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 위소보의 갈등
강희는 다시 물었다.
[어제 저녁 그대는 은행 골목 안으로 들어갔었는데 놀기 좋았는가?]
위소보는 어리둥절해졌다.
[은행 골목이라니요?]
그런데 문득 떠오르는 바가 있었다. 천지회의 군호들이 머물고 있는 골 목 입구에 커다란 은행나무 두 그루가 서 있던 것으로 보아 그 골목을 바로 은행 골목이라 하는가 보다 생각했다. 황제가 은행 골목이라는 이 름까지 알고 있는데 무엇을 더 속일 수 있겠는가? 이런 생각을 하자 온 몸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고 두 다리는 맥이 빠져 버렸다. 그는 즉시 무릎을 끓고 큰절을 했다.
[황상께서는 만리를 내다보시는군요. 어찌되었든간에 소신은 충성을 다 하고 있습니다.]
강희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반적들이 그대에게 나를 해치자고 다그쳤지만 그대는 한사코 그를 응낙하지 않았다지? 그대는 나에게 의리를 지키려 한 모양이군. 그러나 소계자, 그대는 한평생 두 척의 배를 딛고 서 있을 텐가?]
위소보는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황상께서는 굽어살피십시오. 소신은 천지회의 총타주가 될 수는 없습 니다. 황상께서는 마음을 푹 놓으십시오.]
강희는 다시 한숨을 내쉬더니 한참 동안 넋을 잃고 생각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중국의 황제가 된 나는 요순우탕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백성을 아끼 고 사랑하였으며 어진 정치를 볘풀어 백성들을 다스리려고 애썼네. 명 나라의 황제 중 그 누가 나보다 낫더란 말인가? 이제 세 번왕은 이미 평정되었고 대만도 수중에 넣었으며 나찰국도 다시는 감히 변경을 침범 하지 못할 것이네. 이로써 천하는 태평해졌고 백성들은 즐거이 생업에 종사하게 되었네. 그러나 천지회의 반적들은 반드시 주씨의 명나라를 되찾겠다고 떠벌리고 있는데 백성들이 주씨의 황제 치하에서 보냈던 지 난 날들이 오늘보다 좋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위소보는 그 말을 듣고 생각했다. (뭐, 그거야 내가 알 수 없는 노릇이 아닌가?)
[소신은 봉양화(鳳陽花)라는 북을 치는 사람이 노래하는 것을 들은 적 이 있습니다. 주씨 황제가 나선 이래 십 년 중에 구 년은 땅이 황폐해 지더라. 대갓집 사람들은 전답을 팔게 되고 소작인들은 아들을 팔더라. 그러나 이제 날씨도 순조로워 국태민안하고 황상께서는 오생어탕이라. 주씨 황제를 황상에게 비한다면 그야말로 십만팔천 리나 떨어져 천리마 를 타도 쫓아올 수 없을 지경이라 했습니다.]
강희는 빙그레 웃었다.
[그대는 그만 일어나게.]
그는 서재에서 서성거리다 말했다.
[부황은 만주 사람이지만 나의 친어머니는 효강황후로서 한인 출신의 기인(旗人:만주인)일세. 그러니 나도 절반은 한나라 사람이라 할 수 있 네. 나는 천하의 백성들을 똑같이 대하고 있으며 조금도 한나라 사람들 을 차별하지 않는데 어째서 그들은 그토록 나를 미워하고 나를 죽이려 고 하는 것일까?]
위소보는 말했다.
[그들 반역도들은 대역무도하고 멍청하기 그지없습니다. 황상께서는 그 들에게 마음쓰지 마십시오.]
강희는 고개를 설레설레 가로젓더니 처량하고도 외로운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한참 후에 입을 열었다.
[만주 사람에게도 좋은 사람이 있고 나쁜 사람이 있듯이 한인들 역시 좋은 사람이 있고 나쁜 사람이 있네. 세상에는 나쁜 사람들이 너무 많 아서 모두 죽일래야 죽일 수도 없고, 그들을 감화시켜 올바른 길을 밟 도록 하고 싶지만 나에게 그만한 재간도 없네. 아, 황제가 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네.]
