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기상현상
눈(snow)
설경 <출처: (cc)Zink Dawg at en.wikipedia>
“천국의 아들이요, 경쾌한 족속이요, 바람의 희생자인 백설이여! 과연 뉘라서 너희의 무정부주의를 통제할 수 있으랴!” 수필가 김진섭의 '백설부' 한 대목이다.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가진 그도 눈은 무어라 정의하지 못한다. 다만 무정부주의자란다. 눈은 모든 경계를 지워버린다. 눈이 덮이면 고래등 기와집이나 가난한 초가집이나 차이가 없어진다. 부와 가난, 높고 낮음, 아름다움과 미움의 경계를 눈이 없애는 것이다. 그래서인가? 상징학에서 눈은 무지개와 함께 가장 좋은 이미지로 사용된다.
눈이란?
눈의 결정. 눈의 결정은 대단히 다양하다. <출처: 기상청 기상사진전, 2008, 정창훈作>
눈은 대기 중의 구름으로부터 지상으로 떨어져 내리는 얼음의 결정을 말한다. 결정은 여러 형태를 띠며 보통 2㎜ 정도의 크기이다. 눈이 내려 쌓이는 것을 적설(積雪)이라 한다. 적설은 넓은 의미에서의 눈의 양을 가리킨다. 보통 강설의 깊이를 기상관측에서는 적설량으로 사용한다. 지구상에서 눈이 내리는 한계는 평지에서는 남북 양반구 모두 위도 35°정도로 본다. 다만 고지인 경우 열대라도 눈이 내린다. 아프리카의 킬리만자로산이 대표적인 예이다.
눈의 종류에는 함박눈(snow flake)이 있다. 여러 개의 눈 결정이 달라붙어 눈송이를 형성하여 내리는 눈이다. 상공 1.5km의 기온이 영하 10도 이하로 따뜻한 공기에서 만들어진다. 습기가 많은 눈으로 결정의 모양은 육각형이다. 함박눈보다 기온이 추울 때 내리는 눈이 싸락눈(snow pellets)이다. 백색의 불투명한 얼음알갱이 또는 이들이 떨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상공 1.5km의 기온이 영하 20도 이하의 찬 공기에서 만들어지며, 결정은 기둥모양이다. 뭉쳐지지 않는 눈에 가루눈(powder snow)이 있다. 함박눈에 비하여 미세한 눈 조각의 상태로 내리는 눈이다. 습도와 기온이 낮고 바람이 강할 때 만들어진다. 내리는 눈이 녹아서 비와 섞여 내리는 것을 진눈깨비(sleet)라고 한다. 땅에 쌓여 있는 눈이 강한 바람에 날려 불리는 눈을 날린 눈(blowing snow)이라 부른다.
함박눈 내린 교정에서 눈싸움을 즐기는 학생들. <출처: 연합뉴스>
눈이 만들어지는 원리
눈은 빙정과정에 의해 내린다. 빙정과정에서 강설입자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0℃ 이하의 구름 속에 수적과 빙정이 공존해야 한다. 눈이 내리기 적당한 구름은 적난운이다. 적난운의 경우 구름의 상부에는 빙정, 하부에는 물방울, 중앙에는 빙정과 과냉각수적(過冷却水滴, 과냉각된 물방울)이 함께 있다. 아래 그림에서도 중간부분에 과냉각수적과 빙정이 함께 있다. 영하 20도 이하의 구름층에서는 대개 빙정만 존재한다. 그리고 0도 이상의 구름층에서는 물방울로 존재한다. 이 구름은 눈이 만들어져 내리는 그림이므로 눈은 영하 20도 이하의 층에서는 표시를 했다. 보통 최상부의 온도가 0℃보다 낮은 구름을 찬 구름(cold cloud)이라고 한다. 찬 구름에서 빙정의 성장 첫 단계는 빙정 주위의 수증기가 빙정면에 침적(deposition)되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 빙정은 아름다운 눈의 결정으로 나타난다. 침적에 의하여 빙정이 커지면 다른 빙정 또는 과냉각수적과 충돌하여 성장하게 된다. 이를 부착(aggregation)이라고 한다. 수적과 빙정에 작용하는 포화수증기압의 차이에 의해 빙정이 성장하기도 한다.
적난운내에서의 기온에 따른 빙정, 과냉각수적, 물방울 분포도 <출처: 케이웨더>
침적과 부착, 혹은 포화수증기압의 차이로 인해 커진 빙정은 중력에 의해 땅으로 떨어진다. 이때 다른 빙정과 충돌·병합하여 눈송이가 되기도 하고 과냉각 수적과 충돌하여 싸락눈을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눈은 지상의 기온과 습도가 낮은 경우에는 눈으로 내린다. 지상근처의 기온이 높을 경우에는 상공에서 녹아 비로 내린다. 통상 상층기온이 차고 지상기온이 2℃ 이하일 경우 눈으로 내릴 확률이 높다. 드문 경우지만 지상 부근의 기온이 4℃인 경우에 눈이 내린 적도 있다.
