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신앙성장의 단계.
-요한 3,7,19장의 니고데모를 살피며-.
사람은 그 육체가 자라듯이 그의 영혼도
자라야 합니다. 요즘은 사람들이 큰 키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그러나 육체적으로 키가 작은 사람이 오히려 작은고추가 맵다고 큰 일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하지만 영혼이 자라지 않는 사람은 큰 일을 해내기가 어렵고 오히려 악행을 하는 자로 서기가 쉽죠. 역사적으로나 요즘 현실세계속에서 우리가 보듯이 말이죠.
그러므로 사람은 반드시 그 영혼이 성장해야 합니다. 이런면에서 사복음서중에 요한 복음은 니고데모의 이야기 즉 사람의 성장과정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성경에 싣고 있습니다.우리가 이 부분을 통해 사람의 성장과정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어떻게 자라가야 합니까?
그것은 먼저 사람은 반드시 그 영혼이 거듭나야 합니다. 요한 복음 3장 3,5절. 이는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님이 공회의원 니고데모에게 들려주는 명백하고 긴급한 진리입니다. "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3절. 또 "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5절.
요한 복음 3장 전체를 보면 예수님은 니고데모와 이야기를 이어가시며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시고 -그는 처음에는 의문을 품지만 후에- 그는 복음을 듣고 마음에 모셔서 그 영혼이 거듭난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 후에 간헐적으로 그가 성장한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지위나 권세, 지식이나 집안배경이 아닙니다. 오직 그 영혼이 거듭나 있나 하는 것이 그 인생의 가장 긴급하고도 중요한 일입니다. 구약 예레미야 9장 23-24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자랑하는 자는 명철하여 나 여호와를 아는 것으로 자랑할지니."
우리는 복음을 듣고 영혼이 거듭나 있습니까? 내가 교회를 다니느냐고 묻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가족이 믿음의 가정임을 묻는 게 아닙니다. 혹 내가 사역자임을 묻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신 그대로 " 너의 영혼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느냐?'"를 묻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3장 5절은 이렇게 강한 말씀을 합니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우리는 누구든지 이 질문에 진실한 마음으로 답해야 합니다.
니고데모가 만약 그 때 거듭나지 않았다면 오늘 이 시대가 그를 기억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거듭나서 하나님 나라의 일군이 되었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또한 사람은 거듭난 후에 반드시 말씀으로 그 영혼이 성장해 가야 합니다. 요한복음 7장 50-51절. 이것이 요한 복음 7장의 니고데모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진리입니다.
아마도 나고데모는 그가 예수님을 만난 후에 그 거듭난 눈으로 구약성경과 율법을 다시 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그는 구약성경의 율법과 선지서가 일제히 예수님을 메시야 즉 구원자로 예언한 것을 알 수 있었을 겁니다. 그는 당시에 같은 바리새인이라도 구약성경의 진리를 제대로 아는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그러니 요한복음 7장 49절에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과 그를 따르는 제자들을 저주를 받은 자라고 배격했을 때. "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요한 복음 7장 49절.
그는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담대히 그들에게 책망하며 질문합니다. "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판결하느냐?" 51절.라고 말입니다. 이를 보면 니고데모는 그 때 적어도 예수님의 편에 서 있었고 구약성경의 율법을 제대로 이해한 것으로 보입니다. 요한복음의 저자인 사도 요한은 이 니고데모의 말과 그 행위가 너무 인상이 깊어 본문 50절에 이렇게 그의 기록을 남깁니다. " 그 중에 한 사람 곧 전에 예수님께 왔던 니고데모가 저희에게 말하되" 라고 말입니다.
오늘날 영혼이 거듭났다고 하는 자들이 그 믿음을 말씀에 의하여 성장시켜 나가지 못하므로 여전히 육체에 머물러 있는 모습을 봅니다. 그래서 성도가 세상을 가르치지 못하고 오히려 세상이 성도를 걱정하고 가르치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이는 마치 아기가 그 어머니의 양분을 매일같이 흡입하지 않아 영양실조가 걸려 그 부모의 기쁨이 되기는 커녕 그들의 근심거리가 되는 모습과 같습니다. 이들을 고린도전서 3장 1절에서 사도바울은 " 육신에 속한 자"로 불렀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당시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권면합니다. "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우리가 그리스도안에서 어린아이가 되려고 예수님을 믿고 죄사함받고 그 영혼이 거듭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거듭난 영혼이 옥토에 심기워진 나무처럼 매일 말씀의 양분을 먹고 성장하여 열매맺기 위하여 우리가 거듭난 것입니다. 아이의 특징은 부모의 양분을 먹고 그 사랑을 받으며 점점 자라가는 것인데 만약 아이가 자라지 않고 발육이 멈춘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하고자 하시는 일을 감당할 수가 없는 것이죠.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진정 거듭났습니까? 그렇다면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대하며 그 음성을 들으며 그 분의 지도를 따라 삶을 변화해가야 합니다. 골로새서 2장 6-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내 영혼이 거듭나 구원받았다고 해서 결코 안일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양식으로 매일 삼지않아서 놀라운 지혜와 신분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넘어진 사람들이 성경에는 많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솔로몬과 사울같은 이가 대표적이죠.
