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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1914년 유럽을 초토화시킨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됐다. 유럽은 폐허로 변했고 해가 지지않는 나라라고 불리던 영국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전쟁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한 세력이 투쟁에 나선다. 바로 750년간 영국의 식민지로 있었던 아일랜드였다. 오랫동안 독립의 불씨를 키워온 아일랜드인들은 세계 대전의 기회를 놓치지 않아 1922년 마침내 아일랜드는 자유국을 선포한다.
최원정/KBS 아나운서: 360번째 역사저널 그날 아일랜드 자유국 선포 100주년을 맞아서 유럽의 마지막 식민지였던 아일랜드에 대해서 오늘 얘기해 보고자 합니다. 그런데 아일랜드가 영국의 식민지로 750년간 지냈다는 이런 사실을 아셨어요?
이시원/배우: 전 몰랐어요. 거기다가 750년 동안 식민지 생활을 했다면 얼마나 국민들이 힘들었을까요.
허준/방송인: 10년 동안 식민지해도 그게 평생의 한인데~
최태성/한국사 강사: 일제 강점기 36년~
허준: 아이러니 하게 느껴지는 게 유럽 전체가 다 슬픔과 비탄에 빠졌을 세계 1차대전이잖아요. 이게 아일랜드에게는 우리의 마지막 기회다. 이래서 전 세계 역사를 한꺼번에 배워야 됩니다.
김대륜/대구경북 과학기술 기초학부 교수: 1차 세계대전에 영국이 워낙 힘을 많이 빼버려서 영국도 전쟁에 지쳐있는 상태이기도 하니까 좋은 기회다 라고 생각을 한 거죠. 다만 영국이라는 나라가 아무리 1차 세계대전 때 힘을 많이 잃었어도 아일랜드 사람들이 독립을 한 번에 쟁취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인 거죠. 그래서 1922년 아일랜드는 자유국을 선포를 하게 됩니다.
최원정: 생생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모셨습니다. 부산대 스포츠학과 데이비드 교수님, 어서 오세요.
데이비드 오설리번/부산대학교 스포츠학과 교수: 안녕하세요, 저는 더블린에서 태어났고 태권도 때문에 2008년에 한국에 왔어요.
이시원: 정말 딱 봐도 진짜 아일랜드분 인 것 같애요. 하얀 피부에 빨간 수염에~ 주근깨~
최태성: 수염이 염색 수염이 아닌가요?
데이비드: 유기농이에요.
일동: 폭소~
최태성: 그런데 오늘 저희가 아일랜드 역사를 쭉 따져 볼텐데~ 이거 우리나라 역사와 비슷한데 라는 느낌이 들어요. 왜냐면 아일랜드라는 나라가 800여년 동안 영국의 핍박을 받았구요. 1970년대에 유럽에서 가장 최빈국이었던 아일랜드가 현재 우리나라 1인당 GDP의 두 배가 넘어요. 한국 3만불 시대인데 아일랜드는 약 8만 3천달러~
이시원: 저도 아일랜드가 작지만 금융허브로 부흥되었다고 들은 것 같은데 그렇게 잘 사는 나라인 줄은 몰랐어요.
최태성: 이번에 아일랜드에 대해서 조금 공부를 해 볼려고 인터넷 검색창에 아일랜드를 쳐보니까 제일 많이 나오는 관련 검색어가 뭔지 알아요? 식탁~
데이비드: Ireland 아일랜드 하고 Island 섬 아일랜드는 섬이고 아얼랜드는 우리나라, 우리나라 언어로 게일어로 Eire 에이레~ 옛날 켈트 신화 속 ‘에일린’ 이라는 여신이 있었어요. (거기에 따와서) Eire 라고 이름을 지은 거예요. 아~얼랜드~
허준: 그러면 아얼랜드 친구들은 혹시라도 한국에서 보게되면 요발음을 살짝 신경 써주면 바로 좋아하겠네요. 너 아얼랜드에서 왔어~?
데이비드: 영국 사람 아니네 하면 좋아해요.
최태성: 아일랜드인들은 영국에 대한 감정이 안 좋아요?
데이비드: 그렇죠, 아일랜드 사람에게 영국 사람과 같다고 하는 것은 한국인에게 일본인 같다라고 하는 것과 같애요.
이시원: 750년이 진짜 긴 세월인데, 만약에 우리나라로 치환을 하면 언제부터 식민지였던 거예요?
최태성: 이게 되게 길어요.
김대륜: 고려시대죠,
최태성: 고려시대에~ 1171년에 영국의 헨리 2세죠, 헨리 2세의 침략으로부터 식민지 시대가 시작되는데~
김대륜: 헨리 2세 때 넘어 간 사람들을 Old English 라고 하는데 이 사람들은 아일랜드 문화에 아예 동화가 되어서 아일랜드 사람처럼 살았어요. 그러니까 특별한 문제가 없었죠. 그런데 헨리 8세 이후에 영국 사람들이 정확하게 얘기하면 잉글랜드 사람들,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이주를 하거든요, 근데 종교가 달라요. 아일랜드인들은 가톨릭, 영국인들은 개신교, 당시 헨리 8세의 시대에 여기를 식민지로 삼아야 되겠다 라고 생각을 했던 게 영국을 건너가면 바로 프랑스죠, 영국에서 밑으로 내려오면 스페인, 당시에 프랑스나 스페인은 가톨릭 국가잖아요. 아일랜드 사람들도 가톨릭이고요, 그래서 가톨릭 끼리 손을 잡고 개신교 국가 우리를 핍박하면 우리는 속절없이 당하는 셈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아일랜드 라는 뒷문을 잘 지켜야 된다 라는 뜻이었죠.
데이비드: 민족도 달라요, 우리는 켈트족이잖아요.
허준: 아일랜드 민족과 영국 민족은 아예 다른 거에요?
데이비드: 네, 아주 달라요,
최원정: 독립을 위한 투쟁의 역사가 750년 이란 기간이에요,
최태성: 너무 기니까 딱 두 개, 가장 핵심적인 거 두 가지만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사실 우리가 일본과의 역사 속에서 딱 떠오르는 게 임진왜란 하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떠오를 거고 일제 강점기에 쌀 수탈이 엄청났었잖아요. 이 두 가지가 딱 떠오르듯이 큰 사건 중에서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인물~ 영국의 크롬웰~
허준: 크롬웰은 영국의 영웅이잖아요.
최태성: 크롬웰은 세계사 시험에 잘 나옵니다. 너무나 유명한 사람이라서~ 영국 최초의 시민혁명, 청교도 혁명을 일으켰던 개혁가 중의 개혁가로 알고 있는데 영국인들 중에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잖아요.
김대륜: 그렇죠, 그래서 실제로 여러분들 런던 여행가시면 웨스터민스터 의사당 앞에 가면 크롬웰 동상이 딱 서 있는 걸 보실 수 있고, 크롬웰은 시민의 자유, 의회의 권리를 상징하는 인물이구요. 그 다음에 영국인들에게는 굉장히 존경받는 인물이죠.
데이비드: 우리가 제일 싫어하는 인물이예요. (아일랜드의 비호감 1위 올리버 크롬웰),
최원정: 영국인들 중에 톱~
데이비드: 크롬웰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나쁜 짓을 많이 했으니까 군인뿐 아니라 민간인도 많이 죽였어요.
