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같은 생각이라 퍼온 글입니다.
펀글
간혹 기독교인들 가운데 세례 무용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태도는 교만입니다.
주님도 세례를 받으셨고, 또 <너희는 가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마 28:19)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세례는 주님의 명령이요 초대교회로부터 시작된 오랜 전통입니다.
문제는 세례 방식입니다.
그것은 즉 세례냐 침례냐 하는 논쟁인데 세례는 머리에만 물을 붓는 의식이고, 침례는 온몸을 물속에 잠그는 의식입니다.
어느 쪽이 옳습니까? 성경은 어느 방식을 지지합니까?
천주교는 물론이고 개신교에 있어서도 장로교와 감리교 성결교를 비롯한 다수 교단들은 세례를 베풀고, 침례교와 오순절 계통의 교단들과 동방정교회등은 침례를 베풉니다.
우선 온몸이 물속에 잠기는 침례만이 유효하다고 주장하는 쪽은 이렇습니다.
본디 세례라는 말의 원어적인 뜻이 물에 잠긴다는 것이고, 그것은 옛 사람을 수장한다는 의미의 세례의 참 뜻에 부합되며, 실제 초대교회가 실시한 의식도 침례였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주장도 일리가 있고 나름 근거가 없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지나치게 일방적이라는 점 또한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국성경에 세례로 번역되어진 헬라원어 -뱁티죠는 물에 잠긴다는 뜻 외에도 물로 씻는다, 물을 찍는다, 심지어는 물을 뿌린다는 의미도 있는 것입니다.
세례의식의 상징적 의미도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다(골 6:4,7; 골 2:12)는 뜻만이 아니라 죄씻음(엡 5:26; 딛 3:5)과 그리스도와 한몸을 이룬다(고전 12:13)는 의미도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세례방식 역시도 반드시 물에 잠기는 침례였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베드로가 베풀었던 하루 3천명 혹은 5천명의 세례(행 2:41)라든가 빌립보의 간수가 한밤중에 온 가족과 함께 받았던 세례(행 16:33) 등은 침례보다는 오히려 세례였을 개연성이 더 높습니다.
박해시대 카타콤 같은 지하 동굴속에 피신해 살면서 행하던 세례의식에서도 침례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주님이 받으신 세례도 마찬가지 입니다. <물에서 올라오셨다>(마 3:16)는 표현을 물에서 머리에 세례를 받으시고 뭍으로 올라오셨다는 뜻인지, 물에 완전히 잠기셨다가 수면 위로 올라오셨다는 뜻인지를 확정해서 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세례냐 침례냐를 따지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고 의미가 없습니다.
이런 껍데기와 같은 것 가지고 논쟁하는 것은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입니다.
그저 각자가 소속된 교단의 방식을 존중하고 따르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세례의 방식이 아니고 믿음이요 신앙고백이요 중생입니다.
아무리 형식적으로 온몸을 물에 잠그는 침례를 받았다 해도 그것으로 옛 사람이 죽고 죄가 사해지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또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물 부족으로 사해질 죄가 그대로 있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물이 무슨 화학적 변화를 일으켜 죄를 분해하거나 중화시키는 게 아니라 개개인의 회개와 믿음이 그의 죄를 사하고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세례나 침례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죄씻음을 받았음을 나타내는 외적인 상징이요 표이지 세례나 침례 자체가 곧 죄를 씻고, 새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천주교에서는 영세를 받을때에 그 즉시로 원죄까지도 사해지고 영성체에 참석해서 포도주와 떡을 먹을 때에도 죄가 사해진다고 주장하나 그것은 천주교의 권위를 내세우기 위한 거짓선전이요 그런 예식에 참석하는 것만으로 죄가 사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개개인의 간절하고 진정성있는 믿음과 회개의 기도로서만이 주님께로부터 사죄의 은총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중생하지 못한 사람이 세례의식으로 중생하는 게 아니고 이미 예수를 구주로 믿어 중생한 사람이 그 사실을 교회 공동체 앞에서 신실한 신앙고백으로 나타내어 공인받는 의식이 바로 세례예식인 것입니다.
