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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즈 캔슬링/윤혜지<2021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감상 홍정식)
우리는 한껏 미세해진 우리를 내려다보며 기내식을 먹었다 책을 뒤적거렸다 구식(舊式)동물에 대한 흥미로운 글을 읽었다 그것은 동물들이 있다,로 시작된다
유기인지 실종인지 자연발생인지 모르겠지만 어디선가 구식의 동물들이 발견되었고
그들은 제각기 살고 있다
매일 똑같은 구절을 읽어줘도 너는 언제나 놀라워한다
연하게 와서 끊임없이 훼손되는 마음으로
침목(枕木)을 고른 적이 있다 비를 맞고 볕을 쪼이길 반복한 나무토막들 위로 뜨거운 기차가 규칙적인 소리를 내며 달렸다 모든 것이 멈추면 아웃렛에 가서 새 셔츠를 사고 카페에 앉아 아주 뜨겁고 단맛이 나는 차를 마셔야지 하다가 자신이 데려올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영영 잊어버린 사례도 있었다 이것이 소음으로 소음을 지워내는 방식입니다
설명을 들으며 우리는 각자 잊어버린 것을 접어올리고 등받이를 세우고 얌전히 차례를 기다렸다
가팔라지는 날개
여러 개의 의자에 앉아야만 생각나는 것이 있다
이국의 빛과 온도
잎사귀와 해변의 선량한 사람들
규칙적인 것은 예상 가능해서 지울 수 있다 다만 어떤 통화 소리
바빠, 계속 바빠서 그래 배회하듯 하는 사과
그것은 틈입니다
나 좀 안아줘, 같은 말은 꼭 돌아누우면서 하는
어떤 나쁨은 너무 구체적이어서
꼭 대낮 같다
물결이 물결로
공들여 썩는 냄새를 맡았다
그것을 생각할 때
깨끗한 공기 속으로 무언가 빠르게 나아가는 소리가 들렸고
눈앞에서 파도가 천천히 무너지고 있었다
저마다의 계단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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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즈 캔슬링은 소음을 차단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도 많은 소음이 있습니다. 지금도 제 방에는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합니다. 하지만 글쓰기에 집중하면 그 소리는 저절로 차단됩니다. 어떤 일에 집중하면 소음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좀 편안히 쉬고 싶은데도 소음이 계속 들릴때가 있습니다. 자려고 누웠는데 시계 소리가 들리거나, 물소리가 나거나,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도 들립니다. 조용한 바람소리나 낮은 빗소리는 시끄러워도 내 마음에 평안을 가져다 주는데 말이죠. 누군가의 핑계대는 소리, 마음에 없는 헛소리는 우리의 마음을 끝없이 훼손시킵니다. 서두가 길어졌습니다. 그만큼 이 시는 어렵다는 얘깁니다. 쉽게 읽히는 시는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요. 아무리 어려워도 시인은 뭔가 전달하려는게 있습니다.
우리는 한껏 미세해진 우리를 내려다보며 기내식을 먹었다 책을 뒤적거렸다 구식(舊式)동물에 대한 흥미로운 글을 읽었다 그것은 동물들이 있다,로 시작된다
나는 지금 누군가와 비행기를 타고 세상을 날아가고 있습니다. '기내식'에서 알 수 있습니다. '미세하다'는 말은 영어로는 fine 입니다. fine은 좋다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시작은 좋습니다. 책을 보는군요. 거기서 구식 동물을 발견합니다. 책의 내용은 '동물들이 있다'로 시작합니다. 과연 '구식동물'은 무엇을 가리킬까요? 본능에 충실한 인간이 아닐까요.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동물들이 있다, 약육강식의 세계, 오로지 허기만 채우는.
유기인지 실종인지 자연발생인지 모르겠지만 어디선가 구식의 동물들이 발견되었고
2연입니다. 유기나 실종은 버려지는 것이고 자연발생은 새롭게 태어나는 것인데요,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 것인지, 아니면 원래 그런 것들이 생겨날 수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구식의 동물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시인은 여기서 하나의 힌트를 줍니다. 1연에서는 '구식동물'이라고 했지만, 2연에서는 '구식의 동물'이라고 표현했어요. 동물들이 있었는데, 초기의 구식동물은 사라지고 후기의 '구식의' '구식을 추구하는' 동물들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다시 한번 더 동물의 세계에 대해 힌트를 줍니다.
그들은 제각기 살고 있다
3연입니다. 2연과 3연을 붙여서 하나의 연으로 만들었다면 이어진다고 보겠는데, 2연과 3연으로 구분해 놓았습니다. 그 말은 중간에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지 않았을까요? 처음엔 같이 살았지만 지금은 제각기 살고 있다. 즉, 처음엔 마음이 잘 맞았으나 지금은 마음이 맞지 않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매일 똑같은 구절을 읽어줘도 너는 언제나 놀라워한다
여기도 마찬가지죠. 연 구분이 되어있습니다. 중간에 하고 싶은 말이 뭐였을까요? 마음이 맞지 않은 일들이 많았을거예요. 심지어 매일하는 소리를 듣고도 당신은 언제나 놀라워합니다. 상대방의 소리를 그냥 시끄러운 소음으로 여겨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린거죠.