김대륜: 크롬웰이 1649년에 찰스 1세를 죽이고 공화국을 만들고 호국경이라는 가장 높은 위치에 올라가요. 제일 먼저 해결을 볼려고 했던 것이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인데 아일랜드가 1641년에 반란을 일으키거든요. 반란을 일으켜가지고 굉장히 많은 잉글랜드 사람들을 죽였다고 소문이 나요. 아일랜드를 해결하지 못하면 일단 영국이라는 섬의 안정을 찾을 수 없겠다 해서 아일랜드를 치고 들어가죠. 아일랜드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놔요. 방금 데이비드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다 죽입니다.
데이비드: 다 죽이는 게 쉽죠, 군인만 죽이려고 하면 복잡하잖아요. 아일랜드 사람 전체를 다 죽이는 게 간단하니까~
최원정: 아일랜드 사람들은 크롬웰 초상화만 봐도~
데이비드: 영국과 아일랜드 회담 중에 크롬웰의 초상화를 보고 아일랜드 총리가 일어나서 그냥 나가버린 일이 있었어요.
허준: 양국 정상들이 만나서 회담하려고 하는데 저기 벽에 크롬웰 초상화야, 나 나갈래~
이시원: 솔직히 아일랜드 사람들 입장에서는 우리 민족의 원수를 걸어놓은 건데~
최태성: 그런데 아일랜드인들을 무차별하게 죽였을뿐 아니라 땅도 엄청나게 몰수를 해요. 그러니까 아일랜드 사람들은 소작농으로 전락하게 되죠. 이런 과정 속에서 크롬웰의 학살, 기근, 역병, 이 과정에서 50만 명이 죽게 됩니다. 정말 아일랜드인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기간이 크롬웰 기간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허준: 사실 우리가 대항해 시대라고 불리우고 콜럼버스가 영웅으로 떠받들어졌는데 알고 봤더니 원주민 입장에서는 학살자 식민지 시대였잖아요. 크롬웰이 의회 왕당파를 몰아내고 시민들이 권력을 잡게 만들고 굉장히 영웅처럼 들리잖아요.
최원정: 공화주의자 멋있잖아요.
김대륜: 크롬웰이 아일랜드 사람들을 미워하죠. 미워할 뿐 아니라 경멸하기도 하죠. 왜냐하면 크롬웰의 눈으로 봤을 때는 아일랜드 사람들 같은 독실한 가톨릭은 굉장히 미개한 사람들인 거예요. 당시에 아일랜드는 예전에 중세 때처럼 족장들이 다스리고 있는 부족국가 비슷한 시스템이었거든요. 그러니까 얘들을 문명화를 시킬려면 지배층을 교체를 해버리고 거기에 개신교도들을 데려다 놓고 이들이 지배를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돼죠.
최원정: 아일랜드 사람들 입장에서는 목숨도 잃어 땅도 뺏겨 무엇보다 사악한 게 지배구조를 싹 바꿔서 평생 소작농 하층민으로 살 수 밖에 없는 그런 구조를 만든거죠.
최태성: 영국에서 아일랜드에 있는 모든 것을 가져 간거나 마찬가지잖아요. 사람도 죽였고 땅도 가져갔고 그런데 딱 요것 하나는 남겨 둡니다. 그게 뭘 것 같애요?
허준: 위스키~아일리쉬 위스키~ 엄청 유명해요.
최태성: 유명하면 가져가야죠.
이시원: 아니면 술 먹고 널부러지게 만들어서~
최태성: 정말 여러분들은 늘 술이군요. 뭐냐하면 감자예요. 아일랜드에서 옥수수 밀 이런 건 다 가져가는데 유일하게 감자는 남겨둬요.
이시원: 왜 감자를 남겨두죠. 영국인들이 감자를 안 좋아하나?
김대륜: 감자는 콜럼버스가 신대륙 발견을 하고 거기서 들여온 새로운 작물이잖아요. 이게 좋은 게 아닌가 이게 불길한 건가 이걸 따져 보자면 성경을 들여다 봐야하는데 성경엔 감자가 안 나오거든요.
이시원: 성경에 없어서?
김대륜: 이건 원주민이나 먹는 것이지 우리 같은 기독교인들이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라고 생각을 했고~
최태성: 먹어봐 얼마나 맛 있는데~
김대륜: 성경에는 당연히 씨를 뿌리고 곡식을 거두는 일을 인간이 하는 가장 기본적인 노동으로 묘사를 하고 있는데 감자는 씨를 뿌리는 게 아니잖아요. 감자는 감자를 심어야~
이시원: 한 마디로 낯설어서 안 갖고 간 거네요. 성경에도 없어서 불길하고~
허준: 감자는 땅 속에서 열매를 맺잖아요. 어두운 곳에서 자라잖아요. 지하 세계에 살고~
김대륜: 밀이나 귀리나 보리나 전통적인 작물들은 지주들이 가져가고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남은 것이 없는 거죠. 그러니까 살아 남을려면 감자가 농사하기에 좋았던 거죠. 기르기도 쉽고 그 다음에 단위 면적당 수확량이 높고~그러니까 조금만 노력을 해도 충분히 먹을 만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아일랜드 사람들이 감자를 많이 먹기 시작했습니다.
---------------이광용/아나운서: 아일랜드로 떠나 보는 시간, 걸어서 아니죠, 세계 속으로~ 아일랜드 대표 감자요리를 소개해 주실 오늘의 셰프, 데이비드 셰프님~ 아일랜드에는 어떤 감자 요리가 있습니까?
데이비드: 감자 요리 스케줄을 비워놓았죠? 여러가지 감자 요리가 있습니다. 박스티 감자 요리도 있고 (박스티Boxty-아일랜드의 전통요리, 감자를 갈아서 만든 팬케이크), 으깨는 감자 요리도 있고 허브를 곁들인 감자 요리도 있고, 오늘 해드릴 건 제일 인기가 많은 아이리시 스튜 요리입니다.
최태성: 스튜가 뭐예요?
이시원: 끓이는 거 아닌가요?
최원정: 전골처럼~
데이비드: 찌개 같은~
이광용: 찌개인데~ 짜글이(?) 아세요? 국물이 많지 않아요, 자작 자작~ 그렇죠?
데이비드: 두 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일단 국물하고 소고기 준비해야 되고 (아이리시스튜 재료-소고기, 감자, 당근, 양파, 버터, 올리브유, 물, 비프스톡, 레드와인, 흑맥주, 굴소스, 토마토, 페이스트, 설탕), 그 다음에는 따로 감자 당근 양파 같이 준비해야 됩니다.
이시원: 그냥 냉장고에 있는 거 꺼내서 만들 수 있을 거 같애요.
데이비드: 네, 첫번째는 올리브유를 넣고 따뜻하게 해줍니다. (아이리시스튜 만드는 법-달군 냄비에 올리브유를 두른다),
허준: 아일랜드에도 올리브 나와요?
데이비드: 올리브 안 나옵니다. 옛날에는 버터 등 다른 재료를 썼을 거예요. 그 다음에 기다리는 동안 소고기에 소금 좀 넣어야 돼요. 맛을 좀 내야하니까~(소고기를 썰어놓은 접시에 소금을 뿌림), 소고기를 집게로 집어서 하나씩 하나씩 올리브 기름이 있는 냄비에 넣는다.
이광용: 그냥 부으면 안 돼요?
데이비드: 그냥 부우면 육질이 안 좋아져요.
