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지는 고령 시조묘에 가시지 못한 것이 한이셨다.
어머니는 동강종친회에서 고령을 몇 번 다녀오시면서 아버지를 들먹이셨다.
난 숭조하는 마음이나 같은 성씨라 하여 특별히 더 챙기는 편이 아니다.
혹 나도 모르게 더 챙기거나 기대고 싶은 마음이 있는지도 모른다.
대서초에 근무할 때 신만식 교장 선생님이 안동 고흥입조묘와 탄포 시제에 가자고
해 따라 간 적은 있었지만, 뒤에서 멀뚱멀뚱 구경만 했다.
동강초 100주년사 편찬에 참여하면서나 월파사업회 하면서 술친구가 된 현식이가
이러저런 종친회 총무를 맡아 바쁘다며 친구들의 참여가 없다고 불만스러이 호소해도 난 웃기만 했다.
현식이가 동부종친회 버스를 대절했다고 꼭 오란다.
못 이기는 척 간다고 한다.
아침 6시 반에 중촌 체육관 앞으로 가니 빗속에 여러 분이 나와 계신다.
고흥타임즈 금식 회장은 군민의 날 행사 때문에 참석 못하신다며 신문을 들고 두고 가신다.
동강에서 얼굴이 익은 기사님이 파랑 관광버스를 끌고 들어오신다.
현식을 도와 짐을 싣는다.
만남의 광장에 한번 쉬고 순천에 가 법원 앞에서 매운탕으로 아침을 먹는다.
날이 궂어 현식이 권하는 소주 한잔을 마시니 속이 따뜻해진다.
차는 두시간 남짓 달려 산골짜기로 들어선다.
시골 풍경은 비슷하다.
산골 동네를 버스는 낑낑대며 올라간다.
몇 대의 버스가 서 있고 승용차는 위로 올라가기도 한다.
몸이 불편한 어른들은 차를 타고 오르시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