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후가 힘을 다하여 활을 당겨 요람의 두 팔 사이를 쏘니
(열왕기하 9장 17-25절)
17-19.이스르엘 망대에 파수꾼 하나가 서 있더니 예후의 무리가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내가 한 무리를 보나이다 하니 요람이 이르되 한 사람을 말에 태워 보내어 맞이하여 평안하냐 묻게 하라 하는지라 한 사람이 말을 타고 가서 만나 이르되 왕의 말씀이 평안하냐 하시더이다 하매 예후가 이르되 평안이 네게 상관이 있느냐 내 뒤로 물러나라 하니라 파수꾼이 전하여 이르되 사자가 그들에게 갔으나 돌아오지 아니하나이다 하는지라 다시 한 사람을 말에 태워 보내었더니 그들에게 가서 이르되 왕의 말씀이 평안하냐 하시더이다 하매 예후가 이르되 평안이 네게 상관이 있느냐 내 뒤를 따르라 하더라
파숫꾼은 단순한 성문지기가 아니라 멀리서 다가오는 위험을 미리 알리는 직무를 맡은 병사를 가리킨다. 망대는 이스르엘 망대 중에서 길르앗 라못을 향하고 있는 동남편의 망대를 가리킨다. 예후가 무리들을 이끌고 올 때에 요람을 암살하기에 넉넉한 규모의 군사들을 동반했다는 말이다.
“요람이 이르되 한 사람을 말에 태워 보내어 맞이하여 평안하냐 묻게 하라 하는지라 예후가 이르되 평안이 네게 상관이 있느냐 내 뒤로 물러나라 하니라”
요람 왕은 파숫꾼의 보고를 듣고 즉시 사자 한 명을 그 무리들에게 보냈다. 요람 왕은 다가 오는 무리들을 아군으로 보고 그들로 하여금 빨리 전황에 대한 보고를 듣기 원했던 것이다. 요람은 부상으로 인하여 오랫동안 전쟁터에서 떠나 있었으므로 전황에 대해 무척 궁금했을 것이다. 전황을 알아 보기 위해 나갔던 사자가 예후를 보고 평안이냐 라고 물었다.
“파수꾼이 전하여 이르되 사자가 그들에게 갔으나 돌아오지 아니하나이다 하는지라 다시 한 사람을 말에 태워 보내었더니”
요람은 두번씩이나 똑같이 각각 한 명의 사자를 보내어 평안을 묻게 했다. 이것은 요람이 그 무리들을 아군으로 보고 있었다는 사실이지만, 그 사자가 돌아오지 않는 것을 통하여, 요람이 위험을 감지하는데 있어서 얼마나 둔감한 인물이었는가를 보여 준다. 요람의 이러한 태도는 하나님이 심판을 행하시는데 진노를 더욱 가속화시켰다.
20-22.파수꾼이 또 전하여 이르되 그도 그들에게까지 갔으나 돌아오지 아니하고 그 병거 모는 것이 님시의 손자 예후가 모는 것 같이 미치게 모나이다 하니 요람이 이르되 메우라 하매 그의 병거를 메운지라 이스라엘 왕 요람과 유다 왕 아하시야가 각각 그의 병거를 타고 가서 예후를 맞을새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토지에서 만나매 요람이 예후를 보고 이르되 예후야 평안하냐 하니 대답하되 네 어머니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가 이렇게 많으니 어찌 평안이 있으랴 하더라
“파수꾼이 또 전하여 이르되 그도 그들에게까지 갔으나 돌아오지 아니하고 그 병거 모는 것이 님시의 손자 예후가 모는 것 같이 미치게(싱가온) 모나이다 하니”
싱가온은 미친듯이 날뛰다,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다를 의미하는 샤가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그런데 예후의 용맹함이 바로 이와 같은 어구로 수식되고 있다는 것은 요람과는 달리 그가 얼마나 강력한 사람이었던가를 말해준다.
한편 요람은 무리들이 미친듯이 급히 말을 몰아쳐 온다는 파수꾼의 보고를 받고 단순하게 생각하고 그를 맞으러 나간다. 그런데 이때에도 요람은 아무런 위험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요람은 평안을 묻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는 달리 미치게 모는 예후의 모습을 통해 평소에 그가 과격한 인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이것은 예후의 혁명이 그처럼 광적이었으며 잔인했음을 암시해 준다.
“요람이 이르되 메우라 하매 그의 병거를 메운지라 이스라엘 왕 요람과 유다 왕 아하시야가 각각 그의 병거를 타고 가서 예후를 맞을새”
요람과 아하시야가 예후를 맞은 것은 그와 접전하려는 것이 아니라 아람과 싸우던 그에게서 전시의 상황을 듣고자 함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대항해 보지도 못하고 죽게 된 것이다. 그들이 이렇게 쉽게 죽임을 당한 것은 아합 왕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볼 수 있다.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토지에서 만나매”
나봇의 토지는 아합의 탐욕과 배교를 상징하는 곳이다. 예후와 요람이 이 곳에서 상봉하게 된 것은 아합의 죄값대로 심판하시는 하나님 주권적인 섭리 의해 이어진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섭리를 간접적으로 볼 때는 마치 우연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예언의 말씀에 따라 정확히 성취 되는 것이다.
“요람이 예후를 보고 이르되 예후야 평안하냐 하니 대답하되 네 어머니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가 이렇게 많으니 어찌 평안이 있으랴 하더라”
예후야 평안하야 라는 질문은 군대에 이상은 없는가 라는 말이다. 그러나 예후는 이와는 달리 부정적인 답변을 한 것이다.