막말로 세례나 침례는 구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여의치 못한 환경에서 세례나 침례를 안 받아도 천국 가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반면에 세례를 받아도 천국 못 갈 수 있고, 세례를 안 받아도 얼마든지 천국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군대에서 힘든 군 생활을 도피하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 또는 종교활동을 빙자해서 외출, 외박을 얻기 위해 세례를 받은 케이스라면 그런 세례는 구원과는 상관이 없고, 반면에 예수를 구주로 믿고 세례를 받고 싶어도 주위에 목사가 없는 환경이나 또는 이슬람국가나 공산주의 국가의 극심한 기독교 박해 속에서... 또는 개인적으로 부득이한 여의치못한 사정(부모의 극심한 반대)때문에 세례를 못 받는 경우라면 그것은 결코 천국 가는 데에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한 강도는 세례의 절차없이 십자가상에서 즉시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므로 예수님으로부터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라는 구원의 선언을 받있습니다
구원은 필연적으로 세례 혹은 침례와 같은 의식에 참석하는 데에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의식에 참여하는 것은 개인적인 신앙과 교회 공동체 생활에는 대단히 유익하고 꼭 필요한 의식인 것입니다.
구원의 수단이나 방편이 아니라 이미 믿음으로 구원 얻은 사람이 신앙 공동체에 정식으로 입문하는 의식이요, 자신의 거듭남을 교회 공동체앞에서 표하고 공인받는 의식이라는 점에서 대단히 의미 있고 소중한 것입니다.
세례 혹은 침례는 나 자신의 구원의 외적 선포요, 거듭남의 물증인 것입니다.
꼭 세례(침례)를 받아야만 기독교인이 되는 것이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치는 않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일과 세례(침례)라는 형식이 어떻게 관련되는 것입니까?
사실, 세례(침례)를 받았다는 그 형식자체만으로는 그가 그리스도인이냐 아니냐를 판단 지을 수는 없습니다.
세례(침례)를 받았어도 비종교인만 못한 삶을 가지는 자가 있는가 하면, 세례(침례)를 안 받았더라도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교회가 창설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켜온 성례인 세례(침례)의식이 무가치하다거나 무시해도 좋은 것은 아닙니다.
세례(침례)란 단순한 형식만이 아니요, 예수를 자신의 구주요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신앙 고백이 뒤따라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일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일의 가장 기초적인 요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침례)를 받는다는 일은 예수를 구주로 믿는 우리의 기초적인 신앙 고백을 전제로 하는 것이요, 그런 신앙 고백이 없이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일은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볼 때에 세례(침례)의 중요성을 확인하게 됩니다.
더구나 세례(침례)를 통하여 기독교 복음 활동의 본부로 볼 수 있는 교회라는 집단에 가담하여 그리스도의 뜻에 부응하고 그의 선교 대열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일의 가장 중요한 일면이기도 한 것이기에 우리는 성실하게 세례(침례)를 받아들이고 거기에 참여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일체의 교만한 생각이나 율법주의적인 자기만족감을 깨끗이 버리고 겸비한 심정으로 이 성례를 받아들이는 것이 좋습니다.
첫댓글 파수꾼님은 저번 글에서도 이번 글에서도 세례나침례나 그다지 그 뜻은 중요하지않고 오로지 교단이 정하는것을 하는것이라 하시는데 님께서 하라는 그 교단이 잘못가르치고 있다고 인정안하십니까 그게 뭐가 중요하냐 저번에도 부할절 크리스마스 등등 도구로써 쓰이는 것이지 그게 뭐 중요하냐 하셨는데
어느 교단에서 부활절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 성탄절은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이라고 가르치나요?
그러면 님께서 복음을 전해서 구원받은 성도에게도 이런것에 대해 설명은 해 주시나요 부할절은 주님의부할을 의미하는것이 아니라 잡신이스터신을 섬기는 것이고 크리스 마스는 예수님의생일이 아니라 태양신을 섬기는 날이고 십일조는 등등 교단이 정하면 해야하나요 님도 그 교단에 눈치를 보고 계십니까
저는 한 번도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부활절과 크리스마스에 대해 가르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율법적인 십일조를 가르친 적도 없습니다. 더구나 교단의 눈치를 본 적은 더욱 없습니다.
