’는 “농상의 번영, 호구의 증식, 학교의 부흥, 군정의 정비, 부역의 균등, 소송의 감소, 간활의 증식”이다. 이러한 목표는 6전을 효과적으로 활용해서 달성할 수 있을 것이며 그런 행정에는 반드시 필요한 요소와 해서는 안될 것들에 대한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목민심서>의 장점은 단지 지방행정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항목을 직시하고 그것에 대한 역사적 사례를 보충하면서 좋은 목민관의 필수적인 지식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5. 다산이 특히 주목하는 것은 ‘아전’에 대한 관리이다. 아전은 지방 행정에 대한 충분한 지식과 정보를 갖고 있는 존재들이다. 그렇기에 이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올바른 행정을 할 수 없다. 다산은 지방관들을 농락한 사악한 아전의 대표적 사례를 들면서 경계한다. 이들 아전들은 중앙의 대신이나 관찰사에게 상납하고 결탁하여 지방 관리들을 마음대로 농락했던 것이다. 이들을 엄격하게 통제하지 못한다면 목민관은 허수아비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목민관으로 부임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자신의 해야 할 일을 엄격하게 규정하고 외부의 부당한 개입에 저항하면서 업무를 추진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에 맞는 행동만이 아전들의 음모에서 벗어날 수 있고, 올바른 행정을 실현할 수 있게 한다. “군자가 마음을 공평히 가지고 주견을 먼저 세워 외부의 자극에 흔들리지 않으며 노여움을 다른 데로 옮겨 풀지 않아야 아전이 농간을 피울 곳이 없게 된다.”
6. 엄격하고 정당하며 청렴하고 성실한 목민관의 자세가 지방행정의 초적이 된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다. 지나친 엄격성은 때론 독이 된다. 다산은 엄격하되 관대함과 인자함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나친 청렴함을 앞세워 작은 죄를 지은 사람들에게 심한 처벌과 비난을 가한다면 마음으로 승복하기 보다는 원한을 살 수도 있는 것이다. 자발적인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목민관 스스로 “너그러우면서도 해이하지 않고 어질면서도 나약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지나치게 청렴한 자는 은혜를 베푸는 일이 적으며 자신이 반성하는 보다는 타인에 대한 공격에 익숙하다. “굳세고 과격한 행동이나 각박한 정사는 사람의 인정에 가깝지 않다. 군자가 내치는 것이며 취할 바는 아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는 엄격함만으로 이룰 수 없다. 타인에 대한 존중과 성실함에 기초할 때만이 그에 대한 처벌이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7. 목민관의 업무는 모든 것에 걸쳐있다. 행정, 사법, 군사 모든 것이 목민관의 책임이다. 그렇기에 고을 백성들에게는 임금보다도 수령이 더 하늘로 인식될 수 있다. 목민관의 엄중함이다. 다산은 글 말미에 중국의 원결이 쓴 <도주자사청벽기>라는 책에서 인용한 구절을 통해 목민관의 중요성을 다시금 환기시킨다. “천하에 병란이 일어나면 사방 천리 안에 뭇 백성을 보호하고 환난을 물리치는 일이 자사에게 달려있을 따름이다. 자사가 만일 문무의 재략이 없고, 청렴하지도 않고, 아랫사람에게 엄하지도 않으며, 맑지도 은혜롭지도 공평하지도 바르지도 않다면, 한 주 안에 있는 동식물이 모두 그 해을 입을 것이다.”
8. 최선을 다한 행정의 결과는 마을 사람들의 태도에서 알 수 있다. 때론 송덕비나 선정비와 같이 돌에다 자신의 업적을 세우는 목민관들을 볼 수 있는데, 다산은 이러한 행동을 비난한다. 거짓과 강압으로 세운 송덕비를 사례로 들며 “청렴과 결백을 과시하려는 것은 하늘의 이치에 맞지 않는다.”라고 비판하는 것이다. 진짜 중요한 것은 떠나는 목민관에 대해 진정으로 감사하고 유임을 청원하는 백성들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또한 그가 떠난 후에도 “여러 사람들의 칭송이 오래도록 그치지 않으면” 목민관이 진정으로 올바른 행정을 했음을 알 수 있다. 목민관은 올 때 빈손으로 왔듯이, 떠날 때도 가볍고 깨끗한 행장으로 떠나야 한다. 오로지 ‘애민’의 마음으로 임금의 덕과 뜻을 전파하며, 그것을 성취하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떠나는 것이 진정한 목민관의 모습이라고 다산은 말하고 있다. ‘떠나는 뒷모습이 아름다운’ 인간의 얼굴이다.
9. 다산은 ‘목민’의 뜻을 자신이 직접 펼 수 없음을 아쉬워하며 <심서>라고 이름붙였다. 일종의 사고실험이며 일종의 정신적 계획서이다. 하지만 이 책 속에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자신이 직접 참여했던 목민의 경험과 함께 오랜 기간 수많은 목민들의 사례에서 받아들여야 할 것과 경계해야 할 것을 다양하게 수집하고 정리하고 있다. 이 세상 대부분의 책들은 현실의 문제에 대한 안타까움을 극복하기 위해 저술된다. <목민심서> 또한 극심한 타락으로 빠져가는 조선 후기의 황폐한 지방행정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충정에서 기록되었다. 분명 올바른 마음을 가지고 실천할 수 있는 목민관들이 나타난다면 어쩌면 위기는 극복될 수 있고, 백성들의 삶은 개선될 수 있다는 희망이 담겨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이 나온 지 얼마 후 조선의 백성들은 더욱 심화된 참을 수 없는 고통에서 허우적거려야 했다. 그 결과 곳곳에서 민란이 일어났고 농민들의 저항이 발생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무너져가는 조선의 행정에 대한 마지막 경고이자 예언서였다. 지금 제대로 된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다면 무너질 수밖에 없는 조선에 대한 심폐소생술이었던 것이다.
첫댓글 - 몰라서 안하는 것이 아니라 욕심이 앞서서 하지 않는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권세가들의 욕망에 민초들의 삶은 피폐해져 갈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