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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봉서방
21.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할 말씀
저는 몸이 무척 피곤할 때마다 “한 두 주간만 설교하지 않고 지내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목사로 부름 받은 후부터 20년 동안을 거의 한 주간도 빠짐없이 설교를 했습니다. 군대에 가서도 논산훈련소에서 만큼은 설교를 안 할거라고 생각했지만 훈련소에 입소한지 일주일 되는 날부터 훈련소를 졸업할 때까지 설교를 했습니다.
훈련소에 입소한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군종실에서 저를 불렀습니다. 그래서 가봤더니 환경 조사서에서 신학교에 다닌 것을 보고 불렀다면서 설교할 수 있냐고 물어 보더군요. 군종 참모가 갑자기 자리를 비우게 되어 설교할 사람이 없다며 오늘 당장 설교를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계속 설교를 하게 된 것입니다. 훈련을 끝내고 강원도 춘천으로 부대 배치를 받았을 때에는 부대 앞 교회 목사님이 일주일 전에 사임하시는 바람에 제대할 때까지 그 교회에서 설교를 했습니다. 또 다행인지 불행인지 일 주일 이상을 아파 본 적도 없어서 이따금씩 피곤할 때마다 제 마음에 그런 소원이 생깁니다.
그러나 한 두 주간만 설교 안하고 푹 쉬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정말 두 주간을 쉬게 되면 그 다음에는 못살 것 같은 기분이 든답니다. 어떤 때에는 정말 피곤해서 쓰러질 것 같다가도 막상 강대상에 올라가서 말씀을 전하다 보면 어디서 생기는 지 새로운 용기와 능력이 속에서 솟아오릅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전하라는 은사를 주셨기 때문에 이런 힘이 생기는 것일 겁니다. 오히려 설교를 못하게 되는 때에야말로 저의 생(生)의 마지막 날이 될 것입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데모데후서 4:2
22.그리스도인의 D-day
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의 롬멜이라는 명장이 있었습니다. 롬멜 장군은 1944년 6월 1일 독일 군대에게 불란서 서부 해안의 경계를 한층 강화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왜냐하면 연합군에게 불란서 상륙을 허용하게 된다면 독일군이 한층 불리해 질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기상이 악화되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가 불란서 서부 해안을 덮고 있었습니다. 기상 상황을 본 롬멜 장군은 안개가 낀 며칠 동안은 아무 일도 없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기 아내의 생일을 축하하러 가도 되겠다고 판단해 6일날 비행기를 타고 베를린으로 날아갔습니다.
그러나 롬멜 장군이 안심하고 자리를 비운 그 다음날 연합군의 대대적인 상륙 작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역사는 그날을 가리켜서 ‘디데이(D-day)’라고 부릅니다. 연합군이 독일을 패배시키고 세계 대전을 결정적인 승리의 자리로 바꿨던 날, 결정적인 승리가 확보된 날을 ‘디데이’라고 합니다.
물론 디데이로 다 끝난 것은 아닙니다. 연합군이 불란서에 상륙한 뒤에도 독일은 최후의 저항을 계속했지만 마침내 독일이 패배하고 연합군이 최후의 승리를 합니다. 이 2차 세계 대전이 끝나던 날은 ‘디데이’라고 안하고 ‘브이데이(V-day)’라고 합니다. 바로 승리의 날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디데이는 십자가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허물과 죄를 담당하여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만에 부활하신 그날이야말로 그리스도인들의 디데이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사단의 모든 계교를 물리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구원의 새 시대를 활짝 열어놓았지만 아직도 사단의 격렬한 저항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단은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최종적으로 완전히 패배하고, 우리가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게 될 때 바로 브이데이가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디데이’와 ‘브이데이’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초림과 재림 사이의 긴장 지대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골로새서 2: 15
23.수전절의 유래
예루살렘의 절기중 하나인 “하누카”라 불리는 수전절의 유래입니다. BC 168년 알렉산더 대왕이 자신의 영토를 크게 몇 등분으로 나누어서 다스렸을 때, 그 당시 유대 나라를 포함한 그 주위의 지역을 시리아(수리아)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 시리아 지역을 다스리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팔레스틴을 완전히 장악한 후, 유대인들을 핍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먼저 성전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며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일체의 예배 행위를 금지시켰고 하나님 대신에 제우스 같은 그리스의 신들을 성전 안으로 들여놓았습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이 부정한 동물이라고 생각하는 돼지를 잡아서 그 머리를 성전 제단에 놓고 유대인들에게 예배하라고 강요했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유대인들에게 가장 치욕스럽고 모욕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마음으로만 분노하였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먹고살기 위해서 이 악한 지도자와 타협했습니다.
