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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티가는 길'에 대한 어설픈 이야기를 끝내며.....
한티가는 길 여정의 요약도. 실측 지도 등과 견주어 보며 동선을 그려보면 유용한 자료가 됩니다. 동선은 실제가는 길과 같은 이동경로 선입니다.
한티가는 길의 '그대 어디로 가는 가?'라는 전체 주제 속에 각 구간별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돌아보기, 비우기, 뉘우치기, 용서하기, 사랑하기..... 우리는 내내 이 쳇바퀴 속에서 갈등하며 살고 있는 지 모르겠습니다.
한티가는 길 여정에서 매우 소중하게 여겨진 지도였습니다. 다음 지도검색이나 네이버 검색 지도와 함께 견주어 사전 검색 정리, 그리고 다녀온 후에 다시 지도를 보고 고개 끄덕끄덕..... 만든 분의 노고가 깃들여진 전체 요약지도였습니다. 교통편도 확인해 보시면 유용합니다. 단 버스 교통시간은 조금씩 바뀌게 되므로 칠곡군청 홈페이지에서 별도 확인하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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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는다는 것은 대부분 혼자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여기에 좀 더 양보를 하면 배우자나 친한 친구 한 두명을 동행하는 것이 대부분. 그런 가운데 길을 걸으며 발로, 다리로, 결국 온몸으로 걷게 되고, 결국 온몸의 감각기관을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건 간에 관계없이 자연스럽게 걷는 길에서 그 주변에 온몸을 열어놓게 된다. 이로부터 자신 스스로에 대하여, 자신과 다른 사람, 또는 자신과 자연의 관계에 대해 질문하곤 한다.
그러므로 혼자 걸어가며 자유스러움과 자연스러움을 유지한 채 혼자 사색에 쉽게 빠져들거나 주위의 풍경과 풀꽃, 나무, 숲, 산마루, 그리고 공기, 바람, 향기에 뜻밖의, 자신의 주위에 늘 있었지만 지금까지 거의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처럼 상대에 대해 자신만의 언어로 대화를 하게 된다.
길을 걷는 것은 시간과 목적지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점과 점을 가장 빠르게 연결하는 선에서 단지 직선만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어떤 곳에 반드시 도착해야만 한다는 목적성 우선에서 자유로울 수만 있다면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은 그 길에 대에 대해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자유인이 된다. 만일 시간의 간격과 목적지를 우선 요구한다면 단지 그 때는 발이 아닌 차나 다른 임의의 교통수단을 타고 이동하는 것이 합리적이 될 듯.....
길은 그 자체로 생각이 될 수 있다. 생각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 그러므로 길은 사람들이 만들어 낸, 생각이 담겨져 있는 것이고 그 길 속에는 사람들의 삶과 문화가 담겨져 있다. 때로는 길은 물리적인 길 지형 자체의 의미가 아닌 삶의 여정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도 하다.
'한티가는 길'은 칠곡군의 낙동강과 팔공산을 잇는 45.6 km의 백리를 넘는 길이다. 왜관읍과 지천면 경계를 따라 넘어와 창평지를 거쳐 건령산과 여부재를 넘어 동명면 마을에 이르고 지마산과 도덕산 사이의 남원리 원당마을을 지나 팔공산 한티재 바로 아래 한티마을에 이르는 옛길이다. 여기에 더해 낙동강변 작은 언덕에 지어진 낙산마을의 가실성당과 영남지방의 천주교 전파 거점이 된 신나무골 성지가 연결되고 또한 이로부터 팔공산 한티마을까지 이어져 있는 가운데 이 길 속에는 한국 천주교 교회의, 대구대교구 천주교 신앙의 역사와 함께 약 150년 전의 천주교 박해의 아픈 역사가 담겨져 있는 길이기도 하다.
