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의 빛
안윤자
광화문에서 얼마쯤 떨어진 거리. 왕조시대에는 성저십리로 도성 바깥의 서울인 한성부에 속한 땅이었다.
이곳으로 이사를 온 지도 두어 해가 흘러갔다. 초로에 홀로 내쳐진 이방의 무명씨처럼 아무리 둘러봐도 아는 얼굴 하나가 없는 사방천지가 몹시 낯설고 서먹했다. 하염없이 먼산바라기를 하던 와중에도 은근히 질긴 자생력 덕분인지 새벽이슬에 옷 젖는 줄 모르게 시나브로 정은 들어갔다.
리조트처럼 고요하고 숲이 푸른 이 단지는 출입문을 세면 열 개가 넘는다. 주변 환경을 탐색할 양으로 틈만 나면 정문 밖으로 나가서 이 거리, 저 골목길을 기웃거리곤 했는데 그렇게 차츰 가시거리가 눈에 익자 서먹함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때마침 출간된 대하소설을 발송하는 작업을 하느라 무뚝뚝한 편의점 총각과도 말문을 트고 상가 부동산에 팩스를 부탁하는 여유도 생겼다. 결코 친절하다고는 말할 수가 없었던 이 동네 우체국 직원과도 딴에는 얼굴을 텄다.
낯설다는 건 무관심 지대였던 장소나 사람, 환경에 대하여 반응하는 부적응증이 아닌가 한다. 의식 속에서 조금이라도 체화된 공간이었다면 그렇게까지 어설픈 등외의 심정이었을 리가 없기에 드는 생각이었다.
말문이라도 트고 싶어 누구와의 커피 한 잔이 간절했던 날에도 집히는 얼굴 하나가 떠오르지 않았다. 두세 정거장 밖에는 문단의 후배가 살고 있지만 지척이 아니면 먼 곳의 혈육이나 무에 다른가. 눈인사라도 날리며 사뿐히 지나가고 싶은데도 마스크 속의 냉냉한 무표정에 절로 움츠러들곤 했다.
외로울 수 있는 자유를 최대치로 구가했던 침울한 적응이 아니었나 싶다. 세칭 신축 아파트다 보니 알고 보면 서로가 서로에게 모두가 낯설었고 다가가기 결코 쉽잖은 어색한 처지들이었을 것이다.
꽁꽁 닫힌 창틀 속의 고립감을 날마다 곱씹으며 언어와 풍속이 다른 남의 나라, 낯선 하늘 아래에 덩그러니 혼자 떨어진 노녀의 처지와 내 입장이 무엇이 다르랴? 를 곱씹었다.
침전된 우울의 나날이 흘렀다. 외로움은 바쁘다고 하여 덜어지는 덤이 결코 아니었다. 여차하면 나도 우울증 환자가 될 수 있겠거니, 그렇게 서글픈 감상에 빠져들기도 했었으니까.
그 누구의 간섭도, 방해도 배제된 오직 나만의 공간. 초록 숲이 내다보이는 창과 작은 서재를 원했던 꿈. 다시금 가슴속에다 품어야만 했던 간절한 그 소원을 갖은 곡절 다 감수하면서까지 쟁취해 낸 고독한 이 처소에서 난 왜 맨날 눈물만을 반추해야 했을까. 몽상적인 혼을 소유한 사람에게 꿈과 현실은 그렇듯 언제나 괴리가 있었다
오십 년을 살아와 태어난 고향 땅보다도 더 애틋이 여겨지는 시공간이 서울이다. 그런데 그 서울 한복판에서 이방인 아닌 이방인의 처지가 되어 외로움을 앓으며 시달렸다. 소박하기 짝없는 거리고 동네이며 하늘 밑인데.
그즈음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가 오버랩 되었던 것 같다. 어린왕자도 이름 모를 사막에 홀로 뚝 떨어졌을 때 이렇게 낯설었겠구나. 아니 ‘어린왕자’의 초상이었던 생떽쥐베리가 돌연 불시착했다는 사하라의 모래벌판에서 그는 얼마나 처연하고 막막했을까? 이런 동병상련의 정마저도 일었다.