그러나 이때 끝까지 치를 떨며 분노했던 마카비라는 가문이 있었습니다. 그 가문 중에서도 유다 마카비 형제들이 유명했는데 그들은 자기들의 땅을 어지럽히고 부패시키는 이 적들로부터 야훼 하나님에 대한 신성한 신앙을 보존하기 위해 게릴라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BC 164년부터 시작되어 2, 3년 동안의 혈전을 벌인 끝에 드디어 악한 세력들을 완전히 몰아내고 마침내 더럽혀졌던 성전을 깨끗케 하여 하나님 앞에 바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전을 회복해서 봉헌하는 날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금 촛대에 겨우 하루 정도만 쓸 수 있는 기름을 넣었는데 그 촛불이 8일 동안이나 계속 활활 타올랐습니다. 그래서 꺼지지 않고 환하게 성전을 비추는 그 불빛 아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찾은 성전을 기뻐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요한복음 10:22
24.황금률의 원리
제가 미국에 있을 때 한 교포 2세인 대학생 한 명이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 학생이 한국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 한국 관광객이 와서 설렁탕을 먹다가 깍두기가 떨어졌는지 “깍두기 더!”라고 소리를 치더랍니다. 이 학생이 “조금만 기다리세요”라고 했더니 그 관광객은 더 큰 소리로 “야 너 내가 누군 줄 알아? 난 사장이야 사장. 직원을 70명이나 거느리고 있어”라며 신경질을 내더랍니다. 이 학생은 당혹스럽기도 하고 하도 기가 막혀서 이렇게 말했답니다.
“선생님, 제가 누군 줄 아세요? 저는 손님에게 깍두기를 얼마나 많이, 얼마나 빨리 주느냐를 결정하는 사람이에요.”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태복음 7:12
25.심은 대로 거둔다
제가 아주 공과 대학에서 사역을 하고 있었을 때의 일입니다. 제가 성경 공부 모임을 주관하여 인도하였는데 그 중에 교수님 내외가 참석하고 있었습니다. 사모님은 신앙이 매우 좋은 데 비해 교수님을 그렇지 않아서 그분을 위해 따로 많은 시간을 내어야만 했습니다. 사실 저는 와서 성경공부를 인도해 달라고 하는 요청에도 못 가는 형편이었는데도 그 사모님의 열성 때문에 교수님 집으로 직접 찾아가서 사정사정 해가며 끈질기게 성경 공부를 인도했습니다. 그렇지만 교수님의 태도는 여전히 냉담해서 제가 실망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다가 연락이 끊기게 되었는데 3년 전 어느 날 갑자기 그 교수님이 저에게 전화를 하신 겁니다. 전화내용은 자기 집에 꼭 한 번 들러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시간을 내어 찾아갔더니 그 완고하던 교수님이 완전히 변해 있었습니다. 저는 너무 놀랍고 반가워서 어떻게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지 그 동기를 물었습니다.
그 교수님이 대답하기를 “어떤 특별한 동기는 없었어요. 그런데 예전에 목사님과 성경 공부할 때 별 관심 없이 보고들은 것이 나중에서야 깨달아지더군요. 그 후에 예수님을 믿을 결심을 하게 되었고 그 때부터 전도도 열심히 하고 있답니다.”
저는 예전에 그 교수님을 보면서 그 분은 절대로 예수님을 믿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깨끗이 단념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교수님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신앙생활도 아주 뜨겁게 하는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지금 그분은 교수 선교사가 되어 C국에서 사역하고 계십니다. 그때 그 교수님 댁을 나와 집에 오면서 이런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남을 돕고 격려하는 일처럼 피곤하고 힘든 일이 없습니다. 그리고 열매가 나타나는 일은 더더욱 힘이 듭니다. 그러나 일단 심어 놓는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영광스러운 열매로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라디아서 6:9
26.배워야 할 인내
유명한 설교가인 필립 브룩스에게는 무엇이든지 참지 못하는 큰 약점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참지 못하는 약점 때문에 그는 무슨 문제든지 늘 고민하며 하나님께 매일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루는 어떤 일을 참지 못하여 더욱 심각하게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곁에서 그를 보고 있던 한 사람이 그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브룩스 박사님, 오늘 따라 무엇을 그리 고민하십니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내게 있는 문제도 고민이지만, 더 큰 고민은 나는 이렇게 급한데 하나님은 도무지 급하시지 않는다는 것이오.”