이시원: 우리나라도 소고기국 끓일 때 소고기 그냥 넣고 끓이는게 아니라 고기를 볶다가 끓이면 훨씬 맛이 있더라구요 (아이리시스튜 만드는법-①달군 냄비에 올리브유를 두른다 ②소금 간을 한 소고기를 하나씩 냄비에 넣는다 ③다진 마늘을 넣어 함께 볶는다), 이제 다진 마늘을 넣습니다.
최원정: 여기까지는 그냥 한국 조리법이랑 그냥 비슷해요.
최태성: 저 맛은 한국 사람들한테도 익숙할 것 같은데~
허준: 유럽 사람들 마늘 안 먹지 않아요?
데이비드: 잘 먹죠,
최원정: 참고로 현대식으로 각색된 조리법입니다. 당시에는 소고기가 저렇게 풍부했겠어요.
허준: (아이리시스튜 만드는 법-④ 물, 비프스톡, 설탕, 토마토 페이스트, 굴소스, 레드와인, 흑맥주를 넣어 한 시간 정도 끓인다),
데이비드: 냄비에다 ④번을 넣고 한 시간 정도 끓입니다.
최원정: 우린 지금 턱 괴고 언제 먹나 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데이비드: 지금 양파하고 당근 준비해야 돼요. (⑤양파와 당근을 버터를 녹인 프라이팬에 볶다), 끓는 동안 프라이팬에다 한 시간 지나서 추가하는 거죠, (⑥ 냄비에 볶은 채소와 감자를 넣고 30분 정도 더 끓인다), 기름에 또 끓여야지요, 감자는 따로 있고 20~30분 정도 끓여야 돼요.
이광용: 한쪽에서는 뜨거운 국물이 지금 끓고 있고 후라이팬에서는 양파와 당근에다 감자를 넣어서~
데이비드: 이따 합산할 때 당근 넣는 거죠.
이광용: 아이리시스튜 지금은 재료가 풍성하지만 예전에는 재료를 많이 넣지 못하고 국물을 많이 해서 나누어 먹던 때가 있었겠네요.
데이비드: 옛날에 콜캐논 이란 요리가 있었는데 거기에 찌꺼기 남잖아요. 감자 넣고 밀크 넣고 같이 섞어서 그렇게 먹었어요. (콜캐논-영국 식민지 시절 먹던 감자 요리-감자와 버터 밀크를 섞어 먹던 매쉬드 포테이토 같은 음식),
허준: 우리와 비슷하잖아, 비지찌개, 두부를 만든 찌꺼기로 끓인 비지찌개와 비슷,
이광용: 콜캐논이란 요리가 그렇게 먹는 요리가 있답니다.
최태성: 버터 밀크는 버터를 만들고 남은 찌꺼기라고 보면 돼죠. 왜냐면 저게 탄수화물이잖아요. 배고프면 포만감을 유지하기 위해 지방을 더한 감자요리 콜캐논 음식~
허준: 우리나라 멀겋게 국 끓여서 배불렸다는 느낌과 비슷해요.
김대륜: 이게 다 서민 음식이지만은 옛날에 정말 먹을 게 없었을 때는 그렇게 안 먹죠. 그냥 삶아 먹어요. 정말 힘들었을 땐 삶은 감자에 소금을 찍어서 먹어요. 혹시 버터라도 생기면 버터를 발라 먹고 이 정도 수준이지~
이시원: 그래도 참 다행인게 감자가 굉장히 영양소가 밸런스가 잘 잡혀 있는 작물이에요. 그래서 생각보다 감자 밖에 못먹었던 아일랜드 사람들이 기근을 버틸 수 있었던 게 영양소가 아주 잘 갖추어진 채소라서 그렇더라고 하더라고요.
이광용: 그런데 이 감자가 아일랜드인들에게 큰 위로를 주었지만 1840년대에 아일랜드인들에게 또 한 번 큰 위기가 닥쳐옵니다. 그건 바로 미국에서 시작된 전염병 때문이었습니다.
해설: 1843년 미국 뉴욕에서 시작된 감자역병은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졌다. 흰곰팡이가 생겨 잎은 물론 땅 속의 씨감자까지 못쓰게 만드는 감자역병, 감자가 유일한 식량이다시피 했던 아일랜드인들에게 이 역병은 치명적이었다. 무려 5년간 이어진 감자 역병으로 아일랜드인 100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최원정: 우리나라에 보릿고개가 있었다면 아일랜드에는 감자고개가 있었다는 건데~
최태성: 사람들이 잘 못먹는 거죠. 감자가 주식인데 이게 없어서 못 먹으니까 몸이 어떻게 될까요, 면역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죠. 그러니까 전염병이 세상 전염병이란 전염병은 다 돌았나봐, 장티푸스, 발진티푸스, 콜레라, 이질, 괴혈병, 이런 게 돌면서 아사자보다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이 더 많을 정도로 이게 연달아 일어나는 거예요.
허준: 우리 몸이 면역력이 좋으면 웬만한 병들은 들어오다가 다 사라지는데~ 못 먹으니까 전염병이 더 많이 퍼지는 거예요.
최원정: 우리도 배고팠던 역사가 있기 때문에 밥 먹었니~밥은 먹고 다니니~ 이런 인사를 흔하게 하는데 여기 아일랜드인들도 대기근으로 인한 어떤 상처가 분명히 있었겠네요.
데이비드: 상처 있죠, 한국처럼 말로 하는 표현은 없지만 아일랜드 더블린에 1840년대 대기근 시기를 표현하는 동상이 세워져 있어요. 1840년대 인구 800만 명 정도 있었는데 100만 명이 대기근으로 죽었고 100만 명은 이민갔어요. 더블린에 대기근 Statue of Starving 이라는 동상이 있어요. (아일랜드 어른 6명이 굶주려서 장작개비 처럼 마른 동영상 등장), 이 동상을 보면 굉장히 배고프고 불쌍해 보이죠.
이시원: 피골이 상접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애요. 저기 심지어 개도 갈비뼈가 보일 정도로 삐쩍 말랐네요.
최원정: 저 끝에 자식인가 봐요, 죽어가는 아이를 등에 업은 아버지의 모습도~
최태성: 영국이 이런 상황 속에서 무료 급식소를 운영했지만 그렇게 큰 효과는 보지 못했고~ 일부 영국 대지주들은 이런 상황 속에서도 아일랜드인을 좇아내요.
이시원: 사람을 살리고 봐야죠. 이렇게 사람들 죽어나가는 데 아무리 식민지라도 이러면 되나요?
김대륜: 대기근에 대해서 아일랜드 사람들은 굉장히 나쁜 기억을 가지고 있죠, 대기근이 있었던 여러 해 기간에도 잉글랜드 출신의 지주들은 곡물수츨을 하고 있었던 거예요. 밀이나 작물들을 계속해서 수출하고 있었고 심지어는 다른 나라가 도우려고 할 때에도 그 도움을 거절하기도 한 일이 있었다 라고 얘기를 해요. 오스만 투르크에서 아일랜드에 1만 파운드를 기부하려고 했을 때 영국 정부에서 1만 파운드 말고 천 파운드만 해라. 왜 그러냐 하면 여왕이 2천 파운드를 기부를 했으니까 영국 여왕보다 많은 금액을 기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허준: 아니 800만 명에서 100만 명이 굶어죽고 있는 상황인데~
이시원: 돕지는 못할 망정 도와준다는 데 막을 필요는 없지~
최원정: 지난번에 우크라이나 대기근 우리가 한 번 봤었잖아요. 지금 아일랜드 대기근도 그렇고 작황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의도계획이 분명히 보이네요.
