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주간 훈련을 마치고 퇴소하는 막내의 면회가는 날.
미치도록 먹고 싶다는 치킨과 피자는 고민끝에 양구읍에 위치한 비비큐에 전화를 걸어 주문을 하고 당일날 점심시간에 맞춰 정문앞까지 배달하기로 했다. 사이다와 콜라는 엄마가 캔팩으로 준비하여 아이스박스에 담았다.
대학졸업반인 큰놈은 모 대기업에 인턴사원으로 합격하여 6주간 근무중인데 다행스럽게도 이번주에는 회사 전직원의 일주일 휴가기간이라 집에서 쉬고 있었고 흔쾌히 동생을 보러 함께 가기로 했다.
아침일찍 서둘러 집을 나섰다.
네비게이션에 군사지역이지만 유일하게 표시가되는 신교대 인근의 '백석산아파트'를 입력했다.
산넘고 물건너 강원도 고산준령을 아슬하게 곡예하며 양구읍까지 도착. 집사람이 김밥을 사는 사이 잠시 시동을 껐다가 다시 켰는데 네비게이션에 백석산아파트까지의 경로가 표시되지 않았다.
대충 감을 잡고 가다가 아무래도 이상해서 차를 세우고 주위를 살펴니 마침 운동장에서 축구을 하고 있는 양구의 택시기사들이 보였고, 한 분이 주차를 하고 운동장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잠깐 길을 막고 백석산 위치를 물으니, 오던길을 돌아서 3거리에서 좌회전, 그리고 무조건 평화의 댐 이정표만 보고 20여분간 달리면 보인다고 한다. 자칫 고집을 피우고 감각대로 갔다가는 엉뚱한 곳으로 가서 수료식도 참석 못하고 거리의 미아가 될 뻔 했다. 너무도 친절한 그 분의 설명에 새삼 과거 30여년전 군생활 때 경험했던 강원도의 훈훈한 인심이 생생하게 반추되고 있었다.
드디어 21사단 백두산부대 신병교육대 도착.
사단 군악대에서 축하공연을 하고 있다.
수료식이 치뤄질 연병장 입장을 위해 대기중인 훈련병들
수료식을 위해 먼저 입장한 기수단
이어서 21사단 사단장 도착
사단장 도착 뒤에 비로서 입장하는 훈련병들
내가 조교하던 때에는 훈련병들이 충분한 예행연습을 한 후에 사단장이 도착하여 수료식이 시작되었는데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바로, 사단장의 지침이 있었다 한다. 오늘 수료식의 주인공은 훈련병인만큼 사단장이 먼저 도착하여 부모님들과 함께 오늘의 주인공인 훈련병들을 맞겠다는 것이었다.
도열한 훈련병.
사열대의 소대별 훈련병 위치를 보니 우리 막내는 가운데 위치한 2소대의 뒤에서 두번째.
깨알같이 보이는 훈련병들 중에 육안으로는 도저히 막내를 찾을 수가 없었다.
드디어 내 카메라의 436mm의 초망원 포스가 작렬했다.
줌으로 당기니 깨알같이 보이던 훈련병중에 우리 막내의 모습이 선명하다.
제일 먼저 살이 얼마나 빠졌는지 궁금했는데 사진상으로는 아직 달라진 것이 없어 보였다.
하기사 이제 5주만에 눈에 띌만큼 살이 빠지기를 기대한 것이 과욕이었으리.
연병장으로 내려가 부모들이 군모에 이등병 계급장을 달아주는 순서였다. 그 다음은 11시 30분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 꿈에 그리던 아들들과의 면회시간이 이어졌다.
훈시를 마친 사단장의 퇴장
드디어 모자간 형제간 상봉이 이루어졌다.
정문으로 가서 사전에 주문해 놓은 치킨과 피자를 받아 돌아오니 큰놈이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차라리 비를 맞을 지언정 생활관의 푹푹찌는 곳보다는 훨씬 시원하고 조용해서 좋다고 우기는 큰놈.
보름달처럼 동그랗던 막내의 얼굴이 조금 갸름해졌음을 알 수 있었다.
철저한 식단조절과 체력단련으로 5주간 8kg 이 빠졌다 한다. 우리 때의 마구잡이식 훈련방식보다는 많이 과학화되어 있음을 알 수가 있었다. 대대 작전관의 설명으로는 과대비만의 훈련병은 10kg 이상의 살이 빠졌고 과소체중의 훈련병들은 오히려 살이 적당히 쪘다고 한다. 5주간 훈련중에는 일체 흡연과 PX출입이 허용되지 않을 정도로 훈련병들의 체중조절을 위해 철두철미하게 관리했음을 알 수 있었다.
역시 예상대로 준비한 음식은 절반 이상이 남았다. 본래 기름기 있는 음식을 싫어하고 식사량도 작은 나와 운동을 하면서 다이어트중인 큰놈이 제대로 먹지를 않으니 막내 혼자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양 이었다.
식사후에 재밌는 광경이 목격되었다.
두 녀석이 동시에 어디론가 열심히 전화들을 하고 있었다.
필경, 큰놈은 자기 여친과 통화를 하고 있을 것이고, 막내는 엄마 스마트폰을 빌어 친구들에게 열심히 전화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빠,엄마가 들으면 안되는 내용인지 멀찌감치 떨어져서 열심히 통화하고 있다.
신교대 건물의 일부.
내부를 둘러보면서 마치 외부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위장건물처럼 착각할 정도로 도저히 믿기질 않았다.