아리수를 서북쪽으로 건넌 내지에서 타향살이 아닌 타관의 스산함을 신물 나도록 겪었던 지난 이년 여. 우수가 더친 날에는 밤하늘에 보일 듯 말 듯 힘없이 박혀있는 별을 찾아내어 하나둘 세어가며 우울한 심사를 달래고는 했다.
눈을 동그랗게 치켜뜨고 불빛이 사그라든 밤하늘을 뚫어지게 쳐다보면 여기저기에 희미하게 박힌 별들을 찾아낼 수가 있었다. 그 숫자가 하나둘씩 불어날 때마다 몹시도 반가웠다. 수만 광년의 허공을 사이에 두고 목이 메는 그리운 사람 얼굴을 마주한 것처럼 그렇게도 반가웠다.
아아, 밤하늘에는 아직도 별이 떠서 있네.
사라져 버린 줄로만 알았던 별이 서울의 밤하늘에도 아스라이 떠 있었다. 지상의 불빛이 하도 유난하여 별들의 도르래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을 뿐, 무량한 천공에는 수없는 유성들이 반짝이고 있다는 것, 그 사실을 알아챈 것만으로도 적잖은 위로가 되었다.
별을 세는 것은 잊히어 간 동심의 추억을 캐내는 일이다. 그건 밤하늘을 반짝반짝 수놓았던 아련한 별밤의 향수와 유년의 추억에 대한 변함없는 우정이며 그리움이었다. 어렸던 날 올려다본 칠흑 같은 밤하늘에선 주먹만 한 별들이 쏟아져 내렸다.
이곳으로 거처를 옮기고 하염없던 날에 이상스럽게도 수없이 반짝이는 별들이 밤하늘에서 가득히 빛나고 있는 꿈을 서너 차례나 꾸었다. 그것도 날마다 똑같은 꿈을 연달아서 꾸었다. 아직도 꿈속의 그 총총했던 별밤이 눈에 선히 그려진다.
비록 꿈속이었지만 어린 날의 신화를, 초롱초롱한 별들이 노래하는 아름다운 별밤을 다시 한번 내 두 눈으로 분명히 확인할 수가 있었다는 것, 그게 얼마나 울음이 났는지 모른다. 꿈에서 깨면 눈가가 젖어 있었다. 그건 외로운 영혼의 눈물방울이 떠돌다가 밤하늘에 날아가 박힌 은하의 빛이었다.
시애틀 연가
안윤자
16년 전의 가을 LA 카운티에서 휴가차 잠시 머물렀다. 내 지갑 속에는 백 불짜리 지폐 열 장이 고이 숨겨져 있었다. 동행한 이도 모르게 환불해 간 천 달러의 속내.
캐나다와 국경이 가까운 지대로 비가 잦고 나무가 많아 에메랄드 시티로 불리는 숲의 도시 시애틀. 옛 인디언들의 근거지였던 그 땅에 내 친구 S가 살고 있다.
직장 동료로 만나서 깊이 우정을 나누었던 그와 나는 또래였다. 그녀는 스카웃 되어 간 한다한 대학병원의 부서장 자리를 얼마 안 있어 내던지더니 어느 날에, 참말이지 어느 날 홀연 시애틀로 날아갔다. 신촌의 Y대학교에 입학한 아들을 대동하고서.
아메리카에서 전문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는 유일한 혈육인 하나뿐인 언니가 살고 있던 땅. 그 나라에 살다 거기 묻히신 어머니가 계신 땅 미국으로.
그때나 지금이나 제아무리 미합중국이 선망의 대상이어도 전문 직종의 탄탄하게 보장된 울타리를 허물면서까지 굳이 이민을 강행하는 건 대단한 모험심이며 용기가 필요한 결단이었으리라.
우리끼리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고 커리어우먼을 자처했었다. 당당한 서울에서와는 달리 그녀가 발 디딘 이국에서 의외로 삶의 고초를 겪고 있다는 소식이 간간이 들려왔다. 교회에서는 여전히 성악을 하고 오르간을 연주한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누구보다도 자존감이 강했던 그녀가 동양에서 온 조그맣고 추레한 이민자의 모습을 하고서 몸을 심히 앓고 있으리라는 상상은 절대로 유쾌한 현실이 아니었다. 그런 친구에게 내 마음의 일단이나마 전해주고 싶었던 게 천 달러의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마음은 끝내 전해지지 못했다. LA에서 시애틀로 날아가기로 예정되어 있던 전날에, 종일 어쩐 일인지 친구는 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난감하기만 했던 당일까지도.