데이비드: 그런 얘기 있었어요. It was because of England, not because of God.
최원정: 그러니까 신 때문이 아니라 영국인들 때문이다. 의도가 확실히 있다는~
허준: 농작물 작황이야 하늘의 뜻이지 비가 안 오는데 어떻게 해요. 사람들이 구호품 보내주고 영국에서 곡물 수출하지 말고 이걸 갔다가 그 사람들을 나눠주고 살렸으면~
최태성: 당연하지~
허준: 그러면 아일랜드인들의 마음이 지금처럼 안 좋지는 않았을 거예요.
김대륜: 그러니까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역사상 유명한 기근들은 대부분 인재(人災)예요. 감자에 전염병이 돌기 시작한 것은 사람이 막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 이후에 어떠한 행동을 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먹을 것이 있었는데도 한 쪽에선 굶고 있다 이게 문제죠. 아까도 말씀하신 것처럼 여기는 정치적인 문제가 있고 당시에 어떤 이념적인 문제가 연루가 되어 있는 것이죠.
최원정: 이렇게 살길이 막막해 지자 아일랜드인들~ 이 시기에 또 다른 선택을 하게 됩니다.
해설: 유일한 먹거리였던 감자 마저 잃고 굶주림에 쓰러져 간 아일랜드인들, (이민가는 동영상) 살아남기 위해 그들은 탈출을 선택한다. 사방이 바다로 막힌 섬 나라, 아일랜드인들은 유일한 탈출수단인 배에 오르며 타국에서의 새로운 시간을 꿈꾸었다. 하지만 거센 파도를 뚫고 도착한 그곳은 또 다른 고난이 기다리고 있었다.
최원정: 민족의 엑소더스 Exodus 인데(엑스더스-사람, 자금 따위가 어떤 지역이나 상황에서 대량으로 빠져나가는 일), 우리도 해방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살기 위해서 이민을 택했잖아요. 비슷한 상황이네요.
허준: 하와이도 가고 미국도 가고~
최태성: 저걸 배경으로 한 영화가 있어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하고 윈슬렛이 주연한 영화 타이타닉 (Titanic), 이 영화가 사실은 이걸 배경으로 하고 있어요. 사랑이야기로만 끝나는게 아니라 당시 디카프리오가 미국에 간다고 너무 기분이 좋아서 미국행 배를 타는 장면이 있거든요. 그때 디카프리오가 탔던 선실이 3든칸이에요. 그 3등칸에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굉장히 많이 타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실낯 같은 희망을 갖고 배를 탔던 그 많은 사람들이 출항 5일만에 차가운 바다 속으로 사라지게 되는 너무 가슴 아픈 이야기, 여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데이비드: 타이타닉 호가 아일랜드 코브 항에서 미국으로 갔는데 코브 쪽에 건물이 남아 있어요. (코브헤리티지 센터 (Cobh Heritage Centre)-아일랜드 코브 항에 있는 타이타닉 기념 박물관), 아일램드 훨씬 남쪽에,
김대륜: 영화를 보면 3등칸 사람들이 춤추고 놀 때 아일랜드 음악이 나오잖아요.
이시원: 타이타닉이 아일랜드와 굉장히 밀접한 영화였네요.
김대륜: 그렇죠, 대성양 횡단을 한다는게 사실은 어려운 일이었어요. 이민을 떠나는 사람들이 여유있는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3등칸이나 이런 데 타고가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그 과정에서 죽음을 맞이하기도 하죠.
이시원: 거기 영화 보면 디카프리오가 미국 가서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굉장히 들떠있잖아요. 우리도 한때 아메리칸 드림을 꿈꿨던 나라인데~ 그 당시 아일랜드 사람들이 그랬나요?
최태성: 이 당시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그야말로 전 세계로 향합니다. 아일랜드 -> 스코틀랜드 영국 웨일즈 유럽 대륙 스칸디나비아, 캐나다, 미국, 카리브해, 남아메리카, 남아프리카, 호주, 뉴질랜드에 많이 가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가는데가 어디냐 하면 미국이에요. 미국도 뉴욕하고 항구 도시 보스턴 쪽으로 많이 들어가는데 놀라운게 1850년대 같은 경우에 뉴욕에 인구 중에서 26%가 아일랜드인이에요. 아일랜드에 더블린이라는 곳이 있잖아요.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의 인구보다 뉴욕에 있는 아일랜드인이 더 많을 정도로 그만큼 많이 갔어요.
이시원: 26%면 거의 1/4이네요. 뉴욕에서 4명이 모이면 한 명은 아일랜드인이네요.
허준: 타국 땅에 우리나라 서울 인구보다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거잖아요. 그러면 사람도 많고 세력도 생기니까 살림살이는 많이 좋아졌겠네요.
최태성: 사실 미국이란 나라가 이민자들의 나라잖아요. 그 이전에 이민자들이 엄청나게 들어온 상태인데 사실 아일랜드 사람들은 조금 늦게 들어온 셈인 거죠. 이미 들어온 이민자들이 자리를 딱 잡고 텃세를 부리는 거예요 사실 좋은 일자리라든지 좋은 장사할 자리를 갖는 상황이 안 되는 거죠. 그러니까 뻔하죠. 봉제공장이나 대장간 이라든지 철도 선로 공사라든지 박봉에 힘든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거죠.
이시원: 요즘 말하는 3D 직업~
데이비드: 그때 차별도 많이 당하고, 말도 Dirty Micks 라는 말이 있어요, dirty 더럽다 micks 아일랜드인, 더러운 아일랜드인~
최태성: 마치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에 갔을 때 한국인 노동자를 조센징 이라고 비하했던 것과 똑같이 그랬네요.
최원정: 우리나라도 1900년대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간 많은 사람들이 악착같이 살아내잖아요. 지금은 한인 사회가 영향력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일랜드인들도 웬지 역전극이랄까요, 드라마틱한 얘기가 있을 것 같애요.
김대륜: 아일랜드 사람들 중에도 본토의 미국인들이 꺼려하는 직업, 위험하다거나 꺼리는 직업이 있잖아요. 소방관, 경찰, 군인에 진출하면서 거기서부터 성공을 거두기 시작하고 그리고나서 이제 아이들을 잘 교육을 시켜서 주류사회에서 성공을 하게 만드는 스토리들이 있죠. 미국에서 아일랜드인 가문들 중에 제일 유명한 가문은 케네디, 케네디 가문 같은 경우는 보스턴에 자리를 잡고 케네디 할아버지 세대에서 뭘 하느냐 하면 밀주 사업을 합니다. 20세기 초에 금주령이 있었을 때 (미국 금주법 시대-알코올 중독이나 술로 인한 범죄를 줄이기 위해 1920년~1933년 동안 금주법 시행), 밀주사업으로 돈을 크게 벌고 그러면서 아들을 외교관으로 만들고 손자는 대통령을 만들었잖아요.
최태성: 정말 인생 승리다.
이시원: 저희 어르신 세대를 보는 것 같애요. 내가 힘든 일 궂은 일 나쁜 일은 다 할 테니까 너희들은 배우고 잘 살고 행복하게 살아라 이런 모습이 한국이랑 비슷해요.
최태성: 케네디 얘기 했지만 (사진 등장) 정말 들여다 보면 깜짝 놀랠 거에요. 뭐, 이 사람도~아일랜드인이야 이 사람이 누구냐 바로 베스트 푸드의 대표 브랜드 맥도날드 형제입니다.