이세벨의 음행은 우상 숭배를 의미한다. 그녀가 지은 수많은 범죄, 즉 바알을 숭배한 우상 섬김의 배도는 음행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술수는 우상숭배에 따르는 일종의 마술 행위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모세 율법에서는 이를 엄격히 금하고 있다. 한편 여기서 특별히 이세벧의 죄악을 언급하고 있는 이유는 그녀가 아합이 지은 범죄의 근본 원인이기 때문이고, 그녀의 악행과 반대 행위인 예후의 반란의 정당성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다.
23-25.요람이 곧 손을 돌이켜 도망하며 아하시야에게 이르되 아하시야여 반역이로다 하니 예후가 힘을 다하여 활을 당겨 요람의 두 팔 사이를 쏘니 화살이 그의 염통을 꿰뚫고 나오매 그가 병거 가운데에 엎드러진지라 예후가 그의 장관 빗갈에게 이르되 그 시체를 가져다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밭에 던지라 네가 기억하려니와 이전에 너와 내가 함께 타고 그의 아버지 아합을 좇았을 때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그의 일을 예언하셨느니라
“요람이 곧 손을 돌이켜 도망하며 아하시야에게 이르되 아하시야여 반역(미르마)이로다 하니”
손을 돌이켜 라는 표현은 손으로 병거를 되돌렸다는 의미이다. 요람은 다른 병사의 호위도 없이 단신으로 병거를 몰았다는 말이다. 요람은 예후의 대답을 통해 어떤 모반이 있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내린 심판이라는 사실은 전혀 깨닫지 못했다.
미르마는 속임, 반역 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예후의 행위가 여호람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의외적인 것이었다. 왜냐하면 예후는 요람을 주인으로 섬기는 위치에 있었고, 요람은 그에게 큰 직권을 맡길만큼 그를 신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바로 그 순간 전까지도 요람은 예후의 반란을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예후의 행위는 그에게 속임으로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도적이 오는 것 같이 순식간에 임하는 것이다.
“예후가 힘을 다하여 활을 당겨 요람의 두 팔 사이를 쏘니 화살이 그의 염통을 꿰뚫고 나오매 그가 병거 가운데에 엎드러진지라”
예후가 요람의 어깨 사이를 쏨으로 인해 화살 그의 심장을 비스듬이 관통했다.
“예후가 그의 장관(샬리쉬) 빗갈에게 이르되 그 시체를 가져다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밭에 던지라”
샬리쉬는 세번째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병거에 타는 세 사람 가운데서 세번째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래서 빗갈이 예후와 함께 병거에 탄 부관일 것일 것이다. 예후와 행동을 같이한 이 빗갈이라는 장군은 아합 시대에도 예후와 함께 아합의 부하였다.
“네가 기억하려니와 이전에 너와 내가 함께 타고 그의 아버지 아합을 좇았을 때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그의 일을 예언하셨느니라”
“네가 기억하려니와” 이 부분의 히브리어 성경은 “기억나지, 너와 내가 함께 타고 그의 아버지 아합을 좇았을 때를” 라는 말이다.
엘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심판을 왕에게 예언할 때 그 자리에 예후도 함께 있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열왕기상 21장 17-19절『여호와의 말씀이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내려가서 사마리아에 있는 이스라엘의 아합 왕을 만나라 그가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러 그리로 내려갔나니 너는 그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고 하셨다 하고 또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 하였다 하라』
(요약 정리)
여호람왕의 징계를 위해 하나님께서 예후를 도구로 이용했는데, 선지자 엘리사가 제자 중 하나를 불러 길르앗 라못으로 가도록 하여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를 찾아가서 기름을 붓도록 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노라, 너는 네 주 아합의 집을 치라, 내가 나의 종 선지자들의 피와 여호와의 종들의 피를 이세벨에게 갚아 주리라, 아합의 온 집이 멸망하리니, 이스라엘 중에 매인 자나 놓인 자나 아합에게 속한 모든 남자는 내가 다 멸절하되, 아합의 집을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과 같게 하며, 또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집과 같게 할지라, 이스르엘 지방에서 개들이 이세벨을 먹으리니 그를 장사할 사람이 없으리라 하셨느니라”
북 이스라엘 여호람왕은 길르앗 라못 전투에서 상처를 입고, 그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이스르엘로 돌아왔는데, 예후가 이스르엘로 내려와 여호람왕을 살해하고, 동맹관계였던 남 유다왕국 아하시아왕도 므깃도까지 추격하여 살해했다. 예후는 다시 이스르엘로 돌아와 아합의 아내 이세벨을 창문에서 떨어뜨려 죽였다. 그리고 여호람왕의 형제들 70명을 죽이고, 궁정 관리, 바알 선지자, 제사장까지 모두 살해했다. 그리고 남 유다 왕국의 왕족 40 여명까지 살해했던 것이다. 예후는 엘리사의 생도에 의해 기름부음을 받고, 즉위하여 새로운 왕조를 세우고, 사마리아에서 28 년간 통치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난 가장 큰 이유는 종교 지도자들의 악행이었다. 왕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행 등 잘못한 것이 있을 때에는 주변 왕국으로부터 전쟁을 통해 이스라엘을 치시거나 부하 중 하나가 반란을 일으키도록 하여 새로운 왕을 세우셨다. 따라서 선한 왕이던 악한 왕이던 하나님이 세우시는 것이며, 선한 왕은 선대의 선한 왕의 행실로 축복을 받은 것이며, 악한 왕은 선대의 악한 왕의 행실을 징계하기 위해 도구로 쓰심을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