우리에게도 참지 못하는 상황이 많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급한데 하나님은 잠잠히 계시는 것 같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욥의 인내를 배우라고 말씀하십니다.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야고보서 5:11
27.인내의 필요성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기질 가운데 가장 문제가 되는 특성은 무슨 일이든 참지 못하고 성급하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미국인들은 잘 참아서 그들 중에서 한국인을 가려내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어느 곳이든 줄을 설 때 참지 못하고 안절부절 하는 사람이 있으면 틀림없이 그 사람이 한국인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에게 인내가 너무 부족한 것을 느끼고 하나님께 이렇게 절실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인내가 부족합니다. 저에게 인내를 주십시오. 지금 당장 인내를 주십시오.”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 -데살로니가전서 5:14
28.쉼의 축복
우리 나라의 유명한 작가 이어령은 ‘신한국인’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 책에 보면 지난날의 한국인과 오늘날의 한국인의 생활 양식을 밥 세대와 라면 세대로 나누어 놓았습니다. 이 두 세대의 차이를 한 마디로 말하자면 속도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전 우리의 어머니들과 아내들은 밥을 짓기 위해 뜸을 들이고, 또 늦게 들어오는 남편과 자녀들을 위해서 밥을 아랫목에 묻어 둡니다. 이러한 모습에서 한국인의 어머니와 아내의 따뜻한 기다림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 세대가 잘 먹는 라면은 끓여 먹는 데도 시간이 걸리지 않고 아주 간편합니다. 그리고 금새 불어버리기 때문에 누구를 기다려 줄 수도 없습니다.
근래에는 패스트푸드(fast food) 산업이 급속도로 발달하여 먹는 습관이 많이 변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가져온 현대 문화에는 비극이 있습니다. 그것은 서로 빠른 것을 추구하느라 기다리지 못하는 문화가 생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다림과 휴식의 중요성을 많이 잊고 살아서 오히려 가만히 있거나 기다리는 것은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결국 안식의 축복을 잃어버리게 했습니다.
마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1,000년을 1초처럼
어떤 그리스도인 사업가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사업을 하는데도 영 사업이 풀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당신에게는 1,000년도 1초와 같은 시간이 아니겠습니까?”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나는 영원한 존재이니 네가 한 말이 맞다”라고 말씀하시더랍니다.
그래서 이 사업가가 다시 되물었습니다.
“그러면 1,000달러도 하나님께는 1달러나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그 말도 맞단다.”
“그렇다면 하나님, 제게 1달러만 주십시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네가 원한다면 줄 테니 1초만 기다려라”고 하셨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베드로후서 3:8
30. 목표를 가리는 장애물
지금으로부터 약 50년 전 영국 해협을 헤엄쳐서 왕복한 수영선수 플로렌스 채드윅이라는 여성이 있었습니다. 그 후 1952년 7월 4일, 36세의 플로렌스는 로스엔젤레스(Los Angeles)에서 가까운 카타리나 섬에서부터 캘리포니아 해변까지 수영해서 가겠다는 선언을 했습니다. 그 선언은 미국에서 큰 화제가 되었고, 미국 전 지역에서는 그 도전 광경을 텔레비전을 통해 방송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캘리포니아 사람들은 도착지점인 해변가에 와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16시간 동안 계속 수영을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짙은 안개가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안개를 헤치고 사력을 다해 나아갔지만 자기의 힘이 점점 떨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결국 그녀는 안타깝게도 기권하고 자기를 따라오던 구조선에 승선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배로 해변에 도달하고 보니까 안개 때문에 안보였던 도착지점이 포기한 지점에서 불과 500미터도 안 되는 거리였습니다.
이 실패 후에 그녀는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매우 흥미로운 대답을 했습니다.
“제가 실패한 이유는 추위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피곤했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사실은 안개 때문이었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안개로 인해 제가 목표를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목표 지점을 볼 수 있었다면 저는 어떻게 해서든지 도착했었을 것입니다.” 그녀에게 있어서 안개는 마지막 장애물이었습니다. 그 장애물을 극복하지 못한 것이 실패의 요인이 되었습니다.
31. 한 코미디언의 유언
미국 뉴욕에 살던 한 코미디언이 몇 해전 그가 죽기 전에 이러한 유언을 남겼습니다.