허준: 이거 먹으면 재미있는게 저 햄버거사의 씨푸드가 상당히 유명하거든요.
이시원: 아일랜드 주식인 감자로 형제들이 패스트 푸드를 만든 거군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최태성: (사진등장) 다음 인물입니다. 월트 디즈니 이쪽도 역시 아일랜드계입니다. 또 있습니다. 보여드릴게요, (사진등장), 비틀즈의 존 레논도 아일랜드계입니다.
최원정: 아일랜드계의 후손들이 소프트 파워로 세계를 제패하고 있네요.
김대륜: 단적인 예로 미국의 역대 대통령 가운데에서 20명 정도가 아일랜드계 라고 합니다.
최원정: 그 정도로 많이 나왔네요.
김대륜: (사진등장), 존 F. 케네디, 로널드 레이건, 조지 부시, 그리고 빌 클린턴~
이시원: 심지어 조 바이든까지 아일랜드계라고 알고 있는데~ (사진등장)
김대륜: 네, 조 바이든 (미 제46대 대통령)도 아일랜드계 라고 열심히 선전을 하고 다닐 뿐 아니라 또 독실한 가톨릭이잖아요. 아일랜드계이기 때문에 영국과 불편한 관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어요. 엘리자베스 여왕을 만났을 때 고개를 숙이지 않았고 예의를 지키지 않았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시원: 여왕을 만나면 무조건 고개를 숙여야 되나요?
허준: 영국의 예법인 거죠.
김대륜: 심각한 결례를 범한 것은 아닌데~바이든이 워낙에 자기가 아일랜드계 대통령이다 라고 이야기를 해왔고 모친 쪽이 아일랜드 계통이거든요. 영국의 왕실에 지나치게 굽신거리지 말아라 라는 얘기를 듣고 자랐다 라는 얘기들이 있죠.
허준: 그런 느낌이 있잖아요. 조선 왕조 정조가 즉위하고 첫 마디가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나는 아일랜드의 아들이다.
최원정: 아니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기개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아일랜드 총리가 아니라 미국의 대통령이잖아요. 너무 오버 한 게 아닌가. 그런 느낌도 드는데~
허준: (데이비드에게) 저걸 보았을 때 기분이 어땠어요?
데이비드: 기분이 좋지요.
최원정: 그러면, 교수님도 만약에 영국 사람들과 만나면 우선 기선제압을 해야 된다 라는 그런 게 있으세요?
데이비드: 그런 생각은 없고, 참는 게 낫죠.
최원정: 자존심이 중요하구나
이시원: 근데 바이든이 대통령인데 저런 행동 하나하나를 생각없이 하지도 않았을 거 같거든요.
김대륜: 그렇죠, 다 계산된 행동이죠.
이시원: 그럴 거 같애서요, 지금도 아일랜드 계통을 자기가 잇는다고 생각하는 미국인들이 많을 거 아니에요, 그럼 저런 행동을 하면 미국에서 인기가 높아지니까~
데이비드: 그렇죠, 엄청 높아지죠.
최원정: 타국 살이를 하며 더 자신의 뿌리에 대한 집착이랄까, 중요하게도 생각하게 되잖아요. 그래서 해마다 조국을 떠난 아일랜드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모이는 날이 있다고 합니다.
------------------이광용: 매년 3월 17일이면 아일랜드는 물론이고 미국-유럽 곳곳이 초록색으로 물든다는 사실, 혹시 알고 계십니까? 바로 이렇게 말이죠 (동영상 상영), 매년 3월 17일 세인트 페트릭 데이엔 수많은 인파가 거리에 모입니다. 구름 떼 같은 사람들도 놀랍지만 이 사람들 하는 행동도 놀랍습니다, 녹색 염료를 분수에다 뿌리고 있어요. 이게 끝이 아닙니다. 심지어 강을 녹색으로 물들입니다. 막 뿌려~ 막 뿌려~ 반짝 반짝 드론까지 날리면서 세인트 페트릭 데이를 축하하는 메시지까지 잊지 않습니다. I love Ireland 이 날이 무슨 날이냐 바로 아일랜드의 수호성인인 세인트 페트릭이 세상을 떠난 날입니다.
데이비드: 성 페트릭은 가톨릭을 아일랜드에 소개해준 선교사라서 정말 아일랜드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에요.
이광용: 미국의 대통령들, 아일랜드계가 많았잖아요. 매년 3월 17일에 미국에서도 세인트 페트릭 데이를 기린 행사를 합니다. 그런데 2022년 올해 3월에는 이 행사개최를 두고 논란이 있었어요. 여러분, 3월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최태성: 우크라이나~
이광용: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서 전쟁이 한참 심해지고 있었잖아요. 이 와중에 뭔가 왁자지껄한 행사를 하는 것이 맞냐라는 논란이 있었는데요. 하지만 조 바이든 자신이 아일랜드 혈통이라는 것을 아주 당당하게 얘기하는 바이든 대통령이 그래도 세인트 페트릭 행사는 해야한다. 그래서 그 축제를 미국에서 강행했다는 거 아닙니까.
김대륜: 바이든 입장에서는 아일랜드계 사람들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죠. 아일랜드계 사람들의 숫자가 너무 많거든요. 작년 기준으로 미국의 아일랜드계 미국인이 3150만 명이에요. 미국 인구의 12% 이거든요. 그 정도로 큰 커뮤니티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세인트 페트릭 데이는 지켜야 된다라는 가능성이 있었겠죠.
이광용: 나라를 빼앗겼던 사람들인 만큼 매년 3월 17일에 이렇게 외치는 거죠. 나는 아일랜드 사람이다. 우리 민족은 아직 건재하다. 이렇게 주장하고 싶었던 게 아닌가 그러다 보니까 성 페트릭 데이에 앞서 보신 것처럼 저의 넥타이도 상징적~ 초록색과 다 의미가 있어요. 그리고 이것이 빠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금 공개합니다. (바 술집 등장), 바로 아일랜드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그 맥주~ 흑맥주입니다. (김주환 흑맥주 마스터 등장), KBS 공영방송인데 상표 이름을 함부로 말씀하시면~?
김주환/흑맥주 마스터: 사실은 이때 기네스 북 이라는 단어를 KBS에서 더 많이 언급을 했었어요.
이광용: 무슨 말씀이신지?
김주환: 기네스북 다들 아시죠? 기네스북이 바로 맥주회사에서 만든 책입니다.
최태성: 처음 들어요.
김주환: 우리가 술 자리 가면 이런 얘기 많이 하잖아요. 세상에서 가장 키가 큰 사람은 과연 몇 센티미터 정도될까? 그런 얘기 할 때 (기네스북-1951년 기네스 양조회사(Guinness Brewery)-사장 휴 비버경 (Hugh Beaver)이 만든 세상의 특이한 기록을 모은 책), 그때 바로 꺼내서 보기 좋은 책을 기네스북으로 만들었고 그게 바로 기네스북의 시초가 됐다.
이시원: 술자리 토크를 모아놓았어요?
이광용: 술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기 좋은 주제는 됐겠죠. 아일랜드하면 이 흑맥주잖아요. 특히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이 맥주가 특별한 이유가 있겠죠?
김주환: 그렇죠, 1759년에 그때부터 맥주생산을 시작하는 데요. 전 세계로 수출이 되고 큰 호응을얻기 시작합니다. 심지어는 아까 저희가 750년 간의 영국 식민지시대를 얘기를 했는데 그들이 그렇게 핍박했던 영국에서 조차 큰 인기를 얻었으니 아일랜드 사람들의 자부심이 얼마나 대단했겠어요.
