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제 졸려서 일찍 잠이 들어 새벽 3시에 화장실을 가느라 잠이 깨었는데 그 다음부터는 깊은 잠을 자지 못하고 눈만 감고 있다가 5시 10분전에 그냥 일어나 버렸다.
그리고 어제 대강 싸두었던 짐을 마저 싸고 준도 곧 일어났는데 마부하이에서는 모닝 콜이 오지 않는다. 준이 옆 방으로 가서 사람들을 다 깨웠다. 그리고 났더니 5시가 한참 지나서야 직원이 방을 두드렸는데 알고 보니 미니 바를 체크하러 온 것이었다.
짐을 싸들고 5시 30분에 샵으로 우리가 제일 먼저 갔다. 롤로 사장님과 헌석이는 가게에 나와서 라면을 끓일 준비를 하고 있었고 곧 한사장님과 연수씨도 나타났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가는 날 기분이 몹시 가라앉았는데 떠나는 것도 여러 번이니 이제는 곧 오리라 생각해서 그런지 별로 섭섭하지도 않다. 아마 롤로 사장님이나 순영이, 헌석이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되었다.
라면을 끓이려 하는데 이종명 사장님만 아직 나오시지 않는다. 그러다 우리가 라면을 막 먹기 시작할 때 나타나셨다. 우리가 타고 갈 배는 렌조 2. 벌써 선장은 우리 짐을 배로 다 옮겨 놓았다. 바다는 사방 바다 답게 호수처럼 잔잔하다. 정상적(?)인 바다를 만나서 배를 타는 것이 참 오랜만이다(지난 8월 여행 때는 올 때와 갈 때 모두 파도가 세었고 이번에 들어올 때는 8월 때보다도 파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배를 타고 블루 워터 식구들과 손을 흔들어 작별을 하고 배는 레알 비치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중간에 물이 빠르게 흐르는 곳에서 배가 울렁거리니 봉준 형님은 약간 멀미가 나시는 모양이었지만 곧 바다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가는 배 위에서는 항상 말들이 그리 많지 않다.
레알 비치에 도착하니 진주랑 목걸이를 사라고 새벽같이 나와 있던 장사치들이 모여든다. 제임스의 토요타가 보인다. 올라타고 막 떠나려는데 새로 태어난 새끼 염소들이 여러 마리 보였다. 어미 위로 뛰어오르고 하는 것이 강아지 같이 귀엽다.
이번에는 공항 가면서 아침먹는 장소를 <부랄로 하우스>라고 하는 곳으로 바꾸었다. 부랄로는 필리핀식 우족탕인데 항상 졸리 비 같은 햄버거 집만 가다가 밥도 있고 필리핀식 아침이 푸짐하다는 말을 듣고 한번 가보기로 한 것이다. 제임스도 부랄로 하우스가 어디인지 잘 알고 있었다.
차를 타고 한 시간쯤 가다가 제임스가 깨끗하고 양식당 분위기가 풍기는 집 마당으로 들어가 차를 세웠다. 이곳이 부랄로 하우스이다. 큰 식당 홀 안에는 손님이 몇 사람 있다. 들어가보니 카페테리아 식으로 음식이 몇 가지 있고 손님이 선택해서 먹게 되어 있다. 어떻게 주문해야 할지 알 수 없어 잠시 왈가왈부 의논을 하다가 부랄로를 4개 시키고 그냥 맨 밥과 갈릭 라이스를 두 개, 그리고 나와있는 음식 중에서 야채가 많이 들어간 듯이 보이는 것을 한 종류 시켰다(콜리 플라워와 오징어를 섞어 볶은 것). 나중에 부랄로가 나오는 것을 보고 우리는 모두 입을 딱 벌리지 않을 수 없었다. 큰 우동 그릇 같은 그릇에 소고기 국물과 함께 커다란 소 대퇴골이 골수와 근육이 잔뜩 붙은 채로 그릇마다 하나씩 가득 담겨져 나왔기 때문이었다. 배가 정말 고픈 상태의 남자 어른이 먹어도 배가 부를 것이다. 이것을 라면을 먹은지 두 시간 밖에 안 지났는데 어찌 다 먹나.... ?(처음에 여섯 개 시켰다가 4개로 줄인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리고 소갈비 살을 조금 주문했는데 부랄로를 보고나서 그것은 취소시켰다.)