“내가 죽고 난 후 나의 시체를 대학의 해부용 실험 대상으로 기증하겠습니다. 특별히 대학 중에서도 꼭 하버드 대학으로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내 부모님의 소원을 풀어드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내 부모님의 평생 소원은 내가 하버드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었는데, 내가 하버드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이 길 밖에 없습니다.”
평생동안 다른 사람들을 웃기며 살았던 그의 마지막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가쁜 숨을 몰아 쉬면서 이어서 이런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죽음은 역시 고통스럽습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립보서 3:14
32.하나님의 침묵
잉거솔(Ingersoll)이라는 독일의 유명한 무신론 철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어느 강연에서든지 하나님이 없다고 외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날도 여느 때와 같이 무신론 강연에 열을 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강연이 절정에 이르자 갑자기 자기가 차고 있던 시계를 풀더니 하나님에 대한 도전장을 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당신에게 5분이라는 시간을 주겠소. 나는 5분 동안 당신을 저주할 것이오. 만약 당신이 살아있다면 나를 저주하고 형벌을 내리시오.”
그리고 그는 5분 동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로 하나님을 저주하고 모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5분이 지났는데도 자신에게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자 그는 더욱 의기양양해져서 외쳤습니다.
“여러분, 저를 보십시오. 이만하면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충분히 입증되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 때 그의 강연장 뒤편에 있던 한 노인이 서서히 앞으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조심스러우면서도 감히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는 한 그리스도인이오. 내가 감히 당신의 연설에 대해서 평가를 한다면, 오늘 당신은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오. 단지 당신이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증명했을 뿐이지요. 내가 믿고 경험한 하나님은 내가 그분을 떠나서 거스를 때 책망하시고 때로는 징계까지 하셨던 분이시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시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오늘 하나님은 당신에 대해서 침묵하셨소. 그분의 침묵은 곧 당신이 그의 자녀가 아니라 버림받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오.”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버려두사 -로마서 1:28
33.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독일의 아우슈비치 수용소는 수많은 유대인들이 학살당했던 곳입니다. 그 참혹한 수용소에서 유대인들은 눈물을 뿌리면서 하나님을 향해 이렇게 외쳤습니다.
“하나님,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왜 이런 일을 허용하고 계십니까?”
그들의 피맺힌 절규는 연합군이 독일을 물리쳐 수용소를 탈환할 때까지 계속됩니다. 드디어 전쟁이 끝나 연합군이 탈환한 수용소를 점검하러 들어갔습니다. 점검하던 연합군 병사 중 한 명이 한쪽 벽 후미진 곳에 글씨가 쓰여져 있는 것을 우연히 발견하게 됩니다. 어느 그리스도인의 신앙고백인 것 같은 그 글에는 놀라운 내용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 다 형용 못하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이 지옥 같은 수용소에서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던 한 유대인이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하고 있다니? 그 연합군 병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밑에 또 하나의 문장이 눈에 띄었습니다.
“하나님은 여기에 계십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로마서 8:35
34.존 듀이의 도전 정신
교육 철학자로서 유명한 존 듀이(John Dewey)의 일화입니다. 그의 90세 되는 생일 잔치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축하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그들은 한마디씩 축하 메시지를 그에게 전했습니다. 그런데 한 젊은 의사는 그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고 합니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께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연로하신 나이에도 불구하고 젊은 사람들 못지 않은 정열을 가지고 삶을 사시는지… 그 비결은 어디에 있습니까?”
“비결? 나는 산에 오른다네. 자네도 산에 한번 올라 보게나.”
“산에는 왜 오르십니까?”
“나는 또 다른 산을 보기 위해서 산에 오른다네.”