이광용: 맥주로 영국을 정복했어요.
김주환: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게 있습니다. 아까 대기근을 언급해 주셨는데 대기근을 맞이 했을 때 기네스 가문에서 사람들한테 먹는 것을 나눠주고 일자리를 구해주고 많은 선행을 베풀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역사가 있어서 아마 아일랜드 사람들이 여전히 흑맥주를 좋아하는게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이광용: 우리 예전에 경주의 최부잣집 같은 느낌이네요. 먹는 방법에도 철칙이 있다고 들었거든요.
김주환; 그럼요, 굉장히 철저한 룰이 있습니다. 파이터라고 부르는 전용관을 준비해 주시고요, (실제로 시범), 잔을 45도 정도 기울여 주시고 맥주를 따릅니다. 이렇게 어느 정도 따라 주시고 다 따랐으면 그대로 내려놓고~ 119.5초 정도를 기다려 주셔야 합니다.
이광용: (패널들을 향해) 저분들 지금 답답해 미쳐요.
최원정: 119.5초를 맥주 잔을 앞에 놓고 기다리라고요.
김주환: 중국말에 좋은 거는 기다린 자에게 온다는 그런 말도 있듯이~ 기다려야 됩니다. (인내가 필요) 맛 있는 맥주를 위한 기다림이라 생각하시고~
이시원: 아까 아이리시 스튜도 그렇고 저것도 그렇고 아이리시는 기다리는 걸 잘 하나봐요.
이광용: 현대인들에게 2분은 아주 긴 시간이잖아요. 맥주가 준비되는 동안 아까 우리 무슨 얘기했죠. 기네스북 얘기했죠? 기네스북과 관련된 재미난 영상을 하나 보여드리겠습니다. 웅장한 팡파르로 시작한 기네스북 도전 영상!
---------------이광용: 1990년대 기상천외한 도전으로 기네스북 등재하셨습니다.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았죠----------- 5시간 손 끝으로 팔 굽혀펴기, 오토바이 점프, 양손 벽돌 많이 들기, 목소리 크게 지르기, 91미터 뒤로 달리기, 귀로 트럭끌기 (특히 기억에 남는 귀로 차 끌기), 무려 1톤 트럭을 귀로 끄는 할아버지도 등장합니다--------이렇게 기록에 도전하는 분들뿐만 아니라 당대 가왕 조용필씨도 이 자리에 함께 했는데요, 왜냐? 바로 음반 판매 100만 장 한국 기네스북 기록을 조용필씨가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소형 승용자 사람 많이 타기, 이게 하일라이트예요, 이거 많이들 기억하시죠? 뭐니 뭐니 해도 가장 기억에 남는 소형 승용차에 사람 많이 타기~ 이게 뭐라고 손에 땀을 쥐면서 응원도 하고~ 이거 돼 안돼 된 거야? 엄용수 심판: 한 분 한 분씩 세겠습니다. 자~ 과연 성공할 것인가? 과연 얼마나 탔을까? A차 (지금까지) 25명입니다. B차 26명! 소형 승용차 사람 많이 타기 세계기록: 비공식 28명 국내기록: 89년 한미양행팀 27명, 90년 기록: S.Y.T. 캐주얼 26명,
이광용: 여러분, 오랜만에 보니까 재미있죠, 그 사이에 2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2분 끝! 맥주도 준비 끝!) 여러분들을 위한 맥주가 준비되어 있구요 (맥주가 배달됨), 보세요, 거품과 흑맥주의 비율이 환상적이지 않습니까. 패널들이 맥주 잔을 들고 건배를 제안한다.
최원정: (데이비드에게) 아일랜드인들은 건배할 때 뭐라고 해요?
데이비드: 슬란차 SLAINTE 건강이라는 뜻이에요,
이시원: 원샷은 뭔가요?
최원정: 그런 문화가 없습니다.
이광용: 그리고 맥주 드시면서 심심하실 까봐 아까 데이비드 셰프가 직접 조리했던 아이리시 스튜가 지금 완성이 됐습니다.
이시원: 진짜 제대로 아이리시 음식을 먹네요.
패널: 아일랜드 흑맥주와 아이리시 스튜를 시식하다.
이광용: 더운 데 우리 집에서 이거를 (맥주기계) 놓을 수는 없잖아요.
김주환: 집에서도 맛있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광용; 캔 맥주로 이거로 구현이 가능하다구요?
김주환: 캔 맥주로도 구현이 가능합니다. 전용 잔을 준비해 주시고요, 바로 뚜껑을 따면 안 되고요, 왜냐면 이 안에 질소 구슬이 들어 있어요.
이시원: 아는 분이 편의점에서 그 맥주를 산 거에요. 마시는데 아니 이게 뭐야 맥주를 제대로 만들어야지 불순물이 있으면 어떡 합니까?
김주환: 양질의 맥주를 먹기 위해서 들어 있는 것이다 라면 될 것 같구요. 똑 같이 45도 기울인 다음에 천천이 따라 주시면 됩니다. 동일합니다. 119.5초~ 기다려 주셔야 돼요. 크리미야 헤드를 만들기 위해서~
최태성: 그러면 참전하지 않으면 저렇게 된다는 거예요?
김주환: 기다려 주신 다음에 마지막으로 살짝만 참전해서 마시면 집에서 가장 맛있게 흑맥주를 마실 수 있습니다.
이광용: 흑맥주는 이렇게 드셔야 된다 라는 것을 제대로 우리에게 설명해준 김주환 마스터 고맙습니다.
최원정: 앞으로 흑맥주를 먹을 때 아는 척~ 하면서 마실 것 같애요.
이시원: 전 진짜 오늘 호강 했어요. 이렇게 역사저널에서 흑맥주와 아이리시 스튜를 먹다니~
허준: 그런데 시청자 분들이 오해하시면 안돼요. 저희는 오늘 의학적 처방을 받은게 아니겠습니까?
김대륜: 그렇죠,
최원정: 의학적 처방요?
데이비드: 옛날에 아이 젖이 부족하면 산모한테 흑맥주 처방을 줄 때도 많았고 헌혈 하고 끝나서 흑맥주 한 잔 줘요.
김대륜: 음주는 다 나쁘다고 말씀을 하시지만 빈혈이 있는 분들은 흑맥주는 도움이 된다고~
이시원: 이거 갑자기 빈혈이~
허준: 아일랜드에서는 헌혈하고 나면 흑맥주 한 잔을 준다고~
최태성: 진짜?
데이비드: 아일랜드에 와서 헌혈하세요.
최원정: 미국으로 간 아일랜드 사람들은 이 흑맥주 한 잔 미시면서 고국 땅에 대한 향수를 달랬을 것 같애요.
김대륜: 아일랜드에서 계속해서 일어나는 독립운동에 재정적으로나 여러가지 방법으로 계속해서 지원을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아일랜드 내부에서 일어난 독립운동의 지부들이 미국에서도 계속 만들어지고 연관관계가 유지가 돼죠. 연대의식이 계속해서 유지가 됩니다.
최태성: 어쩌면 그렇게 얘기를 하는데 우리랑 비슷해요. 우리도 그랬잖아요. 1900년대 초반에 공식적인 최초의 이민이 이루어지는데 하와이가 최초이었거든요. 그때 거기 도착했던 많은 분들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엄청나게 힘들게 일했는데 그 중의 3분의 1은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자금으로 보낸 모습이 지금 또 나오네요. 너무 비슷하다.