예기치 않은 상황이었고 허전했다. 울며 겨자 먹기식의 여행길에 올랐다. 네바다주 라스베가스의 뜨거운 밤을 온 심장으로 데우고, 메마른 산악분지 지대에서 기도하듯 하늘 향해 양팔을 벌리고 서 있는 죠수아 나무들을 헤집으며 인디언들이 불쑥 튀어나올 것만 같았던 모하비 사막의 끝없는 적막감.
허허한 사막지대 끝쯤에서 만난 미서부 개척 시대의 은광촌 칼리코Calico 고스트타운Ghost Town을 지나 해가 붉게 떨어지는 저녁 무렵 콜로라도에 닿았다. 그 강변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때마침 달 밝던 콜로라도의 밤. 작은 배에 몸을 싣고, 로키에서부터 발원하여 거대한 협곡을 향해 깊게 흐르고 있는 강물의 정적을 음미했다. 고요한 달빛이 물결에 어리었다.
그렇게 기차를 타고, 버스를 갈아타며 애리조나 북부의 그랜드 캐니언에 당도하였다. 차마 몫이 따로 있었기에 천 달러를 결코 헐어 쓰지 않았다.
서울에 도착한 직후에야 짐짓 그녀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어찌 된 일이었냐고? 전화 오기를 계속 기다렸다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명확히 나의 일정을 꿰고 있던 사람이 아닌가.
내가 미처 헤아리지 못하였었다. 거기까지는……
손님으로 먼 데서부터 찾아오는 친구를 그가 맘 편하게 맞이할 수 있는 상황이 도무지 되어 있지 못했을 수도 있었으리라는 사실을.
그로부터 십여 년 세월이 흘렀다. 오늘 나는 친구의 전화를 오랜만에 기다린다. 이제쯤은 그날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조금은 수다스럽게 떠들어대도 무방하리라.
그대에게로 향한 나의 소소한 정이었다. 그걸 꼭 전해주고만 싶었던. 그래서 더 미국으로 날아갔는지도 몰랐을.
우린 모두 이제는 전직이 되어 있다. 이따금 떠오르는 건 현직이었을 적 직장이라는 운명 공동체에 묶여 있었던, 오랜 날들 부대끼면서 정들어버린 지기들의 얼굴. 그날들의 활달함과 여행의 추억뿐.
없는 시간을 머리 굴리고 쪼개어가며 여객기를 타고 훨훨 지구를 날았던 이방異邦의 풍경들이 덧달려 사무치도록 그립다. 시니어의 우수 속에서 유독 그 한 장만이 반짝반짝 빛이 난다, 돌이켜보면 그때가 우리 인생에 그중 찬란한 젊은 날의 초상이었으리.
시애틀에서, 서울에서 우리는 또 그렇게 각자의 노을을 바라다본다. 카톡 편지로 이따금 안부나 묻고 전하면서.
친구여
이 밤 근심 걱정 없이 잠들었는가. 오늘 그대는 안락한가? 이곳이 한낮일 때 거기는 어둠이 깃들고 그곳이 낮일 때는 여긴 새벽이 튼다. 혼자일지라도 우울감으로 부대끼지 말기를. 그리고 아름다운 시애틀 에버그린evergreen의 밤이 오래도록 지속되기를, 친구야.
프로필
안윤자 수필가. 시인
H.P : 010-5339-9398
e-mail : nagune5@hanmail.net
1991년 7월 <월간문학> 신인상 등단(수필)
가천대학교 일반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전 서울의료원 의학도서실장
수필집 : 『벨라뎃다의 노래』 『사대문 밖 마을』 외
시집 : 『무명 시인에게』
역사장편소설 : 『구름재의 집』
사사社史 집필 : 『서울의료원 30년사』 『경동제약 30년사』
논문 : 『윤동주 시 연구』
월간사보 편집장. 사사편찬위원장. 대표에세이문학회 회장 역임.
한국문인협회 복지위원. 펜클럽. 한국여성문학인회. 한국가톨릭문인회.
대표에세이문학회.. 수필미학. MUNPA 동인
수상 : 2020 가톨릭평화방송, 평화신문공모 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