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2월 16일(금) 시편 147:1-20 찬송 191장
1.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선함이여 찬송하는 일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
2.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시며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며
3.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4. 그가 별들의 수효를 세시고 그것들을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
5. 우리 주는 위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의 지혜가 무궁하시도다
6. 여호와께서 겸손한 자들은 붙드시고 악인들은 땅에 엎드러뜨리시는도다
7. 감사함으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수금으로 하나님께 찬양할지어다
8. 그가 구름으로 하늘을 덮으시며 땅을 위하여 비를 준비하시며 산에 풀이 자라게 하시며
9. 들짐승과 우는 까마귀 새끼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도다
10. 여호와는 말의 힘이 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사람의 다리가 억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11.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
12. 예루살렘아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 시온아 네 하나님을 찬양할지어다
13. 그가 네 문빗장을 견고히 하시고 네 가운데에 있는 너의 자녀들에게 복을 주셨으며
14. 네 경내를 평안하게 하시고 아름다운 밀로 너를 배불리시며
15. 그의 명령을 땅에 보내시니 그의 말씀이 속히 달리는도다
16. 눈을 양털 같이 내리시며 서리를 재 같이 흩으시며
17. 우박을 떡 부스러기 같이 뿌리시나니 누가 능히 그의 추위를 감당하리요
18. 그의 말씀을 보내사 그것들을 녹이시고 바람을 불게 하신즉 물이 흐르는도다
19. 그가 그의 말씀을 야곱에게 보이시며 그의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보이시는도다
20. 그는 어느 민족에게도 이와 같이 행하지 아니하셨나니 그들은 그의 법도를 알지 못하였도다
할렐루야 (개역 개정)
- 이스라엘의 회복자, 하나님께 대한 찬양 -
‘할렐루야 시편’(146-150편)의 하나인 본시는
개인적 감사 예배시인 제 146편과 달리
민족 공동체적 감사 예배시인 147-150편 가운데 첫 번째 것으로,
모든 피조물을 섭리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광대하심과
고통당하는 선민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신 하나님의 권능과
은혜에 대한 찬양이 매우 감동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러한 본시는 아마도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 포수(주전586-538년)에서
해방되어 고국에 귀환하여 예루살렘 성전과 성곽을 재건한 후에
익명의 시인에 의해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느12:27-43)
즉 에스라와 느헤미야에 의해 국가 재건이 완성된 이후
이스라엘은 군사·사회·경제적으로 안정과 부흥을 누리게 되었는 바
시인은 이러한 이스라엘의 회복이 자신들의 노력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의 결과임을 본시를 통해 고백한 것이다.
이러한 본시는 세 연으로 나뉘는데 각 연은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명령과 함께 그 찬양의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찬양의 이유들을 살펴보면 먼저 전반부 1-6절은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고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중반부 7-11절은 모든 자연 만물을 친히 섭리하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과 이러한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후반부 12-20절은 통치자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베푸시는
영육간의 축복을 각기 제시하고 있다.
실로 여호와께서는 진정으로 당신을 경외하는 자들을 친히 보호·통치하시고
풍성한 은혜를 베푸시는 능력의 소유자이시다.
한편 본시에 나타난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 능력과 사랑과 공의의 통치 역사는
종말론적으로 완성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이루어질
그분의 완전하고 영원한 통치를 예시한다.(계11:15-18)
따라서 현재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받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분의 영원하고 완전한 통치하심 속에서 있게 될 것을 소망할 수 있는
우리에게는 참된 평화와 기쁨의 찬양만이 넘쳐날 수밖에 없다.(사26:3; 습3:17)
10-11절) 「여호와는 말의 힘이 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사람의 다리가 억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
여기서 말의 힘이란 전쟁에서 사용되었던 군마의 힘을 가리키는데,
당시 병거와 군마는 한 나라의 국력을 측정하는 중요한 품목으로 여겨졌다.
또한 사람의 다리는 개인의 힘과 민첩함을 의미하는 말로
자신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교만을 상징하는 말이다.
여기서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피조물의 탁월함과 모든 능력을 미워하신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고 찬양해야 함에도
자신들의 힘만을 의지하여 교만하고 자만하는 자들을
기뻐하지 않으시며 미워하신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부모들이 자녀들 교육에 심하다 싶을 정도로
열의를 드러내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는 그들로 세상에서 성공을 위한 보다
유리한 조건에 설 수 있게 하려는 이유에서이다.
물론 공부를 잘하고 좋은 대학을 나왔다는 것만으로 성공을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그들의 인생에 유익이 되면 되었지 해가 되지는 않기에
이러한 열의를 다하는 것일 것이다.
이것이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이러한 조건이 우리 인생을 결정하고 좌우한다고 생각하고
그것에 집착하는 것만은 잘못된 생각임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성경을 보면, 다윗은 가장 열악한 조건과 환경에서
그의 인생을 시작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열악한 조건 속에 있는
그를 택하사 이스라엘의 가장 존경받는 왕으로 세워주셨다.
뿐만 아니라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다가
형들의 미움을 받아 애굽으로 팔려가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늦둥이 아들로써 자신이 집에서 해야 할 일들조차 철저히 제외된 채
아버지와 함께 장막에 거하던 그가 무엇을 할 줄 알았겠는가?
그런 그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열악한 환경에 있던
그를 붙드셨고 어디서든 인정과 신뢰를 받는 자가 되게 하셨고
필경에는 애굽을 통치하는 제국의 제이인자로 높이셔서 인생의 성공을 얻게 하셨다.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시20:7)라는
다윗의 말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이 세상의 외적인 조건과 환경, 내가 가진 능력만을 의지하고
그것에 근거하여 교만하고 자만하기보다는
오히려 능력의 원천이 되시며,
모든 인생의 주관자되시는 하나님을 붙들고
그분만을 높이며 경외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렘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