산뜻하고 잘 갖춰진 생활관과 첨단시설의 샤워장, 화장실, 자동 세탁실 등등...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엄청난 변화였다.
내가 신교대 조교시절에는 세멘트와 모래를 섞어 벽돌틀에 넣고 좌우로 흔들며 빵을 찍어 내듯이 벽돌을 직접 찍어 햇볕에 말리고 그것으로 막사를 직접 지었다. 목욕탕이 있었지만 대대병력을 수용하기에는 턱도 없이 시설이 부족하여, 개울로 내려가 그곳에서 식기 세척, 세면, 목욕, 세탁..모든 것을 해결했었다.
한 겨울에는, 햄머와 정글 톱을 갖고 내려가 햄머로 개울의 얼음을 깨고 정글톱으로 얼음을 직경 50cm정도로 썰어서 구멍을 만들어 그곳에 들어가 목욕도 하고 식기세척도 하고 모든 것을 해결했었다.
준비해간 감기약, 비누,수건 (훈련중 땀을 너무 많이 흘러 절대부족한 것이 비누, 수건이라 한다) 그리고 동기들과 나누어 먹을 콜라캔, 초골릿 바등 관물대 안쪽에 감추고 있는 막내. ㅎㅎ
관물대에 화이버로 보이는 것이 있어 물어보니, 화이버가 아니라 방탄모라 한다. 막내는 화이버란 뜻도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 때는 화이버와 철모가 분리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일체형의 방탄모가 지급되고 있었던 것이다.
침구도 개인 메트리스와 야영용 침낭까지 지급되고 있었다.
ㅎㅎ.....격세지감을 느낄 수 밖에....
이제는 다시 헤어져야 할 시간
갑자기 막내가 형에게 요즘 유행하는 팝송을 한 곡 듣고싶다 했고,
큰놈은 아이팟을 꺼내 이어폰 하나를 동생 귀에다 꽂아주며 최신 팝송에 대한 설명을 해주고 있다.
다시 부모,형제,애인,친구들과의 아쉬운 작별을 나누는 마지막 시간.
몸매가 예쁜 부사관도 있고, 소대장도 있고 분위기가 괜찮았다.
분위기가 설렁거리고, 예쁜 여군 부사관도 뭔가 부산하고, 막내도 시선이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ㅎㅎ 인원점검 결과 한 명이 결원.
다들 긴장된 상태에서 행방불명된 한 명의 훈련병을 찾고 있는데 한창뒤에 어디선가 달려오고 있는 훈련병 한명.
ㅎㅎ 예나 지금이나 조직에서는 고문관이 한.둘은 꼭 끼어있었다.
또 한번의 436mm 초 망원렌즈의 포스가 작렬
생활관으로 향하는 막내의 마지막 옆모습을 담았다.
막내 왈, "교관,조교들이 얘기하기를 21사단을 '메이커 사단'이라 자랑한다며, 진짜 이곳 양구 21사단이 그렇게 전통있고 유명한 사단이냐"고 물었다.
"아빠 역시 전군 최우수부대 표창을 받고 험준하다면 둘째 가라면 서럽고 김일성도 애석해 했다는 난공불락의 요새인 대성산,적근산의 철책을 담당하고 있는 15사단에서 군대생활 한 것에 대해 더 없는 자긍심을 갖고 있는데 막내에게 15사단 보다 21사단이 더 유명하다고는 말할 수가 없지."
"너도 21사단이 전군 최고 사단이라 믿고 자긍심을 가져라 !! "
초반의 체력검정 훈련중 산악구보 때에는 몹쓸 저질체력 때문에 조교에게 멱살잡혀 억지로 끌려 올라갔었다는 막내는, 몇번의 악전고투 끝에 지금은 체력이 급상승 했다며 반드시 '특급전사'의 영예를 앉아 특급전사의 금색 휘장을 달고 싶다고 야심찬 포부를 밝혔다.
훈련소 생활이 힘들고 지쳐서 아빠.엄마를 보면 글썽 거릴 것으로 상상하고 조심스레 녀석을 대했건만 녀석은 의외로 전혀 기죽지 않았고 자신에 대한 당찬 도전의식을 비쳐보였고, 무엇보다도 전과 다르게 눈빛
에 생기가 감돌았다. 헤어질 때 돌아서는 식구들을 보면서 녀석이 울적해 하면 어쩌나 했지만 오히려 녀석은 포근한 눈빛으로 엄마를 감싸 앉으며 걱정하지 말라 안심을 시키느라 신경을 쓰고 있었다.
돌아서는 발길이 무겁기는 켜녕 오히려 한 없이 가벼웠다. 씩씩하게 군가를 부르며 행군해 돌아가는 녀석의 뒷모습을 지켜보면서 비로소 녀석에 대한 걱정을 훌훌 털어버릴 수 있었다.
잘하고 있구나, 우리막내 !!
첫댓글 백두산 호랑이 민족의 방패. 백석과 대우의 정기를 받아 씩씩하게 싸우는 설악의 용사 싸우지 이기자 훈련은 전투다
ㅎㅎ 조교들이 메이커사단이라고 자랑하더랍니다. 우리 막내가 21사단에 배속된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하필 눈을감고 있었네요. 건강하게 훈련을 마쳐서 다행입니다. 요즈음은 부모보다 여친이 제일입니다...ㅎㅎㅎㅎ
ㅎㅎ 쪼다가 여친도 없습니다. 그냥 동창 친구정도라 하니 있아나 마나겠죠?
그래도 홀가분한 마음으로 돌아올 수 있었으니 이번 면회는 성공했구료....
네..돌아오는 길이 홀가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