눈이 되는 조건이 충족되면 구름층의 기온에 따라 눈의 종류가 달라진다. 영하 10도 이하 구름층에서 떨어지면 싸라기눈 같은 건설(건조한 눈)이 된다. 영하 10도에서 0도 사이 상층에서 내린 눈은 함박눈 형태의 습설(습한 눈)이 된다. ‘가루눈이 내리면 추워진다.’는 속담이 있다. 기상학적으로 구름층이나 대기의 온도가 더 차가울 때 만들어지는 눈이 가루눈이다. 가루눈은 기온이 매우 차갑고 습기가 적어 눈 결정이 서로 달라붙지 않아 눈이 잘 뭉쳐지지 않는다. ‘눈오는 날 거지 빨래한다.’는 속담이 있다. 겨울 철 남쪽에서 이동해오는 기압골에서 눈이 내릴 때는 평소보다 기온이 높아진다. 거지가 빨래할 정도의 포근한 날이라는 것이고, 이때 내리는 눈이 함박눈이다. 이 눈은 습기가 높아 공중에서부터 큰 눈송이로 내리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함박눈은 잘 뭉쳐져 눈사람을 만들거나 눈싸움을 하기에 좋다.
함박눈 내린 강릉 해변에서 눈사람을 만드는 관광객들. <출처: 연합뉴스>
눈의 모양
사람들은 눈송이의 모양을 매우 신기하게 여긴다. 눈송이 하나에 달린 여섯 개의 가지는 모두 같은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완전히 똑같은 눈송이 모양은 거의 없다. 눈송이는 대개 육각형 구조를 보여주지만 각 가지마다 미세한 비대칭형을 이룬다. 우리는 단지 비슷하다고 착각할 뿐이다. 눈의 모양중 대표적인 것이 가지가 여섯 난 별모양이다. 이외에도 바늘모양, 기둥모양, 장구 모양, 콩알 같이 둥근 모양, 불규칙한 입체모양 등 3천종이 넘는 다양한 모양이 있다.
기온과 수분포화도에 따른 눈결정 <출처: 케이웨더>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기온이 영하10도에서 20도 사이일 때 우리에게 가장 친근한 별모양의 눈결정이 만들어진다. 이보다 기온이 낮은 경우에는 기둥형이나 판상결정이 생긴다.
영하 10도보다 높을 경우에는 바늘모양이나 육각기둥형의 결정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눈 결정을 처음으로 인식한 사람은 유럽의 A.마그누스이다. 그는 1260년경 눈이 별 모양을 하고 있다고 기록했다. 눈송이가 육방정계에 속하는 결정이라고 말한 사람은 천문학자 케플러이다. 케플러는 1611년 ‘육각형 눈송이에 대해’라는 책을 써 후원자에게 선물했다. 그러나 그는 육각형눈송이의 대칭성을 설명하지는 못했다.
1665년 세포의 발견자인 R.훅이 현미경으로 본 눈의 모습을 그렸다. 그는 별 모양의 눈 결정이 ‘큰 가지에서 뻗어 나온 작은 가지가 인접한 큰 가지와 평행하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하였다.
1820년 영국의 포경업자(捕鯨業者) W.스코레스비가 96개의 눈꽃그림을 제시했다. 그는 프리즘형·피라미드형·장구형 등 그 때까지 알려져 있지 않은 새로운 눈 결정 구조를 발견했다.
1855년에는 영국의 기상학자 J.글레이셔가 151개의 눈 결정의 그림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눈 결정에 가장 혁혁한 공을 세운 사람은 미국의 W.A.벤틀리다. 그는 눈의 결정사진을 찍는 데 일생을 바쳤다. 벤틀리는 1907년까지 1,300종, 1923년까지는 약 4,000종, 그의 만년까지는 6,000종의 눈 결정 사진을 찍었다. 1931년에는 3,000여 종의 사진을 골라 눈 결정의 사진집을 출판하였다.
‘스노우 크리스털 snow crystal은 그가 죽은 후 다음 해 발간되었다. 이 책 하나로 그는 눈 구조에 관한 세계적 권위자이자 박물학 분야의 전설적인 인물이 되었다. 현재까지 벤틀리의 눈사진이 기상학 교과서에 실리는 것은 그의 뛰어남을 보여준다.
