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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한복음 17:1
우리들은 2월 한 달을 “여호와의 빛 안에서 행하는”자 되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회개의 말씀을 3주에 걸쳐서 선포하였습니다. 그 중에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우리들의 머리에 항상 맴돌고 있어야 하는 말씀이 있다면 그것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피부에 느껴질 때나, 전혀 느낌이 없을 때에도 항상 이 말씀이 저와 여러분을 잠에서 깨워서 생활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믿음이 순종으로 나타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생각하신 것이 반듯이 된다”고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니 지금의 시대의 사람들이 종말을 부정해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예언이 이루어질 날이 매우 가까워졌음을. 그러니 우리들은 회개함으로 여호와께 돌이키고, 여호와의 빛 안에서 행하고, 하나님의 구원의 생각 가운데 항상 이름이 들어가 있어야 합니다.
벌써 예수라는 표어 아래 2월이 지나가고 새로운 3월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회개의 생활을 넘어 요구하신 것은 “예수님의 본래 마음처럼 생활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생활을 이루기 위해서 저와 여러분에게 주신 말씀이 마태복음 11:29절입니다. 우리 다 같이 읽겠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것은 내 마음이 하나님의 축복이 시작되는 시온의 산과 예루살렘이 되는 것입니다.
4~5월 안에 예수님의 마음인 온유와 겸손을 선포하기 위해 기도하고 준비하고 있기에 자세히 다루지 않고 넘어가겠습니다. 그 중 겸손만 살짝 들어내겠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겸손은 나를 짓누르고, 굴욕감을 주는 환경이나 사람들에게 자신을 낮추고 그들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사랑으로 품는 태도를 취하는 행동입니다.
저는 이 겸손의 마음이 잘 안돼요. 그래서 지난해부터 끊임없이 기도하고 노력하고, 돌아보며 회개하고,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겸손의 반대가 신약성경에 사람의 성격으로 등장한 단어 우레라 할 수 있죠. 우레의 아들 요한이 사랑의 사도로 변모하여 살았던 것처럼, 우레의 목사 김성호가 예수님의 겸손의 마음이 이루어져서 사랑의 목사로 거듭났으면 하는 것이 저의 소망이고 목표입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기도하고, 노력해도 안 되어서 이렇게 구했습니다. 예수님의 멍에를 제 목에 메어주세요. 예수님의 겸손으로 옴짝달싹하지 못하도록. 이렇게 억지로라도 겸손이 내 안에 생수의 강처럼 흘러나오기를 바랍니다. 하는 저의 갈망 때문입니다.
1년을 씨름하고 왔더니 저의 겸손하지 못한 행위들이 귀로 들려지고, 그것이 마음에서 인정되고, 그래서 아파하고, 후회하고, 회개의 기도를 끊임없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겸손하지 못한 저를 보는 눈이 열렸으니 변화될 것을 믿습니다. 여러분도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도전하는 자가 예수님의 마음을 얻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것을 원하실지 모르지만 저와 여러분이 살아가면서 예수님을 배우고, 닮아가기 위해서 공통적으로 하나님께 요청해야 할 기도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멍에를 제 목에 메어주세요”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멍에”를 메어 예수님을 항상 배워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고, 예수님의 명령이기에 순종하기 위한 우리들의 최소한의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순종으로 동반하여 나타납니다. 이 기도처럼 예수님의 멍에를 저와 여러분의 목에 메어짐으로 저와 여러분의 “주”되신 예수님을 깨닫게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귀로 들려지고, 마음으로 믿어 하나님이 찾으시는 순종의 예배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멍에를 메는 우리들의 마음이 어떤 것이어야 할까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의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십자가의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하늘 아버지께 구하는 기도의 내용이 1절입니다. 이것은 17장 모든 기도의 이유와 목적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전 여기서 지극히 평범하지만 매우 놀라운 것을 발견했습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예수님의 기도는 제 인생의 등대였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여러분의 믿음이 이 수준까지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하시는 능력을 체험하고, 누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의 기도는 매우 멋진 기도고, 존경스러운 기도며, 배움을 넘어 내 믿음 안에 완성시켜 순종으로 들어나게 해야 하는 기도입니다. 사람은 본래 죽음의 위기에 있을 때 그 사람의 진심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 시선에서 예수님을 보면 우리 주님이 가지고 계셨던 본래 마음이 들어났습니다. 저는 지금 현재도 이 마음을 소유하고, 닮고 싶습니다. 그리고 15년의 평신도 생활과, 33년의 목회자 생활에서 그 중 33년의 믿음 생활에서 이 믿음을 위해서 끊임없이 저를 쳐서 복종시켜왔고, 성도들을 그 길로 인도하고, 가르쳐 지키게 하기위해 모든 에너지를 남김없이 사용해 왔습니다. 그것이 오늘 제가 그토록 전하고 싶었던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 생각하시는” 예수님의 진정한 마음과 모습입니다.