그들이 처음에는 얼마나 겸손했나요?
그러나 놀랍게도 그들이 나중에는 얼마나 타락했나요? 우리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그를 믿을 수 있는게 아닙니다. 성도라도 말씀생활을 꾸준히 하지 않는다면 그는 언제나 위험한 경계선상에 서 있는 위태로운 자임을 일아야 합니다. 매일 매순간 그의 영혼에 말씀의 양분을 섭취하며 주님의 음성으로 지도를 받고 따를 때만 그를 신뢰할 수 있는것이죠. 예수님도 사탄의 시험앞에 이렇게 고백하고 선포하지 않으셨습니까?
"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마태복음 4:4절.
더욱이 사람은 하나님과 그 나라에 헌신해야 합니다. 요한 복음 19:39-40절.
이것이 요한복음 19장의 니고데모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진리입니다. 당시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 때 공권력에 대항할 힘이 없었던 제자들은 잠잠히 숨어 있었는데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가 용기있게 담대히 앞장 서서 예수님의 장례식에 큰 역할을 합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빌라도에게 에수님의 시체를 가져가도록 허락받고 니고데모는 시체를 보존키 위해 바르는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옵니다.
사실 이 행동은 자기안위를 불사한 믿음의 행동입니다. 당시 왕의 반역자 즉 유대인의 왕으로서 십자가에서 처형된 예수님 이었기에 권세자들로부터 해를 입을 수 있는 행위였지만 그들은 더 이상 은밀히 숨어 있지 않았고 담대히 일어나 예수님의 죽음을 의미깊게 하려고 행동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니고데모의 성장과정을 살펴보고 있기에 특히 니고데모의 모습을 보면 그가 본문에서 예수님의 죽음앞에 드리는 향유 백근의 헌신은 당시 로마 황제에게 드리는 헌신과 같은 가치가 있다고 합니다.
아마 그는 매일 성경을 읽고 묵상하다가 예수님이야 말로 진정한 유대인의 왕인 것을 알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 복음 19장 39절에도 성령님은 이 니고데모가 바로 요한 복음 3장, 7장에 나타났던 바로 그와 동일한 인물임을 강조하며 소개해 줍니다. 이는 주님의 의도적 강조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 일찍 예수님께 밤에 나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것을 백 근쯤 가지고 온지라" 그래서 예수님은 제대로 된 장례법으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싸서 돌 무덤에 안치됩니다. 40절. " 이에 예수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그러므로 우리가 요한복음이 말하는 니고데모의 이 세가지 단계를 볼 때 사람은 반드시 그 영혼이 에수님을 믿고 거듭나야 하고 또한 그 영혼과 삶이 하나님의 말씀과 더불어 성장해가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은 반드시 하나님괴 그 나라에 자신을 헌신해야 합니다. 그게 재능이든 지식이든 소유든지 자신의 전체 삶을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 때 사람은 비로소 아름다운 인생을 이루게 되고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삶이 됩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니고데모의 이야기를 요한 복음 3장에서 "거듭난 공회의원" 으로 기억하지만 성경은 거기에 멈추지 않고 7장과 19장에서 계속 그의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이유일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떤 영혼의 상태에 있습니까? 나는 오늘날의 또 한 사람의 니고데모로서 영적 성장의 어떤 단계를 지나고 있나요?
나는 하나님께 헌신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적어도 하나님과 그 나라에 헌신할 꿈과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까?
사람의 인생이 여기에 이를 때 비로소 그 삶은 값진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반드시 예수님을 믿어 그 영혼이 거듭나고, 반드시 성실한 말씀생활로 그 영혼이 성장하고, 반드시 영원하신 하나님과 그 나라에 헌신해야 합니다!
"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6장 33절.
또 "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 이 세 가지 본문Idea는 손상호 선교사 님의 통찰이고 저는 이 세 본문을 한 사람이 반드시 가져야 할 신앙성장으로 연결해 보았습니다. 제게는 이 세 본문이 나름 의미가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