그는 위소보를 한참 동안 응시하다가 말했다.
[그대는 가 보게나.]
위소보는 큰절을 하고 물러났다. 그의 전신은 축축하고 차가웠다. 조금 전 온몸에 식은땀을 흘릴 때 속옷까지 다 젖었던 것이다. 그는 궁문을 나서자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휴, 하고 내쉰 후 속으로 생각했다. (천지회의 형제들 중에 다시 첩자가 스며들었군. 풍제중이란 첩자를 죽 였는데 다시 또 한 명이 나섰구나. 그렇지 않다면 그들이 나에게 황상 을 찔러 죽이자고 했던 말들을 황상께서 어떻게 알고 계실 수 있단 말 인가. 과연 어느 누가 첩자인지 알 수 없구나.) 그는 저택으로 돌아와서도 곰곰이 생각해 보았으나 전혀 단서를 찾을 수가 없었다. (황상께서는 나에게 풍석범의 행방을 알아내라는 책임을 지웠다. 황상 의 표정을 보건대 내가 부린 수작이라고 의심은 하고 있지만 정확히는 모르고 있는 듯했다. 이 일을 또 어떻게 얼버무릴 수 있을까? 어제 쌍 아는 은행 골목에서 내가 사형터에서 사람을 바꾸어 모 형을 구한 일들 을 모두 이야기했다. 다행히 나는 그녀에게 풍석범으로 바꿔치기했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쌍아는 반드시 그대로 털어 놓았을 것이고 그 첩자는 곧 그 사실을 황제에게 고자질했을 것이다. 그렇게 됐다면 일등 녹정공에서 떨어지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내 성을 갈아야 할 지경이 될 것이다.) 이리 생각하고 저리 생각해 보고 하였으나 아무래도 번거롭기 이를 데 없었다. 이전에는 궁 안으로 들어가 강희와 우스갯소리를 하며 흐뭇해 했는데 이제 나이가 들고 보니 황상의 위엄이 날로 더해 가는지라 터무 니없는 말들을 함부로 내뱉을 수도 없게 되었다고 느꼈다. 사실 위소보는 무원대장군이니 일등 녹정공이니 하는 대관은 별로 재미 있는 노릇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며 차라리 어릴 적 여춘원에 서 심부름꾼을 하고 있었던 때가 오히려 대견스럽고 즐거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생각했다. (천지회의 형제들은 나에게 황상을 찔러 죽이라고 핍박하고, 황상께서 는 나에게 천지회를 없애라고 핍박하고 있다. 황상께서는 나에게 한평 생 두 척의 배를 딛고 있겠느냐고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제기랄! 나는 하지 않겠다. 어떤 노릇도 하지 않겠다.) 어떤 일도 하지 않겠다고 뇌까리고 보니까 갑자기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비참한 기분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품속에서 주사위를 꺼내서 탁자 위 로 내던지며 빌었다. (하지 않는 것이 좋다면 만당홍이 나오너라.) 그는 주사위를 던지며 이미 수작을 부려 두었지만 만당홍을 던지는 데 는 성공하지 못했다.
[제기랄!]
그는 다시 주사위를 던졌다. 여덟 번째에 가서야 네 알이 모두 붉은 점 이 하늘을 향하도록 던지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자 그는 기뻐서 말했다.
[하느님은 나에게 먼저 황상에게 일곱 가지 큰일을 해주고 난 후에 하 지 말라는 것이구나.]