생명이 아닌 그런 것들을 가르칠 이유가 전혀 없으니까요.
하나 묻습니다.
태양신을 숭배하던 자들이 그날에 태양신을 걷어 내고 하나님께 예배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이 아닐까요?
무당이 예수 믿고 법당 없애고 그 자리에서 매주 예배를 드린다면 하나님의 영광이 아닐까요?
문제는 무당이 법당 제거하고 거기서 예수님 상 놓고 기도하니까 문제지요.
문제의 핵심을 똑바로 파악하셨으면 합니다.
무조건 유래로 비판하면 안됩니다.
참 할말이 많은데 무익한 논쟁만 하는것갔습니다 님이 복음을 전해서 한혼을 생명으로 이끌어서 님이 말한 교회로 그 혼이 가는순간 그혼은 율법에 노예로 만드는 것입니다 님이 말한 그 교회 교단이요 아니라고 변론 하시면 성경에서 예수님이 바울사도가 한 말로 다시 논쟁 하게습니다
첨부터 끝까지 그리스도 복음을 아는 제자들은,
오늘날 교회에 다분히 내재 되어있는 종교적인 것을 스스로 분별합니다.
심지어 지방교회의 잘못된 사상과 제도까지도 스스로 분별합니다.
그런 것에 유래에 대한 것 몰라도 구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교단을 위해 살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삽니다.
지방교회에서 배운 것이 모두가 진리가 아닙니다.
그 교리로 남을 판단하는 일을 삼가주십시오.
파수꾼님 종교 복음 율법 님이 말하는 복음이 종교고 율법이라고는 생각은 안해보셨지요 그리고 제가 지방교회 다닌다고 단정짓고 말씀을 하시는데 아니거든요 하지만 님이 말하는 그런 교단에 속회 있지도 않습니다 단 저도 감리교도였고 종교에서 율법으로 그리고 지금은 신앙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니셨군요. 제가 잘못 알고 있었네요.
종교와 율법에서 신아으로 사심을 축하드립니다.
저도 님의 신앙간증을 듣고 싶네요.
한번 꼭 부탁드립니다.
샬롬~본글은 부르지저님이 쓰셨는데, 왜 답글은 갑자기 파수꾼님과 한동원님의 토론이 되었나요?
갑자기 무척 궁금해졌어요^^
참, 파수꾼님은 부르지저님의 말씀에 거진 동의하시는 것이죠, 아닌가?
아직까지 침례와 세례의 차이 때문에, 수례자의 신앙이 잘못되고 잘되고의 차이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아뭏든, 더 중요한 것은 사실적인 신앙인 것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생명의 복음을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세례나 침례나 모두가 유익한 것 같습니다.
한편, 제 경험상 너무 믿음을 강조하다 보니까, 세례를 제 때에 주지 못했던 적도 많이 있습니다.
분명한 신앙고백을 가지고 있는데도 1년 넘게 세례를 주지 않았던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교훈에 따라 가능하면 정확한 시간에 정확한 신앙고백에 따라 세례를 베푸는 것이 유익하다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이것은 개인과 교회의 신앙생활의 유익에 관한 문제이지, 진리의 문제가 아니라 생각합니다.
이 점에서는 부르지저님과 동일한 생각입니다.
유익에 따라 세례 혹 침례의 의미를 분명히 전달하며 베푸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And Jesus, when he was baptized, went up straightway out of the water: and, lo, the heavens were opened unto him, and he saw the Spirit of God descending like a dove, and lighting upon him: (마 3:16, KJV)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똑바로 물 속에서 올라오실 때에, 보라, 하늘들이 그분께 열리며 또 하나님의 [영]께서 비둘기같이 내려와 자기 위에 내려앉는 것을 그분께서 보시더라. (마 3:16, 흠정역)
예수님은 물속에 완전히 침수되셨다가 물수면 위로 똑바로 올라오셨습니다(went up straightway out of the water).
땅으로 걸어서 올라오신 후, 하늘이 열린 것이 아니고, 물속의 몸이 수면 뒤로 올라왔을 때, 바로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예수님 위에 내렸습니다.