어떻게 죽음을 앞에 두고 자신의 안위는 상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 생각 하실 수 있었을까요?” 그래서 1절과 같은 기도를 드렸을까요? 수많은 조건, 이유를 댈 수 있는데 그 중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자신을 영광되게 해주세요!”라고 하실 수 있었을까요? 저는 33년의 시간동안 그 이유를 한가지 밖에 못 찾았습니다. 하나님을 생명 다해 사랑하셨고, 당신의 제자들과 당신의 제자들을 통하여 당신을 따르게 될 모든 사람들을 당신의 생명을 다해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나를 영광되게 해주세요”라고 하신 것이다. 라는 결론밖에 나지 않더라고요. “하나님을 사랑하면 되는 구나!” 지금까지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그렇게 하고 싶었던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가 올해 허락하신 것에 감사했고, 오늘이어서 행복했습니다. 여러분 믿음이 하나님을 생명 다해 사랑해서, 하나님의 영광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그런 믿음의 선구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예수님의 멍에를 메는 것을 싫어할 때가 많이 있잖아요. 될 수 있으면 피하고 싶고, 외면하고, 무시하면서, 다들 그렇게 하던데 뭐~~ 굳이 내가 할 필요가 있어 하는 마음이 우선되는 신앙의 생활을 살아가시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의 멍에를 메는 것은 우리를 억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나오는 소산물인 평안과 평화가 이루어지는 쉼을 얻는 기쁨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단지 세상 사람들처럼 살수 없기는 하죠. 그래서 그게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사무엘선자를 통해 하신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것 즉 예수님의 멍에를 메는 행위는 무엇일까요? 주향기교회 올 한해 요구하신 것입니다. 4월부터 시작 = 첫 번째는 매일 성경 5장 읽기 운동입니다. 두 번째는 요한복음에 나오는 세례요한, 안드레에 대한 성경공부입니다. 이것은 제가 진행하려 했으나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 몸을 심하게 아프게 하심으로 오늘 19주 교제를 나눠드리니 개별적으로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순종을 보시겠다.”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성령을 부어주셔서 제게 주셨던 은혜와 감동과 환희를 깨닫게 해주실 줄 믿습니다. 세 번째는 기도하기입니다. 5월에 시작하는 저녁 기도회를 통해 기도회복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저는 세 번째 준비를 전주부터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이 찾으시고, 바라시는 그 시선 안에서 생활하는 발걸음의 첫 시작은 죽음을 앞에 둔 예수님의 마음처럼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기 위한 마음”입니다. 이것을 이룩해서 승리로 장식하는 3월이 되길 바랍니다.