그는 다시 생각해 보았다. (일곱 가지 큰일은 이미 해냈다. 오배를 죽인 것이 그 첫번째 일이고, 노황야를 구한 것이 두 번째 일이었고, 오대산에서 황상의 앞을 가로막 아 황상을 구한 것이 세 번째 일이며, 태후를 구한 것이 네 번째 일이 된다. 그리고 다섯 번째 큰일은 몽고, 서장과 연맹을 맺은 것이고, 여 섯 번째는 신룡교를 깨뜨린 것이며, 일곱 번째 일은 오응웅을 잡은 것 이다. 여덟 번째는 장용과 조양동 등을 추천하여 오삼계를 깨뜨리는 데 공을 세우도록 했던 것이고, 아흡 번째는 아극살 성을 공격하여 함락시 켰던 일을 들 수 있겠다·‥… 너무나 많다, 너무나 많아. 작은 일들은 그만두더라도 큰알만도 알맞게 일곱 가지이니 실로 적지 않구나.) 그는 어떤 일곱 가지 일이 큰일이었는지 계산해 보기도 귀찮은 생각이 들어 어쨌든 그만두어야겠다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벼슬을 하지 않고, 반란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도대체 나는 무엇을 해 야 하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다시 양주로 돌아가는 것이 제일 좋은 일인 것 같다.) 그는 양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자 흐뭇해져서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게 누구 없느냐!]
그는 친위병에게 술과 음식을 가져오라고 한 후에 스스로 따라 마시며 어떻게 해야 후환을 없앨 수 있겠는가 하고 곰곰이 생각했다. 즉 강희 로 하여금 사람을 보내 자기를 잡지 않도록 하고, 천지회에서 역시 자 기에게 함께 반역을 도모하자고 핍박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공주에게 자기와 더불어 양주에서 매일같이 돈을 써 가면서 술을 마셔 대며 노닥거리자고 한다면 그녀는 반드시 마다할 것 이 분명했다. 하지만 양주에 가서 기녀원을 세우겠다면 소전, 아가, 방 이, 목검병, 증유, 그녀들 모두가 응낙하려 들지 않을 것 또한 분명한 노릇이었다. (좋아, 가는 데까지 가 보자. 나는 수백만 냥의 은자를 가졌으니 기녀 원을 차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설마 굶어죽지야 않겠지. 다만 그렇게 재 미가 있을 수 없는 것뿐이다.) 그날 밤 그는 집에서 조촐한 연회석을 차리게 했다. 일곱 부인들은 그 가 싱글벙글 웃으며 홍에 겨워서, 우스갯소리를 곧잘 하는 것이, 요즘 잔뚝 눈살을 찌푸리고 있던 상태와는 전혀 다른지라 의아하여 물었다.
[무슨 일로 그토록 기뻐하세요?]
위소보는 활짝 웃었다.
[천기는 누설할 수 없소.]
공주는 물었다.
[황제 오라버니가 그대의 벼슬을 올렸나요?]
증유는 물었다.
[노름판에서 돈을 크게 땄나요?]
쌍아는 물었다.
[천지회의 일은 다시 귀찮지 않게 되었나요?]
아가는 말했다.
[퉤, 이 사람은 또 어디서 소저를 눈여겨보고 점찍어 두었다가 여덟 번 째 부인으로 들여앉히려고 하는군?]
위소보는 그저 고개만 가로저을 뿐이었다. 부인들이 다그쳐 묻자 위소 보는 말했다.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대들이 이토록 캐물으니 이야기할 수밖 에 없군.]
일곱 명의 부인들은 모두 젓가락질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위소보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나는 크게 벼슬아치가 되어서 공작에 봉해졌으나 글자를 하나도 모르 니 실로 체면이 서지 않소. 내일부터는 책을 읽으면서 문장을 짓는 연 습을 하겠소. 그리하여 장원급제하여 한림(翰林)이 되겠소.]
일곱 명의 부인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갑자기 까르르 하고 웃 음을 터뜨렸다. 모두들 이 낭군이 살인방화와 남의 것을 훔치거나 빼앗 거나 유괴를 한다거나 속임수를 쓰는 일 등은 가리지 않고 하지만, 천 하에서 유일하게 한 가지 결코 하려 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바로 책을 읽고 글자를 익히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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