연하게 와서 끊임없이 훼손되는 마음으로
부드럽게 다가가지만 마음만 상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파도가 끊임없이 치는군요.
침목(枕木)을 고른 적이 있다 비를 맞고 볕을 쪼이길 반복한 나무토막들 위로 뜨거운 기차가 규칙적인 소리를 내며 달렸다 모든 것이 멈추면 아웃렛에 가서 새 셔츠를 사고 카페에 앉아 아주 뜨겁고 단맛이 나는 차를 마셔야지 하다가 자신이 데려올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영영 잊어버린 사례도 있었다 이것이 소음으로 소음을 지워내는 방식입니다
침목은 기차의 소리를 줄이려고 하는 하나의 방편입니다. 규칙적으로 두 사람 사이에 소음이 일지만, 그 소음이 멈추면 스트레스를 해소하기위해서 쇼핑도 하고 카페에서 마음도 추스리고 싶어하는 내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아이조차도 마음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서두에서 말씀드렸듯이 어떤 일에 너무 몰입하면 딴 생각이나 소음이 전혀 안 들리는거죠. 이것이 소음으로 소음을 지워내는 방식이라고 모두에게 말합니다. 그래서 높임말을 쓰는군요.
설명을 들으며 우리는 각자 잊어버린 것을 접어올리고 등받이를 세우고 얌전히 차례를 기다렸다
설명은 소음이 아니죠. 설명은 꼭 필요한 말이니까요. 비행기가 착륙하려고 하는군요.
가팔라지는 날개
내리는 속도가 겁나게 빠릅니다. 가팔라지는 날개는 거의 추락의 수준입니다.
여러 개의 의자에 앉아야만 생각나는 것이 있다
이국의 빛과 온도
잎사귀와 해변의 선량한 사람들
사실 묘사입니다. 비행기가 동남아 어딘가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선 당신과 나의 관계는 너무 좋아요. 가만히 떠 올려보면, 좋았을 때는 모든 것들이 다 좋게 보이는거죠. 따뜻한 온도, 주변의 모든 사람들까지도 선량해 보입니다.
규칙적인 것은 예상 가능해서 지울 수 있다 다만 어떤 통화 소리
바빠, 계속 바빠서 그래 배회하듯 하는 사과
그것은 틈입니다
규칙적인 소음은 다 참을 수 있지만, 당신의 핑계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요.바빠서, 미안해, 늘 하는 그 소리가 진짜 소음입니다. 또 다시 높임말을 사용합니다. '그것은 틈입니다' 틈으로 들어오는 것은 상처입니다.
나 좀 안아줘, 같은 말은 꼭 돌아누우면서 하는
그 틈으로 이제 아무리 큰 소리로 이야기해도 들리지 않습니다. 안아줘, 이해해 줘, 용서해 줘, 이런 말들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돌아누워 귀를 닫고 있는 당신에게는 이젠 소음만 들릴 뿐입니다.
어떤 나쁨은 너무 구체적이어서
꼭 대낮 같다
대낮처럼 환합니다. 너무 구체적으로 사실적으로 당신의 결점들이 보입니다. 대낮의 햇살은 용서가 없죠. 속속들이 구석구석을 다 드러나게 합니다.
물결이 물결로
공들여 썩는 냄새를 맡았다
파도가 철썩대듯 반복되는 일상이 지겹습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깨끗한 공기 속으로 무언가 빠르게 나아가는 소리가 들렸고
이런 반복적 일상을 생각할 때 청량한 공기 속으로 무엇인가 느껴지는 게 있습니다. 찰나의 속도로 나아가는 것. 스쳐지나 가는 소리. 이별일까요? 각자의 삶일까요? 당신일까요?
눈앞에서 파도가 천천히 무너지고 있었다
저마다의 계단처럼
안타깝지만 눈앞에서 파도는 무너집니다. 천천히 무너지는 파도는 무섭죠. 철썩대는 파도가 아니라 무너지듯 닥쳐오는 파도는 파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무너지는 파도 소리에 모든 것이 일거에 다 제거되는 상황이라면 노이즈 캔슬링이 제대로 작동하는 겁니다. 저마다의 계단은 그렇다면 무엇을 의미할까요? 사람들은 각자가 올라가고 있는 계단이 있겠죠. 이번에는 삼층까지 다음엔 사층으로 그 다음엔 오층으로. 하지만 어느샌가 다시 일층으로 무너져 내릴때도 있습니다. 각자에게 올라야 할 계단의 무게처럼 파도가 무너져 내립니다.
틈 사이로 소리가 들립니다. 나 좀 돌아봐 줘, 하는 소리 말이죠. 우리는 누구나 노이즈 캔슬링을 하고는 살아갑니다. 도무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습니다. 자신만의 이야기로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모든 주변의 아우성은 캔슬시키고 말이죠. 이제는 들어야 합니다. 대화는 함께 하는거죠. 일방적인 것은 소음일 뿐이에요. 속삭인다고 소리가 들리지 않나요?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나누었던 사랑의 밀어는 가장 작은 소리였지요, 아마. 그래도 그 작은 소리가 가슴을 울리지 않았나요? 소리쳐도 돌아보지 않는 시대에 사는 것 같아 조금 안타깝습니다. 조용하고 차분하게 이야기를 들어주길 바랍니다. 듣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