W.A.벤틀리
W.A.벤틀리가 찍은 다양한 눈의 결정 사진
눈의 역사적 기록
눈은 우리의 삶과 밀접하기에 역사에서는 눈에 대해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삼국시대의 기록을 보면 강설량은 길이의 단위인 자[尺]를 사용하고 있다. 눈[雪]과 대설(大雪)로 나누어 구별하였다. 특히 눈이 없었던 겨울의 무설(無雪)에 대한 기록이 13회나 나온다. 철이 이른 가을철의 눈과 대설에 대한 기록은 3회, 철이 늦은 봄철의 눈·대설은 7회의 기록이 남아있다. 초여름철에 내린 눈도 기록이 남아있다.
“신라 벌휴이사금 9년(192) 음력 4월 초여름 경도(京都)에 석 자의 눈이 내렸고, 신문왕 3년(683) 음력 4월 여름에 한자의 눈이 내렸으며, 신라 헌덕왕 7년(815) 음력 5월 여름에 눈이 내렸다.”
고려시대의 눈에 관한 기록은 ≪문헌비고≫의 설이(雪異)와 ≪고려사≫의 오행지(五行志)에 나온다. ≪문헌비고≫ 설이의 기록에는 대설이 6회가 나온다. ≪고려사≫의 오행지에서도 대설이 15회, 우설이 13회, 눈이 7회로 기록되어 있다. 가장 많이 내렸던 것은 1363년(공민왕 12) 음력 2월의 대설로서 그 깊이는 석 자에 달하였다.
조선시대에도 눈에 대한 기록이 많이 있다. 그러나 주로 재해를 위주로 기록되어 있기에 눈에 대한 단독적인 기록보다는 눈·서리·얼음을 구분 없이 저온현상으로 취급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총 33회의 눈 기록이 나온다. 우설로 기록된 것이 11회, 대설이 10회, 보통 눈으로 기록한 것이 7회 순이다. 눈이 자연재해와 겹치면서 가장 큰 피해가 기록된 것이 1526년(중종 20) 1월 24일이다.
“길주(吉州)·명천(明川)·경성(鏡城) 등지에 12월 3일부터 14일에 이르기까지 큰 눈이 내려 평지의 눈깊이는 4∼5자에 달하였고, 밤중에는 광풍이 불어 해수가 밀려와 바닷가의 인가가 물에 잠겨 집을 비우고 도망가거나 눈 속에 빠져 동사하는 자가 대단히 많았다. 경성사람 중 사망자는 무려 100여 인이나 되었다.”
눈으로 인한 피해
눈은 농가 비닐하우스를 무너뜨리는 등 재산 피해를 준다. 농부가 제설 작업을 하는 모습 <출처: 연합뉴스>
눈은 교통 혼잡을 일으킨다. 차량이 눈에 파 묻혀 있다. <출처: 연합뉴스>
현대경제연구원에서 2000년에서 2011년까지 눈으로 인한 피해를 연구했다. 겨울철 신적설량은 자연재해 피해액에 큰 영향을 주는 요인이다. 연도별 신적설량과 피해액을 추이를 살펴보면 2000년대 중반 이후는 거의 비례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이것은 제설 상황이나 신적설량의 집중도(지역) 등의 요인으로 현대경제연구원은 분석했다.
2000~2011년 겨울철 평균 신적설량과 피해액 <출처: 현대경제연구원>
눈으로 인한 월별 피해액을 보면 신적설량 대비 피해액은 3월이 가장 크다. 3월의 경우, 가장 적은 평균 신적설량을 보이고 있으나 평균 대설 피해액은 774.3억 원으로 1월과 비슷하다. 이는 초봄에 발생한 갑작스러운 신적설로 인해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결과로 보인다.
2000~2011년 월별 평균 신적설량(좌)과 월별 평균 피해액(우) <출처: 현대경제연구원>
눈으로 인한 지역별 피해를 살펴보자. 신적설량은 강원도가 피해액은 충청남도가 가장 크다. 강원도의 연평균 적설량은 798mm로 나타났고 충청남도의 연평균 재산피해액은 665억 원이었다. 신적설의 경제적 피해액을 추정했다(현대경제연구원 추산). 적설로 인한 경제적 피해를 재산피해, 교통혼잡비용, 재설비용에만 한정할 경우 연평균 피해 규모는 2013년 가격 기준 약 1조 2000억 원에 달한다. 재산피해는 7,300억 원, 교통혼잡비용은 2,500억 원, 제설비용은 2,200억 원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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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반기성 | 케이웨더 기후산업연구소장
연세대 천문기상학과 및 대학원 졸업하고, 공군 기상전대장과 한국기상학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케이웨더 기후산업연구소장이며, 조선대학교 대기과학과 겸임교수로 있다. 연세대에도 출강하고 있다. 저서로는 [워렌버핏이 날씨시장으로 온 까닭은?], [날씨가 바꾼 서프라이징 세계사] 등 15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