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그 부끄러운 이야기 둘 / 김창남 10
1. 운전을 시작하며 ‘난 음주 운전은 절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소주 한 병 정도로 끝나는 자리에서는 그 원칙이 잘 지켜졌다. 대리운전을 부르거나 택시로 귀가 했고, 이튿날 아침 다시 택시를 타고 차를 찾으러 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문제는 주량이 두 병을 넘길 때였다. 취기가 오르면 쓸데없는 용기가 고개를 들었고, 주위에서 말리면 되레 고집을 부렸다. 술이 빚어낸 만용蠻勇을 스스로 주체하지 못한 탓이리라. 그 무모함 끝에 자잘한 사고를 여러 번 겪었지만, 대개는 신고하지 않고 당사자끼리 적당히 타협하며 위기를 모면하곤 했다.
3. 2000년 12월, 동해안 지역에서 지부장으로 근무하던 시절이었다. 대구 본부에서 열린 지부장 회의에 참석했다. 회의라기 보다는 한 해 동안의 노고를 위로하고 치하하는 자리여서 가벼운 마음이었다. 이어진 송년회 자리에서 오랜만에 만난 동료들과 술잔을 주고받다 보니 술이 과했다. 자리가 파할 무렵, 평소 친분이 두터운 지부장 몇이 본부장을 모시고 2차를 갔다. 이미 거나하게 취한 상태에서 양주를 들이부었으니, 헤어질 즈음에는 거의 인사불성이었다.
4. 원래는 회의가 끝나면 아내를 불러 아내가 운전하여 돌아가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그러나 취기는 그 약속을 까맣게 지워버렸다. 주차장에서 차를 몰아 근무지 사택을 향해 출발하자마자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떴을 때는 경찰서였다. 경찰관이 무언가를 묻고 있었지만,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상황 판단이 제대로 서지 않았다. 흐릿한 정신으로 둘러보니 자정이 훌쩍 지난 시계와 나를 내려다보며 한숨을 내쉬는 경찰관의 모습이 들어왔다. 왜 이곳에 있는지조차 몰랐던 나는, 그저 이곳이 근무지 경찰서인 줄로만 알았다. 명색이 그래도 지역 기관장인데 하는 생각이 떠오르자 부끄러움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큰일 났다’는 자각에 술이 번쩍 깼다. 천만다행이라 해야 할까, 그곳은 대구 동부경찰서였다. 경찰의 심문이 다시 시작되었다.
5. 사정은 이러했다. 내 차가 신호대기 중이던 택시를 들이받았고, 택시 기사가 음주 운전을 의심해 신고했다는 것이다. 마침, 경찰서 인근이라 경찰이 내 차를 직접 몰아 뒷마당에 세워두었다고 했다. 술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첫 네거리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6. 경황이 없어 횡설수설하고 있자니 경찰관은 답답한 듯 어디 연락할 곳이 있느냐고 물었다. 문득 경찰인 친구가 생각났다. 깊은 밤이었지만 그는 단숨에 달려와 주었다. 친구는 택시 기사가 사고 현장을 찍은 사진부터 확인했다. 가벼운 접촉 사고여서 수습은 어렵지 않았으나, 문제는 음주 운전이었다. 친구가 조서를 작성하던 경찰관과 몇 마디를 나누더니, 인명피해가 없고, 신원이 확실하니 불구속 기소 처리하겠다고 했다. 경찰 친구 덕분으로 마무리가 잘 되어 구속이라는 최악의 사태는 면한 셈이었다. 한 달쯤 지나면 벌금형이 내려질 것이라는 안내도 받았다.
7. 새벽 3시가 넘어 아내가 기다리는 집에 도착했다. 아내는 말을 잃었다. 곧장 아내가 친구의 운전석을 넘겨받아 근무지로 향했다. 나는 부끄럽고 미안해 입을 열지 못한 채, 머리가 아프다는 핑계로 내처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러나 잠은 오지 않았다. 앞으로 수습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8. 애초에 직접 운전해 다녀오겠다고 한 것이 화근이었다. 운전기사의 수고도 덜어줄 겸, 또 이참에 아내를 본가에 데려다주어 오랜만에 친구들도 만나게 해주려고 했다. 그리고 회의가 끝나면 같이 돌아올 요량이었으나 모든 것이 어긋나버렸다.