그는 나이를 뛰어 넘어서 산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장을 내밀었던 것입니다. 이런 그의 도전 정신이 나이를 초월한 정열적인 삶의 원동력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누가복음 9:62
35.인생의 기회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 중에서 가장 강력한 자원은 기회입니다. 세리 삭개오에게도 그가 소유할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기회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삭개오는 자신의 삶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가장 큰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기회를 놓칠 수 없었습니다. 결국 그 기회를 잡았을 때 그의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축복인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기회’가 어떻게 생겼는지 그 모습을 잘 설명해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리스에 시라큐스라는 이상한 동상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 동상의 모습을 묘사해 보면 발에 날개가 붙어 있고 앞머리에는 무성한 머리카락이 있는 반면 뒷머리에는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는 대머리였습니다. 이 이상한 동상 아래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누가 당신을 만들었습니까? 리시퍼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기회
왜 날개가 발에 달렸습니까? 빨리 날아다니기 위해
왜 당신의 앞머리는 그렇게 무성합니까? 그것은 내가 지나갈 때 사람들이 쉽게 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왜 뒷머리는 대머리입니까? 지나가면 도저히 다시 붙잡기가 어렵기 때문에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린도후서 6:2
36.진정한 깨달음
어느 날 토레이 목사님에게 어떤 부인이 찾아와서 상담을 하였습니다. “목사님, 저는 집회에 많이 참석하고 기도도 많이 하는데 하나님의 은혜가 실감나지 않습니다. 구원받았다는 사실도 실감나지 않는데 왜 그럴까요?”
이 말을 듣고 있던 토레이 목사님은 고민하는 이 부인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부인, 오늘부터 집에 가서 다른 기도는 하지 말고 이 한 가지 기도만 계속하십시오. 하나님께 부인 자신의 모습을 보여달라고 한 주간만 계속 기도하십시오.”
그래서 목사님의 충고에 따라 이 부인은 집에 돌아가 이 기도만을 계속해서 했습니다. “하나님, 제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십시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 주십시오.” 이 기도를 계속 하던 그녀는 마침내 자신의 모습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추하고 불결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더러운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마침내 부인은 자기의 죄악을 보며 절망한 채 일 주일만에 토레이 목사님을 다시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이제는 죽어버리고 싶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그녀에게 토레이 목사님은 “이제부터는 주님의 십자가를 보여달라고 기도하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이 부인은 집에 다시 돌아가 두 번째의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를 보여 주십시오.” 그때 이 부인은 십자가의 의미를 진정으로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내 자신이 나의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완전히 포기하고 절망을 선언했을 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그 분을 통해 십자가에서 피흘려 돌아가심으로써 나의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셨으며 그로 인해 깨끗하게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 8
37.인생의 의미
오래 전에 ‘리더스 다이제스트’의 기사로 실린 글입니다.
그리스도인이자 작가였던 아서 고든(Arthur Gordon)이 어느 날 갑자기 우울증에 빠졌습니다. 무력증에 빠진 그는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할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작가가 글을 쓸 수 없다는 충격은 사망 선고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그는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의사이면서 상담자인 친구를 찾아가 자신의 어려운 사정을 모두 털어놓았습니다.
“나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네.”
우울증과 무력증으로 고민하는 고든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친구가 물었습니다.
“자네가 어렸을 때 가장 하고 싶어했고 좋아했던 일은 무엇이었나?”
“내가 어렸을 때 좋아했던 것은 해변에서 파도 소리를 듣는 일이었지.”
“그러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한 번 따라 보겠나?”
의사인 친구는 시간마다 다른 처방전을 네 장의 종이에 써주었습니다. 별다른 대안도 없고 희망도 없었던 고든은 친구가 써준 처방전을 가지고 어린 시절 자주 놀러 갔던 해변으로 갔습니다.
친구의 말대로 아침 아홉 시에 첫 번째 처방전을 펴보았습니다.
“자네가 좋아하는 파도 소리, 갈매기 소리를 잘 들어보게.” 우스꽝스럽지만 처방대로 바닷가에 앉아 어린 시절 듣던 파도 소리와 갈매기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조금 후 열두 시가 되어 두 번째 처방전을 펼쳤습니다.
“이제 자네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살면서 참 행복했다고 기억되는 순간들을 생각해 보게.” 그는 바다를 바라보며 행복했던 추억들을 하나씩 떠올리자 마음에 조금씩 기쁨이 생겼습니다.
시간이 더 지나 세 시에 세 번째 처방전을 펴 보았습니다.
“자네 인생의 동기와 의미를 다시 한번 검토해 보게.” 그는 자신이 왜 글을 쓰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깊이 생각해 보니 글을 쓰는 이유가 자기의 명예와 이름을 내고 사람들에게 박수 갈채를 받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갑자기 마음에서 ‘나는 그리스도인이면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지 않고 의미 없고 헛된 내 이름을 위해서 살았구나’라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그 동안 자신의 추했던 삶의 모습을 발견하자 그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저녁 여섯 시가 되자 친구가 준 마지막 네 번째 처방전을 폈습니다.