본인은 대구에 살며, 역마살이 끼여 주말마다 늘 나그네처럼 전국의 산을 마치 내 집처럼 구석구석 헤매고, 가까운 팔공산과 가산을 셀 수 없이 오르락 내리락 하곤 했다. 그리고 2천년대에 접어들어 전국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각 지자체들의 제주도 올레길을 위시한 둘레길도 걷곤 했다. 단순히 걷기를 좋아하는 육체적 몸짓이 좋아서 길을 걷는 것이 아닌, 길에서 느껴지는 감각적 요소들과 사계절 자연과의 교감, 그리고 산길과 오솔길에 담겨 있는, 사람들이 열어놓은 길의 문화와 삶의 이야기들이 궁금해서 나로 하여금 선듯 길을 나서게 했다
‘한티가는 길‘도 프롤로그에서 얘기한 것처럼 첫 1구간에 해당하는 가실성당-신나무골을 걸었고, 마지막에 해당하는 5구간의 진남문-한티성지까지 3, 4년 전에 각각 걷기도 했다. 그러나 본인에게는 이 길들이 길로서 천주교 신자로서는 어느 정도의 의미를 부여할 수는 있겠지만 종교적 의미를 떠나 보편적인 의미로써 본인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걸을 수 있는 길에 대한 의미로서는 더 이상 큰 매력적인 길로는 실상 다가오지 않았다. (물론 각 개인의 걷는 의미를 부정하자는 취지는 아니며, 분명 길에 대한 의미와 생각은 각자의 다양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한티가는 길’을 지난 5월 중순 무렵부터 일부 1구간 사전답사하고 5월말부터 1구간을 시작해서 6월 하순에 이르기까지 1구간, 2-3구간, 4-5구간에 나누어 세번에 걸쳐 각각 걸으며 나도 모르게 이 길에 대해서 묘한 매력에 빠져 들었다. 전체를 다 걷고난 뒤에 알게 된 것이 아니라 바뀌어진 1구간의 낙산리와 지천면의 경계 산마루 금무봉 일대의 숲길과 임도를 오르락 내리락 하며 이 길에 대한 설계와 그 정신성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1구간 속의 숨어 있던 길의 발견처럼 다른 구간 속에도 이런 길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었다. 2구간의 지천면 연화리를 벗어나 댓골지로 내려서는 곳까지의 임도와 오솔길, 신동성당 묘지 팔각정으로부터 이어진 양떼목장과 전망대로 이어지는 오솔길, 3구간의 창평지 뒤편에서 쌀바위로 올라가는 오름길과 금락정에서 여부재로 내려서는, 마차 작은 차마고도 같은 오솔길, 4구간의 동명저수지 수변공원을 지나 양지교부터 시작되어 청산농원을 거쳐 원당공소까지 이어지는 길, 5구간의 방턱골을 지나 새롭게 열린 묘향사 뒷편 소나무 숲길, 익히 알고 있었던 마당재로부터 한티에 이르는 길, 한티성지 내 겸손의 길과 인내의 길은 나에게 제대로된 나만의 온전한 길로 다가왔다. 그리고 이들의 길은 ‘한티가는 길‘이라는 길 이름 속에 모두 각각 하나의 길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었고, 심지어 다소 불편하게 여겨지기도 했던 왜관 일반산업단지와 지천면의 공장 건물들, 동명면소재지를 관통하는 길조차도 현재를 살아가는 도시와 그 현실성이 양념으로 더해져 나에게 ‘한티가는 길‘ 전체의 주제처럼 계속 ’그대 어디로 가는 가?’를 나에게 묻고 있었다.
천주교 입장에서 보면 순교자들이 과연 지금의 ‘한티가는 길‘을 ’그대로 온전히 걸어갔을까?‘라는 개인적 의문이 드는 곳이 몇 부분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길 자체의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일부 바뀐 그 의도를 짐작하기도 한다. 길 자체의 의미로써 칠곡군 왜관읍, 지천면, 동명면을 거치는 마을 속에 이런 보물 같은 길이 숨어 있을 줄은 몰랐다. 이후 길을 걸은 후, 우연찮게 만난 칠곡군 담당 관계자 분들과 한티성지 담당 신부님의 얘기로부터 '한티가는 길'에 대한 여러 가지 고개를 끄떡할 만한 Turnig point 설계 개념과 사연, 수고, 그리고 신앙의 얘기를 새삼스럽게 듣고 더욱더 한티가는 길에 대한 관심이 커지게 되었다
산길과 온전한 길에서 정신성이 있다고 한다면, ‘한티가는 길’에서도 산길에서 느끼는 것과는 또 다른, 색다른 정신성이 숨어 있다. 이에 대한 소재들은 평판한 길을 걷는 것이 아닌, 산길이 있기도 하고, 오르락과 내리막길이 있고, 동네 뒷산 같은 길이 있기도 하고, 큰 산을 지나가는 느낌도 있고, 계곡과 강 옆을 따라 가는 듯한 느낌도 있다.
