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신호등
홍 성 자
간도 크지 어쩌자고 빨간 신호등에 시작하여 번연히 운전을 하고 가는가?
빨간 불이 켜져 있는데 무슨 생각에 빠져 교통신호를 아랑곳하지 않고 지나왔는가?
어느새 뒤에서는 경찰 페트롤 카가 왱왱거려서 차안의 백미러로 보니, 빨강 파랑불이 빠르게 돌아가며 내 차를 세우라고 난리다. 언뜻 보니 또 한 대의 같은 차가 왼쪽으로 왱왱거리며 달라붙는다. 나를 꼼짝 못하게 완전 포위한다.
오 마이 갓! 나는 완벽한 신호위반 임이 분명하다.
할렐루야 아멘! 할렐루야 아멘! 주 예수! 주 예수! 만을 빠른 말로 거듭 불렀다. 오른 쪽 길가로 서서히 차를 세우고 앞의 양쪽 차 유리문을 내렸다. 고개를 앞으로 끄덕끄덕하며 살며시 웃었다. 빨간불에 갔다고 인정하는 뜻이다.
두 명의 백인 젊은 무장경찰관이 내 얼굴에 바짝 다가오니 혼이 빠질 것 같이 으스스했다. 내가 먼저
“아이 메이크 미스테이크, 아이 메이크 미스테이크, 암 쏘리, 암 쏘리” 하면서 두 손을 앞으로 순간 모았다가, 지갑을 꺼내어 운전면허증을 주려고 하니, 경찰관은 손바닥을 흔들며 노 노 노 노 하면서 조심해서 운전하라 한다.
“아 유 오케이? 아 유 오케이?” 묻는 게 아닌가? 그러면서 내 차안을 순간 훑어보는 것 같았다.
“아이 앰 오케이, 아이 앰 오케이” 하면서 밝게 웃었다.
핸드폰은 핸드백 속에 있었으니 그 또한 하나님의 가호하심이었다.
어텐션! 어텐션! 주의를 주며 친절하게 잘 가시라고 고개를 숙이며 경찰관의 두 손이 앞을 향한다, 그것도 두 명이 약속이나 한 듯이.
오마이 갓! 땡큐! 쏘 마치! 할렐루야 아멘! 지저스! 를 경찰관들 들으라고 큰 소리로 말하며, 내가 먼저 악세레다를 밟고 유유히 앞으로 간다. 약간 무서움을 느꼈지만 백미러로 뒤를 보니 경찰관 두 명은 내 차의 뒷모습을 보고 서있었다. 나는 차 안에서 오른손을 흔들었다.
순간을 지나고 보니, 때 묻지 않은 젊은 백인 미남경찰관들의 그 선한 얼굴들이 기억된다. 언젠가 어느 레스토랑에서 만나게 되면 식사비를 내어줄 것이다. 그 뿐인가 커피도 사주고 그들이 하는 일에 감사하며 위로하고 용기도 줄 것이다. 다시 만나기를 학수고대한다.
어떻게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을까?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셨지만, 한편으로는 내 잘못을 즉시 인정하고 처벌을 내려라, 달게 받겠다 하는 식으로 나오니까 오히려 경찰관들이 감동을 받았나? 아니면 하나님의 천사들이었나? 생각이 헷갈린다.
운전한지 40여년이 넘었고, 눈만 뜨면 운전하고 살아야 하는 캐나다에서 30년을 넘게 살았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다. 차들이 앞뒤 양 옆에서 속력을 내어 들이치면 얼마나 큰 사고가 났을 것인가? 아찔하다.
나중에 아는 분한테 이야기를 하니 빨간불에 갔다면 벌점 4-5점에 벌금 4-5백 불 정도는 나왔을 것이라고 한다. 벌점이나 벌금보다도 일단 골치 아픈 일이 아닌가. 한 면으로 긍휼을 베풀 줄 아는 캐나다의 경찰관들이 얼마나 멋지고 신사적인가?
오래전부터 좌우명으로 삼고 사는 말이 있다.
잘못을 했으면 즉시 인정하고 용서를 비는 길이 무죄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다. 안전벨트를 매지 않아도 대부분 문제가 없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안전벨트가 내 생명을 구하고, 정직하지 않아도 많은 경우 별 탈이 없는 것 같지만, 정직은 결정적일 때 나의 운명을 바꾼다. 또한 정직은 최상의 재산이라는 말도 있다.
정직? 나는 과연 정직한가? 정말로 정직하게 살아왔나? 정직이란 말이 나를 또 무겁게 한다. 양심은 정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한다. 언제가 되어야 정직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까?
무슨 일을 당했을 때, 순간 나오는 말과 행동에서 어떠함을 볼 수 있겠다. 오늘의 이 일은 정말 정직했음으로 복을 받은 것 같다. 정직이 축복임을 다시 한번 실감하면서 순간의 고통에서 해방되었다. 천국과 지옥을 단 몇 분 만에 맛을 본 셈이다. 나이 들면서 정신 줄을 단단히 틀어쥐어야 한다는 경고다.
빨간 신호등은 나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가?
가지 말라! 일단 정지하라! 빨간 신호를 무시하면 끔찍한 피를 흘릴 것임을 다시한번 나를 일깨워준다. (2023. 4.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