당장 내일 기사에게 무어라고 설명해야 할지 막막하였다. 이튿날부터는 운전기사가 사고 수습을 도맡았다. 우리 차는 흠집 하나 없이 멀쩡했다. 택시 역시 부딪친 흔적조차 없는데도 불구하고, 택시회사의 사고 처리 담당자는 범퍼 교체와 수리 기간 영업 손실을 이유로 꽤 큰 금액을 요구했다. 음주 운전 사고라는 약점 때문에 억울함을 누르고 순순히 응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보험 처리로 잘 매듭지어졌다.
9. 기사는 상대방이 음주 운전이라는 약점을 교묘히 이용한다고 분개했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잘 생각해 보니 그 택시 기사가 내 생명의 은인이었다. 덕분에 더 큰 사고를 막은 셈이었다. 그 정도 사고로 그쳤기에 망정이지, 그대로 운전해 갔더라면 어떤 참사가 벌어졌을지 모를 일이다. 어쩌면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아내는 한술 더 떠 그 택시 기사에게 따로 고마움을 표시해야 한다고 했지만, 그마저도 부끄러워 그렇게까지는 하지 못했다.
10. 한 달 뒤 법원에서 판결문이 날아왔다. 벌금 200만 원, 그리고 운전면허 취소, 3년 뒤에나 다시 면허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는 통보였다.
취소된 면허는 1976년, 한 달 치 급여를 털어 어렵게 손에 넣은 나의 ‘보물 1호’였다. 훗날 개인택시 면허도 받을 수 있다며 자랑스러워하던 ‘1종 보통 면허’였다. 취소된 면허증에 대한 아쉬움은 생각보다 오래 마음에 남았다. 세월이 흘러 급하게 다시 딴 면허는 ‘2종 보통 자동 면허’였다. 퇴직하면 영업용 차를 몰겠다는 호기로운 자랑도 사고와 함께 멀리 날아가 버렸다.
11. 사고의 후유증은 일상의 곳곳에 스며들었다. “왜 맨날 엄마가 운전해?”라는 아이들의 말 앞에서 가장으로서의 체면은 구겨졌고, 3년 동안 아내의 운전에 의지해야 하는 불편도 만만치 않았다. 아내가 운전대를 잡고 앉으면 나는 옆자리에서 한없이 작아졌다. 가끔은 핑계를 만들어 뒷자리로 피하곤 했다. 무엇보다 곤혹스러운 건 왜 직접 운전하지 않느냐고 묻는 주위 사람들에게 둘러댈 변명을 찾는 일이었다. 눈이 침침하다느니, 피곤하다느니 하는 궁색한 핑계는 늘 입안을 씁쓸하게 만들었고, 그럴듯한 말을 찾는 일도 쉽지 않았다.
12. 그 사건 이후 나의 음주 운전 버릇은 완전히 고쳐졌다. 실로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얻은 교훈이었다. 덤으로 과음하는 습관도 어느 정도는 줄었으나, 술과 나 사이의 질긴 인연만큼은 차마 끊어내지 못했다. 지금도 가끔 술잔을 들 때면 그날 밤 희미한 형광등 불빛 아래로 내려다보던 경찰관의 눈빛과 아내의 무거운 침묵이 환영처럼 떠오른다. 다행스럽게도 그 기억이 과음으로 이어지려는 내 손을 한 번 더 멈추게 한다. 이 또한 뒤늦게 배운 수업료라고, 나는 겸허히 받아들이고 있다.
첫댓글 김창남 선생님
음주운전은 절대로 안됩니다.
사모님이 3년 동안 출퇴근을
하시느라고 수고하셨습니다.
술은 정신을 잃게 만들고
자제력과 통제력을 상실합니다.
음주사고 얘기가 두번 째 이군요.
정말 비싼 수업료로 그 버릇과 절연했군요.
천만다행입니다. 보통 이럴때 조상이 돌봐 주었다고 많이 하십니다.
그동안 조상님 잘 모신 그 복덕도 있었을 것입니다.
바쁜 와중에 슬쩍 읽다보다가 끝까지 읽게되는 것을 보면, 역시 가독성이 좋은 글이기 때문입니다.
나날이 문장이 발전되는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酒님을 좋아하셔서 생긴 일이네요?
김선생님과 저는 主님을 좋아해야 하는 같은 처지?
다 지난일이라 다행이라 생각하며 잘 읽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세상에 제일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술이더군요.
술로 인해서 긍정적인 부분도 있었으니
그 유혹에서 그만 못 헤어난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