제임스까지 여섯 명이 열심히 달려들어 부랄로를 해치우기 시작했는데 다행히 제임스는 졸리 비 같은 데서 먹을 때와 달리 아주 잘 먹는다. 거의 한 그릇을 다 비운 것 같았다. 그리고 식도락가 적인 미식가 봉준 형님. 소뼈에 붙은 연골(도가니 부분)을 너무 잘 드신다. 이렇게 먹고 나중에 계산할 때 보니 음료수까지 1105페소. 다들 배가 불러 그렇지 이번 식사 내용에는 만족스러웠다. 다음부터는 사방 들어올때 배가 좀 고파도 공항에서 여기까지 그냥 와서 여기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졸리 비에 비하면 네 배 정도 되는 비용이지만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제임스도 여기서 먹는다고 하면 내심 되게 좋아할 것이다.
밥을 먹고 남자들은 차에서 옷들을 갈아입고 다시 공항으로 출발했다. 이때 시간은 9시쯤 되었는데 공항까지 약 한 시간 정도 걸릴 것이었다. 그러나 나중에 시내에서 길이 많이 막혀 한 15분 정도 지연되었지만 어쨌든 공항에 잘 도착하여 제임스에게 100 페소 팁을 주고 제임스와도 작별하였다.
공항으로 들어와서 짐 안전 체크를 받고 모닝 캄 회원이신 이종명 사장님의 카드로 모닝 캄 카운터로 가서 체크 인을 하였다. 평소보다는 공항이 좀 덜 붐빈다는 인상을 받았다.(나중에 서울에 도착해서 순영이가 안부 전화를 했었는데 바로 어제 공항에서 총격전이 있었다고 한다. 한산한 것이 그것 때문이었는지?) 처음 필리핀에 도착해서 다섯 명이 50불씩 공금을 걷었는데 그 동안 사방에서 잘 먹고 마시고, 블루워터 직원들 팁을 후하게 주고도 80불이 남아 있었다. 공항 이용료가 일인 당 10불씩이니 이것까지 지불을 하고 나서 남는 30불은 6불씩 돌려주려고 하였는데 이종명 사장님께만 돌려드리고 나머지는 한사장님 제의로 우덜들의 스키 大싸부 (네팔 말로 <바랏 싸부> 라고 하던가?) 전담 선생님 선물(시가)을 사기로 했다.
출국 심사를 마치고 면세 구역으로 들어가니 시간은 10시 30분이 좀 넘었다. 보딩 시간은 11시 40분이니 시간이 딱 맞았다. 이 면세점도 무수히 들린 곳이라 나는 더 이상 구경할 것이 없어서 짐을 지키고 우리 신랑과 애연가들은 끽연실에서 니코틴을 호흡하고 있었다. 이종명 사장님은 직원들 선물을 사러 가시고 한사장님은 끽연실에서 나온 후 우리 신랑하고 말린 망고와 담배 등을 사러 가셨다. 쇼핑에 전혀 관심이 없는 연수씨와 나는 잠시 이바구를 떠들었다. 연수씨는 한깔끔 하시는 봉준 형님과 한방을 쓰느라 힘들었다며 다음부터는 독방을 쓰겠다고 기염을 토한다. 다이빙 야그를 한참 하는데 우리 신랑과 한사장님이 돌아왔다. 내가 앉아 있는 곳에서 한 10 미터 떨어진 곳에 벨기에 쵸코렛 파는 코너가 있었는데 한 열 번 필리핀 공항을 오가는 동안 구경만 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곳이 계속 빤히 보이니 자꾸 구미가 당기는 것이었다. 신랑에게 쵸코렛을 사달라고 해서 가보니 100그램당 6불(320 페소)로 정말 비싸다! 쵸코렛 다섯 알을 집었는데 가격은 250페소나 되었다. 그러나 맛은 훌륭했다.
보딩 시간이 다 되어 또 다시 짐 검색대를 통과하고 비행기를 타기 전 짐 수색과 여권 대조를 마치고 드디어 탑승했다. 비행기는 12시 10분, 정시에 출발하였다. 점심이 나올 때까지 졸다가 점심을 대충 먹고(배가 고파 빵하고 디저트 두 개를 먹었다) 화장실 차례를 한참 기다렸다.