‘한티가는 길‘은 어떻게 보면 그냥 둘레길을 걷는 것처럼 가볍게 걸을 것은 아니다. 경우에 따라 만일 두 구간을 이어 속도전처럼 걷게 된다면 '한티가는 길'에 대한 의미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지나칠 지도 모른다. 물론 체력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터이지만...... ’한티가는 길‘에 대해 아직 본인은 여전히 궁금한 요소들이 더 있다. 계절의 변화에 대해, 비가 오고 바람이 불 때에, 걷는 순서에 대해... 등등. 한티가는 길'에 대해 이런 변수가 더해진다면 ’한티가는 길’은 그 때 어떻게 변화되어 있는 것인가가 자못 궁금하다. 가끔씩 길을 나서거나 여행에서 좋은 경치와 풍경을 바라볼 때, 본인은 역시 여정은 타이밍이라고 얘기하기도 하는데, 제대로 된 시기, 찰나의 그 시간에 그 곳에 서 있을 때 느끼는 그 감동이란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 아니면 짐작하지 못한다. 하여, 한티가는 길은 이런 변수에 대해서도 계속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들고, 다시 길을 떠나는 밑그림을 그리게 만든다.
한편, 개인적인 편향적(?) 생각일 지 모르겠으나, 산길을 먼 훗날까지 20대초반부터 지금까지 줄곧 산길과 오솔길을 걷고자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앞에서 언급한 길의 정신성에 더해, 또 다른 의미로 세상을 창조한 하느님(또는 신자가 아닌 이들에게는 신, 조물주, 자연이라는 표현으로 대신할 수 있을 듯)과 만나는 작은 몸짓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산길을 걸어가며 산의 색과 나무, 풀과 꽃.... 이들의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산마루에 올라 바라보는 산 파노라마와 그 아래의 강과 길을 바라볼 때 문득 그 길 속에서 나에게 다가오는 어떤 느낌과 영감들.. 그리고 문득 불어오는 바람....... 이들로 인해 나로서는 한 인간이 스스로 살아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만들고, 나를 교만이 아닌 겸손한 자세로 유지하게 만든다. 또한, 여기에 더해 조선후기 천주교 박해시대를 살아갔던 신앙의 선조들의 삶과 고민을 스스로에 빗대어 때로는 순교자와 배교자의 경계인으로서 이 길을 걷기도 할 듯 하다.
길을 걷는 것은 여행이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걸었던 길에 대해 누구나 그 기억을 담아 놓고 싶어 한다. 이에 대해 요즘의 시대에서 가장 편리한 도구와 매체는 휴대폰이나 카메라, 그리고 이로부터 쉽게(?) 얻어지는 사진이 대명사가 아닐까? 그러나 본인의 경험으로는 사진이 모두를 대신하지 못함을 감히 가늠한다. 어떤 여정을 다녀온 후, 길을 걸은 후의 사진과 이야기 기록은 5년 정도는 같이 공존할 수 있지만 사진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 때의 세밀한 사연, 미묘한 심리적 변화의 이야기를 모두 다 기억해 낼 수는 결코 없다. 특히 나이가 점점 들어가게 되면, 젊은날 전화 번호를 2~3백개는 가볍게 외우던 시절처럼 웬만한 이야기를 다 기억하는 것처럼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한다. 예전의 무용담같은 기억력은 이제 나의 쓸데없는 자만심처럼 버려야 할 듯. 감히 나름대로 나만의 ‘한티가는 길’에 대한 싱그러웠던 처음의 소중한 첫 추억과 이야기를 먼 훗날 ‘In my Memory'라는 미명으로 정리하다가 한티마을 사람들 사람과 그냥 나누기 위해 나만의 어설픈 긴 이야기를 감히 여기에 남겨 놓습니다. '한티가는 길'을 걷는 분들에게 뭔가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저의 어설픈, 긴 넋두리 이야기에 너그러운 이해를 바랍니다. 샬롬~~
한티가는 길의 여정에서 스템프를 찍는 묘한 느낌, 괜찮은 좋은 느낌이 있습니다. 스템프 도장 한 개, 한 개에도 각각의 의미가 담겨있어 좋았습니다. 기념도장을 일괄적으로 제대로 찍어 인쇄한 리플릿 or 기념 수건 어떤지요? ^^
한티마을에서 바라본 저녁무렵 풍경... 멀리 중간에 가야산이 슬쩍 눈에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한티가는 길'은 그리움입니다.
첫댓글 한티가는길을 걸으며 느낀 길에 대한 단상...
감사합니다.
"그리움".... 첩첩이 이어지는 산봉우리를 지나 그 어디메쯤 있을 것? 같은 느낌...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좋은글 너무 고맙습니다.
한티가는길을 걷는이에게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