세상은 있는 자와 없는 자로 나눠 차별을 합니다. 하나님도 예수가 있는 자와 없는 자로 나눠 차별하십니다. 저는 세상의 어떤 차별적 대우를 받든지 “예수”가 내 안에 있고, 내가 그 안에서 활동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저에게 맡겨주신 당신의 자녀들을 저는 이렇게 양육하기위해 저의 모든 것을 내어놓고 살아왔고, 살아갈 것입니다. 저는 선한 목자의 자리에서 탈락하고 싶지 않은 몸부림이고, 여러분은 하나님의 어린 양에서 염소와 이리로 탈락하지 않기 위해서 하루 5장 성경읽기, 19주 요한복음 성경공부, 기도 회복을 위해 몸부림치는 믿음이 순종으로 들어나는 행위가 되길 바랍니다.
1절 예수님의 기도를 풀이하면 이렇습니다.
*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 예수님은 성전에서 마치 제사를 드리거나, 성전에서 기도하실 때처럼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을 바라보시면서 기도하셨다는 것입니다.(예수님의 기도 모습이 변화 산에서 모습처럼 경건해 보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 아버지 = 아람어로는 아빠이며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많이 사용하신 호칭입니다. 구약시대나 유대 문헌에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며 기도드린 예를 전혀 찾아볼 수 없어요. 그런데 이렇게 하심은 성자이신 예수님이 성부이신 아버지와의 깊은 인격적 교제 가운데 성부를 향해 최대의 존경과 믿음을 가지고 부르시는 것을 나타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고 부를 때 같은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우린 예수님의 단계를 조금 넘어 부모와 자녀의 완벽한 관계를 인정하는 뜻을 포함 한 것이기에 더 큰 믿음의 소리로 들으십니다.
* 때가 이르렀사오니 = 예수님의 지상생애에 있어서 마지막 때, 즉 대속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실 때를 말합니다. 범위를 넓힌다면 부활, 승천까지 포함시켜 “속량 사업을 완성하고”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때를 나타낸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기도 목적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기도의 모든 목적이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천국을 목표하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요.
*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원문 성경을 보면 아들이 아버지께 영광 돌릴 수 있도록 아버지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해 주십시오> 우린 여기서 예수님은 자기의 영광을 구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님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에 고정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나의 영광을 위함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목표로 수정 된 것을 뜻합니다. 그것이 재림 때 천국을 보장 받은 산물의 증거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생활의 목표는 다른 의미로 예수 안에 거함으로 성령의 이끄심에 순종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인가 살펴보길 원하신다면 여러분 마음에 질문해보세요? “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가?” “이 생활이 행복으로 다가오고 즐거운가?” “예수님의 멍에 메기를 즐기는가?”이 질문에 언제나 여러분의 목자로 세움받은 담임목사 김성호처럼 아멘이 되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깨달아야하는 예수님의 마음 한 가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이 마음을 우리는 올 한해를 넘어 나의 인생의 시간이 끝나는 그 시간까지 흔들리지 않게 성령으로 고정시켜 놔야 합니다. 그 이유가 하나님께서 예수라는 표어를 가지고 살아가길 원하신 목적지이기 때문입니다. 이 마음에 고정 되기 위한 교회생활은 여러분을 불행에서 건져내어 여호와의 은총이 이루어지게 할 것입니다.
표어 성구에서 들어난 예수님의 마음이 내 안에서 생수의 강처럼 흘러나오길 소망하는 모든 자녀들에게는 성경에 기록되어있는 축복을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실 것입니다. 또한 이 축복이 임하게 하기 위해 우리 주님께서 주향기교회 성도 ◯◯◯는 당신과 하나 된 사람이라고 하나님께 끊임없이 증보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불행해 질 수 없는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들을 향해 여호와의 열심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라도 요한복음 17:1절에서 들어나 있는 예수님의 관심이 우리들 마음 한 가운데서 언제나 발견되어야 합니다.
제가 오늘 예수님의 이 마음을 이렇게 정의 내려 봤습니다. 다음 주 설교제목인데요. “하나님을 향한 갈망”입니다. 이것이 매일 매일 새롭게 주향기교회 성도들 마음에서 하나님이 발견하심으로,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서 높아지는 저와 여러분의 믿음이 순종으로 나타나는 생활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