최원정: 뭔가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란 게 느낌이 우리랑 비슷한 거 같애요, 지금도 그러세요?
데이비드: 지금도 매일 일어나면 아일랜드 뉴스보고 무슨 일 있는지~
최태성: 맥주도 걸쭉한데 막걸리도 걸쭉 하잖아요.
이시원: 오호! 술까지 두 나라가 비슷하네~
데이비드: 한국에 처음 왔을 때 깜짝 놀랐던 게 정(情)이라는 게 진짜 비슷해요, 아일랜드에서 유명한 게 손님이 방문하면 굉장히 환영해줘요, 제일 좋은 자리 내주고, 이런 식으로 환영하고 정(情)이 엄청 많아요.
허준: 아일랜드 갔을 시 혹시 아무 집이나 가서 문 두드리고 저 한국에서 왔는데 하룻밤 재워주시면 안 돼요?
데이비드: (웃음) 그건 아니지~
이시원: 어찌 보면 고국에 대한 그리움, 열망 이런 게 식민지를 거쳤기 때문에 독립에 대한 열망 때문에 똘똘 뭉치게 했었던 거 같애요.
김대륜: 그래서 이민을 떠난 사람이나 고국에 남아 있는 사람이나 독립을 원하고 1922년 자유국이 될 때까지 독립운동이 지속적으로 유지가 됩니다.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중요한 세력 중의 하나가 아일랜드 공화국군 (IRA), 일명 우리에게 IRA 라고 알려졌는데 IRA가 바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제 그 이야기를 해야 될 때이지만 시간이 부족하네요.
이시원: 너무 아쉽네요, 첫번째로 아쉬운게 이제야 아일랜드 독립에 대해서 막 알려고 하는데 끝내야 된다는 것, 두번째 아까 제가 받은 흑맥주를 마시지 못했다는 것,
최원정: (이시원의 책상 밑에 숨겨둔 흑맥주를 가리키면서) 여기에다 남겨 뒀대요.
최태성: 정말 우리나라 역사를 공부하다가 세계사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우리와 비슷한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나라를 발견했을 때의 기쁨, 그런데 그 기쁨의 나라가 우리와 정반대에 있는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아일랜드, 오늘 호기심이 많아졌고 동질감이 느껴지며 아일랜드행 비행기 티켓을 끊어야 되는 그런 감정을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데이비드: 제가 한국에 18년 넘게 살았는데 아일랜드를 소개할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아일랜드 사람들과 한국 사람들이 비슷한 게 분명히 있고 앞으로 서로 교류하며 도와주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김대륜: 아일랜드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일은 흔한 일은 아니죠. 서로 공감하는 문화가 있다고 하지만 사실 아일랜드에 대해서 잘 모르잖아요. 크롬웰의 학살이라든가 대기근이라든가 이런 사건들은 아일랜드 사람들 처지에서는 웃으면서 얘기할 수 없는 무거운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아일랜드를 좀 더 잘 알아보자는 의미로 아일랜드의 여러 단면들을 이야기 해봤고요, 앞으로는 아일랜드가 어떻게 독립을 쟁취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일랜드 사람들이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문제는 무엇인지 이런 문제를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최원정: 다음 시간에는 750년 만의 독립의 한을 푸는 아일랜드의 독립과정에 대해서 자세히 나눠 보겠습니다. 끝. (KBS 역사저널 그날 360회 “아일랜드 자유국 선포 100주년 기획 ① 식민지 750년, 독립을 외치다” 에서 정리).
① 1914년 유럽을 초토화시킨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됐다. 유럽은 폐허로 변했고 해가 지지않는 나라 영국, 전쟁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한 세력이 투쟁에 나섰다. 바로 750년간 영국의 식민지로 있었던 아일랜드였다. 오랫동안 독립의 불씨를 키워온 아일랜드인들은 세계 대전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마침내 1922년 자유국을 선포한다. 1970년대에 유럽에서 가장 최빈국이었던 아일랜드가 현재 한국 1인당 GDP의 두 배가 넘는 약 8만 3천달러다.
② 1171년(고려시대)에 영국의 헨리 2세는 아일랜드를 침략하여 식민지 시대가 시작되는데, 헨리 2세 때 넘어 간 사람들을 Old English 라고 하는데 이 사람들은 아일랜드 문화에 아예 동화가 되어서 살았다.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헨리 8세 이후에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아일랜드로 이주를 하였는데 종교가 달랐다. 아일랜드인들은 가톨릭, 영국인들은 개신교, 당시 헨리 8세는 아일랜드를 식민지로 삼아야 되겠다 라고 생각을 했다.
③ 이유는 영국을 건너면 바로 프랑스다, 영국에서 밑으로 내려가면 스페인, 당시에 프랑스나 스페인은 가톨릭 국가였다. 아일랜드 사람들과 손을 잡고 영국을 핍박하면 영국은 속절없이 당하는 셈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아일랜드를 식민지로 잘 지켜야 된다. 민족도 아일랜드는 켈트족이고 영국은 앵글로 색슨족이다. 아일랜드 식민지하면 아일랜드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인물이 영국의 크롬웰, 크롬웰은 영국 최초의 시민혁명, 청교도 혁명을 일으켰던 개혁가 중의 개혁가로 영국인들 이 굉장히 존경하는 인물이다
④ 크롬웰은 1649년에 찰스 1세를 죽이고 공화국을 만들고 호국경이라는 위치에 올라간다. 먼저 해결을 볼려고 했던 것이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인데 아일랜드가 1641년에 반란을 일으킨다. 이때 많은 잉글랜드 사람들을 죽였다는 소문이 난다. 아일랜드를 해결하지 못하면 일단 영국의 안정을 찾을 수 없겠다. 아일랜드를 공격하여 쑥대밭으로 만든다. 아일랜드 사람 전체를 무자비하게 다 죽였다. 아일랜드인들을 무차별하게 죽였을 뿐 아니라 땅도 엄청나게 몰수했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소작농으로 전락하였다. 이런 과정 속에서 크롬웰의 학살과 기근과 역병으로 50만 명이 죽게 된다. 정말 아일랜드인들에게는 크롬웰 기간이 잊을 수가 없다.
⑤ 대항해 시대에 콜럼버스가 영웅으로 떠받들어졌는데 원주민 입장에서는 학살자였다. 크롬웰은 의회 왕당파를 몰아내고 시민들이 권력을 잡게 만들어서 영웅이 되었지만 아일랜드 사람들은 크롬웰을 미워하고 경멸하였다. 왜냐하면 크롬웰의 눈으로 봤을 때는 아일랜드 사람들은 가톨릭을 믿는 미개한 사람들이었다. 당시에 아일랜드는 중세 때처럼 족장들이 다스리고 있는 부족국가 시스템이었다. 아일랜드인들을 문명화 시킬려면 지배층을 교체를 해버리고 거기에 개신교도들을 데려다 놓아야 했다. 아일랜드 사람들 입장에서는 목숨도 잃고 땅도 뺏겼고 평생 소작농 하층민으로 살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⑥ 영국은 아일랜드에서 사람도 죽였고 땅도 가져갔고 그런데 하나는 남겨 둔게 있었다. 옥수수 밀 이런 건 다 가져가는데 유일하게 감자는 남겨뒀다. 감자는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거기서 들여온 새로운 작물이다. 성경엔 감자가 없다. 영국인들 생각에 이건 원주민이나 먹는 것이지 우리 같은 기독교인들이 먹어서는 안 된다라고 생각했다. 밀이나 귀리나 보리나 전통적인 작물들은 지주들이 가져갔고 아일랜드 사람들에게는 감자를 남겼다. 감자는 농사하기에 좋았고 기르기도 쉽고 단위 면적당 수확량이 높고 조금만 노력을 해도 충분히 먹을 만큼 얻을 수 있기에 아일랜드 사람들은 감자를 많이 먹기 시작했다.