글쓴이는 이부분에서 약간의 오류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닮자고 하면서 왜 이런 면은 닮지 않으려고 하는지 속내를 모르겠습니다..예수님은 완전히 물속으로 들어가셨습니다(immerse).
물속에 들어간다는 것은 옛사람이 완전히 죽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예수님과 함께 죽고(물속에서) 예수님과 함께 부활하는 것(물수면 밖에서)이 세례의 본질입니다.
세례나 침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령으로 침례를 받는 것입니다..성령으로 머리위에 물찍어 바르듯이 세례를 받는 것이 아니고, 전신으로 성령침례를 받아야 한다는 데 우리 믿음의 본질이 있습니다.
신약교회에 있어서 제자를 삼아 침례를 주라는것은 ((주님의 명령)) 입니다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침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행2:41
침례의식이 중요하지 않다면 삼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왜 침례를 받았겠습니까?
이 시대는 믿음을 표시하고 나면 유대인 공동체에서 쫓겨나게 되고
직업을 잃을수도 있고 많은 희생을 각오해야만 했던 시대인데
이런 희생이 따르는 시대에도 침례에 순종함으로 자신의
믿음을 만 천하에 드러내 고백했고
한번에 몇 천명이 믿었던 그 시대에도 믿는자에게는 다 침례를 주었는데
오늘날이 무엇이 번거롭고 무슨 불편함이 있기에 침례 무용론을 주장하려는
자들이 있을까요? 이런 사람들은 정말 이해할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침례)를 주고 행8:38
둘이 ((물에서 올라갈새)) 39절
요한도 살렘 가까운 에논에서 세례(침례)를 주니
거기 ((물들이 많음))이라 사람들이 와서 침례를 받더라 요3:23
머리에 손가락으로 물 몇방울 찍어 바르는게 맞다면 많은 물도 필요없을 뿐더러
물에 둘다 내려갈 필요도 없지요
성경은 분명히 침례를 받는자나 주는자가 다 둘다 물에 내려갔다고 하고
많은 물이 있는곳에서 침례를 베풀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교단의 가르침에 따라 침례가 아닌 세례를 줄지언정!!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것 까지 왜곡시켜서는 안되겠지요,,
정말 믿음이 중요하고 믿는자라고 자부한다면
말씀에 무엇이라 기록되었는지
말씀을 경외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도 저것도 맞고 때에 따라서는 할 필요도 없고,,
어떻게 이런 주장들을 어떻게 할수 가 있는지,,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롬6:3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 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롬6:4
침례받는 의식보다 믿고 거듭남(성령세례) 이것이 더 중요하지만
진정 거듭난 자는 말씀에 순종하여 이 예식에 순종하는 자라고 생각합니다
십자가위에서 구원받은 강도말고는
다 믿은자는 침례받은걸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침례 무용론이나 물찍어 바르는 세례도 맞다라는 주장들은 별로
성경적인 근거가 부족한 주장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빌립과 이디오피아 여왕의 신하는 물속으로 들어갔다가 물속으로부터 나왔습니다. 세례가 허용될 수 있었다면 물속으로 들어갈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침례자 요한은 살렘 부근 애논강에서 침례를 행했는데 이유는 그곳이 물이 많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도 물속으로부터 올라오셨습니다. 세례는 죽음과 부활을 가르쳐 주지 못합니다.
칼빈주의자들은 인간은 완전 부패했다고 인정합니다. 침례가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세례가 인간들에게서 왔다면 완전부패한 인간들의 작품이라는 뜻입니다. 세례는 이집트의 성수사상에서 나온것이요, 한국의 삼신할머니 정한수와 고시례 풍습에서 볼수 있는 잡신 풍습이 들어온 것입니다.
그길님과 하토브님께서 침례에 대한 성경적인 실행을 잘 설명해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그길님과는 어떤 부분(세대주의 종말론)에서는 저의 견해와 차이가 있었는데 이 침례 부분에 대해서는 거의 일치하고 있군요.
말씀 이외의 것을 자꾸 가지고 오면 침례 문제에 있어서도 진리를 찾기가 어렵습니다..세례, 유아세례의 폐해가 매우 심각합니다..많은 사람들이 영안이 어두워 그 문제점들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