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의미
한 나라에서 어떤 제도를 적용하다가 포기하고 다른 제도를 도입하였으나, 이 마저도 좋지 않아서 이전의 제도를 다시 적용한다면 사람들은 제도를 부활시켰다고 말을 한다. 부활시켰다는 말은 이전의 상태로 되돌린다는 말이다. 부활이라는 우리 말 속에 이런 의미가 있는 것이다.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부활에 대해서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살다가 죽었는데, 위의 말을 적용하면 이전의 것은 세상에서 살아있을 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태어나기 전의 상태인 것이다. 육체로 태어나기 전에는 영의 상태로서 천사를 의미한다. 이전에는 천사의 영이였는데, 하나님께 범죄하여 육체를 입은 사람이 되었으나, 이전으로 돌아간다면 다시 하나님 나라 천사로 돌아가는 것이다.
영이 육체에 갇히므로 사람이 되었으나,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알 수 없는 영적 죄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 회개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과 연합되어, 그 죄인은 용서받고 다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는 것이다. 연합한다는 말은 죄인도 함께 예수와 죽었음을 믿는 것이다.
죽은 후에는 부활이 있으며, 곧 부활이 천사의 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사두개인들은 육체가 죽어서 부활하면 다시 육체가 부활하는 것으로 생각해서 예수님께 질문을 했다. 누가복음 20장 29-33절『그런데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아내를 취하였다가 자식이 없이 죽고 그 둘째와 셋째가 그를 취하고 일곱이 다 그와 같이 자식이 없이 죽고 그 후에 여자도 죽었나이다 일곱이 다 그를 아내로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그 중에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라고 질문을 했다.
예수님의 답변은『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세상의 자녀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되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 장가 가고 시집 가는 일이 없으며』육체적 부활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누가복음 20장 36-38절에서『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은 모세도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서 주를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시라 칭하였나니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하시니』예수님은 부활과 천사를 연결시킨다.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란 영적으로 부활한 자의 하나님이라는 말이다.
이렇듯 부활은 이전으로 돌아가는 의미를 갖는다. 부활이 천사의 영으로 돌아가면, 그 천사의 영은 다시 빼앗긴 천사의 옷을 입어야 한다. 이 천사의 옷을 의의 옷, 영의 몸 또는 장막이라는 표현과 대체된다. 영이 영의 몸을 입을 때, 완전한 부활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수님도 죽은 자 가운데 일어나셔서 영의 몸을 입고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인간은 영이신 하나님을 볼 수 없다. 눈에 보이기 위해서는 몸이 필요한 것이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이 택한 백성들에게 나타나실 때는 영의 몸을 입고 나타나시는 것이다. 갑자기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시고, 홀연히 사라지는 것이다. 이때 하나님을 보는 눈은 영적 눈이 될 것이다.
성경은 부활을 열매로 설명한다. 마가복음 4장 2-9절에서『이에 예수께서 여러 가지를 비유로 가르치시니 그 가르치시는 중에 그들에게 이르시되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부활의 열매를 맺는 자가 좋은 땅(심령)이다. 부활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씨)이 마음에 떨어질 때, 열매맺는 것이다. 좋은 땅은 육적인 생각을 버리고 영적으로 들을 귀를 통해서 말씀을 받아드릴 때 이루어진다.
로마서 6장 5절『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그리스도와 연합되므로 죽음과 부활도 연합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예수의 육체와 함께 죽었다는 의미다. 그러면 하나님이 죽은 자를 부활시켜 주신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이미 예수와 함께 죽었고, 이미 부활한 자가 되는 것이다.
교회 사람들은 예수를 믿으므로 구원받는다고 말을 하지만, 헬라어 성경은 예수의 믿음 안에서 구원받는다 라고 되어있다.
갈라디아서 2장16절. 『 εἰδότες δὲ ὅτι οὐ δικαιοῦται ἄνθρωπος ἐξ ἔργων νόμου ἐὰν μὴ διὰ πίστεως Χριστοῦ Ἰησοῦ, καὶ ἡμεῖς εἰς Χριστὸν Ἰησοῦν ἐπιστεύσαμεν, ἵνα δικαιωθῶμεν ἐκ πίστεως Χριστοῦ καὶ οὐκ ἐξ ἔργων νόμου, ὅτι ἐξ ἔργων νόμου οὐ δικαιωθήσεται πᾶσα σάρξ.』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개역개정)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되는줄 알므로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었나니 이것은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자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는 어떤 육체도 의롭게 될 수 없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베드로가 음식을 먹으면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차별한 것은 율법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의롭게 되는 것은 믿음으로 인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디아 피스테오스 예수 크리스투 διὰ πίστεως Χριστοῦ Ἰησοῦ)것은 헬라어 원어로 볼 때,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하여 라는 의미다. 내가 믿는 믿음이 아니라,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자기를 부인하고), 호 로고스인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서, 그의 믿음(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는 믿음)과 연합되는 믿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믿음의 주체가 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다.
영어 성경에서도 niv성경은 우리말 번역과 동일하게 잘못되어 있다. 그러나 kjv는 헬라어 원본을 대체로 맞게 옮겨놓았다. Knowing that a man is not justified by the works of the law, but by the faith of Jesus Christ, even we have believed in Jesus Christ, that we might be justified by the faith of Christ, and not by the works of the law: for by the works of the law shall no flesh be justified.(kj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