“이제 자네의 죄를 하나님께 자백할 시간이네. 자네가 자백해야 할 죄들을 모래사장에 써보게.” 고든은 눈물을 흘리면서 모래사장에 이렇게 써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제 이기심과 욕망과 출세를 위해서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못했고 내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자신의 수많은 죄들을 다 쓰기도 전에 갑자기 바다의 밀물이 들어와 그가 써놓은 그의 죄들을 한꺼번에 다 지워버리는 것입니다. 이 모습을 본 고든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하나님을 찬양하였고 그 순간은 그의 인생에 전환점이 된 시간이었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한일서 1:9
38.도박으로부터의 탈출
“목사님, 제 왼손의 손가락을 한번 보시겠어요?”
어느 날 제가 성경공부 모임을 인도하는 중에 한 장로님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장로님의 왼손 손가락 중에 가운데 손가락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된 일인지 사연을 물어보니 장로님의 기막힌 사연은 이러했습니다.
“저는 예전에 도박을 밥먹듯 즐겼습니다. 도박을 끊기 위해서 별별 노력을 다 해보았지만 한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도 도박은 계속했지요. 그날도 밤새도록 도박판을 벌이다가 새벽녘에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내가 울고 있더군요. 그 순간 제 모습이 너무나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아내가 보는 앞에서 도박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부엌에 있는 칼을 들어 손가락 하나를 잘랐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된 것입니다.” 성경공부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놀라서 쳐다보자 장로님은 내밀었던 잘린 손가락을 감추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습니다.
“그런데 작심삼일이라는 속담이 맞더군요. 사흘이 지나자 다시 도박을 하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리더니 저로 하여금 도박장으로 떠밀더라구요. 결국 아내 앞에서 한 나의 다짐들은 한순간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
몇 분이 지났을까요? 마지막으로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입니다. 제가 성경공부를 시작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한 후로는 손가락이 잘려나가는 아픔도 별 수 없었던 나의 도박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완전히 도박으로부터 벗어난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데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좇는 것을 금하는 데는 유익이 조금도 없느니라 -골로새서 2:23
39.참 행복의 의미
기독교 철학자이며 전도자였던 프란시스 쉐퍼(Francis A. Schaeffer) 박사님은 그의 생애 말년에 암에 걸려 투병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픈 몸을 이끌고 사랑하는 조국과 젊은이들에게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강단에 섰습니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생애의 마지막 설교를 자신의 온 힘을 쏟아 피를 토하듯 전합니다.
“사랑하는 젊은이들이여! 여러분의 젊음을 어디에 쓰려고 합니까? 행복한 삶을 사는 데에 인생의 목표를 두고 계십니까?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도 행복을 추구하며 그것을 목표로 삼고 삽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은 달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우리들의 문제는 바로 행복만을 구하고 거룩을 구하지 않는데 있습니다. 행복은 영어로 happiness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본래 happen, ‘우연히 발생하다’라는 뜻의 동사에서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인생 목표가 우연하게 일이 잘되고 우연하게 돈이 벌리고 우연하게 성공하는 것이 되어야겠습니까?
산상수훈에서 복은 happiness가 아니라 blessing이라는 단어를 들어 말하고 있습니다. blessing이라는 단어는 본래 bleed, ‘피를 흘리다’라는 단어에서 나왔으며, 앵글로색슨족은 피의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는 것을 축복으로 간주했습니다. 바로 축복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은 세상의 행복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는 거룩한 삶이 바로 축복된 삶입니다.”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 바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로마서 4:6-8
40참된 만족
저는 어느 날 이름만 대면 모를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부자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그분을 만나면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싶었는데 마침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제일 먼저 이런 질문을 하였습니다.
“회장님은 행복하십니까?” 그 분은 병석에 누워 있으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행복이라고? 나는 매일 아침에 눈을 뜨면 항상 초조하고 불안하다네.” 한국 사람들에게 부의 대명사로 불려왔던 그 분의 대답 속에서 생활의 부유함이 곧 행복이 아니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의 갑부 록펠러에게 어느 날 타임지 기자가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당신은 현재 가지고 있는 부유함에 만족하십니까?” 그는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기자는 다시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얼마만큼의 돈을 벌어야 만족할 수 있겠습니까?” 그때 록펠러는 “조금만 더!”라는 대답을 했답니다. 그는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많이도 아닌 조금 더 돈을 벌어야겠다는 아주 흥미로운 대답을 하였습니다.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히브리서 1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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