비행기는 4시 40분 쯤 인천 공항에 착륙했다. 입국 심사를 받으러 걸어가는데 갑자기 방송국 기자들이 떼거지로 한 남자를 둘러싸고 가는 것이었다. 나중에 뉴스에 나왔는데 이라크 파병 조율 문제로 미국에 갔다가 돌아오는 사람이었다.
짐을 찾고 이종명 사장님과 카트에 짐을 싣고 나가려는데 마약견이 와서 우리 짐 냄새를 맡는다. 리트리버 종류인데 참 예쁘게 생겼다. 그리고 나를 보고 꼬리까지 흔든다. 만져보고 싶었지만 그냥 나왔다. 개를 데리고 있는 직원은 우리보고 무슨 짐이냐고 묻는다. 다이빙 짐이라고 했더니 그러냐고 한다. 마닐라에서 온 비행기 말고 다른 곳에서 온 비행기에 밀수범이 있다는 정보를 들었는지 우리랑 다른 비행기에서 내린 승객들은 짐 검사를 받고 있는 것이었다. 나와서 인사를 나누고 이종명 사장님은 먼저 가시고 봉준 형님과 연수씨도 우리 신랑이 차로 집까지 모셔 드린다고 했는데 너무 돌아간다고 그냥 버스 타고 가신다고 한다. 그래서 여기서 일행과 헤어지고 우리는 차를 기다렸다.
해가 많이 짧아져서 5시 30분 정도 되었는데 어둑어둑하다. 8월 중에는 같은 시간에 이른 황혼 햇살이 부드럽고 아름다웠는데... 차를 타고 서울로 향하는데 안개비가 뿌린다. 그리고 서울로 갈수록 비도 굵어지고 길도 많이 막혔다. 지난 번도 그랬고 이번도 내부 순환로가 많이 막힌다고 방송이 나와서 시내로 가는 길을 선택했는데 이 길도 내부 순환로나 다름이 없었다. 두 시간이 훨씬 넘어서 간신히 삼선교까지 와서 우리는 배가 고파서 여기서 저녁을 먹고 가기로 했다. 그 사이 벌써 연수씨한테서 집에 도착했다고 전화가 왔고 코다리찜과 곱창 전골 등을 파는 기사 식당에서 우리가 밥을 먹고 있는 사이 봉준 형님도 집이라고 전화가 왔다. 내가 선물한(사실 돈은 우리 신랑이 냈다) 향수가 고맙다고 형수님이 전해달라고 하셨단다.
밥을 먹고 나니 8시가 넘었다. 다시 집으로 향했는데 여전히 길은 많이 막힌다. 드디어 우리 집에 도착했다. 지하 1층에는 우리가 눈독들인 자리에 조그마한 마티스가 서 있다. 이런 자리에 마티스를 세우다니... 쯧쯧... 혀를 차며 우리는 할 수 없이 지하 2층으로 내려갔다. 엘리베이터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가 비어있다. 짐을 들고 우리 집으로 들어갔다. 벌써 밤 9시다. 별 일은 없어 보이지만 그 동안 난방을 하지 않아 집이 매우 썰렁하다. 곧 보일러를 올리고 짐 정리를 했다. 그리고 정든 집에 우리 침대에서 달콤한 잠에 빠졌다. 잘 다녀왔다. 이제 다음 여행 계획을 세워야지.
황 준의 후기
이번 여행은 실로 1년을 꼬신 선배와 친구를 오픈워터를 시키고 바다를 알려주려고 했다.
가서 좋은 다이빙이 되었고 선후배가 만족을 해서 나도 기분이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곳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울려서 지내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다.
가서 보면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그간의 살아온 이야기를 하고 어찌 지내는지 알고 좋은 일은 서로 알고 지내면 더욱 좋기에 말이다.
이번에 10번째의 사방 여행을 갔다.
나는 이곳이 식사와 호텔이 좋아서도 아니고 다이빙포인트가 너무 좋아서도 아니다. 이곳의 사람들이 좋아서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거기로 데려가는 것이다.
첫댓글 글 너무너무 잘 읽었습니다...^^*
땡큐, 댄디 강사님, 겨울엔 뭐 하시나요?
저두 잘 읽었습니다. 담엔 보라카이로 오시죠 ㅋㅋ
예, 김선생님. 선물 감사드립니다. (이런 안녕하시지요? 안부 인사도 빼먹었네. ㅎㅎㅎ...)
겨울엔 겨울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