⑦ 이 감자가 아일랜드인들에게 큰 위로를 주었지만 1840년대에 아일랜드인들에게 또 한 번 큰 위기가 닥쳐온다. 그건 바로 미국에서 시작된 전염병 때문이었다. 1843년 미국 뉴욕에서 시작된 감자역병은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졌다. 흰곰팡이가 생겨 잎은 물론 땅 속의 씨감자까지 못쓰게 만들었다, 감자가 유일한 식량이었던 아일랜드인들에게 이 역병은 치명적이었다. 무려 5년간 이어진 감자 역병으로 아일랜드인 100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감자가 주식인데 이게 없어서 못 먹으니까 몸이 면역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세상 전염병이란 전염병은 다 돌았다, 장티푸스, 발진티푸스, 콜레라, 이질, 괴혈병이 돌면서 아사자보다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이 더 많았고 이게 연달아 일어났다.
⑧ 1840년대 아일랜드 더블린에 대기근 시기를 표현하는 동상(Statue of Starving)이 세워졌다. 인구 800만 명 정도 가 대기근으로 100만 명이 죽었고 100만 명은 이민을 갔다. 동상이 어른 6명이 굶주려서 장작개비처럼 마른 피골이 상접한 상황, 이 동상을 보면 굉장히 배고프고 불쌍해 보인다. 대기근에 대해서 아일랜드 사람들은 아주 나쁜 기억을 가지고 있다, 대기근이 있었던 여러 해 기간에도 잉글랜드 출신의 지주들은 밀이나 곡물을 수츨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다른 나라가 도우려고 할 때에도 그 도움을 거절하기도 한 일이 있었다. 오스만 투르크에서 1만 파운드를 기부하려고 했을 때 영국 정부에서 1만 파운드 말고 천 파운드만 해라. 왜 그러냐 하면 여왕이 2천 파운드를 기부를 했으니까.
⑨ 800만 명에서 100만 명이 굶어죽었다. 지난번에 우크라이나 대기근을 한 번 봤었다. 지금 아일랜드 대기근도 그렇고 작황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의도가 분명히 있었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역사상 유명한 기근들은 대부분 인재(人災)다. 감자에 전염병이 돌기 시작한 것은 사람이 막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 이후에 어떠한 행동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먹을 것이 있었는데도 한 쪽에선 굶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여기에는 정치적인 문제가 있고 당시에 어떤 이념적인 문제가 연루가 되어 있었다. 살길이 막막해 지자 아일랜드인들은 다른 선택을 하였다. 민족의 엑소더스(Exodus)였다.
⑩ 아일랜드 대기근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있다. 타이타닉 (Titanic)이다, 당시 3등칸에는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굉장히 많이 타고 있었다. 그런데 배를 탔던 그 많은 사람들이 출항 5일만에 차가운 바다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타이타닉 호가 아일랜드 코브 항에서 미국으로 갔는데 코브 쪽에 건물이 남아 있다. 당시 아일랜드 이민자들은 그야말로 전 세계로 향했다. 스코틀랜드, 영국 웨일즈, 유럽 대륙, 스칸디나비아, 캐나다, 미국, 카리브해, 남아메리카, 남아프리카, 호주, 뉴질랜드로 많이 갔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간 데가 미국이다. 미국도 뉴욕과 보스턴으로 많이 들어갔는데 놀라운게 1850년대에 뉴욕 인구 중에서 26%가 아일랜드인이었다.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의 인구보다 뉴욕에 있는 아일랜드인이 더 많았다. 26%면 거의 1/4, 뉴욕에서 4명이 모이면 한 명은 아일랜드인이다
⑪ 미국은 이민자들의 나라다. 그 이전에 이민자들이 엄청나게 들어온 상태인데 사실 아일랜드 사람들은 조금 늦었다. 이미 들어온 이민자들이 자리를 잡고 텃세를 부린다. 좋은 일자리라든지 좋은 장사를 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봉제공장이나 대장간, 철도 선로 공사라든지 박봉에 힘든 일을 하였다. 차별도 많이 당하고, Dirty Micks 라는 말이 있다, dirty 더럽다 micks 아일랜드인, 더러운 아일랜드인~ 마치 조선 사람들이 일본에 갔을 때 한국인 노동자를 조센징 이라고 비하했던 것과 똑같다. 본토 미국인들이 꺼려하는 직업, 위험한 직업인 소방관, 경찰, 군인에 진출하면서 거기서부터 성공을 거두기 시작하고 그리고나서 이제 아이들을 잘 교육을 시켜서 주류사회에서 성공을 하게 만드는 스토리들이 있다
⑫ 미국에서 아일랜드인 가문 중에 제일 유명한 가문은 케네디 가문이다. 할아버지가 보스턴에 자리를 잡고 밀주 사업을 하였다. 20세기 초에 금주령이 있었을 때 밀주사업으로 크게 돈을 벌고 아들을 외교관으로 만들고 손자는 대통령을 만들었다. 베스트 푸드의 대표 브랜드 맥도날드 형제도 아일랜드계다. 월트 디즈니도 비틀즈의 존 레논도 아일랜드계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 중에서 20명 정도가 아일랜드계 라고 한다. 존 F. 케네디, 로널드 레이건, 조지 부시, 그리고 빌 클린턴~ 심지어 조 바이든도 아일랜드계다.
⑬ 타국 살이를 하며 자신의 뿌리에 대한 집착이랄까, 조국을 떠난 아일랜드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모이는 날이 있다. 매년 3월 17일이면 아일랜드는 물론이고 미국-유럽 곳곳이 초록색으로 물든다, 매년 3월 17일 세인트 페트릭 데이엔 수많은 인파가 거리에 모인다. 세인트 페트릭 데이를 축하하는 메시지, I love Ireland 이 날은 아일랜드의 수호성인인 세인트 페트릭이 세상을 떠난 날입니다. 성 페트릭은 가톨릭을 아일랜드에 소개해준 선교사라서 정말 아일랜드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작년 기준으로 미국의 아일랜드계 미국인이 3150만 명이다. 미국 인구의 12% 이다.
⑭ 아일랜드에서 일어나는 독립운동에 재정적으로 지원을 한다. 실제로 아일랜드 내부에서 일어난 독립운동의 지부들이 미국에서도 만들어지고 연관관계가 유지가 됐다. 연대의식이 유지가 되었다. 일제 때 우리와 똑 같다. 우리도 그랬다. 1900년대 초반에 공식적인 최초의 이민이 이루어지는데 하와이가 최초이었다. 그때 거기 도착했던 많은 분들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엄청나게 힘들게 일했는데 그 중의 3분의 1은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자금으로 보냈다. 이민을 떠난 사람이나 고국에 남아 있는 사람이나 독립을 원하고 1922년 자유국이 될 때까지 독립운동이 지속적으로 유지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중요한 세력 중의 하나가 아일랜드 공화국군 (IRA), 우리에게 IRA 라고 알려졌는데 IRA가 나타나게 되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